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정적인 일자리가 흔들린다,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

황세원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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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이우기 © LAB2050

일자리가 가장 문제라고 한다. 일자리 정책을 정부가 제일 못 하고 있다고들 한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막상 들여다 보면 꼭 짚어내기 어렵다. 안 하는 지원이 없고 안 하는 사업이 없다. 그런데도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봐야 보이지 않을까? 혹시, 정부가 예산을 써서 늘리려 해왔고, 실업자들에게 찾아주려 해 온 ‘좋은 일자리’들에조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LAB2050의 첫 번째 좋은노동포럼,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시작, 고용위기의 시그널을 읽다’가 11월 14일 오후 서울 대학로 001스테이지에서 열렸다. 세 개의 발제, 그리고 다섯 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토론을 통해서 제조업 일자리, 고용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지만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 중 하나였던 ‘제조업 대기업’ 일자리 지형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은 중앙보다는 지역, 지방정부의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였다.

고용위기는 지역 차원에서 대응해야

이날 포럼 첫 번째 발제는 LAB2050 좋은노동랩이 진행해 온 ‘일자리 지형변화 연구’의 결과 발표이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우리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지도다.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지도. http://lab2050.org/workmap

이 지도는 제조업 대기업(300인 이상) 일자리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시·군·자치구 지역을 중심으로 고용위기 위험성을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다. 특정 산업 및 기업에 대한 고용 집중에 따른 위험도, R&D 역량과 고령화 정도 등 사업체 지속가능성에 따른 위험도, 지역의 취약성에 따른 위험도 등 8가지 통계 지표를 GSI(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방식으로 웹 지도에 표기한 것이다. 각 정보 단위로도 지도를 볼 수 있지만 8가지 정보를 중첩하면 각 지역의 고용위기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은 “2017년 현대중공업 조선소, 2018년 한국 GM 자동차공장이 문을 닫은 군산은 여러 집중도 및 취약성이 가장 높은 지역군에는 속하지 않는데도 현재 지역경제가 휘청저릴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 경제의 변동성, 빠른 기술변화, 무인화 등의 흐름으로 볼 때 어떤 산업에건 고용위기는 올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국 GM 군산 공장, 호주 애들레이드 자동차 산업, 스웨덴 말뫼 조선업 등 쇠퇴에 따라 실직을 경험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서 도출한, 대규모 제조업 고용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없도록 지탱해 줄 사회안전망, 지역 차원의 생활지원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광역단체, 기초단체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며 특히 기초단체는 산업 및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노동자, 시민의 생활안정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황 실장은 강조했다.

제조업 일자리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이어서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제조업 일자리 전망’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이 굉장히 급변하는 상황에 있는 것은 맞다.”면서 “ 선진국 제조업이 쇠락해 온 상황을 우리가 똑같이 겪고 있는데, 같은 과정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제부터 제조업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제조업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미래 충격 요인으로 ‘시장 정체와 중국 비중의 증가’,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팩토리’, ‘동력원의 변화’를 꼽았다.

2010~2017년 사이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1300만 대 증가하는 동안 중국에서의 생산량이 974만 대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의 생산 증가 추세가 마치 전 세계 산업 및 시장이 성장이 성장해온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켜 왔다면서 김 교수는 “객관적으로 볼 때 국내 자동차 생산은 더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자동차 이외의 산업에서도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다면서 김 교수는 여기 중첩된 또 다른 문제로 ‘스마트 팩토리’를 들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로봇 고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그 이유는 제조업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돼 왔고, 대기업은 로봇을 통한 자동화 전환이 용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화석연료 동력원이 친환경 동력원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 속에서 한국이 뒤쳐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서 김 교수는 제조업 고용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단순 조립 생산 인력이 감소하는 만큼 연구개발 인력이나 모듈 공정의 인력이 늘어날 수 있지만 일자리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새로운 일자리 모델, 지역 주도로 만들어야

마지막 발제는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지역 일자리 연대와 광주형 일자리’였다. 광주형 일자리 연구 책임자인 박 위원은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시장 불평등과 이중구조화, 일자리에 대한 기(旣)진입자와 미진입자의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논의가 시작됐다.”면서 “노사관계를 바꿔서 양극화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볼 수 없을까, 그것을 매개로 고용불평등을 해결하고, 산업혁신이 지역혁신이 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보려는 실험이었다.”고 전했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광주형 일자리는 추진 과정에서 ‘광주형 일자리란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혁신적 노사관계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하기 좋고 일하기도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지역사회 혁신운동’(광주형일자리 조례 제 2조 1항)이라고 정의를 내리는가 하면 4대 의제를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 개선’으로 정하는 등 기존 한국 사회에서의 좋은 일자리 통념을 넘어서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박 위원은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투자 유치 등 진행 과정에서 난항이 거듭돼 왔고 ‘기존 현대차 일자리보다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지만 박 위원은 “광주형 일자리는 민관, 노사가 힘을 모아서 사회통합형 일자리를 만드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서 “광주시가 시민사회와 더 소통하면서 전례없는 지역 일자리 모델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위기 성공적으로 넘긴 지역은 복지 인프라 탄탄

이어진 토론은 이원재 LAB2050 대표가 사회를 맡고,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 주무현 한국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장, 고영우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참여했다.

고영우 부연구위원은 “산업에 따른 위기가 어디로 어떻게 올지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산업에 위기가 온다면 직격탄을 맞을 지역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LAB2050 연구는 제조업 위기에 집중했는데 다른 업종에 대한 영향, 출퇴근 지역 간의 충격 전파 효과 등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고, 특히 지자체들 간에 연계해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주무현 센터장은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수준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국가에서 제조업 구조조정, 산업 구조 재편은 불가피하며, 그 영향은 지역과 세대, 계층에 차별적 영향을 주므로 지방 도시 청년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긴 지역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2~3년간 긴 호흡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복지 인프라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조철 부장도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맞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더 만드는 쪽으로 정책을 집중해야 하는 한편, 대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업종과 형태의 지역 중소기업들이 고용안정성을 담당하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안재원 원장은 “자동차, 조선업 사업장에 가 보면 고용위기가 이미 현실인 것을 절감할 수 있다.”면서 “안타까운 것은 마치 노동조합이 고용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보는 인식인데,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상호 신뢰를 더 높이지 않는다면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대안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문호 소장도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하나의 사회적 실험인데, 지역과 노사관계 차원에서의 노력이 어떻게 자본에 대한 유인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실험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LAB2050의 ‘일자리 지형 변화 연구’ 결과 중 한국·호주·스웨덴 노동자 및 전문가 인터뷰 등 다른 부분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또한 LAB2050은 지역 차원의 고용위기 대응 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정책 실험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우선 지방정부 관계자 및 정책 연구자들과의 토론, 지역 활동가들과의 대화 자리 등을 지속적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2019년 중에 제조업 고용위기 도시 중의 한 곳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정책 실험을 위한 지역조사, 설계 연구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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