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이원재

* LAB2050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4–3. 미래를 준비하자

지금까지 이 연구는 한국 사회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짚고 정책 대안을 제안했다. 당장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정책들을 제안하려 한 것인데, 문제는 이런 제도들만으로는 이 사회가 맞이할 변화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과 인구 등 한국 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미래 세대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와 안정성을 누릴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제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정책의 근본적 틀을 바꿀 ‘기본소득제’에 대한 실험과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래 세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사회정책을 위해 필요할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하나는 현재 눈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며 앞으로 나가는 순방향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먼 미래의 이상적인 상황을 먼저 전제하고 그리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 역방향 전략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제안 두 가지는 모두 역방향 전략에 근거한다.

9)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하자

① 문제 : 새로운 소득분배체제 모색 필요성 대두

한국 사회는 혁신이 지체되는 동시에 불평등이 확대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GDP 대비 국가 연구 개발 예산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기술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 시장 이중 구조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미래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안전한 일자리를 찾아 공무원과 공기업 시험으로 몰리고,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것은 당연시 되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영희’와 ‘철수’처럼 안정된 환경에 속한 이들조차 불안하고 불행하며, 50대 이상 장년과 노년층은 일자리가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도래할 시대에는 기술이 현재 노동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다 못해 공포까지 조성되고 있다. 혁신을 위해서나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나, 불안을 줄이는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② 현재 제출된 대안과 한계 : 고용 중심 분배 확대와 취약계층 보호

여러 해에 걸쳐 그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는 최저임금과 근로장려금(EITC)은 소득분배 개선을 꾀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이 정책은 분명 저임금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들의 소득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당장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보상만을 높일 뿐 노동자가 학습하고 성장할 여유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둘째, 영세자영업자, 독립사업자, 전업주부처럼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그렇게 분류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회보험의 확대도 하나의 전략이다. 실업급여를 강화하고 실업부조를 도입하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산재와 건강보험을 강화해 부상과 질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누그러뜨려 주는 것도 중요한 분배 방법이다. 그러나 사회보험 확대 역시 한계가 있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경제의 확대로 사업자인 동시에 노동자인 독립 노동자층이 늘어나고 있다. 재택근무, 원격근무, 자율근무 등으로 노동의 시간과 공간도 달라지고 있다. 이런 문제 탓에 ‘고용계약을 맺고 전일제로 고정된 장소에서 감독받으며 일하는 형태’를 전제로 짜인 사회보험 체계는 도전받고 있다.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않거나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취약계층 중심의 선별적 복지 수당을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선별 과정에서 복지 대상자들을 ‘2등시민’화 시키며, 이후 노동 시장 및 사회에 대한 참여도 위축시킨다는 부작용이 있다. 또한 복지 체계가 복잡해질수록 대상자 선 별비용 자체가 많이 들어 효율성도 떨어진다. 선별과 부정수급 감시 감독을 위한 관료주의가 확대되면서 공공부문이 불필요하게 확대되고, 경직성도 강화되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

이런 한계들은 복지 제도 대부분이 산업혁명 이후 대공장 중심의 노동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고안되고 확산되었기 때문에 나타난다. 현재의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에 맞는 새로운 분배 패러다임을과 이를 담을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할 때가 됐다.

③ 제안 :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

기존 복지 제도들을 뛰어넘을 새로운 대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가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현금 수당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국가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실행된 바 없는, 현재까지는 유례가 없는 제도다. 논리적으로는 개인들의 실질적 자유를 높이면서 성장과 혁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효과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이에 따라 여러 국가에서는 기본소득 지급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는 실업부조 지급 대상자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2,000명을 대상으로 2018년부터 2년 동안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시는 2018년 민간단체인 ESP(Economic Security Project)와 협력해 1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시작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유럽연합의 기구인 UIA(Urban Innovation Actions)와 함께 2017년 말부터 2년 동안 1,000가구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분배시스템을 짜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본소득제가 현재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보편적인 분배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행하려면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실행할 경우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현재로는 가늠하기 어렵다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제한된 규모의 실험을 몇 년 동안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놓고 사회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다만 이때 실험은 단순한 시도(trial)가 아니라 실험 집단과 통제 집단을 둔 과학적 실험(experiment)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에서 실험을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방정부 수준에서 먼저 실험한 뒤 그 결과를 놓고 논의를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청년기본소득, 지역별 기본소득, 참여소득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도 가능하다.

