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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9 · 13 min read

청장년 기본소득 자유이용권 제안

[IDEA2050_008]

석재은(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출처: 셔텨스톡

교수들은 종종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 주된 이유가 월급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안식년’(sabbatical year)을 누린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안식년 자격 기준을 높이기도 한다.

좋은 것은 널리 확산하고 나쁜 것은 없애는 것이 마땅한데,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 때문에 교수의 안식년을 축소해야 할까? 그보다는 안식년이 다른 직종으로도 확산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15년 전 어느 민간 사회복지재단에서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일종의 안식년인 ‘휴(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늘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느라고 정작 본인은 돌보지 못 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업이었다. 이것이 사회복지계 전반으로 확대되지 못 한 것은 아쉽다.

안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몇 차례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말한다면, 안식년은 정말 유익하다. 쉼 그 자체로 신체적 회복과 재충전이 된다. 내가 익숙하게 해왔던 일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일상의 의무에 치여서 하지 못했던 저술 작업이나 긴 호흡으로 기초 공부를 하면서 연구 기반을 다질 수도 있다.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시 앞으로 수 년간 힘껏 내달릴 에너지를 만든다.

안식년 동안의 깨달음은 빈둥대는 시간, 한가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 발상이 싹튼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안식년을 누리지 못했다면, 진작에 지치고 소진되었을 것이고, 결코 지금처럼 일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안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만일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이, 가정주부도, 심지어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안식년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즉, 아무 조건 없이, 매달 일정액을 받으면서, 일생에서 몇 년 정도 그런 안식 기간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인생을 정비하고 재충전하고 새롭게 배우면서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이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자기 꿈을 위해 집중할 권리

2011년 서른 두 살의 재능 있고 유망했던 한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지만 수급자격 기준이 까다로워서 실제 혜택을 보는 예술가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2015년에도 40세의 연극배우가 고시원에서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쓸쓸히 죽어간 사건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5월 4일에 예술인 복지법이 개정되었으나 수급자격이 까다로워 실제 혜택을 보는 예술가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이런 사례들을 접할 때면 보편적인 안식년 제도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게 된다. 여러 가지 재능과 끼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때까지, 단 몇 년 만이라도 생활비 걱정 않고 자기 꿈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수 없을까?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지만 후회 없이 도전해 본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실패의 경험도 인생의 다음 단계에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대학특성화사업 단장 직을 수행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왔다. ICT 기술을 접목한 고령자 친화 서비스 개발 창의경진대회를 하면서 꽤 괜찮은 아이디어들을 발굴했다. 그 중 몇 개는 창업동아리 학생들이 전문가 멘토링을 받으며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실제로 이를 사업화하거나, 스타트업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일정 기간의 안정성이 조건 없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도전해 봤을지 모르고 그 결과로 그 학생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혁신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물론 혁신을 이루는 데는 다른 여러 요소들이 더 필요하다.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 생태계도 더 있어야 하고, 주거 등 다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은 생계를 위한 소득이다. 이것만 보장되도 꿈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제2 노동인생 위한 배움의 시간

안식년이 필요한 대상은 청년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장년층일지도 모른다. 학령기에 배운 지식과 기술만으로 장년기까지 계속 일하기 힘든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산업 및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제 2의 노동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배움의 시기가 필요하다.

장년층이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부양가족의 생계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을 중단함으로써 청년 또는 청소년인 자녀들의 진로가 위축된다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보장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소득’이 곧 ‘안식년’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최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제도가 ‘기본소득’(Basic Income)이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모든 시민 개개인에게 노동, 기여, 필요 등과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일정액의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핵심 구상은 모든 시민 개개인에게 조건없이 기본생활을 안정적으로 누릴 권리를 보장하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시민들은 의미있는(meaningful) 일, 배움, 활동들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지속적인 성장은 물론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적극적 시민을 위한 필요조건이며(최영준, 2019),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혁신적 가치에 도전하게 하는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초연결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지자본주의시대에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구조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사진출처: 픽스히얼

일자리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거대한 변화’ 때문에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논거들도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플랫폼경제(platform economy)로 비롯되는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노동의 증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완전히 새로운 노동 형태의 등장 등이 지금 나타나는 변화의 양상들이다. 이에 따라 삶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초연결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시대 자본과 노동 간의 분배의 비대칭 구조는 더 심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한 불평등, 양극화를 사회보장체계로 완화시켜야 하지만 노동소득 기반 사회보험 중심의 체계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렵다.

즉, 새로운 생산체제에 조응하는 대안적 복지 체제의 구성이 필요하다. Offe(1997)는 이와 같은 이유로 시민권에 기반한 무조건적인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현실적이며 가능한 제안, ‘4년간의 안식년’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있지만 재정적 역량의 한계와 경제여건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논의가 크게 진전되지는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기본소득의 단계적 도입을 논의한다 할 때 현실적으로 가능하면서도 효과성이 큰 방안으로 ‘청장년을 위한 기본소득 자유이용권 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취하되, 재정부담은 최소화하자는 의도이다.

이 때의 기본소득은 화폐 자원의 배분뿐 아니라 시간자원 배분을 통해 국민 안식년(sabbatical period) 보장 또는 생애 전환기간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Offe(2000)가 안식 계좌(sabbatical accounts)를 제안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며, 프랑스, 독일에서 시행되었던 개인의 불연속적 노동경력을 포괄하며 개인별 사용자가 자유롭게 활용하는 ‘개인별 경제활동계좌’와 유사한 맥락이다.(홍찬숙, 2018)

‘청장년을 위한 기본소득 자유이용권 제도’는 기본소득의 장점은 취하되, 재정부담은 최소화하자는 의도이다. 사진출처: 셔텨스톡

구체적인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생애 일정기간 동안 이용가능한 ‘기본소득 자유이용권’을 도입한다. 둘째, 최저생계수준 급여를 보장한다. 최저생활수준과 생계급여수준인 중위소득의 30% 수준으로 정한다면 월 50만원 정도가 되겠다.

