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상승
미셸 우엘벡의 소설 “복종(Soumission)”은 2022년 대선 때 결선투표로 마린 르펜이 나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물론 우엘벡은 마린 르펜이 왜 결선에 나갈 정도로 우세한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단 프랑스 극우파의 뿌리를 더듬어 보자. 아무래도 프랑스 극우파의 뿌리는 제3공화국 시절(1870–1940)의 왕당파가 그 시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정교분리(Laïcité)로 권리를 박탈당한 천주교회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얘기다. 하지만 악시옹 프랑세즈는 첫 번째로 비오 11세의 비난(지도부 일부의 불가지론 때문이었다)과 두 번째로 비시 정부에 대한 협력, 그리고 세 번째로 그를 좌시하지 않은 현대 프랑스의 정당들로 인하여 거의 존재감을 잃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 내 극우파가 죽지는 않았었다. 스스로 우파임을 배격했던 샤를 드 골은 물론이거니와 천주교 세력도 프랑스 내에서 극우파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극우파를 지탱하는 기둥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1) 전통주의 (2) 자유주의 (3) 보나파르티즘으로서, 이 세 가지를 이해해야 현대 프랑스의 극우파도 이해할 수 있다.
- 전통주의는 왕당파를 아우르기는 하지만 가족과 소기업, 가톨릭의 영향을 유지하는 교구(!) 위주를 의미한다. 결국은 반세계화다. 다만 개인주의와 진보, 계몽 또한 “우리” 가족과 “우리” 기업을 위해 중요하다 여긴다.
- 자유주의는 전통주의와 다르다. 거대 기업 위주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개인의 자유와 권력 분립, 의회주의, 결국은 세계화를 주장한다.
- 보나파르티즘은 단순한 왕당파라 할 수 없다. 강력한 리더의 질서와 법치, 국가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의문이 풀릴 가닥이 보일 것이다. 보통 국민전선을 “극우파(Extrême droite)”라 표현하지만, 1–3까지의 가치를 단순히 우파나 좌파로 구분하기 모호한 측면이 있다. 물론 국민전선이 처음 정계에 등장할 때는 모호하지 않았다. 1–3의 가치에 더하여 반-유대주의를 넣었기 때문이다.
이 반-유대주의(장-마리 르펜은 가스실을 “역사의 사소한 일부”라 말했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린을 건드렸고 인종주의이기도 하기 때문에 극우파는 악마화되었다. 그러는 도중 장-마리의 딸, 마린 르펜이 FN의 기수로 떠올랐고 프랑스의 좌우 양당(?!) 체제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다시 우엘벡의 “복종”을 읽어 보자.
그는 기본적으로 프랑스가 좌파와 우파를 왔다갔다 하면서 정치적인 염증을 불러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문제를 그간의 좌파나 우파 정부가 해결했는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늘어나는 이민과 범죄, 경기 불황에 따른 실업으로 인해 (특히) 백인-중하층의 좌절감도 같이 늘어났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대표할 정당이 없었다. 사르코지도, 올랑드도 자기들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그동안 프랑스 우파, 특히 사르코지는 극우파의 정책을 일부 차용하면서 FN의 부상(浮上)을 막았었고, 그를 유권자들은 믿었기 때문에 시락에게 그렇게 실망했으면서도 다시 한 번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밀었었다.
물론 사르코지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고, 정권은 2012년에 교체됐다. 하지만 1970년대 말에도 아래와 같았던 상황은 2010년대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우파이든 좌파이든 노동자들에게 하나같이 불리한 “개혁”을 시도했고, 시도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던 공산당은 소련 몰락후, 프랑스에서도 이미 몰락했었다.
2011년부터 FN의 왕좌에 오른 마린 르펜은 유럽인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반유대주의를 기조에서 없앴다. 그리고는 “탈악마화(dédiabolisation)” 정책을 시작했다. 그녀는 세계화된 경제에서 프랑스를 보호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유로탈퇴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극좌파가 무색하리만치 재벌들도 공격하고 있다.
게다가 무작정 반-이민도 이민자의 프랑스 “통합”으로 바꿨다. FN이 아니라 이슬람이야말로 프랑스 민주주의의 “적”이라면서 말이다. 그녀의 주장은 금번 테러 때문에 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만 프랑스 “통합”은 정교분리의 정책도 결국 가톨릭 위주의 FN이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녀는, 세속주의도 받아들였다. 그래야 모스크 건설의 공적 지원처럼 무슬림을 “배려”하는 정책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좌파, 특히 극좌파는 자기들이 만들었던 세속주의(19세기 때 만들어진 세속주의 정책은 당시의 좌파인 공화주의자들의 작품이었다)보다 “다문화주의”를 더 선호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인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국민전선(FN)에 대해 물어 보자. FN은 파시스트인가? FN 당원들은 강력한 지도자만이 프랑스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 여기고 있다. 우파가 갖고 있는 가치인 “보나파르티즘”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파시스트라기보다는 미국의 티파티에 더 가깝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FN은 인종주의 정당인가? 그래 보이기는 하지만 마린 르펜의 “탈악마화”는 반유대주의부터 일단 버렸다. “세속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겉으로나마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할 수 없다. FN은 우파와 연합할 수 있나? 여기에 대한 답은…
2017년은 프랑스의 기존 정당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 징조가 이번 2015년 지방선거라 할 수 있으며, 2017년 대선은 아마 손쉽게 공화국전선(Front républicain)을 통해 올랑드나 공화당의 누군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대선은 아무래도 국민전선이 가져갈 공산이 크다고 봐야겠다.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겠다. 2022년 대선에서 대통령을 국민전선이 차지한다 하더라도 의회에서 다수파를 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엘벡의 우울한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봐야 할 일이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