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매드맥스 3부작, 마초 그리고 도로

*매드맥스 3부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드맥스 프랜차이즈의 최신작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2015년 5월에 개봉하였다. 사실 전세계적인 리부트 열풍을 감안한다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등장은 다소 뜬금없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한 현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상한 현상은 영화의 개봉 직후에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여성이 중심이 된 영화이며, 심지어는 ‘패미니즘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마초영화에 감히 패미니즘 따위가!’라고 광분하며 길길이 날뛰기도 하였지만 대체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라는 이미지를 정립하고 그 빛이 퇴색해버린 오래된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였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두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첫번째, 매드맥스 시리즈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마초적’인 프랜차이즈인가? 그리고 두번째, 매드 맥스 프랜차이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정립한걸 제외하면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이 없었던 것일까? 이 칼럼에선 이러한 두가지의 질문을 토대로 매드맥스 삼부작을 되돌아보고, 더 나아가서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를 리뷰하기 위한 밑바탕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매드맥스 시리즈가 마초적인 작품이냐는 질문에 대한 고찰이다. 일단 답을 먼저 내리자면 1편이 마초적인 색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지만, 시리즈 전체와 더 나아가 조지 밀러라는 감독이 하고 싶었던 바를 생각하자면 매드맥스 시리즈는 오히려 비마초적인 영화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특히 1편과 2편의 맥스의 모습과 도로라는 공간을 그려내는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한다. 먼저 1979년에 호주 B급 영화로 만들어진 매드맥스 1편은 대충 망해가는 세상을 배경으로(그야말로 완전히 망한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것도 아닌 ‘대충 망한’) 고속도로 경관인 맥스 로카탄스키가 무법 폭주족인 토커터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고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편은 이러한 과정을 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상깊은 형태로 구현한다:2차선의 도로는 지극히 좁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고속도로 경관인 맥스)이 다른 한쪽(바이커들)을 배제할 수 밖에 없는 충돌의 공간이다.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고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찍은 영화의 많은 시퀸스들은 달리는 것 자체의 아슬아슬함과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동시에 매드맥스 1편에서 도로는 도달하는 곳이 정해져있는 광기의 공간이기도 하다: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바로 토커터 일당이 맥스의 아내와 자식을 바이크로 쳐버린 뒤, 맥스가 맨발로 도로를 달리면서 아내와 자식의 유체를 바라보며 오열하는 장면일 것이다. 여기서 도로는 일직선으로 뻗어있으며, 카메라는 멀치감치서 달려가는 맥스를 잡아낸다. 그리고 도로의 끝에서, 맥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비극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맥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의에 가까운 복수를 집행하는 분노의 사자가 된다.

하지만 2편에서는 이러한 미학들이 180도 바뀌게 된다:우선, 도로라는 공간과 자동차라는 미학은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뀐 것은 도로라는 공간의 속성과 맥스라는 케릭터의 특징일 것이다. 1편에서 가족을 잃은 맥스는 이제 지켜야 할 가족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유능하고 빠르지만(8기통의 블랙 인터셉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비인간적일 정도로 냉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겁탈당하는 여인을 두고도 기회를 엿본다던가) 멜 깁슨 특유의 어딘가 휙하면 돌아버릴거 같은 분위기와 함께, 맥스는 무미건조한 태도 속에 느글거리는 광기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그런 그가 여타 도로의 무법자 갱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기본적인 원칙들, 계약의 이행이나 신뢰 같은 가치를 여전히 믿고 따른다는 점에 있다. 즉, 1편에서 분노한 남자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2편에서는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이미지를 맥스는 갖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라는 공간도 그에 맞춰서 변화하게 된다:후술하겠지만 2편에서 도로는 단순한 마초들의 광기와 물리적 충돌의 공간이 아닌 방향성의 문제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카메라는 더이상 자동차의 속도감만에 집착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공중에서 자동차들의 추격씬을 다루거나, 와이드캠으로 파노라마를 구축하는 주력한다. 2편은 마초들의 광기어린 충돌, 어느 한쪽이 살아남는다라는 감각이 아닌 ‘방향성’의 문제,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러한 두 영화의 차이는 기본적인 공식(맥스와 도로, 자동차)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상이한 결론에 도달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렇게 접근할 수 있다:기본적으로 매드맥스 1편은 ‘그렇게 성공할줄 몰랐었던’ 작품이다. 그렇기에 적은 예산을 토대로 만들었어야 하는 작품이었기에 장르 영화의 공식(마초적인 색체)을 따르면서도 최대한 예산을 아껴야 했을 것이다(공중 촬영으로 와이드 캠으로 찍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하지만 1편의 예상외의 성공은 2편을 좀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감독이나 제작진의 재량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여지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즉, 2편은 시리즈 전체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들이 모여있는 작품이며, 1편은 감독이 제한된 환경과 타겟 관객층을 정해놓고 만들었어야 했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감독은 지속적으로 1편의 설정(고속도로 경관이었던 맥스, 1편 마지막 다쳤던 부상의 여파인 다리 보철)을 시리즈 전반에 삽입함으로서 1편을 원류이자 출발점으로써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2편이 감독이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라 가정하고 매드맥스 시리즈의 구심점이라 결론내렸을 때, 이 영화 프랜차이즈를 마초적이라 부를만한 여지는 줄어들게 된다. 마초란 ‘남자다움’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2편의 맥스에게 있어서 그런 지향해야 하는 가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이 있는 것은 가솔린으로 표상되는 ‘생존’에의 의지다. 그런 생존에의 의지와 함께 매마른 감정과 가슴 깊숙이 남아있는 가족의 상실이라는 상흔이 지배하는 맥스를 우리는 생존자 또는 망령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맥스의 모습을 2015년 9월 발매 예정인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매드맥스 게임 트레일러에서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끝낼 영웅이 오리라고 누군가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 대신에 우리에게는 그가 있다. 맥스라 불리는 남자가.

