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사회에 눌린 청년들,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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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6 · 13 min read

[IDEA2050_007]

이재경(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

부의 편중이 심화될수록 한국사회청년들은 불안에 시달린다. 출처: 셔텨스톡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저성장과 불황이 이어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의 활력은 더 떨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든 세대가 고통을 받았지만 현재 20~30대에 해당하는 청년 세대는 직격탄을 맞았다.

청년들은 부모님 세대보다 더 노력해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 없다. ‘임시로 하는 일’이라 생각한 일자리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채로 청춘을 보내고 있다. 결혼, 연애, 출산, 주택 마련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N포 세대’라고 부른다.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때 지원해줄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청년은 국가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정책의 내용은 모순적이다. 청년들의 재정적 안정성을 높여주려는 정부 정책들은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때 지원해 줄게”라는 식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치 지도자들은 청년들에게 “해외에 나가서 기회를 찾으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한국의 현실에 절망해서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고 말해오던 청년들의 등을 떠미는 격이었다. 정부의 정책으로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공스토리는 들려온 바 없고, 정부의 지원 정책이 매우 부실하게 운영되었다는 소식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대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채무자가 되었으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이자를 물어야 했다. (출처링크: 한국장학재단,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청년들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째서 저금리 시대에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학자금대출 이자는 높은 수준이었을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에는 기준금리가 3%까지 떨어졌지만, 학자금대출의 이자는 8%를 육박했다. 웬만한 주택담보대출보다 비싼 이자로 등록금을 빌렸고, 대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채무자가 되었으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이자를 물어야 했다.

정부는 ‘주택공급을 늘려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1인 가구를 겨냥한 주거 공간들도 계속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임대보증금과 월세는 매년 높아지기만 하는가?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를 ‘인구 절벽’을 야기하는 주범인 것처럼 공격하고, 대학교 근처에 기숙사를 짓거나, 정부가 청년임대주책을 짓겠다고 하면 인근에서 임대사업을 하던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든다며 머리에 띠를 두르고 격렬하게 시위를 한다.

청년 세대를 숨막히게 하는 현실, 기성세대의 민낯은 한국 사회가 철저한 ‘렌트 사회’(rent society)이며, 정부도 결국은 이 렌트 사회를 방조할 뿐이다.

철저한 ‘렌트 사회’가 된 대한민국

‘렌트’(rent)는 본래는 땅이나 집을 빌려 쓰는 대신 지불하는 돈을 말하지만, 불로소득과 정상범위를 넘어선 초과소득을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렌트 추구 행위’가 심할수록 노동을 통해서, 혹은 창업을 통해서 소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렌트 추구 행위의 핵심 축이다. 또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들을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이를 나누기 위해 이익연합을 형성해 왔다. 이들이 쳐 놓은 진입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렌트 사회’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제라도 렌트를 차지해야 한다’는 욕망을 갖게 만들고, 기회만 되면 그 대열에 뛰어들게 한다. 임금과 이윤, 저축, 투자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렌트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만이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사가 된다.

어느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칭찬하기보다는 조롱하고, 불로소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추앙하는 문화도 생겨난다. 한국의 사회경제 질서가 일종의 카지노 자본주의, 즉 불로소득과 초과소득을 얻기 위한 도박판이 돼버린 것이다.

도박판이라 하더라도 게임이 공정하다면, 적어도 참여자들에게 공정하다고 인식된다면 갈등이 발생할 소지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미 렌트를 확보한 기성세대와 사회에 이제 막 들어선 청년들의 경쟁이라면 어떨까. 심지어 보통의 청년들은 물려받은 자산은커녕 학자금 대출로 수천만 원의 빚까지 지고 있다. 청년들이 이런 구도에서 순순히 경쟁에 임하기보다 아예 판을 떠나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청년 세대를 숨막히게 하는 현실, 기성세대의 민낯은 한국 사회가 철저한 ‘렌트 사회’(rent society)이며, 정부도 결국은 이 렌트 사회를 방조할 뿐이다. 출처: 셔텨스톡

물론 이 도박판이 유지되길 바라는 청년들도 있다. 부모로부터 렌트를 물려 받는 청년들이다. 렌트를 확보한 기성세대들은 단순히 자녀들에게 집과 현금만 주는 것이 아니다. 최근 밝혀진 입시비리, 채용비리 사건들에서 확인되듯이 힘과 영향력이 있는 부모들은 자식을 명문대, 대학원에도 넣어주고 나중에 졸업하면 좋은 회사에도 입사시킨다.

