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이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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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LAB2050 연구위원장,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 언론에 등장한 사건이 CNN, BBC 등 해외 언론 주요 뉴스로도 실시간 보도되는 것을 부쩍 자주 봅니다. 예전이라면 그럴 만한 일은 북핵 문제가 전부였을 텐데 최근에는 케이팝(K-Pop) 스타 관련 뉴스, 그 중에서도 얼마 전 불거진 성폭력, 성추문 뉴스가 올라옵니다. 그만큼 케이팝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인데, 그 위상에 비해서 다뤄지는 내용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단순히 유명인들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오랜 착취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권력 구조로 위계화 된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유, 안정, 자아실현을 위한 열망은 ‘미투(me too)’ 운동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성적 착취에 시달리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장자연 씨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이 이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나 소송 걸 돈도 없고 갚아줄 돈도 없어. 나는 고아에 빈털터리고. 나는 아무 힘도 없고….”

이 절규는 우리 사회가 소위 말하는 ‘빽’이 없이는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조차 누릴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을 생생하게 일깨워줍니다. 10년이 지나도록 이 사건이 해결되지 못 한 것을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21세기에 산업재해로 목숨을 빼앗긴 비정규 청년들도 이런 구조의 산물이 아닐지요.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는데, 왜 실제 현실은 그렇지 못 할까요? 대한민국은 분명 모두가 1인 1표를 행사해서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우리는 여전히 가족 배경에 기대거나,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 밑에서 자율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안전하게 살 수가 없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는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느덧 ‘불평등의 시대’라고 부를 수밖에 없게 된 이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를 고민하면서 얼마 전부터 이 오랜 질문을 다시 꺼내들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s)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적극적 시민성: 자유, 안정, 그리고 영향

적극적 시민은 본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참여하는 이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사진은 2016년 12월 서울의 촛불시위 현장. 출처 셔터스톡, 사진 고병석.

‘적극적 시민’이란 본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1980년대 영국 대처수상 때는 이 개념을 좀 더 구체화하여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과 적극적으로 타자를 돌보는 시민’을 강조하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젠더적 관점에서는 ‘남성 가부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시민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기존 개념들을 종합하면 ‘적극적 시민’이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시민성에 대한 연구’(Hvinden et al., 2016)는 적극적 시민성을 구성하는 세 개의 차원으로 자율(autonomy), 안정(security), 영향(influence)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구는 적극적 시민성을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고 포용될 권리’라고 정의합니다. 이 연구는 장애인과 관련해 논의를 전개했지만,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이 ‘적극적 시민’이 그리 와 닿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은 대개 장시간 노동에 지쳐있고 만사가 귀찮은 사람들, 일정한 소득을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갑(甲)’에게 맡겨 놓은 사람들, 손에서 일을 높는 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사람들, 다가올 노년이 두렵고 초조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주체적인 삶이란 거리가 먼 얘기겠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이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믿지도 않을 겁니다.

지난해 LAB2050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같이 이런 고민을 나누다가 ‘자유안정성 혁명’이라는 연구보고서를 같이 썼습니다. 자유와 안정성의 관계를 먼저 따져 본 것입니다.

안정의 결핍, 즉 불안정은 자유에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마지막 보루인 공공부문 일자리에 우리 청년들이 매달리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로 보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유없는 안정은 노예와 같은 삶이며, 안정없는 자유는 무엇을 할 지 모르는 완전한 혼돈의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자유와 안정은 분리될 수 없고 같이 있을 때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연구를 하면서 ‘자유안정성’(freecurity, freedom과 security의 합성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자유안정성이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자유롭고 안정된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또래집단 또는 조직에서 배제되고 따돌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든 사람은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게 됩니다. 또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안정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프리랜서에 대한 사회적 보장, 대우가 열악한데도 조직에 속하지 않고 일하려는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렇듯 자유, 안정, 영향은 서로 얽혀있으면서도 독립적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안정성, 영향력을 갖춘 상태를 원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적극적 시민성’이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에 ‘적극적 시민’은 얼마나 있을까?

LAB2050은 2018년 10월, 만 19~69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적극적 시민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응답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안정, 자율, 영향력의 정도를 묻고,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답한 ‘적극적 시민 유형’부터 세 가지가 다 없다고 응답한 ‘소극적 시민 유형’이 각각 어느 정도 비중인지를 살펴 봤습니다.

안정·자율·영향 관련 설문조사 질문 내용(각 10점 척도), LAB2050

그 결과, 자율, 안정, 영향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율과 안정만 있다고 응답한 이들까지 합쳐도 50%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세 가지 모두 없다고 응답한 이들이 15%에 근접했고, 자율성만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8% 정도였습니다.

