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청년기본소득 실험을 제안하는가

이원재 (LAB2050 대표)

이 글은 지난 10월 27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2018 서울청년학회’에서 필자가 구두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현장 속기록을 제공한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에 감사드립니다.

ⓒ 2018 서울청년주간

나는 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저는 이원재라고 합니다. 다음 세대 정책실험실 LAB2050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사회문제 해결 과정에 시장의 투명성, 기업의 역동성, 기술혁신 같은 자본주의의 장점을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삼성경제연구소, 한겨레경제연구소, 희망제작소에서 이와 관련된 활동을 했습니다.

이들을 떠받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경제민주화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회혁신’이라는 표현 안에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사회혁신 활동을 제안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것에 들어 있는 ‘사회적’인 부분을 감당해 낼 여유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경영자도 노동자도 생존과 생계에 허덕이는데, 사회적 책임이니 사회혁신이니 관심 가질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는 좀 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다들 좀 더 사회적인 것, 좀 더 윤리적인 것을 선택할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특히 청년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 사례가 떠오르네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아시지요? 1918년 2월 6일, 울프에게 엄청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는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것입니다. 이날 여성한테 투표권, 정치적 자유가 주어진 거죠. 
그런데 같은 날, 울프는 경제적 자유도 얻게 됩니다. 울프가 이날 편지를 받았는데, 숙모가 돌아가시면서 매년 500파운드씩의 유산을 남겨주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생 안심하고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었습니다.

나중에 버지니아 울프는 “사실 내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투표권을 얻은 것보다 매달 수표를 받게 된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자유의 의미가 그만큼 큰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지금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이라는 제목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혁신적 기업가들을 많이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성적이 똑같이 높았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뒤에 보니, 어떤 학생들은 매우 성공한 혁신가가 되어서 특허를 갖게 되고 어떤 학생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봤더니 부모의 소득이었습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은 아이들이 더 혁신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지요. 안정감이 혁신에 뛰어드는 바탕이 되어 준 것입니다.

소득수준에 따른 3학년 수학성적과 발명가의 탄생 관계 (주황색: 부모 소득 상위 20%, 파란색: 부모 소득 하위 80%) © Lost Einsteins Innovation and Opportunity in America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또 연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두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가 되려는 꿈을 가질 수도 있어요.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질 수도 있고요. 사회 전체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분도, 스티브 잡스의 세계를 만들고픈 분도 있으실 겁니다.

저는 두 가지 다 가능하고 두 가지가 공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중에 어느 한쪽이라도 되려면, 또는 우리가 꾸는 꿈 중에 어느 하나라도 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풀어야 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생계수단, 그중에서도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풀기 어려워 보이는 ‘소득보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분명하게 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해야만 어느 꿈이든 가능하다, 또는 모든 꿈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득보장 중에 가장 쉽고 가장 효율적이고, 아마도 도입되고 나면 가장 덜 논쟁적일 만한 제도가 ‘기본소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면 어떤 사회가 될지, 생각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오려면 어떤 장치들이 필요할지 우리는 아직 잘 모릅니다. 세계 어디서도 실행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기본소득 실험을 한국사회에서 빠른 시간 안에 진행해야 합니다. 그 결과를 확인하면서 사회 시스템의 방향을 정해 나가야 합니다.

기본소득, 유토피아 전망을 향한 신중한 실험

저는 기본소득은 어떤 길목 위에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전혀 다른 사회로 전환되는 길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건없이 충분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지급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죠. 자본이 노동을 고용해 운영되는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항상 “고용이 가장 중요하다.”, “임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안정된 임금을 받는 사람이 삶도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인정도 받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고용과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당연히 완전히 보장된 소득이겠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임금이고, 임금은 매달 지급되는 월 소득이기 때문에, 이걸 대체하는 소득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분명히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서의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다시 말해 임금을 받지 않아도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게 된다면, 그 사회는 자본주의 이후의 다른 사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본소득이 전환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면 흔히 나오는 비판이, “소득을 재분배하려면 그래도 선별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줘야지 모두에게 똑같이 주면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선별적으로 어려운 사람 먼저 지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자체를 강화할지 여부는 별도로 토론하면 될 문제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흔히 임금을 1차 분배라고 합니다. 복지 수당을 재분배라고 하고요. 그런데 기본소득은, 1차 분배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단 모든 사람이 생계가 해결될 정도의 소득을 확보한 다음에, 그 뒤에 각자 자유롭게 추가 소득을 받든 다른 활동을 하든 하도록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1차 분배가 끝난 뒤에 이뤄지는 재분배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임금의 역할은 두 가지가 있죠.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 생계 이상의 소비 또는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전자인 생계 유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이 제가 이해하는 기본소득의 순수한 개념입니다.