맥스는 마초는 아니며, 더더욱이나 영웅은 아니다. 그는 공동체에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나 영웅이 아니며, 자신이 조우한 공동체와 함께 투닥거리면서 갈등하고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하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2편과 3편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동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서 관객들은 그에게서 신비함을 느끼는 동시에 어딘가 믿을 수 없는 긴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항상 영화의 마지막에 맥스는 공동체를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그것은 자신의 생존의 확률을 높여주기에(2편의 클라이맥스인 유조차 시퀸스),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3편에서 사반나를 구하러 가는 시퀸스), 혹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되풀이 되는걸 막고자 하는(4편의 클라이맥스) 형태로 다양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맥스라는 케릭터가 갖고 있는 독특함이다:그는 생존의지가 강하고 그로 인해 때로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낼때도 있지만 그 속에는 한줄기 희망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그러한 일련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함께, 맥스 스스로도 자신이 갖고 있는 상흔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2편에서부터 4편까지, 그는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남지 않고 다시 도로로, 황무지로 떠난다. 혹자는 여기서 서부극의 영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서부극의 영웅들은 모든 상황이 종결된 이후,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자연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맥스는 그러한 서부극의 엔딩의 좀 더 어두운 형태다:맥스는 자신이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공동체가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믿지만, 그 속에 과거의 상흔에 사로잡힌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다시 광기의 공간인 도로에 남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맥스는 철저하게 ‘망령’이라 할 수 있다: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마음 한편으로 믿지만, 과거의 상흔이 그를 새로운 출발선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가련한 존재. 맥스는 그렇기에 독특한 케릭터이며 동시에 마초적이거나 영웅적인 색체가 옅은, 그러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케릭터가 된다.

두번째는 매드맥스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로서 갖는 독특함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다. 매드맥스 2편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폴아웃 시리즈나 북두의 권 같은 작품들은 노골적으로 매드맥스 2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30년 이상된 이 프랜차이즈가 30년 동안의 공백기 동안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면, 여기에는 더이상 ‘새로운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게임 레이지나 보더랜드 같은 작품에서는 매드맥스에서의 ‘탈 것’의 개념을 충실하게 구현하기도 했었다.

매드맥스만의 독특한 미학을 다루려면 먼저 속도와 속력의 개념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속력은 한 물체가 지니고 있는 운동량을 의미하며, 속도는 속력에 백터량 즉 방향성이 합쳐진 개념이다.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은 1편이나 2편, 3편, 그리고 4편까지 이 속력과 속도의 구분과 도로에서의 방향성을 통해서 케릭터들의 특성이 분명하게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1편의 경우에는 방향성이 있는 속도 보다는 속력이 더 강조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도로를 달리면서 무엇이든지 파괴하는 토커터의 동선은 방향성이 있다기 보다는 방향성이 없는 광기의 속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맥스는 도로 경관일을 계속하면 자신 역시 언젠가 그런 미치광이 같은 작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그것은 일방통행이자 양보의 여지없는 2차선 도로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위험한 가능성 때문이기도 한다.(어떻게 보면 그가 단순한 마초가 아님을 드러내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는 그러한 광기와 위험성으로부터 도망가고자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 이러한 그의 움직임에는 가족이라는 지켜야하는 가치와 믿음, 더 나아가서 자신을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방향성이 있으며 이는 속도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커터에 의해서 가족이라는 집단이 파괴되자, 그의 방향성은 무자비하게 토커터를 향하고 그리고 그들을 박살냄으로써 그는 속도의 방향성은 상실한다: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그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2편에서는 이러한 속도와 속력의 방향성이 아주 극명하게 대비된다. 방향성을 상실한 맥스는 뛰어난 속력(V8 블랙 인터셉터)과 그에 걸맞는 운전실력과 반사신경(맨손으로 뱀을 잡는), 생존의지를 보유한 능력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휴몽거스의 깡패들과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 인물이기도 하다:휴몽거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정유시설 생존자 집단의 석유를 원한다. 또한 정유시설의 생존자들 역시 휴몽거스의 깡패들과 비교해서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들은 아니다:클라이맥스의 반전이나, 내분이 일어나는 모습, 석유를 독점하는 모습 등을 통해서 이들이 이상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맥스나 휴몽거스나 정유시설 공동체들을 서로 구분짓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방향성’의 문제일 것이다:정유집단의 생존자들은 정유시설을 떠나서 저 멀리에 있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길 꿈꾸며, 안(정유시설)에서부터 밖(저 멀리의 이상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석유는 생존을 보장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정유시설에서 바깥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뒷받침하는 동력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로는 그러한 방향성을 위한 거쳐가는 공간이자 수단이다. 하지만 휴몽거스 집단에게 있어서 도로는 세계가 멸망한 이후 그들의 광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들은 더 나은 미래나 인간적인 삶 따위에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석유는 광기의 추동력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은 바깥에서 안(정유시설)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 두 백터가 팽팽하게 충돌함으로서 영화는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여기에 맥스가 끼어든게 된다.

