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을 위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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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맥도날드 배달기사,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부산의 한 맥도날드 배달기사. 2017년 5월. 출처 : 셔터스톡

“지하철 택배요!”

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외치며 내가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배달하러 온 모양이었다. 지하철 택배는 노인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65세 이상이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서울시내 지하철 택배의 배달료는 거리에 따라 5,000원~1만 원 정도다. 법정 최저임금이 8,350원(2019년 기준)이니, 1시간에 한 건씩 배달하면 최저임금도 못 벌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일을 하는 노인들은 종종 “돈 때문이 아니고 운동 삼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인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단순히 운동이라 보기는 힘들 것이다.

나와 같이 맥도날드에서 배달 라이더를 하는 한 형은 사업에 실패한 뒤 4대 보험이 필요해 맥도날드에 취직했다. 배달 일을 할 수 있는 직장 가운데서 그나마 맥도날드는 4대 보험에 가입해 주고, 최저임금과 법정 휴식시간 보장 등 법을 준수하는 드문 곳이다. 그 형은 4대 보험은 맥도날드에서 보장 받지만, 오전엔 다른 곳에 출근해서 일을 한다. 이른바 ‘투잡러’인 셈이다.

맥도날드 매장 안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한 여성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출근한 뒤에 나와서 일하다가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그는 이 일을 ‘부업’이라고 말한다. 주말에만 맥도날드에 출근하는 한 대학생은 스펙을 쌓고 취업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온다.

“알바 주제에 무슨 퇴직금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

한국 사회에서는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라고 부르다가 이를‘알바’라고 줄여 부르게 됐고, ‘알바’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알바생’이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파트타임 일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고, 학생 시절인 20대 전후에 잠깐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목도한 알바들은 20대만이 아니었다. 종사자들의 연령대도, 이 일에 나서게 된 이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나인 투 식스’라는 고정된 출퇴근 시각이 없다. 상여금이나 자녀학자금 등 정규직 일자리가 주는 혜택은 언감생심이다. 세간의 인식 뿐 아니라 이들을 고용하는 사장도, 일을 하는 본인들조차도 이 일을 ‘직업’이라고 하지 않고 ‘알바’라고만 부른다. 정식 일자리가 아닌 ‘잠시 하는 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인식한다.

실업자들의 노동, 직업이 아닌 일이라는 이 기막힌 형용모순에 의해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난다. 노동자라면 그 일자리가 시간제(파트타임)이든, 기간제이든 간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고, 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알바’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 권리가 현실에서 보장되려면 고용주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거나, 노동자가 직접 주장을 해야 한다. 알바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 ‘주장’을 하면 고용관계가 손쉽게 끝날 것이란 우려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실제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가 고용주에게 다음과 같은 폭언을 듣는 경우가 흔하다.

“알바 주제에 무슨 퇴직금이냐, 일을 가르쳐 줬으니 오히려 내가 돈을 받아야 한다.”
“알바생에게 연차휴가가 어딨냐. 정식 직원처럼 행동하면 사칭죄로 경찰에 고발하겠다.”

이런 발언들은 당연히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주들이 법에 무지하다는 증거다. 알바도 당연히 연차휴가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연차휴가는 근로기간에 관계 없이 누구나 한 달에 하루 이상, 1년 이상 근무자의 경우 1년에 15일 이상 보장된다. 퇴직금은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근무한 모든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다. 알바가 예외라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왜 고용주들은 스스럼 없이 저런 발언들을 내뱉고, 알바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법적 권리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무수히 나올까. 그것은 불법을 당연하게 여기는 ‘힘과 권력’이 현실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항하는 힘이 미약하다는 이유도 있다. ‘직업’이 아닌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을 일을 위해 싸울 명분이 부족하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상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업이 아닌 일’을 위해 싸울 사람이 있을까

한국의 프랜차이즈 대기업들은 직접 불법행위를 자행하진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가맹사업’의 형태로 노동법이 규정한 책임에서 벗어난다. 임금 체불이나 최저임금 위반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 대기업들은 “가맹점주의 책임”이라고 한 발 물러선다. 또한 가맹점은 대부분 영세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5인 이상 사업장에 부과되는 ‘야간 연장 휴일 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비껴간다.

사실 대부분의 가맹점은 본사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가맹점 운영으로 발생한 매출은 본사의 영업 매출에 포함되고, 노동자들은 본사인 대기업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그들이 본사 소속인 것으로 인식한다.

지난 1월 출간된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는 알바가 직업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진단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가격인 임금이 낮으면 일할 사람이 적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시장에선 임금이 아무리 낮아도 일할 사람은 넘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임금이 아무리 낮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최저임금으로 교환한다. 다음 달 월세비, 통신비와 버스 요금 등이 없다면 최저임금에도 혹은 그 이하의 임금에도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기꺼이 교환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고, 청년들은 취업 기간이 늘어나 생활비와 스펙 쌓는 비용이 늘어나서, 중장년은 해고를 당하거나 기존의 일자리에서 밀려나서, 비정규직은 하나의 직장에서 받는 임금만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노인들은 노후 준비가 되지 않아서 등 저임금 ‘알바’ 일자리로 내몰리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물론 경제학에선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이 만나는 ‘가격’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여도 몰리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 배경엔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사회 구조, 그리고 점점 더 빨라지는 기술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생한 것이 실업자들의 시간을 동원하는 시스템, ‘플랫폼’의 등장이다.

