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이원재

* LAB2050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4–2.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앞에서 밝혔듯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안정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가 제약되거나 역동성이 낮아지면 곤란하다.

다음 네 가지 제안은 삶의 각 영역에서 선택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내용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가족 대신 개인을, 기업 대신 개인을, 지역사회 대신 개인을 보호하도록 사회정책 시스템을 디자인해야만 선택의 자유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늘리고, 실패할 여지를 주는 방향으로 안정성을 보장할 때에야 혁신이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5) 노동자에게 퇴사의 자유를

① 문제 : 숙련을 떨어뜨리는 실업급여 제도

실업급여는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을 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해주기 위한 제도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첫째는 고용보험에 가입해서 일정 기간 보험금을 납입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자발적 실업, 즉 해고를 당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뒀을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한국에서 직장인들의 숙련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중년 이후 해고를 당한다면 이미 개인의 숙련이 많이 저하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기에는 재취업 역시 매우 힘들며, 전보다 질이 낮은 직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합리적 개인이라면 개인의 숙련도가 아직 남아있을 때 보다 나은 곳으로 이직하려 할 것이다. 혹은 숙련도가 떨어지기 전 재교육을 통해서 이를 유지하거나 더 높이려고 할 것이다. 청년층의 잦은 이직 경향은 이런 현상의 단면을 설명해준다.

현재의 실업급여는 이러한 개인들의 욕구를 받아 안지 못하고 있다. 보험 원리에 따라서 고용보험에 기여를 한 사람도 스스로 직장을 그만둔다면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 하는 것이다. 만일 자발적 실업을 했는데도 실업급여를 신청해서 받는다면 부정수급으로 범법자가 되고 만다. 2017년에 부정급여 적발 건수만 3만 건이 넘는 것을 보면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는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사회적 안전망도 거의 없으므로 개인들은 다른 일을 하고 싶거나, 현재 직장에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해도 해고될 때까지 견디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고용보험수사관과 내일배움카드

현재 고용보험과 관련한 제도 개선책은 주로 부정수급자를 줄이기 위한 방향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4월부터 ‘고용보험수사관’ 제도가 시행돼 부정수급자들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자발적 실업과 그 이후의 안정성을 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내일배움카드는 그나마 일정 기간 교육 훈련비를 지원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직업 전환을 도와주는 측면이 있다. 근로자 직업훈련 개발 훈련, 취업성공패키지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적용 대상이 각기 구직자, 재직자 등으로 제한되거나 소득 및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제약조건을 가지고 있다. 지원하는 내용도 교육과 훈련비용 뿐이다. 직장을 다니다가 소득이 없어진 사람을 위한 안전망 구실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투자(훈련, 구직 등)와 사회보호(경제적 안정) 기능을 동시에 가진 정책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③ 대안 : 자발적 실업급여와 부분실업급여

대안으로 가능한 것은 실업급여의 지급 대상을 자발적 실업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부분 실업급여’ 제도의 신설도 함께 제안하고자 한다. 제안한다. 자발적 실업에 대해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개인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거나 기술을 업그레이드 하려 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구직 활동 중’임을 증명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앞날을 모색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자신의 숙련이나 미래에 대해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포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수급 자격은 충분하다.

부분 실업급여는 재직 중인 사람들이 이직을 염두에 두고 구직활동 및 학습을 위해서 기존의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할 경우에 임금의 감소분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직을 앞두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제도가 도입되면 그런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갑작스럽게 사직을 하거나 해고되는 것보다 노사 양측에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전에 하던 일과 동떨어진 단절적 이직이 아니라 숙련도와 대우를 높여가는 발전적인 이직이 많아질 수 있다. 기존의 직업능력 훈련이나 내일배움카드 제도와 잘 연계하면 효과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6) 학생과 교사에게 학습의 자유를

① 문제 : 획일화된 경쟁교육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선진국을 모방해서 따라가는 추격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비결은 교육에 있다. 잘 교육 받은 우수한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우리나라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획일화된 대량생산 체계에 바탕을 둔 20세기형 교육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개인의 관심과 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학생에게 거의 동일한 지식을 획일적으로 주입하다 보니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처럼 학생들을 찍어내는 교육이 돼버린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을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한다.”라는 엘빈 토플러의 경고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첫 번째는 학생들이 사교육의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의 공교육 시스템이 학생 개개인이 가진 관심사와 재능, 가치관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성적만을 통해서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경쟁력을 가지지 못 할까봐 두려워서 옆집 아이와 똑같은 학원에 보내 똑같은 문제를 풀게 한다. 차별화를 위한 경쟁이 모두를 획일적인 경쟁의 함정에 가둬버리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행복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음악에 열정을 가진 아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기 위해 밤 늦도록 수학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영어 성적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영어학원에서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서 아이들이 어떤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재,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다.