기본소득을 왜 꼭 소득으로 지급해야 되느냐, 주거 교육 등에 대한 서비스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꼭 나옵니다. 현금을 주면 다 새어나가서 주거비, 사교육비로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들어 있습니다. 지금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은 클린카드로 지급하는 것도 그런 우려를 의식한 것입니다. 청년수당은 기본소득이 아니지만, 비판점과 대응책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청년수당 © 서울시

하지만 기본소득을 전환적 제도로 보면, 이 비판은 필요 없어집니다. 임금 대신 기본소득이니까요. 우리가 월급을 줄 때 쌀로 주거나 주거바우처로 주거나 클린카드로 주지 않죠?

가장 심각한 비판은 ‘다 좋은데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는 것이죠. 사람들은 생계부담 때문에 그나마 일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인데, 일할 동기가 줄어들면 경제가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사람들이 억지로 하던 일을 줄이고 하고 싶은 일을 늘릴 것이라고 봅니다. 시장 원리대로라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보상을 훨씬 높여야만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어떨 지 알기 위해서 실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유토피아적인 이야기지요. 허황된 이야기라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는 근본적 전환적 의미를 실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불평등이나 사회문제를 치유하는 개별 정책수단으로서의 기본소득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전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저는 역설적으로 가장 신중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엄격하게 통제된 연구 작업으로서의 실험입니다. 연구와 실험의 장을 열고, 기본소득에 대한 모든 우려를 그 안에 다 집어넣고 실험을 해서 결과를 한번 보자,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일단은 2년이든 5년이든 해 보자는 것입니다. 최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해 보자는 것입니다.

서울시 청년수당, 성남시 청년배당 모두 좋은 시도입니다. 해당자들에게 미래를 먼저 살아볼 수 있게 해 준 좋은 정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자면, 이제는 핀란드라든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같은 곳에서 하는 것처럼 과학적으로 설계된 기본소득 실험을 시행할 때입니다.

정책실험을 통해서, 통제된 집단에게 무작위로 지급한 기본소득이 효과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 사람들의 근로의욕이 높아지는지 정치참여가 더 늘어나는지 등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면 정책수립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 2018 서울청년주간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담고 있는 사회비전

최근에 기술혁명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다들 들어 보셨을 거고요. 가장 먼저 기억나는 기술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알파고가 상징하는 인공지능이죠. 또 다른 하나를 꼽는다면? 맞아요. 비트코인이 상징하는 블록체인입니다.

기술이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특정한 사회 비전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술은 사회적 힘을 갖게 되고 사회 의제가 됩니다. 사회 비전이 없는 기술은 아무리 고도의 기술이라도 과학기술자들 사이의 이야깃거리에 그칩니다.

과거 인터넷은 정보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비전을 내포하고 있었죠. 소셜미디어는 모든 시민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발언할 수 있는 사회상을 갖고 있었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 기술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비전, 특히 사람들 마음에 새겨져 있는 족쇄를 풀어주거나 욕구를 채워주는 유토피아적 전망을 내포하고 있을 때 이 기술은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모두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서사를 담고 있고 그래서 사회적 토론거리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명백하게 탈고용 사회, 또는 탈노동 사회를 내포하는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모두 대체하는 것은 이미 가능한데, 이제는 지적인 노동도 대신할 수 있다는 거죠. 인간 대신 바둑도 둘 수 있고 기자처럼 기사도 쓸 수 있고, 변호사처럼 법률 업무를 할 수도 있고요. 물론 저 대신 지금 이런 자리에서 발표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발표문도 더 잘 쓸 수도 있고요. (웃음)

어떤 분들은 낮은 수준의 변화를 꿈꿉니다. 고용계약에 ‘매인’ 인간들의 사회를 벗어나면 모두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죠. ‘탈고용’, ‘탈상품화’ 같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공동체가 강화되고 사회 참여가 늘어나는, ‘호모 심비우스’의 세계를 꿈꿉니다. 호모 심비우스는 최재천 교수가 말한, ‘서로 공감하며 참여하면서 돕고 사는 인간상’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좀 더 높게 봐서, ‘탈노동’이 가능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생산에 인간이 전혀 기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까지 갑니다.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상이 일반화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더 깊어지면 ‘탈생산’을 꿈꾸기도 합니다. 지구상의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이 생산해서, 사실 더 이상 생산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지요. 만물의 영장 대신, 지구와 공존하거나 지구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생태주의적 인간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내포한 이 모든 사회상에서,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생계수단의 확보이지요. 그래서 기본소득이 떠오릅니다.