셋째, 현 단계에서는 기본소득의 이용 가능한 기간을 생애 중 총 4년으로 제한한다. 청년기와 장년기로 구분하여 각각 2년씩 설정함으로써 개인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신청주의에 입각해서, 기본소득을 신청하면 개인별 이용권 한도 내에서 누구나 신청 및 수급이 가능하도록 한다. 즉, 재정 규모에 따라 선별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단,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자발적인 포기도 수용한다. 다섯째, 기본소득의 특성과 행정관리 용이성을 감안하여 6개월 단위로 신청이 가능하도록 한다.

연간 19조원이면 가능하다

이 방안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로를 모색하는 청년, 예술가 등 특정직업군, 제2의 노동인생을 준비하는 직업전환기 근로인구, 출산양육기 부 또는 모, 돌봄제공자 가족 등 특정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생애주기의 특정기간에 대한 기본소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모든 시민에게 제도를 누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로연령층인 청장년을 대상으로 하되, 향후에는 연령, 근로에 대한 구분 없이 아동수당, 기초연금과 합하여 기본소득으로 통일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시민권에 기반한 무조건적 수급자격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넷째, 기본생활이 가능한 최저생계 급여수준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기본소득 이용 여부와 이용 시기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효용성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섯째, 기본소득 보장기간을 실질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재정부담을 최소화하여 정책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일곱째, 생산체제 및 노동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생애주기 기본소득 보장기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덟째, 현행 사회보장제도에 예외적 원칙을 더하며 균열의 틈을 메우는 접근보다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작으면서도 정책효과는 분명하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이 제안을 실행하기 위한 재정 규모를 계산해 보면, 2019년 기준 약 19조원, GDP의 약 1.03%가 소요된다. 현 단계에서는 모든 국민이 청년기와 중년기에 걸쳐 최대 4년의 기본소득 자유이용권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정하되, 생애주기 청장년기 40년간 중 최대 이용가능 기간은 4년이므로 매년 청장년인구(25–64세)의 평균 10% 인구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으로 재정을 추계했다. 급여수준은 최저생활수준, 생계급여수준인 중위소득의 30% 수준으로 설정했다.

기본소득 월 51.2만원 * 12개월 * [청장년인구(25–64) * 0.1] = 19조 3,567억원

* 2019년 기준 청장년인구(25–64)의 10% =315만명

* 기본소득 재정규모: GDP의 약 1.03%

사회보장세, 인지자본세, 연대기금 등 마련해야

기본소득 보장기간이 제한된 초기 단계에는 사회보장급여와 함께 운영해도 별 문제가 없지만, 향후 기본소득 보장기간이 길어지게 됨에 따라 단계적으로 사회보장급여를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최근에 도입이 검토되는 한국형 실업부조, 청년수당 등은 이 제도와 대체 관계에 있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재원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소득뿐만 아니라 소비지출에 기본소득 목적세를 부과하는 사회보장세 도입 검토가 필요하며, 인지자본(Cognitive Capital)에 대한 데이터세. 디지털세 등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의 안정적 재원조달을 위해서는 사회연대기금의 조성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재정수요가 예측 가능하지 않으므로 일반회계로는 기본소득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세, 인지자본세 등을 통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초기 1~2년의 기본소득 지출 대비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한 다음, 매년 근로연령기로 진입하는 연령대 청년들의 생애 이용가능한 기본소득 몫에 해당하는 자금을 정부재정에서 사회연대기금으로 출연하면 된다.

문제는 제도 도입초기에 쏠리는 기본소득 수요를 어떻게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일정규모를 제한하고 임의로 우선순위를 부여하면, 무조건적 원칙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입초기에는 조성된 기금규모에 맞춰 수요를 합리적으로 조율해나가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와 같은 ‘청장년 기본소득 자유이용권’ 구상은 현재 한국의 사회보장체계가 직면한 한계를 보완하고 균열을 메꿔주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접근이다. 그러면서도 개개인의 안정적 기본생활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도전적 행보를 지원하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검토되거나 제안된 어떠한 구상보다 기본소득에 대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실용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안정을 기반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 때, 자발성이 커지고 창의적인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에 부합된다는 점에서 ‘청장년 기본소득 자유이용권’ 제안은 미래사회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일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불확실한 동시에 기회 또한 무궁무진한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석재은. (2018). 기본소득에 관한 다양한 제안의 평가와 과도기적 기본소득의 제안: 청장년 근로시민 기본소득 이용권. 보건사회연구 38(2): 103–132.

최영준. (2019). 강압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이 되는 방법. LAB2050 칼럼.

홍찬숙. (2018). 노동 4.0인가 제2노동세계인가. 경제와사회 119: 165–192.

Offe, C. (1997). “Towards a New Equilibrium of Citizen’ Rights and Economic Resources?” in Robert E.Goodin and Deborah Michell(eds.), The Foundations of the Welfare State, VolumeⅠ, An Elgar Reference Collection pp.87–114.

Offe, C. (2000). The German Welfare State: Principles, Performances and Prospectives after Unification. Thesis Eleven, 63, pp.11–37.

Van Parijs, P. (2016).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 (조현진 역). 후마니타스. (원서출판, 1998).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재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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