획일화된 교육은 아동 및 청소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획일적 경쟁 교육에 질려버린 한국인들은 성인이 된 후로는 배움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그 결과 성인 대상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라 할 수 있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의 대부분 영역에서 한국인들은 낮은 점수를 보인다. OECD 국가들 중 중하위권에 속하고, 특히 학습능력 부문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한 바 있다(OECD Skills Outlook, 2017).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혁신학교와 자유학기제

획일화된 20세기 경쟁 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기존 대안들로는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고교선택제, 자립형사립고 등이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계발하고 학습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다만 기존 교육 체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다. 현재와 같은 결과 중심, 지식 중심, 중앙 행정 중심의 낡고 획일적인 교육과 평가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어떤 형식의 학교, 학기제를 도입한다 해도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꽃피우는 교육이 되기는 어렵다.

③ 제안 : 과감한 교육분권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틀에 대한 자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고, 학생들도 스스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선택할 수 없다. 교육의 기본적인 틀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만들고 교사는 이를 그대로 따른다. 학생은 자신들에게 선택이 허용된 유일한 측면인 ‘학습량’만을 조절하며 여기서 입시의 성패가 갈린다. 이렇게 중앙에서 모든걸 통제하다 보니 교육은 사회에서 가장 변화가 느린 영역이 돼 버렸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시대에 20세기 대량생산 체계에나 적합한 획일화된 교육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습의 틀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과감하게 학교 현장에 위임해야 한다. 만일 중앙행정기관이 걸림돌이 된다면 교육부를 해체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와 관심을 교육과정 안에 녹여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학생의 학습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될 때 타율에서 자율로, 중앙행정 중심에서 학교 현장의 학생과 교사 중심으로의 교실 혁명이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경쟁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함께 만든 틀 안에서 능동적으로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덜 부담스럽고, 그 과정이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교육이 이뤄질 때에야 비로소 아이들은 보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7) 벤처에게 실험의 자유를

① 문제 : 실험하지 못하는 벤처 기업들

‘벤처 기업’의 사전적인 정의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을 일구고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기술집약적이고 창조적인 중소기업’이다. 벤처의 핵심은 혁신이고 혁신은 새로운 기술뿐 아니라 새로운 일의 방식을 통해서 구현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자유를 누리기가 지극히 어렵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도 이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가 여기저기에 족쇄처럼 채워져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주목 받던 젊은 벤처들이 이러한 규제 때무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 하고 스러진 예들은 무수히 많다. 심야 셔틀 서비스인 ‘콜버스’, 온라인 중고차매매 기업인 ‘헤이딜러’, 그리고 최근에 주목 받은 카셰어링 벤처 ‘풀러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시장 지배자들이 쳐 놓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 하고 좌절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드론, 원격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도 각종 규제로 인해 가치 창출까지 도달하지 못 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면 자유롭게 사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 놓고 있는 것이다.. 자유가 없는 벤처는 더 이상 벤처가 아니며, 이들의 끊임 없는 창의적 도전 없이는 국가의 혁신성장도 없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구호만 있는 창조경제와 규제개혁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의 크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크기에 관계없이 떠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중력 공간에 가깝다. 다윗과 같은 소기업이 골리앗과 같은 대기업을 넘어뜨리는 일이 끊임 없이 일어나며, 이를 보고 많은 ‘다윗’들이 모험에 뛰어든다. 혁신 경제의 선순환 체계가 서 있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누구나 기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 주는, 규제에서 자유로운 환경이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환경은 최근 중국 선전, 베이징의 IT기업단지 중관춘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그런 반면 한국은 지난 수 십 년간 ‘창조경제’, ‘혁신성장’ 같은 구호만 외쳤을 뿐, 시장의 환경은 전혀 바꾸지 못 했다. 보수정부에서는 ‘규제프리존’, ‘규제샌드박스’와 같은 이름으로, 현 정부에서는 ‘규제개혁 5법’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한 번도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뀐 적은 없었다.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은행 육성을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한 개인정보보호 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8년 2월 감사원이 혁신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5개 신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를 자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혁신 분야에 진입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어야 감사의 대상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화려하게 수 놓은 드론의 군집비행 기술은 이미 2013년에 우리나라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됐던 것이다. 그러나 비행 금지 구역, 고도와 비행 시점 제한 등 각종 규제로 상용화 되지 못 했다. 결국 올림픽 이벤트는 인텔에게 의존해야 했다. 말로만 하는 창조경제, 혁신성장은 앞으로도 날지 못하는 드론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③ 제안 : 네거티브 규제와 벤처 기술 시장 활성화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의 특징은 어디서 어떤 기술이 어떤 형태로 사용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기술의 ‘탈목적 변이’(blind variation)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가 과거와 왜 달라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는 현상이다.

