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랜도너

2014-01-16

박규현
11 min readJan 16, 2014

이 비싼 자전거의 차주가 되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자전거는 감가상각이 심한 소모품이라 비싼 거 사봤자 몇 년 안에 고철이 된다. 그럼에도 질렀다. 비싼 자전거지만 이제 휘어지고 닮아 없어질 일만 남았다. 가장 건강할 때 모습을 찍어두고 싶어서 포스팅을 한다.

Koga Randonneur 는 네덜란드에서 온 여행용 자전거다. 네덜란드는 무려 이런 자전거 교차로가 있는 나라다.

https://vimeo.com/71511991

여행용 자전거는 시장이 작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드물다. 거기에 수입까지 제한적이라 국내에선 선택의 여지가 더 작아진다.

꼭 여행용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MTB, 하이브리드, 로드, 미벨로도 여행은 모두 가능하다. 국내여행 뿐만이 아니다. 해외 여행기를 보면 다양한 자전거들이 등장한다. 전국일주를 위해 새로 여행용 자전거를 구입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에 적절한 부품을 추가해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첫 부산 여행은 브롬톤으로 했다.

투어링 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뒤지기 시작한 건 그냥 호기심 때문이었다. 여행은 모든 자전거로 가능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 결집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런 자전거를 구경하다가 만난 것이 코가 랜도너다.

랙만 달면 모든 자전거를 여행용으로 변신 시킬 수 있으나 여행용 부품들이 기본 장착되어 나오는 자전거만 본다면 국내에선 알톤 뚜리스타, 자이언트 그레이트져니, 후지 투어링, 셜리 LHT, 코가 랜도너등이 있다.

셜리와 코가가 이중 고급 기종에 속하는데 그중에서도 코가는 가격이 무척 높다. 얼핏보면 40 만원짜리 뚜리스타와 별로 차이점도 안 보이는데 바이클로 정가가 365 만원, 겨울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300 만원이다.

셜리는 바이클리에서 조립수업을 들으면 180 만원에 살 수 있다. 물론 여기에 펜더와 랙, 스탠드, 램프등을 장착하기 시작하면 가격이 꽤 올라간다.

셜리도 만만한 가격이 아닌데 코가는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럼에도 코가에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는데 여러가지 매력적인 부품들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셜리를 코가 처럼 만들려고 하면 코가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어떤 전용 부품들은 돈으로도 구할 수가 없다. 코가는 너무 비싸고, 셜리는 성에 안 차서 어떤 선택도 못하고 코가 브로셔만 두 달을 계속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자여사에 코가 랜도너 중고가 240 만원에 떴다. 페니어 가격을 제외하면 거의 200 만원이다. 이걸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새벽 4 시에 문자 넣고 8 시간 후에 답문자 받고 이틀 후에 인수하였다.

차주가 아주 미인이셨다. 기념사진을 제안할까 하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았다. 두 달 동안 빌었더니 선녀가 하강하여 랜도너를 주고 가시는구나 싶었다. 물론 약간 이체를 해드리긴 했지만;

차주의 게시물에는 2013 년 형처럼 되어있었는데 인수받으며 부품들을 보니 그 이전 모델이었다. 2013 부터는 전 구동계가 XT 이고 펄럭펄럭 핸들바가 달려나온다. 브로셔만 두 달 봐서 다 외우고 있었다; 뭐 그래도 좋았다. ㅎㅎ.

(업데이트: 이 자전거는 2013 형이 맞다고 한다. 옆 코멘트 참고. 내가 본 브로셔는 2013 용이 아니고 2014 년 것이었다. 오류가 있는 원 문장은 일단 그대로 둔다.)

프레임 재질은 크로몰리다. 고가 여행용 자전거는 거의 크로몰리를 쓴다. 크로몰리는 스프링 만드는데 쓰는 철합금이다. 튼튼하고 탄성이 좋다. 알루미늄과 크로몰리의 차이는 일자무식이 타도 대번에 느낄 수 있다. 알루미늄 자전거는 가볍고 딱딱해서 장난감 타고 통통거리는 느낌이 든다. 크로몰리는 무겁고 충격이 퉁~ 하고 올라와서 중형차 느낌이 든다.

탑튜브가 브로셔와 달리 좀 내려와 있는데 프레임 사이즈가 작아서 그런 것 같다.

