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 인디고 (L’écume des jours)

Mood Indigo


이 영화는 포스터만 보더라도, 아니 첫 장면들만 보더라도 미셸 공드리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장점과 단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무드 인디고이다.

물론 무드 인디고는 영어판 제목이고 우리나라도 이 제목을 그대로 따 왔으나, 원제인 "세월의 거품(L’écume des jours)"과는 전혀 연결이 안 되는 제목이다. 답이 당연히 있다. 듀크 엘링턴의 대표적인 재즈 곡 중 하나가 "무드 인디고"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에서도 듀크 엘링턴의 노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원작이 있는, 그러니까 원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며, 아마 공드리의 작품이 두 번째 영화화일 것이다. 원작과 저자를 알면 이 영화에 장-폴 사르트르를 풍자한 인물이 틀림 없을 장-솔 파르트르가 갑자기 왜 등장하는지, 듀크 엘링턴이 왜 중요한지 등의 실마리를 알 수 있다.

보리스 비앙(왼쪽)과 쥘리에트 그레코(오른쪽)의 사진이다. 당시 파리마치 지에 실린 사진으로서 생제르맹데프레에 있는 재즈 클럽(그가 이 클럽을 만들었다)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출처)

원작자인 보리스 비앙(Boris Vian)은 프랑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들을 지은 작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당연하고 어쩔 수 없었겠지만) 주로 미국 문화에 흠뻑 빠지는 작가 세대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그는 미국 재즈, 미국 문화의 열렬한 팬으로서 프랑스에 재즈를 소개한 주요 인물이었다.

보리스 비앙(중앙 왼쪽)과 듀크 엘링턴(오른쪽), 비앙은 엘링턴의 파리 공연을 주선했다. (출처)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듀크 엘링턴을 프랑스에 소개했다는 얘기인데, 그가 프랑스에 재즈를 들여온 원조까지는 아니었다. 원래는 Hot Club de France라는 단체(1931년에 재즈/스윙/블루스 홍보를 위해 세워진 단체로서 제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를 숨기는 역할이었다)에 속해 있었고 그가 주요 인물이 됐던 것 뿐이었다.

그는 뭣보다도 작가였고, 소설들이 계속 성공을 거둔 덕분에 40년대 말, 파리 Café de Flore의 단골이 될 수 있었다. 단골이 됐다는 표현이 좀 이상한데, 쉽게 말해서 그는 장-폴 사르트르의 절친이 됐다. 여기서 사르트르가 그의 작품에 왜 등장하는지 알 수 있다. 사르트르는 "세월의 거품"에 등장하는 파(!)르트르를 썩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첫 번째 부인인 미셸이 사르트르 곁으로 떠나버리는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40년대 말 쯤, Café de Flore에서 열심히 수다를 떠는 중인 장폴 사르트르-보리스 비앙-미셸 비앙(보리스의 첫 번째 부인)-시몬 드 보부아르. (출처)

즉, 보리스 비앙을 보면 원작과 영화에 나오는 열쇠들을 다 풀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영화 속 콜랑은 칵테일 피아노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칵테일 피아노(pianococktail)가 원래 보리스 비앙의 작품이었다. 연주에 따라, 리듬에 따라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이 장치를 비앙이 실제로 만들지는 않았었다. 대신 그는 "세월의 거품"에서 이 장치를 콜랑이 만들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공드리의 영화는 보리스 비앙의 삶이 녹아 들어 있는 고전을 영화로 잘 만들었는가?

로맹 뒤리스와 오드리 토투, 그리고 미셸 공드리. 자세히 보면 영화에서 "의사" 역할이 바로 공드리 감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아기자기하고 보기 좋기는 하지만 너무 과했다. 맨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공드리의 장단점이 모두 드러났다는 얘기다. 영화 시간을 한 시간 내외로 줄였으면 어땠을지 싶기도 할 정도로 특수효과가 영화를 압도했다는 얘기.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효과가 끊임 없이 나왔다는 얘기다.

결혼식 경쟁(!)을 위해 레이싱을 벌이는 주인공들

당연하겠지만 "이터널 선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에도 비슷한 규모의 특수효과가 동원되며, 그런 효과는 전세계에서 오로지 미셸 공드리만이 그럴듯하게 해내는 장기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 혹은 벨에포크의 소품이나 상황을 향수어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장점. (가만. 그러고 보면 장-피에르 즈네(Jean-Pierre Jeunet, Le Fabuleu Déstin d’Amélie Poulain의 감독)도 그런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공드리와는 좀 다르다.)

그런데 그 기반이 되는 이야기가 위에서 내내 언급한 보리스 비앙이었다는 점이 많이 어려웠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가 병 걸려 죽었다는, 워낙에 간단한 이야기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 그냥 남녀가 헤어졌다는 간단한 이야기 아니었느냐고 항의(?)할 수 있겠지만, 그 영화에서 캐릭터들은 특수효과에 매몰되지 않았었다.

이터널 선샤인 (출처)

그렇다고 내가 이 영화를 싫어했냐 하면 또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드리의 특수효과를 보는 것이 공드리 영화를 보는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고, 워낙에 생각만 해 왔던 (혹은 생각도 못 했던) 점이 영상에 나타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수면의 과학에서는 거대한 손이 나오는데, 나도 가끔 거대한 손을 느끼기는 했지만 평상시에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공드리는 그런 걸 잡아내서 시각화 시키는 인물이다.

수면의 과학 (출처)

분명 공드리는 이야기가 특수효과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지만 말이다. 다만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은 아마... 훨씬 나중에 다시 영화화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은 영화 촬영장 사진으로 마무리.

로맹 뒤리스와 오드리 토투 (둘 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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