제로아워, ‘꺾기’를 가능케 한 플랫폼 노동

최근 영국에선 제로아워 계약(Zero-hour Contract)이 논란이었다. 이 계약은 따로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에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다. 영국에서 이 계약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회사는 다름 아닌 맥도날드다.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프랜차이즈에서 제로아워 계약을 하고 있다. 한국의 사장님들은 제로아워를 진화시켰다. 일단 출근을 시킨 뒤에 손님이 없어 장사가 안 되면 돌려보내 임금을 깍는 ‘꺾기’를 활용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기술과 자본의 힘으로 합법의 범주로 넘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손마다 스마트폰이 쥐여지면서 애플리케이션으로 노동을 조직하고, 소비자와 연결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실업자와 백수 등의 잉여 인력들을 플랫폼이라는 정거장에 대기시켰다가, 일감이라는 열차가 오면 태워서 보낸다.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한 100명의 배달 기사에게 1초 단위로 배달 건수가 도착하고, 그 중에 한 명이 배달 주문을 처리한다.

지금까지 자본이 비정규직을 2년, 알바 노동자를 3개월 내지 6개월 단위로 사용하고 버렸다면, 플랫폼은 1초 단위로 노동자를 사용하고 대기시킨다. 알바 노동이 실업자와 백수를 산업에 끌어다 쓰는 메커니즘이었고, 거대한 프랜차이즈 산업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면, 플랫폼 노동은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끌어다 쓰고, 프랜차이즈보다 산업의 규모도 크다.

플랫폼은 노동자를 1초 단위로 대기시키고, 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동원해 조직하고 있다. 출처 : 셔터스톡

가맹점 본사는 고용의 책임을 점주에게 넘겼지만 플랫폼 업체는 아예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는 전략을 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실상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 즉 ‘사장’들이다. 이로 인해서 노동법이 정한 각종 의무와 제한은 이 노동에 적용되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은 내가 일하는 배달 현장도 바꿨다. 맥도날드는 한 주 단위로 일정을 정해 노동자들을 관리했지만, 이젠 많은 업체들이 앱을 통해 일을 맡긴다.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로그인해 있을수록 일감을 얻어내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진다.

어찌보면 실업자들의 노동시장에 일대 혁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취직하지 않고 로그인만 함으로써 실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플랫폼은 ‘로그인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른바 ‘사장’ 신분의 알바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은 이런 변화를 잘 활용하는 반면 정부와 사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 한다. 실업자 대상의 복지 제도만 봐도 그렇다. 여전히 완전 고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실업자들에게 ‘더 열심히 구직을 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일자리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주고, 이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서만 실업급여를 준다. 사람들은 열심히 구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합격 가능성이 낮은 회사들에 이력서를 낸다.

‘21세기의 석유’도 소수가 독점하게 둘 것인가

봉건 영주로부터 해방된 노예들이 노동자란 이름을 얻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듯, ‘사장’이 된 알바의 미래도 밝아보이진 않는다. ‘사장’은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배달일을 한다면 생산수단인 오토바이를 직접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였을 땐 사고가 나면 회사가 책임을 지지만, 사장은 수리비, 치료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에어비앤비가 단 한 평의 땅을 소유하지 않고도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가 되었듯, 배달 플랫폼 역시 단 한 대의 오토바이도 소유하지 않고, 그 어떤 사고 책임 지지 않고서 배달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플랫폼의 등장으로 갈수록 열악한 상황에 놓이는 배달기사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5월 1일 라이더유니온이 출범했다. 출처 : 라이더유니온

그런 의미에서 현재 상용화 된 플랫폼 비즈니스는 ‘혁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적합하다. 노동자들이 볼 때 특히 그렇다. 오히려 낡고 고루한 방식의 연장일 뿐이다.

사실상 플랫폼 사업이 경쟁력을 가지는 원천은 ‘데이터’에 있고, 이 데이터는 소비자들이 생성하는 것이며, 노동자들도 그 소비자의 일부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데이터의 생산 주체다. 이들이 통신요금을 내며 스마트폰으로 늘상 로그인해 있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은 실시간으로 일감을 맡길 수 있다. 환상적으로 보이는 데이터 경제의 이면엔 부지런히 오토바이를 굴리며 위험천만한 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이 있다.

공공의 자산인 데이터를 활용해 이윤을 얻는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들을 보호할 법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플랫폼 기업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자연이 남긴 유산인 석유를 몇몇 국가와 석유재벌들이 독점한 것은 막지 못 했지만,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그래야만 할까? 데이터에서 만들어지는 수익을 플랫폼 기업이 독점하고,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들에겐 이익이 가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 기술들은 플랫폼 노동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일자리를 광범위하게 잠식할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저항을 해야할까?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 건강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일자리를 지키자고 싸워야 할까? 그런 일들은 기꺼이 로봇에 내줄 수 있으려면 인간들에게는 대신 무엇이 필요할까? 더 늦기 전에 지금 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8년 여름, 배달 노동자인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폭염수당’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