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동아시아 사회혁신 이니셔티브(EASII) @ 베이징: 혁신이 불러온 도시의 변화

고동현
LAB2050
Published in
9 min readApr 6, 2018

고동현 (LAB2050 연구원)

지난 3월 25일부터 28일, LAB2050의 이원재 대표과 고동현 연구원이 동아시아 사회혁신 이니셔티브(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 EASII) 워크숍 참석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보고 들은 중국의 혁신 담론과 베이징의 변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첫번째로 공유자전거, 이노웨이(Innoway), 도시재생 등 베이징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을 소개합니다.

공유자전거의 빛과 어둠

일요일 오후, 숙소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것 보다 하늘이 맑았다. 미세먼지 현황을 봤다. 베이징의 북서쪽은 서울 도심보다 대기질이 깨끗했다. 숙소 주변은 북경대와 칭화대가 인접한 대학가로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로변에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자전거다. 복잡한 인파와 자동차 사이를 자전거로 뚫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도심 구석구석에 수십대의 자전거가 세워져있다. 대부분 QR코드 스캔만으로 이용 가능한 공유 자전거다.

2014년 베이징에서 시작한 공유자전거 OFO는 현재 20여 개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를 포함해 현재 약 15개 업체가 200만 대 이상의 공유자전거를 베이징에서 운영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환경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결방안으로 많이 알려졌다. (관련기사: 베이징 공유 자전거 타고 일주일 살아 보기_오마이뉴스)

급격한 확장기를 거치며 부작용이 커졌다. 도로 구석은 물론 지하철 출입구, 버스 정류장까지 세워둔 자전거로 막히는 곳이 많아졌다. 다리 밑에 자전거 수백대가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결국 2017년, 베이징 당국이 규제를 시작했다. 추가적인 공유자전거 업체의 진입을 제한하고, 이용자의 실명인증과 연령제한을 도입했다. (관련기사: 中베이징, 공유자전거 총량제한…이용자 실명등록해야_연합뉴스) 하지만 이미 곳곳에 방치된 자전거를 통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버스 정류장을 점거한 공유자전거 © inhabitat

휴일의 이노웨이

번화가를 벗어나 인근의 중관춘(中關村)으로 향했다. 중관춘은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전자제품 거래업체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전면이 유리로 도배된 고층 빌딩단지지만, 알리바바와 같은 전자상거래의 급속한 확산으로 단기간에 활기를 잃어버렸다.

이 지역에 생기를 되찾은 것이 베이징의 창업거리 이노웨이(Innoway)다. 과거 책방골목이었던 거리를 2014년 중국 정부가 직접 운영 회사(북경중관촌창업거리과학기술서비스유한회사)를 설립해 창고형 카페,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조성하고, 투자와 지원 정책,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화려한 입구를 넘어서면 거리 한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다. 언제든 협력하고 구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빈 공간들과 공사 중인 공간들이 종종 보였다. 휴일 오후라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도 열려있는 몇몇 사무실에는 프로젝트 팀들로 가득차 있었고, 책방을 겸한 카페도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로 꽉찼다.

베이징의 창업허브, Innoway

르핑재단 SSIR CHINA 워크숍

다음날,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르핑재단(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을 방문했다. 올해 이전한 르핑재단의 새 사무실도 과거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코워킹스페이스를 겸한 워크숍 공간과 소셜벤쳐들의 업무공간, 커뮤니티 및 휴게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허브와 식물들이 사무실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점심은 늘 소셜벤쳐 Farm to Table이 유기농 식단을 제공한다고 한다. 중국에 가기 앞서 음식에 대한 걱정이 앞섰지만, B Corp 인증을 받은 Gung Ho! Pizza를 포함해 평소보다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식생활을 했다.

르핑재단이 위치한 건물의 모습

2017년 르핑재단은 EASII와 함께 SSIR에 동아시아 특별판, Social innovation and Social Transition in East Asia을 발간하고, SSIR의 중국어판 발행을 시작했다. 약 반나절 동안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SSIR) Writer’s workshop에 참여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SSIR 담당자의 전략 설명 이후, 참가자들의 발표와 토론 형태의 워크숍으로 진행됐다. 워크숍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 SSIR 중국어판의 기획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연구와 사례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
  • 단순히 영문판을 번역하는데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 동아시아의 사례와 연구를 소개할 것인가?
  • 로컬 컨텐츠를 기획한다면 기존 영문판과 비슷한 수준의 퀄리티를 관리할 수 있을까?