제대로 된 기본소득 실험을 한국에서 진행할 경우, 한국 사회 분배 시스템 혁신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 사회의 다음 복지국가 체제 논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0)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 분배

① 문제 : 재정 보수주의와 증가하는 사회적 위험

재정 보수주의(fiscal conservatism)는 한국 조세 체계의 오랜 특징이다. 경제 부처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재정건전성과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항상 가장 중요한 목표로 제기되곤 한다. 심지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노인빈곤이 50%에 달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이 계속 증가해도 재정 보수주의는 그 위력을 발휘하며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는 것을 강하게 저지하고 있다. 비단 관료와 일부 정치인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들이 가진 강력한 증세 거부감도 하나의 원인이다. 한번도 국가의 세금이 투명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 했기 때문에 가지게 된 뿌리 깊은 거부감이다.

그런 가운데 사회적 위험이 증가되는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빠른 속도의 고령화, 노동 시장의 급격한 변화, 기술혁명에 따른 일자리 변화, 그리고 정부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 등은 모두 공공재정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현재의 조세 수준을 가지고는 새로운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증세를 하지 못 한다면 한국 사회는 계속 재정 보수주의와 작은 복지국가에 갇힌 채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 할 것이다.

② 기존 대안과 한계 : 증세를 피하거나 증세를 흉내내거나

매번 대선 때마다 대선 후보들은 다양한, 때로는 담대한 공약을 제시한다. 장밋빛 청사진에 비해 재정 확충 방안은 부실한데도 어느 후보나 “증세를 크게 하지 않고도 가능하다.”고만 말한다. 세수의 자연 증가분, 세출 구조조정, 조세정의 구현 등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그나마 약간의 ‘부자증세’(핀셋증세)가 필요하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실행할지는 미지수다. 결국은 충분하지 못한 조세 수입이 담대한 정책 실현을 가로막을 것임을 이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자증세는 조세정의 차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는 방안이다. 서민들이 어렵기 때문에 부자들이 더 내야한다는 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증세만으로는 현재 증가하는 위험에 대처할 보편적 사회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첫 번째는 재정적 이유다. 2016년 소득세가 약 70조 원, 소비세가 60조 원, 법인세가 50조 원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지출 수준은 약 10%이며 20%를 넘어서야 OECD 평균에 이를 수 있다. GDP 1%는 약 17조, 10%는 170조 원이다. 이는 2016년 기준의 소득세, 소비세, 법인세를 다 합친 금액의 규모다. 세수 전체를 투입해야만 OECD 평균 수준의 사회지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크게 인상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보유세가 매우 높아진다면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차지하더라도, 이 자체가 지속가능한 과세 제도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이유다. 보편적 급여와 정책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부자가 책임지는 사회가 아닌 시민 모두가 책임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보편적 서비스는 결국 해당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공동구매라고 볼 수 있고, 모든 국민은 자신의 여력에 따라 그 부담을 나눠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 중 소득세를 내지 않는 이들의 비율이 50%에 달한다. 영국의 6%에 비하면 너무 높다. 각종 사회 제도를 통해 급여 및 수당이 주어진다면 기존에 받던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상당 부분은 축소되는 것이 맞다. 복지성 급여에도 적극적 증세를 해야 한다. 내가 혜택을 받는 사회 제도를 만들고 누리기 위해서는 책임도 그만큼 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③ 제안 : 미래사회세 신설

당면한 문제를 풀지 않고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령화, 불평등, 일자리 등의 미래 문제는 명확하다. 이 부담을 개인에게만 지울 것인가, 국가와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법을 찾을 것인가의 갈림길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담대한 정책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담대한 증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10번째로 제안하고자 하는 바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미래사회세’ 신설이다. 프랑스의 ‘일반적 사회보장기여금’(Comprehensive Social Contribution) 제도와 같이 발생하는 모든 소득에 일정 수준의 세금을 부과한다. 현재는 소득의 약 8~9%를 부담하고 있다. 이렇게 거둔 세금은 시민 개인에게 현금 지급성 분배를 하는 데 사용된다. 행정비용이나 다른 비용으로 쓰지 않고 전액 지급되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이 전체 흐름을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제도를 잘 운영하려면 시민조세위원회를 만들 필요도 있다. 시민, 사회단체, 정부, 정치인들과 함께 조세의 투명성에 대해서 검토하고, 증세 여부에 대해서 꾸준히 논의하며 공론화를 시키는 역할을 한다. 복잡한 세제 혜택이나 조세 체계를 정리하고 단순화시켜 제시함으로써 조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체계를 높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다음 글 읽기: 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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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Part 2. 행복을 찾는 데 필요한 조건과 자유안정성

Part 3. 변화를 위한 제안: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