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위한 측정 (1)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일이든 시작해서 끝까지 마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특정한 프로젝트나 활동의 진행상황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이 장에서 다룰 내용은 글쓰기의 측정입니다. 여기서는 글쓰기를 다루지만 다른 유형의 창작활동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글쓰기의 어려움

어린시절 작문숙제 외에는 글을 써본적이 없는 사람이든,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든 글쓰기의 어려움은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착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뇌에 빠진 작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심지어는 Writer’s Block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블로그 포스트 정도 길이의 글을 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막상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고부터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선 각 챕터 혹은 책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몇달이라는 기간 동안 글을 쓰다보면 처음과 끝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출판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깊이와 수준을 갖춘 글을 써야 하는데, 이 역시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요약하면 책 한권을 쓰는 일은 지적인 차원을 넘어 상당한 체력과 의지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글쓰기가 육체적이 노동이라는 말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글쓰기는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모든 지각 능력을 동원하고,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다.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몸만 보고서도 나는 그들이 얼마나 몰입해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따라서 책쓰기를 결심한 지 한달이 지나서는, 이 책을 쓰는 과정 자체를 측정 해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측정에 관한 책이니 그 집필 과정에 측정을 도입하는 것은 어찌보면 그 자체의 존재의 증명이기도 합니다. 만약 측정의 도움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고, 반대로 실패한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절반 정도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지만, 글쓰기에 측정론을 적용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글쓰기 측정의 방법

제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을 계획중인 글쓰기 측정의 지표는 진척도 / 생산성 / 품질 등이 있습니다.

진척도: 일간 집필양

글쓰기에 대한 어느 책을 보더라도 꼭 나오는 이야기가 ‘매일 쓰라’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글쓰기라는 활동은 쓰고자 하는 주제 및 구성 그리고 언어적인 감각이 유지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매일 뭔가를 쓰는 리듬이 효과적입니다. 조정래씨의 에세이인 ‘황홀한 글감옥’에는 대하 소설을 집필하는 기간에 저자가 지키는 원칙을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첫째, 집필 기간 단축을 위해 저는 집필 기간동안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만취하도록 마시는 시간, 숙취로 보내는 다음날, 컨디션을 회복하는 기간까지 3일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 하루 집필량을 30장으로 정하고, 이를 꼭 지키기 위해 한 달 집필량 합산표를 만들어 책상 위에 놓습니다.
셋째, 소설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방법으로 기분 전환을 하려 하지 않고 더욱 책상으로 다가앉아 끝끝내 마음먹은대로 써내고 물러나기로 한 것입니다.

책의 완성을 위해서는 우선 원고를 기한내 완성해야 할텐데, 이를 위해서 문고본의 평균 글자수라는 20,000단어 분량의 글을 3개월에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를 환산하면 주당 1600자 정도에 해당하고, 따라서 일요일을 빼고 메일 평균 300단어정도를 쓰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쓴 글이 모두 책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고 퇴고에 걸리는 시간도 있을 것이니 실제 시간은 좀더 소요될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간단한 측정 방법은 매일 집필한 글의 단어수를 세는 것입니다. 단어수 세기는 대부분의 워드프로세서에서 지원하는 기능이지만, 저는 각 장별로 다른 파일을 관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집필에 Markdown이라는 포멧의 텍스트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이썬으로 각 챕터의 글자수를 재는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매일 집필후에 실행하면 총 단어수가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Time mbook_ch1.md mbook_ch2.md mbook_ch3.md mbook_ch4.md Total
2014–09–20 19:31:15 3022 104 2987 357 6836
Time mbook_ch1.md mbook_ch2.md mbook_ch3.md mbook_ch4.md Total
2014–09–20 19:31:22 3022 104 2987 357 6836
Time mbook_ch1.md mbook_ch2.md mbook_ch3.md mbook_ch4.md Total
2014–09–20 19:32:53 3022 104 2987 357 6836

이렇게 측정을 하면서 글을 쓰니, 매일매일의 진척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비슷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아내와 집필량을 매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생산성: 시간당 집필량

일간 집필량은 글쓰기의 진척상황을 알려줄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생산성’을 알기 위해서는 단위 시간에 얼마나 썼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글쓰기 관련 서적에서 초벌 원고를 최대한 빨리 쓰기를 권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고치게 되더라도 최대한 빠른 리듬으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각 시점의 단어수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 테이블의 결과물을 가공하면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의 단어수와 끝난 시점의 단어수, 그리고 집필에 소요된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글쓰기의 생산성을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습니다.