바퀴는 700 c 다. 국내여행이나 한국인 체구에는 700 c 보다 26 인치가 좋다는 의견이 많다. 바퀴가 작으면 포장할 때나 택시에 우겨 넣을 때도 좋다. 뭐 그래도 700 c 도 좋다. ㅎㅎ.

앞 바퀴는 36 홀이다. 일반 자전거는 32 개 스포크를 쓰는데 여행용 자전거는 보통 36 홀을 쓴다. 스포크도 더 굵다.

앞에 투부스 랙이 달려있는데 크로몰리다. 크로몰리는 비싸다와 동의어다. ㅠ.ㅠ.

뒷바퀴 홀은 무려 40 개다. 일반 여행용 자전거는 뒷 바퀴도 36 홀을 쓰는데 코가는 +4 가 되어있다.

뒤 랙도 투부스인데 이것도 크로몰리다. 크로몰리 프레임에 알루미늄 랙을 달면 크로몰리 특유의 탄성이 죽어서 안 좋다는 설이 있다. 알루미늄 랙은 진동을 못하니 피로도 누적도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신화에 혹해서 크로몰리 랙을 쓰는 건 쉽지 않다. 가격이 알루에 비해 두 배 이상 나가기 때문. 코가는 앞뒤 모두 크로몰리 랙이 따라온다. 네, 주시는 대로 쓰겠습니다; 랙 값만 해도 40 만원이다;

사랑해 마지 않는 튼튼한 뒷 바퀴 스탠드. 이런 부품도 따로 구하기 힘들다.

(업데이트: 코멘트에 의하면 독일부품가게 http://www.citybike.co.kr 에서 파는 플레쳐 킥스텐드라고 한다.)

사진은 안 찍었는데 센터 스탠드를 붙일 수 있는 홀도 있다. 이 홀 있는 프레임도 드물다.

앞 바퀴에 페니어를 붙이면 바퀴가 계속 돌아가서 자전거를 세워 놓기 힘들다. 앞 스탠드를 따로 구매하려면 9 만원이 든다. 근데 좀 길게 만들어주지, 짧다;

투어링 세팅해본 사람은 아~ 할 것이다. 핸들바에 가방을 달면 램프달 곳이 마땅치 않아 모든 자전거 여행자들이 어디에 램프를 달아야할지 고민한다. 고장나면 골치아플 것 같긴 한데 코가의 저 전용 부품 솔루션 아주 깔끔하다.

다이나모가 따라온다. 다이나모를 따로 산다면 이것도 돈이다;

다이나모 전력이 전선을 타고 무려 후미 램프에까지 간다;

페달링을 멈추면 앞 램프는 몇 분 지속되던데 후미 램프는 바로 꺼진다. 램프 제조사 메뉴얼에는 몇 분 지속된다는 것 같은데 원래 이런 건지; 배터리 동시 사용도 된다니 넣어봐야겠다.

이런 자질구레한 트릭은 결국 다 고장날 것이다. 첨이니 걍 기쁘게 쓰겠습니다;

브레이크는 V 브레이크를 쓴다. 캔틸레버가 클라식하고 이뿐데 뭐 주시는 대로 쓰겠습니다; 성능은 V 브레이크가 좋다고 한다. V 브레이크가 펜더와 너무 가까우면 보기가 좋지 않은데 다행히 공간이 많다.

이 이상한 부품은 앞 브레이크 터짐 방지 장치다; 필요이상 브레이크를 심하게 당기면 저 장치가 쑥 줄어들면서 완충을 한다; 별 희한한 것이 다 붙어있다;

아래에 아일릿이 더 있다. 총 4 군데 다 활용이 가능하다.

기본 페달인데 신발 바닥 패턴에 상관없이 쓸 수 있어서 이거 은근 편하다. 비슷한 것으로 자이언트에서 1.7 만에 파는 것이 있다. 곧 클릿 페달로 교체될 것 같다.

전방 구동계는 LX 다. 2014 년 형부터는 XT 다.

후방 구동계는 XT 다.

일반 자전거와 다르게 QR 이 오른쪽에 와 있고 엄청 크다. 저 거대 QR 은 드레일러를 보호하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꼼꼼하다;

뒷 브레이크와 펜더 사이도 공간이 많다.

