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는 정말 눈물을 흘렸을까?

황세원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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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min readOct 16, 2018

황세원(LAB2050 연구실장)

‘혁신 도시’ 말뫼의 상징 ‘터닝 토르소’. 100% 친환경 에너지만 사용하는 건물로도 유명하다.

“코쿰스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에 팔렸을 때, 정말 눈물 흘리셨어요?”

“그럼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였는데요.”

사실은 다른 답을 들을 줄 알았다. ‘말뫼의 눈물’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알려진 도시 스웨덴 말뫼. 1800년대부터 조선업의 강자였던 스웨덴이 1980년대 경쟁력을 잃어버린 뒤 말뫼 시의 코쿰스(Kockoms) 조선소는 폐쇄됐고, 홀로 서 있던 대형 크레인은 2002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는, 그래서 크레인이 해체되던 날 말뫼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런 사연 때문인지 한국에서 말뫼는 한동안 ‘산업 경쟁력을 잃어버린 도시’를 뜻했고, 심하게는 ‘말뫼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에 이용되는 도시였다.

그렇지만 2010년쯤, 우연한 기회에 말뫼에 잠시 방문했을 때 들은 설명은 사뭇 달랐다. 친환경, IT 등 미래지향적 기술집약 산업의 허브, 연구와 산업이 조화를 이룬 도시, 유럽 젊은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젊은 도시라는 설명이 깨끗하고 정돈된 시내 풍경과 잘 어울렸다.

‘터닝 토르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옛 코쿰스 조선소 자리.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주택가, 상업지구, 녹지 등으로 단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말뫼 시는 1990년대 조선업 쇠퇴의 상황에서 과감하게 제조업을 벗어나서 ‘지식 중심 도시, 친환경 도시’로의 이행을 선언했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연결하는 ‘외레순드’ 대교를 건설했고, 말뫼 대학을 설립하는 등 오랜 숙원사업들을 진행했다. 대기업, 대공장보다는 의료, IT 등 기술집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산업들을 적극 유치했다. 이런 혁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터닝 토르소’다.

조선업이 위기에 빠져 있고, 군산 GM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는 등 제조업 전반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한국에서 요즘 말뫼는 하나의 ‘성공 모델’로 통한다. 관련 토론회 등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그렇지만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말뫼는 우리가 쫓아가면 되는 성공 모델일까?

코쿰스 조선소의 도크 자리. 현재 말뫼 시에서 조선소의 자취가 남은 공간은 이곳이 유일하다.

LAB2050 좋은노동랩의 ‘일자리 지형변화 연구’를 위해 말뫼를 방문한 것은 ‘디테일’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이 변화의 방향이 옳았는지,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식은 아니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 코쿰스 조선소에서 장기간 일했던 전 노동자 4명을 만났고, 변화의 과정을 주도했던 정부 관계자, 현재 말뫼 시의 노동자 재교육과 생활안정 등을 담당하는 책임자들도 만났다.

여기에 미리 공개하려고 하는 인터뷰는 들으면서 ‘생각과는 다르군’ 하는 느낌을 준 부분들이다. ‘구 산업의 쇠퇴로 추락한 도시도 아닌데 크레인이 해체될 때 정말 시민들이 다 같이 울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정말 울었느냐?”고 묻자 팔십대 나이의 욘-에릭 울손 씨와 베이 안토니슨 씨가 동시에 “그럼요.”라고 답한 것이 대표적이다.

코쿰스 조선소에서 일했던 베이 안토니슨(왼쪽) 씨와 욘-에릭 울슨 씨가 조선소 역사를 정리한 책을 보여주고 있다.

“코쿰스 크레인이 지금은 한국의 울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를 비롯해서 코쿰스 노동자들은 말뫼 시와 정치인들이 힘을 써서 그 크레인이 계속 여기 서 있도록 해줬으면 했어요. 코쿰스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였고, 크레인은 그 상징이었으니까요.”

“TV 채널 ‘디스커버리’에서 한국의 조선업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 있어요. 저희가 만들던 것과 똑같더라고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코쿰스 조선소가 폐쇄될 때 많이 아쉬웠죠. 어떤 배라도 수주 받기만 하면 척척 만들어낼 만큼 기술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진다니 아까울 수밖에요. 참 좋은 일이었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조선소에서 일하던 시간들을 설명하는 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일하는 동안 좋은 직장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공장 폐쇄는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노동자들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당시 노동조합 대표였던 울손 씨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우리는 당시 경영진과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스웨덴에서는 노동조합이 이사회 일원이기 때문에 알 수 있지요. 저를 비롯한 노조 대표들은 올로프 팔메 당시 스웨덴 총리와 면담을 하기도 했어요. 여러 주체들이 다 노력했지만, 조선소 폐쇄를 막을 수는 없었던 것 뿐이에요. 대신 최대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도시를 살리는 방안을 같이 강구했죠.”

