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구조조정 쓰나미가 온다. 우리 경제에 축복이 될까 저주가 될까

이원재(LEE, Wonjae)
LAB2050
Published in
6 min readFeb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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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줄고 나홀로 자영업자는 늘어나는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의 풍경

자영업 비중이 사상 최저라는 소식이 몇 차례 언론에 언급됐다. 지난해 일어났던 일이다. 자영업 구조조정이 정말 시작되는 것일까? 이 방향은 옳은 것일까?

구조조정이 옳은지 아닌지 따지다니 황당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자영업자들은 항상 구조조정 대상이다. 정책가들의 머릿속에서는 최소한 그렇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전통시장에 가서 어묵꼬치를 입에 물고 ‘자영업을 살리겠습니다’고 외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니 줄여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정치는 살리자고 하지만 정책은 죽여야 산다고 말한다. 끼리끼리는 이야기하지만 모두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 비밀의 열쇳말, ‘자영업 구조조정’에 대한 냉정한 이야기다.

경제활동인구조사(통계청) 연간자료

과거 대한민국은 사장님들의 나라였다. 자본의 지배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 국민 상당수가 사장인 나라였다는 이야기다.

서울 명동의 인파 속에서 ‘어이 김사장님!’이라고 소리치면 절반이 뒤를 돌아본다는 소싯적 농담은 과장이 아니었다. 통계를 보면,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육박했다. 21세기 접어들어서도 30%를 넘나들었다.

경제전문가들은 비정상적 고용구조라고 지적하곤 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이들의 말은 그럴 듯하다. 미국 일본 독일 같은 나라는 자영업 비중이 10%를 채 넘지 않는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서는 콜롬비아 멕시코 그리스 터키 등의 몇몇 국가들은 우리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다. 선진국이 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소상공인들은 사라지고, 큰 기업에 취업한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전망은 이제 눈앞의 현실이다. 김사장님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분명하게 구조조정의 길로 접어들었다. 적어도 데이터는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매달 진행되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자의 종사상 지위를 묻는 질문이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집계해 보면 자영업 비중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통계청 사이트에서 쉽게 내려받을 수 있고, 매달 ‘고용동향’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가 나온다.

이 데이터를 보면, 2021년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는 취업자 중 4.79%였다. 1982년 이후 최저치다. 무급가족종사자, 즉 급여를 받지 않고 가족의 자영업을 돕는 사람의 비중은 3.69%였는데, 1982년의 19.15%에서 죽 미끄러져 내려온 최저치다.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온라인 거래 활성화가 많은 자영업자들을 떠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영업 구조조정은 한두 해의 과정은 아니었다. 40여년 동안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자영업 구조조정은 두 갈래로 진행되어 왔다. 한 갈래는 전근대적 관계가 사라지는 구조조정이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자영업자, 즉 직원 없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함께 줄여드는 현상이다.

40년 전의 동네 자영업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아무도 고용하지 않고 남편은 사장님, 아내는 주방, 자녀는 서빙을 맡아 운영하는 음식점이 떠오를 것이다. 당시 자영업의 전형은 직원 없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동거하며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휴가도 퇴직금도 산재도 건강보험도 보장할 필요가 없던 전근대적 고용구조였다. 때론 아름답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억압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급여를 받지 않고 가장에 종속되어 일하려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이런 구조는 남아있기 어렵다. 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직원 없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같이 줄어들어온 이유다.

또 한 갈래는 그야말로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일어난 구조조정이다.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들이 대상이 됐다. 제빵사 두세 명을 거느린 동네 빵집 사장님을 떠올리면 된다.

사실 직원 있는 자영업자들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늘어나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임금이 오르던 1980년대 초중반, 여유가 생긴 퇴직 노동자들이 이런 자영업에 뛰어들기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직원 없이 운영하던 몇몇은 무급가족종사자를 내보내고 직원을 고용해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IMF구제금융으로 대량해고와 명예퇴직 바람이 불자, 퇴직금을 목돈으로 받은 이들 중 상당수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명동 인파 속의 김사장님이 직원까지 거느리며 진짜 사장님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경쟁이 심화하고 시장이 효율화하면서 역설적으로 구조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대기업들의 유통업과 외식업 진출이 결정타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들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기 시작한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신용카드 사용 확대와 과세구조 투명화는 변곡점이 됐다.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프랜차이즈 출점제한과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무너지는 자영업자를 보호하려는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효력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전근대적 사업구조가 깨어지고 효율적 시장경제가 들어서면서, 이렇게 자영업자들은 상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그리고 코로나19가 결정적 일격을 가했다. 명동의 김사장님들은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됐다. 급격하게 꺾어진 그래프가 그들의 꺾인 무릎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제 사람 거느리는 사장님, 보스인 사장님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급격히 줄어든다. 2017년에 고용원을 거느리고 있던 자영업 가구주 100명 중 71명만이 3년 뒤인 2020년에도 자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4년의 경우 100명 중 80명이 3년 뒤까지 자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지 가능성이 뚝 떨어졌고, 더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2018년 이후 직원 없는 자영업자가 다시 늘고 있다. 20여 년 만이다. 그런데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점포 없는 자영업자가 늘어난다. 배달업에 뛰어든 중년의 퇴직자를 떠올리면 된다.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이 자영업 구조조정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김사장이 아니라 김라이더가, 사업가가 아니라 프리랜서가 새로운 자영업자들의 정체성이 됐다.

애초에 나는 ‘우리나라는 자영업이 너무 많아서 후진적 경제구조’라는 시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영업은 제조업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져서 고용없는 성장이 이어질 때 우리 경제를 버텨줬다. 대량해고가 이어지던 경제위기 때도 안전망 역할을 해줬다. 자존심과 자립심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잘 담아낸 고용구조였고, 새로운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을 동네에서도 보존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업구조였다.

퇴직 뒤에도 쉬지않고 일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이리도 많은 나라가 있을까? 그건 분명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어떨까? 점포 없이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형 자영업자들은, 우리 사회는 ‘김사장님’처럼 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집도 절도 없는 불안한 이들을 떠받칠, 사회안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들도 자기 일이 주인이 되어,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며 자존심 세우며 신나게 일할 수 있을까?

자영업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지나간 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다. 어떤 답을 하느냐에 따라, 다시 한번 축복과 저주 사이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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