TimeStart TimeEnd Hours Words WPH
2014–10–29 21:25:06.253 2014–10–29 22:18:58.697 0.897 245 272.858
2014–10–29 22:18:58.697 2014–10–29 22:36:43.219 0.295 0 0.0
2014–10–29 22:36:43.219 2014–10–29 22:51:55.737 0.253 36 142.024
2014–10–29 22:51:55.737 2014–10–29 23:01:48.840 0.164 26 157.814
2014–10–30 21:26:14.910 2014–10–30 23:26:47.558 2.009 630 313.578
2014–10–31 22:25:09.898 2014–10–31 22:41:17.794 0.268 42 156.215
2014–10–31 22:41:17.794 2014–10–31 23:12:53.115 0.526 43 81.674
2014–10–31 23:12:53.115 2014–10–31 23:30:46.561 0.298 145 486.284

위의 표에는 글쓰기의 생산성에 상당한 편차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지표를 측정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초벌 원고를 의식적으로 빨리 쓰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산성(2): 집필과 퇴고의 비중

초벌 원고를 빨리 쓰는 습관을 들이면서 집필에 탄력이 붙었지만, 미완성의 초벌 원고가 지나치게 쌓이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미완성이란 전체의 흐름과 논지는 있지만 세부사항이 빠진 힘이 없는 글을 가리킵니다. 다시 나탈리 골드버그를 인용합니다.

가끔 아무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 있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웅장한 생각과 열정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쓴 글을 퇴고하면서 확장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집필량과 시간당 생산성을 측정하고 있었는데, 초벌 원고를 쓰는 일이 퇴고를 하는 것보다 더 생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 쓴 원고와 기존 글에 추가한 내용을 구분해서 측정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생산성을 시간당 단어수로 측정하되, 기존에 쓴 글에 추가하는 경우는 어느정도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는 글에 추가된 제목의 수와 집필량을 관계를 기준으로 계산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데 제목이 몇개 추가된 구간은 새로 쓴 글일 확률이 높고, 제목이 추가되지 않은 경우는 퇴고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지표는 아직 구현되지 않았으니, 조만간 시험 후 결과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의 품질: 독자의 피드백

지금까지 글쓰기의 양적인 생산성을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품질이 보증되지 않는 양적인 성취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글의 품질을 자동으로 측정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정보 검색 및 자연어처리 논문 중 문서의 가독성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지만 (저의 2012년 논문 참조), 글의 가독성은 품질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물론 출판된 책의 궁극적인 품질 평가는 독자에 의해 내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품질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택한 접근 방법은 최대한 독자들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미 블로그 및 미디엄에 책의 일부를 올리고 있지만, 독자들과의 좀더 긴밀한 소통을 위해 메일링 리스트 형태의 독자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글쓰기 측정의 교훈

책의 완성을 위해 시작한 측정이었지만, 글쓰기의 측정 과정은 제가 측정에 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좀더 확신을 부여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소개합니다.

측정은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책을 쓰겠디고 결심하기 이전에도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왔습니다. ‘매일 써라’, ‘초벌 원고를 최대한 빨리 써라’,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라’ 등의 교훈이 제가 익히 알고 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한 후에 이런 교훈을 그냥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지식의 실천은 그동안 익숙해진 습관과 타성을 극복하는 용기와 의지를 필요로하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저의 접근방법은 측정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저는 각 교훈에 맞는 측정 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지표를 설정해서 그 성과를 수치화하게 된 이후로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책 1장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썼었는데, 이 책의 집필을 통하여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실감하고 있습니다.

측정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목표를 수치화하고, 이를 통해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마지막으로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것을 가능케합니다.

측정이 편한 형태의 작업환경을 선택한다

위에서 설명한 생산성 측정 지표는 모두 단어수를 바탕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일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도 계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크립팅이 용이한 텍스트 형태로 글을 작성하기로 하였고, 이는 결과 각종 지표를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측정을 자동화하려는 노력이 꼭 정당화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저 역시 책을 출간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이런 시스템을 고안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측정 방식을 선택하되, 이때 측정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트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지표를 개발하여 사용한다

책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이제 세달, 측정을 시작한지는 이제 두달이 갓 넘었지만 그동안 프로젝트의 상황에 따라 계속 적절한 지표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지표를 정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린 분석(Lean Analytics)의 주장과도 닮아 있습니다.

저는 매일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처음 몇주는 일간 집필량을, 그리고 초벌 원고의 생산성을 고민하던 시점에는 시간당 생산성을, 마지막으로 퇴고와 초벌 원고의 비중을 고민하는 최근에는 이에 맞는 지표를 고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표들은 각 시점에 제게 올바른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맺음말

처음에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그냥 자주 쓰던 글을 좀더 꾸준히 쓰면 되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일관성과 깊이있게 써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을 때 앞일이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적절한 지표를 개발하여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원고의 진척상황을 보여주는 아래 차트에는 측정을 처음 시작한 9월 말까지만해도 상당히 들쭉날쭉한 생산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생산성 지표를 마련하기 시작한 10월말부터는 좀더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이 글이 책의 형태로 나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Journey is the Reward’라는 말처럼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교훈과 성취감은 비할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집필 과정에 대한 조정래씨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숨이 막힌다고요? 예, 세상의 모든 노력은 치열함을 요구합니다. 저는 그 숨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작가’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글은 제가 집필중인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측정론(가제)’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현재까지 완성된 책의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