잠금장치가 자전거에 붙어있다. 레버를 내리면 쇠고랑이 뒷 바퀴를 잠그고 열쇄가 튀어나온다. 쇠고랑을 내리지 않으면 열쇄가 빠지지 않는다.

4 관절 이나 U 모양 열쇄보다 이렇게 차체에 붙이고 다니는 방식이 편하다고 한다. 이런 열쇄가 필요하면 따로 사서 장착할 수 있다. 바이클리 트랄라님 블로그에서 본 것 같다.

싯포가 이상한데 저게 꿀렁꿀렁한다. 충격 완충장치다.

기본 안장은 이태리 수제라고 써진 것이 따라온다. 그것도 편한데 제일 저렴한 브룩스로 바꿨다. 순전히 브룩스 가방을 달기 위해서; 브룩스 안장은 한번도 안 써봐서 써보고 싶은 맘도 조금 있었다. 첫 느낌은, 미끌미끌하다; 이제 안장통 같은 것은 없으니 걍 모든 안장이 편하다.

핸들바는 M 바가 딸려온다. 마크 버몬트가 M 바 달고 세계일주 신기록을 세웠다; 자전거도 코가였다; 마크 버몬트에 빙의되서 M 바에 혹한 것도 있지만 로드에서 드롭바를 써볼 수 있으니 투어링에서는 다른 형식을 써보고 싶었다. 느낌은 드롭바나 M 바나 다 좋았다. 핸들바 선택은 라이더의 허리 유연성, 복근 지지력과 관련이 많기 때문에 정답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핸들바 높이 조절은 클래식한 방식으로 한다. 저거 방식 이름 모른다; 위에 뚜껑 열고 랜치로 돌리면 쑥 빼고 쑥 넣고 할 수 있다. 조절 여지는 많지만 앞 바퀴에 충격이 심하게 오면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각도 조정 스템이 기본으로 붙어있다. 저것도 따로 사려면 돈이다; 90 도 가까이 올리면 브롬톤이 될 것 같다;

처음 온날 고장나 있다가 어느새 정신 들어온 나침반. 데굴데굴 거리는 게 현재는 걍 귀여움 용도;

백미러 하나 사서 붙였다. 괜히 쓸때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브룩스 안장을 쓰게된 이유는 이것이다; 안장에 가방 구멍이 있다; 일반 안장에 브룩스 가방을 달려면 또 이상한 사이비 작업을 해야하는데 돈으로 때웠다.

투어링을 세팅하려면 셜리를 넘어서는 것 외에 오르트립을 넘어서는 것도 고민이 된다. 셜리, 오르트립 좋다. 근데 모두가 셜리와 오르트립을 쓴다. ㅠ.ㅠ. 진심 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브룩스 비니루 가방 씨리즈. 구둣방 아저씨 잔차같아졌다.

저 밀브룩이 이때 품절이었다. 비닐이지만 브룩스라 값도 꽤 나간다. 그래서 중고를 찾는다는 게시물을 올렸는데 브롬동에 매물이 올라와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폭풍 클릭해서 들어가보니 레이블 붙어있는 신품 밀부룩 + 그랜브룩을 중고가에 파시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도우사 이 가방들도 반 값에 구했다.

기능성을 따지면 무게와 방진, 방수 때문에 오르트립이나 마운트리버를 쓰는 것이 맞다. 브룩스는 딱 봐도 괜히 무거워 보이고 비 오면 시망일 것 같다. ㅠ.ㅠ. 그래도 꽤 운치있어 보이지 않나. 뭐 당장은 만족이다. ㅎㅎ.

밀브룩과 브레이크선 간섭은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이마트에서 파는 선반 부품을 테이프로 감았다;

달리면 잡소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소음도 없고 단단하다. 이것도 이선에서 만족.

아, 이쁘다.

좋은 물건들은 항상 우리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참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겐 헬리해성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중고꿀매’가 있지 않은가. ㅎㅎ. 꿀매 2 연타로 투어링을 이뿌게 세팅할 수 있었다.

투어링 구매가 끝났으니 내일 부터는 다시 열심 로드를 탈 것이다. 아니 투어링은 어쩌고? 투어링은 투어링이고, 꿀잼은 한강 로드가 아니겠는가! ㅎㅎ. 투어링 모셔두고 로드 탈꺼다. 여러분 로드 타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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