해외 주요 비지니스 저널을 로컬 컨텐츠와 결합하여 발행하고 있는 한국의 사례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후퉁의 변화

워크숍 이후 EASII 참석자들은 르핑재단 주변을 둘러봤다. 르핑재단 옆 건물에는 중국 최대의 공유오피스 체인인 Urwork(優客工場)의 지점이 있다. Urwork는 중국 내 35개 도시에 900개의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르핑재단이 위치한 지역은 후퉁(Hutong)이다. 후퉁은 하나의 거리가 아니라 베이징의 구도심에 산재한 좁은 골목길이다.

경제 성장과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며 상당수가 사라졌고, 천안문 광장과 인접한 지역은 인근의 전통시장과 함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그 외 지역은 점점 주거 환경이 낙후되었다. 상당수의 주민들이 공공화장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뒤늦게 이 지역을 보전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최근 후퉁에 나타난 변화는 한국의 서촌, 북촌 등의 변화와 유사하다.곳곳에 오래된 가옥을 리모델링한 카페, 레스토랑 등이 젊은층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풍경이 겹친 후퉁 거리의 모습

그렇다면 주거지역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중국 방문 마지막날 찾은 People’s Architecture Office (PAO)는 낙후된 주거환경에서도 후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혁신적인 주거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PAO는 르핑재단의 사무실을 디자인하는 등 공간과 필요에 적합한 건축 디자인을 제공한다. 후퉁 지역에는 조립식 건물인 Plug in House를 통해 기존 건물과 결합 가능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채광과 연료효율, 화장실 등도 고려해 만족도가 높다.

Mrs. Fan의 플러그인 하우스 © Dezeen

방공호의 변신 Digua Community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Digua Community(地瓜社区)다. Digua는 땅 아래서 자라는 고구마를 뜻한다. 중국의 특정 높이 이상의 건물은 반드시 방공호를 만들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이 방침은 냉전이 완화될 때까지 이어져 베이징에만 1,000여 개의 방공호가 있다고 한다.

방공호들은 고도성장 시기 갓 도시에 올라온 노동자, 학생들의 임시 주거지역으로 쓰였지만, 저렴한 복합주거 모델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주로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Digua Community는 이 방공호 중 하나에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었다. 지역 정부 소유로 저렴한 임대료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1호점이었고, 현재 2호점과 3호점도 준비 중에 있다. 성공적인 커뮤니티 센터 모델로 알려지면서 각종 기업의 홍보 행사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각 지역 정부의 담당자들도 찾아와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Digua Community 구조도

지역 주민과 소통에 기반한 사업 운영

Digua Community는 사업 시작 전에 반경 5km 주민에게 직접 커뮤니티 센터에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주로 육아부담을 안고 있는 주부들의 요구가 많았다.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공간, 각 연령대에 맞는 독서실부터 영화관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함께 노는 동안 서로 재능기부를 통해 요리, 미술, 요가 등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Digua Community는 비영리가 아닌 기업 모델이기 때문에 각 공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이용료를 받는다. 하지만 상업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비하면 절반 가량 저렴하다. 단순히 SNS만 팔로우하면 회원이 될 수 있고, 할인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공간 운영 매니저는 이용자와 상호 작용이 활발한 지역 주민을 고용한다. 카페에 각자 차(茶)를 한통 제공하면, 여러 종류의 차를 이용할 수 있다. 차를 기부하지 않은 사람은 1위안을 내고 공용차를 이용한다.

공기 정화 시설을 갖추고 있어 실내 공기도 쾌적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냉난방 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베이징의 미세먼지가 워낙 심해 웬만한 지상의 건물보다 훨씬 쾌적해 길에서 장기 두는 것을 고집하는 노인들조차 날씨가 안 좋으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혁신의 지속가능한 확산을 위한 과제

공유자전거부터 도시재생까지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 불러온 변화는 베이징 도시민들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모두 기존 도심이 갖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고, 성공적인 대안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급격하게 확산된 공유자전거는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기도 한다. 좀 더 빨리 당국의 규제가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Digua Community도 많은 지역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확산의 기로에 놓여있다. 과연 1호점과 같은 활력이 새로운 곳에서도 느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혁신적인 커뮤니티 센터라도 지역 주민의 지속적인 참여가 없으면 곧 활력을 잃을 것이다. 혁신의 지속가능한 확산은 적절한 규제와 이해당사자와의 면밀한 소통에 기반한 정책을 필요로 한다.

DFA Design for Asia Awards 2016 — Grand Award을 수상한 Digua Community © DFA Award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