코쿰스 조선소를 설명하는 그림. 현재 울산에 서 있는 코쿰스 크레인도 그려져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말뫼에서도 조선소의 임금 수준은 높았다. 그렇다면 조선소를 나온 뒤 노동자들의 삶은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바로 다른 일로 옮겨갈 수 있었을까?

대부분은 그럴 수 있었다고 했다. 대형 선박 건조를 위한 조선소가 폐쇄된 뒤에도 한동안 잠수함 건조 부문이 남아있기도 했고, 기차 제조업 등 다른 업체들도 꽤 있어서 일자리가 품귀 상태는 아니었다. 물론 어려움은 있었다. 열다섯 살부터 26년간 코쿰스에서 일했던 토마스 울손 씨는 이직한 뒤 한동안 정착하지 못 했다고 했다.

“코쿰스 폐쇄는 우리 모두에게 큰 사건이었죠. 그 전까지 우리들은 한 직장에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니는 것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죠. 코쿰스를 그만둔 뒤로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 했어요.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해고된 적도 있어요. 1년 정도는 할 일을 못 찾고 실업급여를 받기도 했죠.”

그렇지만 생활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아파도 참아야 하거나, 자녀들의 꿈이 쪼그라들지도 않았다.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인 나라, 한 직장에 오래 근속하지 않더라도 실업급여, 연금, 의료비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 스웨덴이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19년간 말뫼 시장으로 재임했던 일마 리팔루 씨

아무리 그런 스웨덴이어도 오랜 일자리를 갑자기 잃은 사람들은 분명 불안을 느낀다. 어떻게든 정부가 나서서 이전과 같은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말뫼 시가 ‘제조업 도시를 탈피한다’고 선언하고,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인 ‘친환경 도시’ 비전을 세운 데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당시 변화를 주도한 일마 리팔루 전 말뫼 시장은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는 과정이 길었지만 큰 반대는 없었다.”고 했다.

“당시 말뫼의 상황은 아주 나빴습니다. 단기간에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았지요. 다른 산업을 끌어오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GM이 인수했던 SAAB 자동차 공장을 조선소 부지에 유치했지만 채 3년을 못 가고 폐쇄됐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시민들, 노동자들이 배제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로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전 말뫼 시청 공무원으로 코쿰스 폐쇄 당시의 대책 태스크포스팀 책임자였던 크리스터 페르손 씨

당시 정부, 노동조합, 시민 등 주체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담당자였던 전 말뫼 시청 공무원 크리스터 페르손 씨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길고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요즘처럼 SNS,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의견을 나누고 종합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매년 열리는 말뫼 페스티벌 때마다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지요.”

또한, 코쿰스 노동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돕고, 생활이 조금이라도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정책들도 있었다. 스웨덴 전체에 적용되는 기본적 시스템에 더해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면 공영주택에 살던 노동자들이 자기 집을 스스로 수리하면 월세를 감면해주거나 주거 기간을 늘려주는 식이었다.

언론인, 말뫼 시 공무원으로 일했던 비아네 스틴키스트 씨

전 언론인이자 말뫼 시의 사회혁신 부문에서 일했던 비아네 스틴키스트 씨는 말뫼를 ‘성공 모델’로 보고 있다는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제조업 일자리가 큰 변화를 맞이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접근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각 도시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꼭 감안해야 해요. 말뫼도 도시 개발과 산업 전환 면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했지만, 이민자들을 위한 사회통합 정책,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스틴키스트 씨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히 시민, 노동조합,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의 시각을 종합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즉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말뫼에서의 이야기들 중에서 전 노동자 인터뷰 내용은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서울’의 일환으로 11월 1일 저녁 7시~9시에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진행될 ‘내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세션에서 소개된다. 이 세션은 참가자들과 함께 일자리 변화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런 변화의 상황 속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기 위한 자리다.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서울] ‘내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참가 신청하기

그밖에, 호주 애들레이드에서의 인터뷰를 비롯한 ‘일자리 지형 변화 연구’의 다른 내용들은 연구보고서와 포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LAB2050 좋은노동포럼 #01]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시작, 위기의 시그널을 읽다 (11/14(수) 15:00 ~ 18:00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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