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불리한 분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윤형중 (LAB2050 연구원)

윤형중
LAB2050
7 min readNov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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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파이를 나눠주는 일은 어렵지 않다. 누군가는 많이, 누군가는 적게 가져가도 어차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몫이다. 하지만 줬던 파이를 빼앗아 다른 곳에 주는 일은 어렵다. 뺏기는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이 분배는 정치와 관련이 깊다. 정치란 거칠게 요약하면 ‘국가가 가진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가 가진 자원은 기존에 배분된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 경향성은 기성 정치의 결과물이다. 각자 대표성을 가진 정치세력이 지금의 재분배 구조를 만들었다.

사회가 변해 계층의 구성이 달라지거나, 특정 사회적 문제가 부각돼 특정 계층의 대표성이 강하게 요구되면 기존의 재분배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 변화에 맞춰 재분배 시스템이 개선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병든다. 역사 속에서도 지주층의 권력과 자산 독점이 강화될수록 혁명의 기운이 거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생산가능인구(만15세~만65세)가 여타의 연령층을 부양하는 기존 사회시스템의 균열을 의미한다. 시장에 맡기는 1차 분배와는 달리 정부가 재정으로 집행하는 재분배는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를 홀대했다.

문제는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지금의 재분배 시스템은 유지되기가 어렵다는 점이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시스템이 고령화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재분배 시스템이 얼마나 고령층에 유리하고, 청년층에 불리했을까. 이를 실증할 수 있는 자료가 논의의 시작일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정부의 정책이 고령층에 유리

지난 11월 8일 LAB2050이 복지국가연구센터, 서울연구원, IPR(Institute for Policy Research), 고려대 정부학연구소가 공동개최한 ‘복지국가 재구조화의 새로운 방향 : 혁신, 사회투자, 기본소득’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선 영국의 연령별 재분배의 불균형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닉 피어스(Nick Pearce) 영국 바스대 공공정책학부 교수photo by 이우기 © LAB2050

이날 발표를 맡은 닉 피어스(Nick Pearce) 영국 바스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는 폰투센(Pontussen)과 바카로(Baccaro)라는 두 학자가 함께 쓴 두 개의 논문을 통해 국가의 재정·통화정책이 어떻게 세대별로 불균형한 분배를 야기했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영국에서 금융위기가 있던 2007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의 실질소득은 지속적으로 늘었고, 40세 미만 인구의 소득은 감소했다.양적완화와 같은 통화정책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부양했고, 이 혜택도 주로 고령층에게 집중됐다. 재정정책의 직접적 수혜층을 연령별로 따져본 연구는 아니었지만, 소득과 자산의 증감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부 정책의 수혜가 고령층에게 집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였다.

닉 피어스 교수는 재분배의 불균형이 정치를 통해 개선되기 힘든 환경이란 근거도 제시했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만18~24세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의 투표율 70% 중반 이상이었으나, 2017년엔 65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의 투표율이 하락했다. 재분배의 수혜를 입는 연령층이 투표를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세대별 정치성향의 차이도 이전보다 뚜렷해졌다. 레졸루션 파운데이션(Resolution Foundation)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72년엔 청년층의 노동당과 보수당 지지율 격차가 10%대 남짓이었는데, 이것이 2017년엔 20%대 이상으로 확대됐다. 마찬가지로 65세 이상 인구에서도 1974년엔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했지만, 2017년엔 큰 격차로 벌어졌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개편에 연령별 형평성 반영해야

영국의 상황은 한국에도 주는 시사점이 상당하다.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1970년엔 합계출산율이 4.53명이었고 그 해에 태어난 아기는 101만명이었다. 하지만 2017년엔 합계출산율 1.05명에 출생아수는 35만명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2016년에 내놓은 <장래인구추계 : 2015~2065년>에선 2016년 전체 인구의 13%대인 65세 이상의 인구가 2050년대에 40%대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선 연간 출생아수가 2030년까지 40만명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정확히는 2030년에 40만 6천명이 출생할 것이라고 예측함) 예상과는 달리 이미 40만명의 벽은 지난해인 2017년에 깨졌다. 실제로는 훨씬 더 일찍 초고령사회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연령별 재분배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선 국가 복지시스템의 개편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노인 연령 상향을 검토하고 있지만, 뚜렷한 로드맵을 밝히진 못하고 있다. 수많은 복지정책이 65세라는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고령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4대 사회보장 시스템 중의 두 가지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세대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2011년 65세 이상 진료비가 46조원에서 2017년 69조원으로 증가했다. 이 연령층이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1%에서 39.9%로 늘었다. 국민연금은 2008년 수급자가 253만명에서 2017년 471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가입자는 1833만명에서 2182만명이 됐다. 수급자의 증가 추세가 더 가파르다. 정치권에선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이 논의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연령별 재분배의 형평성’이란 관점이다.

기초연금과 기본소득의 상관성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도 재분배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2018년 한국 국회의원 300명 중에는 30대가 단 두 명(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청년층은 자신들의 의제가 정치권에서 논의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재분배의 불균형을 시정할 만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정치란 미래를 결정하는 일임에도 정치권 안에 미래 세대가 부재한 아이러니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란 과거의 답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연령별 재분배의 불균형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노인일수록 더 많이 아프고 진료비가 많이 들수밖에 없다. 가난한 노인이 아프고 굶주리는데도 세대별 균형을 하자며 내버려둘 순 없다.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소득과 복지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근속이 사라지고 노동시간이 불규칙해지고 근로계약과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플랫폼 시대에는 분배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고용과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와 자산가치 상승을 통해 부를 나누다 보면, 안정적 일자리나 자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청년 계층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닉 피어스 교수가 영국에서 발견한 ‘제론토크라시’(고령자 지배사회)이기도 했다.

단기적으로는 불균형한 연령대와 계층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초연금은 노인들에게 보편적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기초연금은 고령층의 기본소득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이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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