그와 같은 부모의 전형이 최순실이고, 그가 딸 정유라를 위해 저지른 일이 박근혜 정부 탄핵의 단초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순실과 정유라는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이런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계속 경험해 온 청년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고 보상받는다’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 청년들이 공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와 동시에 이제라도 발견되는 렌트 획득의 기회, 예를 들어 가상 화폐 열풍과 마주하면 ‘더 늦기 전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실버민주주의로 향하는 정치

이런 구조 속에서 정치는 문제 해결의 거의 유일한 카드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현실은 암울하다. 중동 정치가 소수의 왕족, 성직자, 군인 등에 의해 독점된 것처럼 한국의 정치는 철저하게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돼 있다.

현재 20대 국회의 평균연령은 55.5세다. 19대 국회의 평균연령은 53.9세, 1~17대까지의 평균연령은 50.4세였다. 19대 국회에서 45세 미만 국회의원 비율은 6.3%(OECD평균 32.1%), 40세 미만은 2.3%(OECD평균 19%), 30세 미만은 0%(OECD평균 2.8%)였다. 전체 의원 수 대비 청년의원 비율은 OECD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이 최하위였다. 이와 같은 세대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서 20대는 1명, 30대는 2명에 불과했다. 비중을 계산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돼버린 것이다.

정치세대 불균형은 정치영역에서 청년의제가 소외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림: LAB2050)

이런 세대 구성은 정치 영역에서의 청년의제 소외로 나타난다. 19대 국회에서는 노인 관련 법안이 청년 관련 법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이 글을 쓰면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검색해 보니 ‘노인’ 키워드로는 152건, ‘청년’ 키워드로는 65건의 법안이 나온다.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청년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인지 최근 선거에서는 세대간 대결 양상이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산, 지위와 상관없이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힘이 분명하게 드러날 만도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도 속에서 그 힘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 했다. 딱 선거 때만 청년들이 호명되고 동원될 뿐, 청년들은 기존의 정치무대에 거의 진입하지 못 했고, 청년을 위한 정책이 화끈하게 추진된 경우도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서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버 민주주의는 쉽게 말해 정치인들이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고령자로부터 표를 얻고자 그들을 위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과 이탈리아 정치 현황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다.

실버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주택정책만 봐도 그렇다. 주택 가격이 너무 높아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면 정부는 이를 낮추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주택 정책은 대체로 청년들이 비싼 가격을 당장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을 서 주고,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 주도록 하는 식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기성세대의 렌트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도 역세권에 임대주택용 건물을 짓거나, 기존 주택들에게 국가가 임대료를 지급한 뒤에 청년에게 재임대하는 식이다. 부동산 개발업자, 다주택 소유자들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일자리 정책도 다를 바가 없다.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때는 청년 실업자들이 주로 거론되지만, 고용 정책 중에서 점점 비중이 커져 가는 ‘직접 일자리 사업’ 수혜자는 대부분 노인층이다

‘지역’에 아직 청년을 위한 공간이 있다

이런 기울어진 구조 속에서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진지와 참호가 필요하다. 작고 거칠더라도 그런 공간을 확보해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의 공간으로 ‘지역’을 살펴볼 것을 청년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은 광역·기초 등 지방자치단체, 혹은 더 작은 읍면동 단위의 생활정치 공간, 혹은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등이 작동하는 생활경제 및 활동 공간을 말한다.

