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시민소득 실험, B-MINCOME

고동현 (LAB2050 연구원)

스페인의 경제, 관광 중심지 바르셀로나 © Shutterstock,com

바르셀로나가 시민소득 정책 실험을 시작했다. 시민 주도의 대안 정당 ‘바르셀로나 엔 꼬뮤’가 집권하면서 운동가 출신 아다 콜라우가 시장이 된지 3년째인 지금, 바르셀로나 시 정부는 시민소득 정책 실험 ‘비민컴’(B-MINCOME)을 진행하고 있다.

빈곤지역 1,000가구에 매월 1,000유로(약 130만원) 내외를 2년 간 지급하는 실험이다. 지급 대상자의 추가 소득 여부, 그리고 고용·사회적경제·주거개선·공동체 프로그램 참여 여부에 따라 지급액은 달라진다. 지급액의 일부를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B-MINCOME의 목적은 기본소득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핵심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정부의 역할이 그에 맞춰 변화할 수 있을지 실험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토대 위에서 시민이 지역경제 선순환의 주체가 되는 모델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읽힌다. 시민정치가 내세운 정책 실험이 분배 제도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민 저항 세력의 집권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경제 중심지이자 금융과 관광의 도시다. 스페인 다른 지역들이 경제 위기에 흔들리는 동안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금융과 관광 산업의 성장이 시민의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았다. 무분별하게 이뤄진 주택담보 대출은 서민들을 집에서 쫓아냈다. 호텔과 리조트, 숙박 공유 플랫폼이 확대된 것도 서민들에게는 주거 불안의 원인이 됐다. 도심 임대료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공원과 전통 시장은 관광객들 차지가 됐다. 도시의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빈곤과 불평등도 같이 커졌고 시민들 삶의 질은 나빠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르셀로나에서는 은행의 주택압류와 강제퇴거에 저항하는 운동 PAH(Plataforma de Afectados por la Hipoteca, 담보 대출 피해자 플랫폼)가 시작됐다. 스페인 전역에서 시민 참여와 수평적·상향식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춘 정치 운동 ‘인디냐 도스’(Indignados, 분노한 사람들)가 확대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에 힘입어 대안 정당 포데모스(Podemos)가 나타났고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바르셀로나의 저항 운동 세력과 포데모스가 결합한 정치 연대 ‘바르셀로나 엔 꼬뮤’(Barcelona en commú, 모두의 바르셀로나)는 2015년 총선에서 시의회의 다수당을 차지했고, PAH의 공동 창업자이자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아다 콜라우(Ada Colau)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시민 주도형 대안 정당, 바르셀로나 엔 꼬뮤(Barcelona en commú)를 통해 바르셀로나의 첫 여성 시장으로 당선된 아다 콜라우 © WAGLE

‘시민소득’이 필요한 이유

바르셀로나 시의 새로운 정부가 곧바로 시작한 것은 금융과 관광 산업의 폐해를 줄이는 정책이었다. 빈 주택을 장기간 소유하고 있는 은행들에 벌금을 부과했다. 신규 호텔 허가를 중단하고, 불법 숙박 공유에도 적극적으로 벌금을 물렸다.

전통 시장(La boqueria)과 공원(Park Güell) 등 주요 관광지에서 지역 주민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이용권을 보장했고, 마드리드 등 다른 도시 정부들와 연대해 임대료 인상 제한 정책을 중앙정부에 요구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도 있었다. 2016년 신년사에서 아다 콜라우 시장은 “최근 수 년간 바르셀로나의 저소득층과 최저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20%에서 40%로 증가했으며, 중산층의 소득 수준은 감소하고, 빈곤층과 부유층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2019년 바르셀로나 도시기본계획(PAM 2016~2019)의 사회부문 예산 중 1억 5천만 유로(약 2,000억 원)를 빈곤층 비중이 높은 지역과 산간 지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민 누구나 최저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소득’(renda municipal) 제도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2016년 바르셀로나 구역별 1인당 가구 가처분소득 분포. (바르셀로나 평균=100, 짙은 파란색부터 159이상 최고소득구역, 126~159 고소득구역, 100~126 중고소득구역, 79~100 중저소득구역, 63~79 저소득구역, 63이하 최저소득구역) © Ajuntament de Barcelona

빈곤 지역 1,000가구 무작위 선정

2016년 10월, 바르셀로나 시는 ‘시민소득 실험 B-MINCOME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유럽연합 산하 기관으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UIA(Urban Innovative Actions)가 재원 일부를 지원했다.

실험 설계가 끝난 2017년 5월에는 B-MINCOME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발표됐다. 바르셀로나 북동부 ‘익스 베소스’(Eix Besos) 지역을 대상으로 2017년 12월부터 2년 간 실행된다. 이 지역 인구는 약 11만 명으로, 가구당 소득은 바르셀로나 평균의 절반 수준이고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더 높으며 교육수준은 더 낮다.