추후에 뭔가 연구를 하실 분들을 위해서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참고했던 글은 제임스 퍼거슨의 <분배정치의 시대>라는 책과 앤드류 맥아피하고 에릭 브린욜프슨이 쓴 <제2의 기계 시대> 같은 책들입니다. 인류학자와 경제학자의 전혀 다른 학문적, 정치적 입장의 접근인데, 두 군데 모두에서 기본소득과 탈고용, 탈생산 논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도 비슷합니다. 블록체인은 조금 더 명시적으로 탈중앙화라는 것을 가치로 내세웁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는 처음부터 정부가 중앙에서 화폐를 발권할 수 있는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탈중앙화된 비트코인을 만들자고 했었죠.

중요한 미래 비전입니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중대한 함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자체는 기술이지만, 탈중앙화는 정치입니다. 가까이 얘기하면 지방분권부터 시작해서 멀리 얘기하면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까지 갈 수 있고, 마을공동체나 주민참여 모두 담겨 있는 이야기, 그 정치적 논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탈중앙화 사회 © Shutterstock.com

그런데 여기에도 기본소득 논의가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다 보면 늘 활동가의 생계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든 활동가들이 생계를 위해 정부 위탁사업을 받거나 공무원이 되어서 월급을 받으며 지시받아 활동하는 일이 흔하지 않습니까? 탈중앙화 역시 생계수단 확보 없이는 헛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블록체인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의 매개 없이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정말 탈중앙화가 될까요? 그 교환 주체들이 안정적 생계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기술적으로 탈중앙화된 세계라도 정부와 은행과 거대 기업은 힘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계수단을 공급할 힘을 가지니까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두 기술에서 내포하고 있는 탈고용, 탈생산 또는 탈중앙화는 매우 중요한 미래 화두입니다. 그리고 이들 안에는 공통적으로 생계수단의 문제가 걸쳐있습니다. 어느 쪽의 사회 비전을 보더라도,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죠.

다른 인류, 다른 계급의 탄생

다른 사회가 오면 다른 인류, 다른 계급이 생겨나야 합니다.

지금 온라인으로 받은 질문 중에 ‘기본소득이 꿈꾸는 사회는 버지니아 울프나 스티브 잡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가는 사회인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노동(labor), 작업(work), 활동(action)으로 나누어 이야기했는데, 사실 작업이나 활동을 자발적으로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특권층 아니냐는 말씀이시겠지요.

저는 다른 사회가 온다면 현재의 많은 것이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노예가 해방될 때 반대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노예를 하던 사람들이 노예 상태가 아닌 상태가 되었을 때 정말 더 잘 살 수 있는 거냐, 스스로 자기 일을 개척해 갈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나 해방되면 잘 살 수 있는 거지, 대부분은 시키는대로 일하는 노예 생활이 나은 것 아니냐?”

하지만 인류는 계속해서 그 다음 사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주인으로부터 해방된 노예와 그 자녀들은 공장 노동자가 되기도 했지만 시인도 되고 정치가도 되고 과학자도 되었습니다. 영주로부터 해방된 농노들들은 도시로 가서 자유로운 시민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자도 이제 도래할 다른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탈고용, 탈상품화일 것입니다. 성공의 범위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범위에서의 혁신이라도 충분히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청년인가

그런데 기본소득 실험을 왜 청년과 함께해야 하는지에 의문이 들 수있습니다. 저는 청년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청년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렵고, 실업과 불평등이 더 심각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청년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나중에 우리 사회 전체가 겪을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에 기본소득제를 실험한다면 청년층에게 실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동과 노인 등 다른 계층을 위해서는 여러 복지제도들이 발전돼 왔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는 큰 변화를 꾀할 만한 여지가 적습니다.

완전히 전환적인 사회가 되는 것은 물론 한참 걸리겠죠. 20년일지, 30년일지 모릅니다. 지금 청년들이 그 때는 청년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저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지금의 청년들이 주도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당사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수많은 꿈들이 연대하는 곳

마지막으로, 어쨌든 우리 사회에 굉장히 큰 에너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고 유럽이고 모두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사회가 우리처럼 역동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도, 어쩌면 에너지가 너무 크고 그 에너지들 사이의 충돌이 커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가가 꿈꾸는 테크노토피아든, 환경운동가가 펼치는 생태주의 공동체이든, 사회적기업가나 협동조합 활동가가 펼치는 공동체적 경제의 꿈이든, 모두 에너지가 강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이 에너지를 잘 승화를 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되도록 격렬한 충돌은 줄이면서요.

이렇게 꿈꾸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에 기본소득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비전이 테크노토피아든 또는 생태주의적인 공동체든, ‘소득보장’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손을 잡고서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같이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청년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면서 ‘개인이 생계수단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로 전진했을 때, 다른 비전, 다른 꿈들에 대한 시도가 훨씬 활발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단기 과제를 청년들이 함께 밀고 가면서,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적 사회 비전을 뜨겁게 토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KBS명견만리 ‘물고기를 주세요, 기본소득’ 시청 (링크를 누르시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