물론 이런 단위들에서도 이미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직능단체와 사업자들이 지역정치 및 행정기관과 결합된 채로 기득권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다. 지역에서 오래 살아 온 사람들끼리의 결합이다보니 이동이 자유로운 청년층에 대한 배타성은 강하다. 이런 현상은 수도권보다는 지방,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더욱 분명하다.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지역에 주목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그래도 국가와 시장경제에 비하면 아직 청년에게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마리는 다음과 같다. 청년수당을 최초로 시작한 곳이 지역(성남시·서울시)이고 청년지원조례를 만들고 청년청, 청년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곳도 지역이다. 국회에서 청년기본법은 수 년째 표류 중이고 중앙정부는 청년위원회를 만들면서 50대를 위원장으로 앉혔지만 서울시는 최소한 30대 청년을 청년청장으로 임명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구 단위, 동 단위에서는 청년들에게 최소한 최저임금은 주고 워라밸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단체와 활동가 그룹들이 있다. 동네에서 살아보려고, 일해보려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지원해 주려고 하는 어른들도 있다. 청년들 관점에서는 역시나 ‘꼰대’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따뜻함을 보여주는 어른들이다.

생활정치 영역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해보기 위해서도 지역은 의미있는 공간이다. 출처: 픽사베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가능성이다. 현재 지역 단위로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등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꽤 많은 정부 예산이 구 단위, 동 단위로 들어오고 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지역 관리 기업, 마을 관리 협동조합 등 잠재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형성되고 있다.

이런 현장들에서는 함께 할 청년을 구하지 못 해 애를 먹고 있다. 물론 일몰형, 프로젝트성 사업들이 많기에 기존의 ‘정규직’ 기준으로 보면 좋은 일자리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청년들에게 함께 하자고 쉽게 권유하지 못 하는 경우도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일자리는 전체 청년의 10% 정도밖에 포괄하지 못 한다. 거기 진입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써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적은 일자리들에 매력을 느끼지 못 한다면 지역 일자리에 눈을 돌려볼 만하다.

정치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도 지역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지방자치와 분권이 진행되면서 점차 지역의 정치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이 구청장 등 단체장으로 출마하는,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사례도 등장했다. 또한 지방의회가 국회보다는 그나마 청년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개방하고 있다. 기성 정당에서도 지방의원 정도는 청년에게 공천을 줄 수 있다는 관대한 태도가 포착된다.

꼭 기성정치에 뛰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정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기 위해서도 지역은 의미 있는 공간이다. 주민자치의 역할과 권한이 점차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주민자치회 등에서 청년들이 참여할 공간이 열리고 있다. 때를 놓치면 이마저도 또 기성세대나 그 기득권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차지해 버릴 수도 있다.

청년이 일으킬 ‘혁신’을 믿어보자

필자가 동네에서 연구하면서 만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이구동성으로 “이런 삶의 공간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하곤 한다. 어려부터 줄곧 한 동네에서 살아왔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다는 청년도 있었다. 진로탐색은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에 대해 경험하고 배울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청년들보고 무작정 “지역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은 “해외로 나가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활동, 삶의 방식을 탐색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단계가 먼저 필요하다.

서울시가 시도한 ‘사회적경제 청년혁신활동가’, ‘지역혁신청년활동가’와 같이 청년들이 지역 시민사회단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6개월~1년 정도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지역마다 만드는 것도 좋겠다. 생활임금과 적정 근무환경, 혁신을 시도해 볼만한 수평적 조직문화를 보장해 준다면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에서의 일과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수평적조직문화를 통해 지역에서 일과 삶을 선택하는 ‘서울시지역혁신청년활동가’ 출처: 서울시청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는, 지역에서 스스로 혁신적인 활동을 해 보려는 청년들에게 일정 기간 생활을 보장해 주는 방법도 있겠다. 일본의 지방정부는 지역재생을 위해서 청년들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시도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동네, 읍내에 들어가 다른 시도를 해 보려는 청년들을 믿고, 일정 기간 조건 없이 지원해 주면 어떨까? 이를 통해서 지역도 변화와 혁신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정부는 새로 택지개발을 하는 수도권 신도시에 ‘다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산 정약용은 귀향을 갔을 때 지역의 현실을 세밀하게 살펴본 뒤에 ‘경세제민’의 그림을 그렸다. 다산의 이름만 가져다 쓸 게 아니라 그 정신을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에게 지역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을 ‘다산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런 시도가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한국 사회의 미래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재경 한신대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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