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후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반도 단번도약의 비전
‘평화와 번영’을 주제로 지난달 29부터 31일까지 열린 ‘제주포럼’에서 LAB2050이 참여하고 있는 코리아단번도약네트워크가 ‘단번도약’이란 새로운 국제개발 담론이자, 남과 북이 협력하는 방식을 알리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코리아단번도약네트워크는 지난해 10월 결성돼 남과 북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하는 모임이고, 지난 3월에 첫 ‘코리아단번도약포럼’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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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사흘째인 지난달 31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협력’이란 주제의 세션에서 사회를 맡은 이원재 LAB2050 대표는 토론회의 개최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코리아단번도약네트워크란 모임이 남과 북의 경제협력에 혁신을 접목하려는 ‘단번도약’이란 의제를 제주포럼에서 발표하고 토론할 기회를 찾고 있었고,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재단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제주포럼에서 논의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가 비슷한 주제로 토론을 하려고 한단 것을 알게 됐고, 그렇다면 같이 토론회를 열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정훈 아주통일연구소장, 김연호 한미경제연구소 비상근 연구위원, 강소영 그노비 대표, 막스 너너스 서울대 국제학 강사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이원재 대표와 조정훈 소장은 ‘코리아단번도약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강소영 대표와 막스 너너스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멤버십을 가지고 활동 중입니다. 김연호 연구위원은 북한의 모바일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이날 토론은 조정훈 소장의 ‘단번도약’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조 소장은 여러 포럼과 토론회에서 ‘단번도약’을 소개했지만, 이날은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이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개발 담론은 분명 의미가 있었는데도, 정작 저개발국 당사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를 잘 고찰해본 뒤에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새로운 국제개발 담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변화가 예고되는 상황도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기회입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 저개발국의 발전을 돕는 첫 번째 담론은 ‘현대화’였고, 이는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도록 돕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과 대만 등은 이 분야의 최고의 모범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엔 국제개발 담론이 환경, 불평등, 부패 등 사회적 가치와 병행하는 ‘지속가능발전’으로 발전했고, 이를 반영해 유엔이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MDG)와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제시했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15년 이상을 재직하며 국제개발의 최전선에 있던 조 소장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며 지난 국제개발 담론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은행의 일원으로 SDG를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고, 당시 이 개념의 중요성을 부인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국제적으로 주요 의제가 될 모멘텀을 얻지 못했고, 어떨 때엔 저개발국이 ‘이미 먹고 살만한 나라들이 환경까지 걱정하며 오히려 개발도상국에 부담을 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국제개발 담론이 지금의 선진국-개발도상국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대전제였고, 그 판을 뒤흔들어 격차를 좁히고 구도를 바꾸는 그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 담론이 큰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조 소장은 1,2세대 담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3세대 담론은 ‘단번도약’이라며 불평등을 개선하고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적극 반영하는 새로운 구상이 가능하고, 이것은 저개발국이 단번에 가장 선도적인 국가로 나아갈 수도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남과 북,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돼 경제협력이 활성화된다면, 기존의 판에 박힌 도식과도 같은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 ‘노동집약적 산업을 거쳐 중화학 공업, 지식산업으로 나아가는 경로’ 등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조 소장은 2005년 몽골에서 통신 기반시설은 전화선을 까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몽골 정부는 ‘우린 유목민이라, 유선전화를 설치해도 들고 다니기가 어렵다. 처음부터 휴대전화로 가겠다’고 주장했고, 결국 그 주장대로 유선 없이 바로 무선통신이 이뤄졌다. 북한에도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북한의 모바일 기술 전문가인 김연호 연구위원이 “북한에선 휴대전화의 사용내역이 엄격하게 검열되면서도 널리 보급되고 활용되는 이중적인 특징이 있다”며 여러 사례들을 제시했습니다. 처음엔 북한 당국이 블루투스라는 근거리 통신기술을 별로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는데, 북한 사람들이 이를 활용해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주고 받기 시작하자, 규제 당국이 뒤늦게 나서서 이 기능을 불능화했다는 사례도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모바일은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단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북의 주민들은 휴대폰의 통화시간을 구매해 사용하는데, 이 통화시간을 서로 간에 주고 받으면서 마치 이를 현금처럼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통화시간’은 모바일 머니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케냐 등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강소영 그노비 대표는 통신기술의 가능성을 살리면서도 부작용을 경계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항상 몸 곁에 두고, 옆에 없으면 이렇게까지 불안해하는 기기는 없었습니다. 휴대폰에 몰입하다보면 고독감, 우울감이 증가하는 탈인간화 현상도 발생합니다. 북한이 다른 나라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기술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맥스 너너스 서울대 국제학 강사는 기술과 인권의 조화로운 적용을 조언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개인에 관한 많은 데이터들이 수집되고 활용됩니다. 이런 데이터를 사용하는데 있어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인권과 병행하는 발전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단번도약의 사례는 각 분야에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모바일 환경을 완비한 상태에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토론식, 참여형 수업을 북한에 도입하는 것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처음부터 친환경, 공동체적 주거형태를 염두에 두고 설계하고, 기업과 자본시장에선 애초에 투명하면서도 협동적인 지배구조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금융에선 종이화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전자화폐를 바로 상용화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어떤 사례가 가능할지는 앞으로도 더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원재 대표는 “아직 남과 북에 완전한 평화가 올지, 아직도 안개 속이지만, 언젠가 평화가 왔을 때, 어렵게 온 평화는 정말 잘 쓰여야 한다”며 “남북협력을 통한 북한 개발방식은 처음부터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에 맞게, 가장 앞선 사회혁신 방법론을 적용하자는 것이 단번도약의 취지”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