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감세’로 포장되어 있다

이원재(LEE, Wonjae)
LAB2050
Published in
6 min readSep 4, 2022

현 정부의 ‘불평등 감세’가 향하는 세상은 어디일까

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대대적인 감세안을 발표했다. 근로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모두 깎아주겠다고 나섰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연간 최고 80만원까지 부담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정부 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감세 규모가 5년간 6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오랜만의 대규모 감세안이다.

하지만 셈은 정확히 해봐야 한다. 모두에게 같은 혜택이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럿이 셈을 해 본 1차 결과는 여러 매체에 나와 있다. ‘부자감세’라는 것이다.

미국의 ‘감세정책’이 말하는 것

근로소득세는 연봉 1억원 안팎을 버는 직장인들이 가장 큰 감세 혜택을 본다. 연봉 3000만원 버는 직장인은 감세혜택이 0에 가깝다.

법인세는 최고세율이 25%에서 22%로 낮춰지는 등의 변화가 생기면서, 기업들이 총 6조 5천억원을 덜 내게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3분의 1은 삼성이 가져간다. 즉 거대기업들 중심으로 세금이 낮아진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하안 역시 자산이 많은 사람들의 세금을 낮추는 안이다.

우리는 누진세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소득 구간별로 세율이 다르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진다. 그러니 세율을 낮추면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혜택이 더 많이 가게 된다. 즉 감세는 원래부터 고소득자와 자산가에게 유리한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라고 발표했지만, 정작 이들에게는 큰 혜택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감세안은 ‘불평등 감세’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도 나름대로 변명에 나섰다. 대기업 세금을 깎았다는 비판에는, 세금을 낮추면 기업이 투자를 늘려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도 높아질 것이라고 항변한다. 근로소득세를 낮추면 소비가 늘어나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맞선다. 그러면 불평등이 오히려 완화될 것이라는 반박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현재 미국은 선진국 중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힌다. 세후소득(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지니계수가 0.39이다. 이 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것인데, 스웨덴(0.275), 폴란드(0.281), 헝가리(0.313), 독일(0.289), 프랑스(0.301) 같은 나라들보다 현저히 높다.

미국의 상위 1% 계층은 국가 전체 연간 처분가능소득의 15%를 벌어들인다. 예컨대 프랑스의 상위 1%가 6.6%만 차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하위 50% 계층은 19%를 가져가는데, 프랑스의 하위 50% 계층은 30%를 가져간다. 미국의 불평등은 이렇게 독보적이다.

그런데 미국이 예전부터 이렇게 불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 미국의 상위 1% 계층은 가처분소득의 8%를 가져가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상위 1%는 그 때도 6.5%를 차지했다. 미국의 불평등만 40여년 동안 가파르게 커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감세’에서 시작됐다.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재정개혁’이라는 핑계로 감세 기조의 시동을 건다. 이후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결정타를 날린다. 자본이득에 대한 큰 감세를 실행하며 불평등 확대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감세로 포장되어 있다. 이 그래프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대적 감세를 들고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확대 일변도의 길을 걷다가 지금은 전세계 최대 불평등 국가가 됐다.

경제학자 이매뉴얼 사에즈는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 이렇게 한탄한다. “2018년, 가장 부유한 400명의 미국인은 노동계급 전체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았는데, 이런 일은 지난 100년간 벌어진 적이 없었다.” 이른바 ‘부자감세’가 몇 차례 이어지면서 미국은 국가 위상이 걸맞지 않게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겪는 나라가 됐다.

올해 시작한 우리 정부의 감세가 결국 레이건의 감세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정부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그렇게까지 큰 감세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소득세는 세율 조정이 아니라 구간 조정만 한 것이고, 법인세도 단순화만 한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누진세 구조가 살아있어서, 미국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건의 감세도 대대적으로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소해 보이는 공제로부터 시작했었다. 레이건은 취임연설에서 “정부는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다”라면서 ‘세금은 정부의 도둑질’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이런 선언은 대대적 감세나 재정지출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업이 쉽게 손실발생과 자본잠실을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의,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정책 변화만 있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빠르게 감세를 옹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조세회피’는 점점 더 너그럽게 용인되기 시작했다. 고소득층이 상호회사(파트너십)에 참여해 손실을 입은 것으로 위장하고는 개인소득세에서 대규모 공제를 받아가는 일이 유행했다. 소득 상위 1% 계층은 이런 공제를 몇 년 만에 세 배로 늘렸다. 이런 작업을 대행해주는 서비스산업도 성행했다.

잘못 끼운 세금 단추 40년 이어져

당연히 소득세 수입은 푹 주저앉았다. 이와 동시에 복지는 줄고 격차는 커지기 시작했다. 조세회피라는 이름의 합법적 탈세에 대한 분노도 커진다.

레이건은 취임한 지 5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감세안을 들고 나온다.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세법을 개정하자는 명분에서였다. 세율을 대폭 낮추는 대신, 조세회피를 없애 세수 손실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어지러운 세정에 지친 국민들과 야당도 찬성하게 된다.

바로 이 세법 개정안이 미국에서 누진세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40여년 동안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누구도 감세 방향을 되돌리지 못했다. 한번 형성된 여론과 관행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렇게 ‘감세’라는 달콤한 말로 포장된 길을 걸어온 끝에, ‘선진국 중 가장 불평등한 사회’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미국이 치르고 있는 범죄문제도 인종갈등도 건강문제도 상당부분 불평등의 결과라고 평가받는다. 감세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너무 헐값에 문명 사회를 사려고 하다가, 불평등한 불량사회를 얻게 될까 두렵다. 그 짐은 우리 후손들이 지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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