맥스는 이 두 집단과 벡터의 충돌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는 이 팽팽한 두 방향성의 사이에 끼어들어 자신의 재능을 팔아 석유를 얻고, 그리고 다시 생존자 집단을 떠나려 한다. 애시당초에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상흔 때문에 어딘가에 정착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가 그를 찾아온다:그는 놀라운 재능과 속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자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휴몽거스의 행동대장은 니트로 차저를 이용해서 맥스의 블랙 인터셉터를 따라잡는다.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그의 속력이 따라잡히게 되면서 그의 차는 부서지고 동료인 개는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조차도 너덜너덜하게 된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맥스를 공동체로 이송한 후, 맥스는 공동체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자신이 유조차를 몰고 미끼가 되는 것으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맥스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의 일부로도 볼 수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이 트럭을 몰고 미끼로 활동하여 최대한 시간을 끈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맥스가 공동체가 갖고 있는 이상과 방향성에 대해서 긍정하고 있음을 전제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속력에 벡터를 추가해서 속도를 만들어내게 된다. 2편 클라이맥스의 유조차 추격씬이 갖고 있는 긴장감은 바로 그런데 근거하고 있다. 한쪽은 쫒아오고 다른 한쪽은 추격한다. 거대한 유조차는 단순하게 거대한 것을 뛰어넘어 맥스가 부담하는 심리적 물적 부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휴몽거스가 니트로 차저를 키고 전속력으로 맥스의 유조차와 정면에서 부딪히면서 이 추격씬은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충돌 이후, 맥스는 살아남는데 성공하지만 공동체가 도로를 따라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맥스는 그들의 뒤에, 도로의 위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는 공동체와 인간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믿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갖고 있는 상흔이 그를 어딘가로 향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 자체를 방해하는 것이다. 4편에서의 맥스의 독백처럼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서 쫒기는 자’라는 표현처럼, 죄책감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그를 어디로도 향할 수 없는 도로 위에서 서서히 망가뜨리고 궁지로 몰아가게 한다.

3편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망한 작품이기도 하다:기본적으로 가식(교역 도시)과 순수(어린이들의 마을) 사이를 맥스가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여기에는 ‘도로’라는 공간과 그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성은 뜬금없는 방향으로 꺾여지며(왜 사반나를 구한 뒤에 마스터를 구하러 가는가? 영화는 그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하다), 매드맥스 1편이나 2편이 가졌던 메마르고 잔인했던 정서는 잘려나간 3편은 마치 만들다 만 가족 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 정서마저 느껴질 정도로 유치함이 느껴진다. 영화의 각 요소들은 괜찮은 부분들이 있지만, 점과 점으로써만 존재하고 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산만하게 흩어져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드맥스 3는 케빈 코스트너의 희대의 괴작 워터월드를 떠오르게 만들고, 워터월드를 잘만들면 매드맥스 3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될거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엄밀하게 보자면 워터월드가 시기상으로 앞선 매드맥스 3를 벤치마킹한 쪽에 가깝지만 말이다.

하지만 엉망진창인 3편에도 건질 장면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추격대가 맥스 일행을 향해 달려오고, 맥스 일행의 비행기는 이륙하기 위해서는 추격대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리고 맥스는 자원하여 트럭을 몰고 사반나 일행이 이륙할 수 있는 활로를 뚫는다. 이 두 집단의 충돌의 긴장감과 비행기 이륙까지의 스릴은 이 영화가 매드맥스 프랜차이즈에 속해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동시에 맥스라는 케릭터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도로와 방향성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1,2,3편 모두를 통털어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탈 것이 그 케릭터의 성격을 묘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맥스의 8기통 블랙 인터셉터는 그가 빠르고 고독하며 유능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리고 자이로콥터를 타고 다니는 남자는 변칙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가 맥스와 같이 빠르고 강한 것은 아니지만 약삭빠르고 영리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휴몽거스의 경우에는 그의 논리적이고 달콤한 감언이설과 별개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차 범퍼에 달고 다니는 모습과 어딘가 야만적인 인상을 주는 자동차의 디자인을 통해서 그의 말과 다르게 그의 본질이 잔인하고 야만적임을 알게 만든다. 이와 같이 ‘자동차’라는 현대문명의 이기를 다채롭게 개조하여 광기의 표현물인 동시에 케릭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썼다는 점에서 매드맥스는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편 분노의 도로는 이러한 기반을 통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분노의 도로 리뷰는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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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at leviath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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