모든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현재 존재하는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도록 다양한 경제 주체가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을 막는 규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혁신이 가능한 시장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 비즈니스에 대해 일단은 자유로운 진입을 허용하고, 차후에 문제점이 불거질 경우 개선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일단 규제한 다음에 관련된 모든 사안들을 고려해서 허용해 주기에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혁신 산업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먼저 과감하게 풀고 나중에 촘촘하게 메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 등 공공성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되는 기술에 대해서는 진입 제한은 두되, 허용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기술 적용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기술 거래 측면의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벤처 사업가가 자신이 일군 성과를 시장에서 쉽게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성공한 벤처 사업가는 새로운 기술을 기존 업체에 팔고, 기존 업체는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한다. 벤처 사업가는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선순환 구조다. 이러한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벤처 기업과 기존 기업(대체로 대기업)이 평평한 운동장과 같은 대등한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8) 모든 사람에게 1년의 자유를

① 문제 : 시간이 부족한 나라

한국인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한국인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최고 수준이다. 경제적 빈곤 못지않게 시간 빈곤도 사람들의 삶을 짓누른다. 장시간 노동과 시간 빈곤은 개인의 불행일뿐 아니라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자원봉사나 공동체 활동 등을 통해 신뢰와 같은 사회자본을 키우거나, 학습을 통해 개인의 인적자본을 키울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014년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유급 노동시간은 이전 10년 동안 3분 늘어난 반면, 사회자본 시간은 19분 줄었다. 참여 및 교제 활동이 줄어서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 중 하루 평균 10분 이상 학습 활동을 하는 사람은 전체의 8.2%에 지나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에서 비롯된 시간 빈곤이 사회자본의 위기, 인적자본의 위기, 성장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노동시간 단축에서 안식년까지

시간 빈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미 인식하고 있으며, 대안도 논의하고 있다. 대안의 한 축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2018년 정부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했다.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심상정 후보는 주 40시간인 법정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또 다른 축은 안식년 제도다. 민간에서는 이미 자발적으로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교수는 7년 주기로 유급 안식년을 부여받는다. 기업 쪽에서는 삼성전자가 6개월~1년간 무급 자기계발휴직제를 도입한 바 있고, 민간기업 및 공기업 중에서도 안식년 또는 공로연수제 명목으로 장기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곳들이 있다. 2017년 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안희정 예비후보는 10년 근속때 1년의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전국민 안식년’ 제도를 제안했다. 공공기관에서 시작해 민간으로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최대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이라기보다는 이미 법제화 돼 있던 제도를 정상화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파장은 컸다.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주들과, 야근수당 감소로 실질임금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장시간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만일 법정 노동시간 자체를 지금보다 단축하려 한다면 저항은 더 클 수 있다.

주당 노동시간을 더 줄이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깊이있는 학습, 장기간 여행 등 충분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채워지기 어렵다. 청년 세대 중에서는 이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청년들의 직장 근속기간이 유독 짧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안식년 제도는 그나마 장기간의 휴식을 보장해 준다. 다만, 안희정 예비후보의 전국민 안식년제처럼 근속자 중심의 휴가 및 휴직은, 공공기관 및 대기업 종사자들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다. 중소기업, 자영업자, 독립 노동자, 전업주부, 취업준비생, 실업자 등은 애초부터 소외시키는 제도다. 이미 높은 소득과 고용안정성을 누리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에게 더 혜택을 주는 제도는 노동 시장의 불평등과 이중 구조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③ 제안 : 국민안식년제

노동 연령의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시기에 1년 동안 국가로부터 생활수당을 받을 수 있는 ‘국민안식년제’를 도입한다면 어떨까. 1년간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생활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직장의 종류와 상관없이, 전업주부, 미취업자 등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보편안식년 제도’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생활수당 금액은 육아휴직 급여 상한인 월 150만원 수준이 바람직하겠다. 단지 현금 지급만으로는 안식년을 유도하기 어려우므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이 1년의 기간을 근속연수로 인정하도록 의무화하는 것과, 사회보험이 중단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필요하다. 기업이 근로자가 안식년을 쓴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인사 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안식년 동안 학습을 하고자 한다면 이를 지원해 주는 것도 좋겠다. 대학이 성인 재교육을 위해 1년짜리 학위과정을 개설하고 저렴한 학비로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식이다. 물론 개인이 어떤 부담도 없이 가장 원하는 방식의 안식을 취하는 것도 장려돼야 한다.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기술혁명 시대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푹 쉬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이 직업 훈련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 나갈 자유, 자기실현적 행복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안식년제는 의미를 가진다.

다음 글 읽기: 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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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Part 2. 행복을 찾는 데 필요한 조건과 자유안정성

Part 3. 변화를 위한 제안: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