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죽음과 매거진의 부활, 그리고 GQ Korea

성재민
Korean Medium Post
Published in
4 min readJun 11, 2014

연휴의 마지막은 디지털 매거진과 함께 보냈다. 그동안 정기구독만 신청해놓고 제대로 읽지 않던 GQ와 보그, 코스모폴리탄, 엘르 등 여성지 몇 권을 읽었다. 연간 정기구독료가 9.99달러밖에 하지 않는 탓에 안봐도 큰 손해는 아니라며 미뤄뒀던 매거진들을 아이패드 에어로 불러들였다. 역시 매거진은 오리지널 아이패드 사이즈에서 보는게 제대로다. 레티나 미니로는 원본 매거진의 그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신문은 죽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에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긴 신문은 이제 지면에 담아낼 기사 분량을 맞추기 위해 한글자씩 꾹꾹 눌러쓴 기사보다, 편집의 묘미를 살려 신문읽는 이들에게 꺠알같은 재미를 주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낚시질을 유도해 홈페이지 트래픽을 올리는데 골몰하고 있다. 그들에게 콘텐츠란 세상을 바꾸는 ‘뉴스’가 아니라 한 푼이라도 광고비를 더 벌어다주는 하나의 미끼상품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매거진의 역할은 도드라진다. 누가 잡지의 위기가 온다고 말했나. 어떤 뉴스라도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매거진은 금새 말라죽어버릴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오히려 내게 매거진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콘텐츠의 보고로 다가온다.

신문과 비교할 때, 매거진은 자신만의 호흡으로 살아남았다. 매일 파편화되어 소비되는 일간지 뉴스들 사이에서 매달 한달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마음껏 뽐내는 매거진의 콘텐츠는 저품질로 다량 생산되는 콘텐츠의 시대에서 나름의 유니크한 지위를 획득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던 월간지 발행 기간은 이제 양질의 콘텐츠를 만나기 위해 즐겁게 감내해야 할 어떤 것이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터치&다운으로 이어지는 아이패드용 디지털 매거진은 모든 기다림의 ‘끝판왕’인 ‘배송의 기다림’을 불과 몇 초 단위로 줄여버렸다. 더불어 이 시대의 축복이자 저주인 콘텐츠의 홍수는 매거진이 발행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중간재(혹은 완충재) 역할을 해준다.

아이패드용 디지털 매거진은 사용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다. 초창기 <와이어드(Weired)지>가 보여줬던 UX/UI 혁신을 담아내며 모든 콘텐츠를 인터랙티브로 제공한다. 대부분의 광고는 움직이거나 사용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모든 인터뷰는 텍스트 뿐만 아니라 짧은 영상으로도 함께 제공된다. 제품에 대한 소개는 링크가 함께 제공되어 원하는 즉시 해당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이동한다. 스마트 시대의 초입에서 우리가 그토록 상상하던 디지털 매거진의 혁신이 최근의 아이패드용 디지털매거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구현된다.

그 중 톱은 역시 GQ다. 가장 먼저 디지털 매거진의 형태를 갖춘 GQ Korea의 디지털 매거진은 다른 어떤 매거진에게도 모범이 될 만큼 양질의 콘텐츠를 보여준다. 일부 매거진이 (심지어 패션 매거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PDF 파일을 컨버팅 해놓은 수준에 불과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남성지인 GQ의 노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GQ는 먼저 시작한만큼 디지털 매거진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페이지에서 텍스트만 스크롤 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가독성을 해치는지도 알고 있고, 단지 ‘무료’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디지털 매거진에 나눔고딕을 끼워넣지도 않는다. (‘나눔고딕’을 선택한 경쟁사와의 격차는 바로 이런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영상이 필요한 곳에 영상을, 텍스트가 필요한 곳에 텍스트를 넣을 줄 아는 기민함을 갖췄다.

각 호별 구독료 1.99달러, 연간 구독로 9.99달러. 디지털 매거진의 가격 또한 적절하다. 아니, 너무 저렴해서 이게 제대로 된 디지털 매거진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의심이 든다. 물론, 9.99달러라는 가격, 오프라인 매거진 1부 가격 밖에 되지 않는 이 금액으로는 오프라인과 동일한 매거진을 볼 수는 없다. 디지털 매거진은 다소 볼륨이 축소되어 발행된다.

그러나 중요한 기사들은 모두 담고 있고, 9.99달러라는 착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GQ의 선택은(다른 대부분의 디지털 매거진도 마찬가지) 그리 잘못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디지털 매거진 독자들을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전략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 달 GQ Korea를 기다리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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