[감상]맵 투 더 스타즈

Leviathan
Korean Medium Post
Published in
7 min readMay 31, 2015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느 날 지도 한 장을 들고 홀연히 할리우드에 나타난 미스터리 소녀 ‘애거서’. 그녀가 여배우의 매니저 일을 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나타난 후 모든 이들과 실타래처럼 엮이면서 그들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번 배역만은 꼭 따내야 하는 위기의 여배우 ‘하바나’, 최고의 아역스타였지만 이제는 한물간 ‘벤지’와 그의 부모,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렌트카 운전 기사 ‘제롬’. 그들과 ‘애거서’의 엉킨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어지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벤야민은 일찍이 기술복제 시대와 예술작품이라는 소논문을 통해서 영화의 가능성과 위험을 다룬 적이 있다. 거기서 그는 영화 제작 시스템, 특히 헐리웃 스타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영화의 가능성은 아우라의 거세를 통해서 수많은 대중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헐리웃 스타 시스템은 이러한 영화의 아우라 거세를 숨기고, 마치 배우에게 실제 아우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속여서 대중을 거짓된 환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명제이다:벤야민이 주목한 영화의 계몽 가능성과 함께 배우에 대한 광적이며 물신적인 집착의 위협이 여전히 영화를 둘러싸고 팽팽한 길항 작용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맵 투 더 스타즈는 그러한 길항 작용에 대한 이야기다:헐리웃과 스타의 삶이라는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근친상간’이라는 키워드가 그것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근친상간이 내포할 수 밖에 없는 암울한 운명 사이의 파국이 불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된다. 일찍이 B급 SF 호러에서부터 폭력과 섹스를 붓과 캔버스 삼고 새로운 영화 세계를 구축한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인 맵 투 더 스타즈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놓고 비교해 본다면 스파이더(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영화)와 데인저러스 메소드(새로운 인간이기를 꿈꾸는) 사이의 어느 중간에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기나긴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에 최초로 입성한 크로넨버그가 헐리웃을 바라보는 시선은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고 암울하다.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을 두고 전개된다:한 쪽은 화재로 사망한 전설적인 여배우 어머니를 두고 그에 대한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하바나, 다른 한쪽은 화상자국이 심하게 남은 애거서이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이 둘을 엮어주는 중요한 매게이다. 그리고 이 ‘불’의 이미지는 헐리우드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꿈의 실현)과 파괴 양 측면을 모두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이 ‘근친상간’이라는 이미지로 엮여있다는 것이다:하바나는 어머니를 ‘성적으로’ 사랑했으며, 애거서는 어렸을 적 자신의 동생 벤지와 결혼식을 올리다가 화상을 얻었으며 부모 결혼의 비밀(근친상간에 의한)을 앎으로써 아름다운 근친상간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근친상간의 이미지가 둘러싸고 있는 시놉시스의 뼈대는 바로 하바나 어머니가 출연한 전설적인 영화의 리메이크를 둘러싼 갈등을 형성한다. 이 리메이크라는 개념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는 ‘근친상간’적이라 할 수 있다:과거의 작품을 ‘과거의 이야기+현대의 배우, 방법론’으로 만들어냄으로서 과거의 산물인 현대의 영화 산업이 자기 부모와 결합하여 자신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리메이크라는 개념 자체가 갖고 있는 근친상간적인 함의가 현재의 영화 산업에 있어서는 대세적인 흐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1세기, 정확하게는 2010년대 전후로 들어오면서 유명한 과거 작품의 리메이크는 대중문화의 핫한 트랜드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리부트’라고 칭하고 있다:하지만 이 리부트 열풍의 근간에는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배우 그리고 각색을 첨가한다는 점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근친상간적인 이미지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와서 리부트 열풍이 일어나는 것일까? 혹자는 21세기 인터넷으로 만들어진 대중 문화가 더이상 새로운 것을 꿈꾸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을 소비하는 아카이브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본인도 여기에 어느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좀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벤야민은 헐리웃 스타 시스템이나 영화산업이 배우에 대한 물신주의적 숭배를 낳고 이를 통해 유지된다고 보았다. 그러한 배우와 작품에 대한 물신주의적 숭배가 무너질 수 없는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다면, 그 전설을 자가복제적으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근친상간적인 리부트는 헐리웃 스타 시스템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근친상간이라는 테마와 함께 이 영화의 제목, 스타를 향한 지도Map to the Stars에서도 드러나듯이 영화는 단순하게 헐리웃의 현재 관점에서의 자가복제적인 이미지의 재생산을 넘어서 대중문화의 역사 전반에 깔려있는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애거서는 근친상간적인 결합 자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실제로도 영화 산업 이전에도, 인류는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적인 관점에서 복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애거서가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듯이 인류가 자신이 영향을 받고 시작했던 이미지와 결합하여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런 자가복제적인 이미지를 근친상간의 형태로 표현한 것은 이미 ‘그 자체에 파국을 내포하고 있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일찍이 사드가 그의 저서에서 자동기계적인 육체와 섹스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섹스는 그 자체에 어떠한 제한을 두지 않으면 스스로 극단적인 파멸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이를 두가지 형태로 보여준다:첫번째는 애거서가 하바나를 죽이게 되는 계기 자체가 하바나와 제롬과의 섹스를 목격한 것이었으며, 두번째는 애거서와 벤지가 갖고 있는 환각으로 대표되는 정신병(근친상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의 이미지이다. 이 두 이미지들은 근친상간이라는 형태가 자체가 파멸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숙명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는 불에 대비되는 ‘물’의 이미지가 은연중에 깔려 있다:불로 대변되는 열정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물의 이미지는 은연중에 이 불과도 같은 결합이 파멸할 것을 암시한다. 욕조에서 물을 뒤집어쓴 채 등장하는 하바나의 어머니 환영, 수영장에서 익사한 배우의 아들, 수영장에서 나오는 죽은 아이들의 환영, 수영장 근처에서 분신하는 벤지와 애거서의 어머니(그리고 분신하기 전엔 욕조 안에 물을 받아놓고 홀로 흐느낀다) 등등. 영화는 불과 물의 대비를 통해서 자기 파괴적인 아름다운 불꽃과 차갑고 축축하며 기분나쁘게 끈적한 물의 정적인 이미지를 동치시킨다. 영화의 결말 역시 이러한 숙명에 의해서 애거서와 벤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별을 바라보며 별들을 바라보는 이들 남매의 결말은 근친상간적 자기 복제가 가져다 줄 파국 그 자체인 것이다.

크로넨버그의 최초 헐리웃 입성작인 맵 투 더 스타즈는 그야말로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산업 및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니들은 죄다 근친상간범들이야!’라고 외치는 크로넨버그의 독기와 자신의 이미지를 내다버리는 혼신의 연기를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이 영화를 빛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인이 생각하는 크로넨버그 영화의 최대 걸작에는 못미치지만, 리부트 열풍이 부는 요즘같은 시대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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