특히 청년(20대) 세대를 따로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적극적 시민 유형은 23.6%에 불과하고, 세 가지 중에서 둘 이상이 결핍됐다고 느끼는 경우가 전체의 40% 이상이었습니다.(전체 세대에서 둘 이상이 결핍된 경우의 총합은 38.1%입니다.) 둘 이상의 요소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안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적극적·소극적 시민유형 구분 및 비중, LAB2050

이와 같은 시민 유형에 따라 삶의 만족도를 비롯해 사회 각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의 만족도를 물어보는 질문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적극적 시민 유형 중 97%인데 반해 소극적 시민 유형은 10%에 불과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적극적 시민 유형은 30%인 반면에 소극적 유형은 10%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술혁명이 나의 삶을 좋게 만들 것”이라는 문항에 적극적 유형은 73%가 동의한 데 반해 소극적 유형은 33%만이 동의했습니다.

복지국가에 대한 의견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금 부담이 높더라도 복지 수준이 높은 상태를 뜻하는 ‘고부담 고복지’ 사회에 적극적 시민 유형 중 30% 가깝게 동의하는 데 반해 소극적 시민 유형은 16%만이 찬성했습니다.

선순환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 시민들이 많은 사회는 사람들에게 자유, 안정, 영향력을 주는 정책, 정치,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당장 자기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사회에 대해 높은 신뢰를 지닌 적극적 시민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른바 선순환의 사회죠.

이런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당장에 ‘적극적 시민’들을 큰 폭으로 늘리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무언가 해 볼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은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는 것부터 논의를 해봤으면 합니다. 기존 한국 사회에서 안정을 주는 수단은 가족, 교육, 고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고 있고,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추세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노인 세대의 안정을 떠받치기 어려워 지고, 노인들의 수명 증가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안정을 빼앗고 있습니다.

교육은 그동안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사용할 역량과 숙련도를 습득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동했지만 그 측면이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시장이 요구하는 숙련의 주기가 점점 짧아질 뿐더러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대학 졸업장의 가치에 대해 물어본 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 현재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100이라고 할 때 자신의 19세였을 때 대학졸업장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면, 그 가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AB2050 설문조사(2018) 중 현재의 대학 졸업장 가치에 대한 연령별 평가 수준(자신이 19세였을 때의 가치를 100으로 볼 때의 상대적 가치)

고용도 더 이상 안정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공 부문을 제외하면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렵고, 주된 일자리들에서의 퇴직 시점은 계속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해왔지만, ‘정규직’조차 안정성을 온전히 담보하지 못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익숙했던 안정의 수단들이 속속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안정적인 상태에 있더라도 5년 후, 10년 후에도 내가 안정적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장담하지 못 합니다.

이번 설문조사 중에서 ‘중산층의 기준’에 대한 응답을 보더라도 불안이 느껴집니다. 응답의 평균치를 보면 사람들은 월평균 소득 550만원, 평균 재산 10억이어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월소득 550만원은 상위 30%에 해당합니다. 재산이 10억 원이라면, 평균 순자산액(2017년)을 5분위로 나눠 봤을 때 최상위인 5분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높은 기준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정도는 가져야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 즉 불안정성이 높은 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안정된 일자리에서 장기간 일함으로써 높은 임금 수준에 이르거나 재산을 축적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데도 그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안정의 도구, 국가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안정의 도구를 함께 숙의하며 찾아야 합니다. 안정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가집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롭게 원하는 방식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반이 되고, 직장 등에서 강압적 상황에서 놓였을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목소리를 낼 때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갈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게 해 주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해 주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민들이 많아질 때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와 정책에 더욱 반영되고, 민주주의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안정의 도구를 개인들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국가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LAB2050에서 청년기본소득 실험 제안을 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이와 같은 생각들이 은연중에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의 분배 제도를 크게 바꿔야 할 때일수록 ‘적극적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그 비중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전 국민이 분노하는 사건들이 불거졌을 때라도 한 번씩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요? 만일 저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안정성이 있었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강압에 굴복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시민이라고, 사회에 대고 목소리를 낸다면 들어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공감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장애인의 시민성에 대한 연구

Hvinden, B., Bickenbach, J., Ferri, D., Halvorsen, R., & Guillén Rodrigues, A. M. (2016). Introduction: Is public policy in Europe promoting the active citizenship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J. Bickenbach, D. Ferri, R. Halvorsen, B. Hvinden, & A. M. Guillén Rodriguez (Eds.), The Changing Disability Policy System. Active Citizenship and Disability in Europe Volume 1. London: Routledge

[보도자료] LAB2050, 적극적 시민성 대국민 설문조사

최영준 LAB2050 연구위원장,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