B-MINCOME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Eix Besos 지역 © B-MINCOME

수급 요건은 가구 전체가 익스 베소스 지역에 거주하며 아동 및 청소년 수당, 자활 프로그램 또는 사회 서비스 수급 대상인 바르셀로나 시민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는 가구 중에서 1,000가구를 무작위(random)로 선정한 뒤, 2017년 12월부터 기존 소득과 가구 구성, 기초 생계비 수준에 따라 월 100~1,676유로(13만~220만원)를 지급한다.

각 가구별 구성과 수에 따라 기초 생계비와 최소 주거비가 정해지며, 이를 합산한 기초 생활비에서 기존 소득을 차감한 만큼이 가구별 수당(시민소득)으로 지급된다. 3개월마다 변동 사항을 반영해 수당을 지급한다. © UIA

공동체, 사회적경제, 그리고 지역화폐

B-MINCOME은 시민소득 실험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의실효성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아래 그림과 같이 실험군인 1,000가구는 추가 소득에 따른 지급액 조정 여부, 적극적 정책 프로그램 참여 여부, 참여 프로그램의 종류, 그리고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의무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총 10개 그룹으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0개 그룹으로 구성된 실험군 구성 © UIA
  • 소득 제약: 소득 제약이 없는 그룹은 기존 소득을 넘어서는 추가 소득이 발생해도 지급액(시민소득)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소득 제약이 있는 그룹은 추가 소득에 따라 지급액이 줄거나 지급이 중단된다.
  • 공동체 참여: 소득 제약이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 중 일부는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돼 있다. 공동체 프로그램은 책임감, 협업 성향, 문제 해결력, 공동체 기여도 등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프로그램 참여 여부에 따라 수당 지급액이 조정되지는 않는다.
  • 적극적 정책 참여: 나머지 그룹은 다양한 형태의 ‘적극적 정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기존에 단순 직업 훈련 일색이던 빈곤층·실업자 지원 제도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기 위한 실험이다. 공동체와 지역경제에 기반한 12개월짜리 고용 훈련 프로그램, 사회적경제 및 협동조합 창업 등의 사회적경제 프로그램, 빈방을 개조해 관광객에 제공하는 공유경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들 그룹은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수당을 지급받는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B-MINCOME은 지급액 중 일부를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2018년 5월부터 지급액의 25%가 지역화폐 REC(Recurs Econòmic Ciutadà)로 지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REC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로 발행돼 모바일 앱, QR코드를 통해 거래된다. 관광 수입 등 외부 경제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경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바르셀로나 지역화폐 REC © REC(Recurs Econòmic Ciutadà)

B-MINCOME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과 공공 어느 쪽에서도 더 이상 충분한 일자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바르셀로나 시민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안정성이 있을 때 시민들은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며, 빈곤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둘째, 지역 및 도시 단위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 정책들의 효과를 검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점점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인지 검증해 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공공과 소득/경제 모델의 변화를 추구하는 B-MINCOME © The Young Foundation

정부와 시민의 관계, 재정립될 수 있을까?

스페인은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복지국가의 토대가 튼튼하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확대된 불평등, 젊은 층의 실업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셀로나 시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민소득 실험을 시작한 것에 대해 의외라고 여길 수 있다. 이미 기본소득 실험 중인 유럽 내 타 국가들보다 규모가 작지 않으며, 공동체·지역경제 실험과 결합시킨 것도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다 콜라우 시장과 바르셀로나 엔 꼬뮤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이며, 이는 곧 ‘불평등을 바로잡으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강력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B-MINCOME 실험은 성공한다면 다른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실험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정부와 공공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기본적인 생활권과 주거권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것, 시민들이 자발적으이고 주체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빈곤과 불평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그 역할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금융자본, 관광산업이 아무리 경제적 이득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시민경제의 선순환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외부의 경제력에 의존한 경제 성장은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 한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도 더 늦기 전에 외부 경제와 지역 경제의 균형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물론 실험 결과도 중요하다. 어느새 스페인과 바르셀로나가 시민 주도 정치 모델로 알려졌지만 그 기치만큼 사회를 변화시켜갈 것인지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B-MINCOME 실험 결과가 나오기까지 세계의 이목은 계속 집중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부와 시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도시 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하면서.

<참고>

Ajuntament Barcelona_B-MINCOME

Ajuntament Barcelona_Prensa

UIA(Urban Innovative Action)_Barcelona

UIA_The B-MINCOME Project Journal N°1 Project led by the City of Barcelona

UIA_The B-MINCOME Project: Journal N°2: Money for whom?

와글_듣도 보도 못한 정치_스토리펀딩

와글_운동권 시장이 정치하는 법-아다 콜라우의 답장

Ada for Mayor

서울연구원_세계도시동향

코트라_스페인 경제의 중심, 바르셀로나 들여다보기

조선일보_바르셀로나, 관광객 미워하고 난민 환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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