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험이 정책혁신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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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 readJun 12, 2018

How do we make policy experiments lead to policy innovation?

새로운상상 2018 / 세션3. 전환의 시대 정책실험, 어떻게 정책혁신으로 이어갈 것인가? / 토론3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국제 콘퍼런스 ‘새로운 상상 2018’의 마지막 세션의 토론은 “정책 실험의 의미와 논점”을 주제로 진행됐다. 정책 실험이 정책혁신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떤 현실을 고려해야하는가? 정책 실험은 순수한 도구인가,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정인가? 정책 실험의 주체로서 민간과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여러 각도의 논점이 던져졌다.

세션3 기조발표자인 마쿠스 카네바 핀란드 총리실 시니어 스페셜리스트, 테일러 조 아이젠버그 이코노믹 시큐리티프로젝트(ESP) 상임이사, 엘리자베스 로즈 와이콤비네이터 리서치랩 책임연구자, 그리고 한국 패널 두 사람이 참여했다. 2016년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핵심 의제로 내세운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 최근 『기본소득이 온다: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2018)를 공저한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함께 했다. 좌장은 최영준 LAB2050 연구위원장(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맡았다.

전환의 시대, 정책혁신은 무엇을 고려해야하는가?

백승호 교수는 “정책 혁신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진단에서 나와야하며,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정책실험은, 현실을 반영하는 가장 적합하고 실현가능한 정책대안을 찾아보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백승호 교수가 내린 현 시스템에 대한 진단은 “전통적 산업사회의 고용계약 관계가 해체되는 상황”이다. 그는 “표준적 고용관계에 기반해 만들어진 기존 정책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기본소득 실험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다소 아쉽다”고 언급하고, “정책혁신으로 이어지는 정책실험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적 산업사회의 틀을 뛰어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정책 실험은 순수한 도구인가, 목표를 향한 과정인가?

한편, 김주온 위원장은 정책실험에 대한 우려섞인 시각을 밝혔다. “사적안전망 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공적안전망으로서의 기본소득 논의가 매우 절실하다”며, “정책실험의 시대에 정치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가?” 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김주온 위원장은, “정치가 사라지고 실험만 남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의 대항담론으로서의 성격과 정치 운동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즉, 기본소득의 정당성이나 급진성에 대한 논의와 운동이 빠진 ‘기본소득 실험’은 자칫 형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고용관계를 넘어서서, 지구상의 지속가능성, 모두의 몫을 어떻게 나눌것인가. 더 나아가 인권의 관점까지 큰 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다른 패널들은 정책실험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카네바 스페셜리스트는 성평등 정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남녀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정책적 접근법과 개입, 정책 실험을 통해서 여성의 일자리 참여나 거버넌스, 사회 참여를 촉진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현지 문화적 맥락에서 실험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가령, 어떤 정책을 검토할 때, 사회문화적 맥락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증거가 마련됐다고 해서 반드시 정책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며, 정책실험과 정치 운동이 함께 가야함을 피력했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사회보장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움직임이 수십 년동안 있었고, 정책실험도 주단위로 진행해 근거가 있음을 입증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정책을 다루는데는 증거가 선호되지만, 궁극적으로 혁신은 사회적 압력, 그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준 교수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여기 계신 분들은 신념이 있기에 실험하고 싶은것인가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고자 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로즈 책임연구자와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한다”며, 자신이 원하는 어떤 가설이 이뤄지는 것과 실증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결합돼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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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혁신에 대한 숙의와 합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최영준 교수는 두 한국 패널에게 정책혁신의 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다.

김주온 위원장은 “지름길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으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풀뿌리 차원에서, 차츰차츰 사람들이 동의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개인 의견을 제시하는 장을 열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무엇을 우려하는지, 어떤식으로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좋은지 등을 아래로 부터 논의하는 과정, 어쩌면 지난할 수도 있는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백승호 교수는 “정책혁신의 숙의나 합의과정에서 논의해야 하는 핵심은 사회정의”라며, 사회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불평등 해소”의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통적 산업사회에서의 정의는 고용관계하에서의 공정한 분배를 이루는 것”이었지만, “이제 인지자본주의의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는 분배정의가 달라져야한다”며, 그 방안이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앞서 강조한 표준적 고용관계의 해체, 노동의 불안정성 증대와 ‘노동없는 미래’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노동에 근거하고 있는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 기존의 전통적 사회보험 중심에서 벗어나 이제 다른 방식을 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혁신을 위한 실험, 민간과 공공의 역할은?

끝으로, “공공이 나서서 할 수 있는 혁신과 실험은 무엇이고,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둘 사이의 경계와 역할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미국의 경우, 민간이 너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규모의 일을 할 수 있고, 시민사회는 사회적 압력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각각의 역할을 더 깊게 고민해봐야한다”고 말했다.

로즈 책임연구자는 “60–70년대 부의 소득세 실험은 정부가 진행했지만, 지금 정부는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현실”을 언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정부와 협력하고자 한다며,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는 자신들의 역할은 “더 많은 대화를 창출하고, 정부가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네바 스페셜리스트는, “정부는 주로 부의 재분배와 입법의 역할을 하는데,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한 민간과 공공의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승호 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반대다. 우리는 어떤 좋은 정책도 정부가 개입하면 이상해진다.”며, 한국이 정부의 주도하에 빠르게 성장한 ‘발전주의 국가’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도 권위적인 통제를 어떻게 잘 버리고, 자신의 역할에 주안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와이콤비네이터 사례를 보고, 우리도 민간이 자발적으로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과정이 전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어느 국가보다 기본소득 모델에서 한국이 앞서갈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주온 위원장은,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을 주도하는 것을 우려한다”며,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민간과 공공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행사도 (민간과 공공이 참여하는 형태로) 같이 만들어 졌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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