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변화를 위한 제안: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이원재

* LAB2050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4. 변화를 위한 제안

이제부터는 자유안정성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 10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제안들은 한국 사회에 아직 ‘자유와 안정’의 가치가 충분히 자리잡고 있지 못 한 현실을 염두에 두고 구상됐다. 기존 구도에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한, 즉 성장 중심, 쾌락적 행복 중심 가치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자유와 안정의 가치를 크게 환기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제도들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다.

10개의 제안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국가가 직접 나서서 안정을 분배하자.”는 것이다. 일부 구성원만 차별적으로 삶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국가가 소득분배 역할을 키우고 구성원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야 개인의 자유도 더 커진다. 둘째,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는 것이다. 커진 안정성이 자칫 경직성과 규제의 확대로만 이어지면 곤란하다. 선택권을 늘리는 방향의 안정성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미래 세대는 기술 변화와 인구 변화를 거치며 사회의 근본적 전환을 맞을 것이다. 미래 세대의 삶을 고려한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정책은 제도와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 국가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에 부합하는 정책 전반과 실행 방법까지 연구돼야 한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이 연구에서 제도 전반의 구조보다는 세부 정책에 해당하는, 상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안을 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경직성을 흔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그것이 한국 사회가 자기실현적 행복을 지향하는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안정성 혁명

4–1.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개인이 삶의 안정성을 찾으면서도 선택의 자유를 누리려면 국가가 직접 개인에게 분배하는 제도를 늘려야 한다. 다음 네 가지 제안은 국가가 개인에게 급여를 직접 지급함으로써 삶의 안정성을 높이고 선택의 자유를 늘려주는 제도들이다.

1) 요람도 무덤도 모두에게 평등하게

① 문제 : 불평등한 시작과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노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져 있다. 정부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모두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으로 현재 태어나 있는 아이들 누구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랄 만한 환경을 갖췄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제도가 일부 안정성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한 자원의 대부분은 가족들, 주로 부모가 부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난 환경이 좌우하는 교육과 생활 수준의 차이가 크며, 사회 양극화로 인해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문제의 반대편에는 노후 안정성의 문제가 있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50%에 가깝다. 절반에 가까운 노인들이 빈곤한 상태인 것이다. 이것은 이에 해당하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30대에 정규직으로 일한다 해도 40대를 거쳐 50대 이후까지 이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 한다면 얼마든지 노후 빈곤에 처해질 수 있다. 중장년기의 소득 대부분을 노후를 위해 비축한다고 해도 평균수명이 얼마나 길어질지, 의료 비용이 얼마 필요할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안정적으로 연금을 붓고 저축하는 청년 및 중장년층은 사회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다 한국의 연금제도는 노후 안정성을 제공하기에 충분하지도 않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아동수당과 연금제도

아동과 노인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증가해 왔다. 그 결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그리고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등이 도입돼 왔다. 하지만 제도마다 제한 조건들이 많고, 그에 따른 사각지대들이 존재한다. 보육 지원은 만0–5세까지로 제한돼 있고, 학령기 아이들을 위한 지원은 주로 공교육 체계를 통해서 이뤄진다.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주거지부터 적절한 보호, 안전 등 수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도 그 대부분은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이다. 2018년 만 0~5세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주기로 한 과정만 봐도, 소득에 따른 제한(상위 10% 제외) 없이는 제도 자체가 관철되기 어려웠다. 월 10만원이라는 금액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토론보다는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더 컸던 결과다. 이런 환경 하에서는 자신의 성취에 있어서 사회의 기여는 없고 자기 자신, 혹은 가족들의 기여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한 ‘연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노인층에게 주어지는 기초연금은 현재의 월 20만 원 안팎에서 향후 월 30만 원으로 서서히 증가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소득분위 하위 70%의 노인에게만 해당된다. 수령 금액 수준은 국민연금과 연계돼 있다. 또, 제도의 안정성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현재의 중산층들이 미래에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 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를 기준으로 생계를 위해 충분한 급여가 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국민연금은 40년을 꾸준히 가입해야 생애소득 약 40% 정도를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40년을 꼬박 납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적으며, 청년 세대로 갈수록 더 적어진다. 퇴직연금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보정하지 못 한다.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대안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구조 자체의 한계로 인해 획기적인 개선은 이뤄지기 어렵다.

③ 제안 : 보편적이고 적정한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만 0세부터 18세까지는(혹은 대학까지 고려하면 24세까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닦는 시기다.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모색하고, 그에 필요한 전문성을 쌓아가는 시기다. 이 뿐만 아니라 관계성을 배우고 사회에 대한 신뢰를 통해 연대감을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연령대의 시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수당을 주는 것은, 그들 본인만이 아니라 그 부모들의 안정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 때는 성장기 자녀를 둔 중년층이 소득과 주거 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세대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이들의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고용이 안정된 직장이 점차 희소해지고, 한 직장에 장기근속하는 비율도 줄어들고 있으며 자영업 환경도 극도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정성이 아동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된다면 미래 사회에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불안정성을 단절시키기 위해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인 수당이 필요하다. 만 0~18세 아동 및 청소년 전체에 매달 1인당 50만원(1인 최저생계비 수준)을 의 수당을 제공하면 어떨까. 노인 대상의 기초연금도 1인당 월 50만원으로 조건 없이 지급하면 어떨까. 빈곤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고, 다른 조건 때문에 금액이 깎이는 제도로는 보편적 안정성을 구축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부양가족 기준, 보충급여 등 복지제도와 관련된 수많은 논란에서도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 기초연금이 강화되면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무리하게 인상할 필요도 없다. 국민연금은 어차피 가입해서 기여한 만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 수당과 연동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더해 퇴직연금에 모두가 다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그 일부를 국민연금과 통합하면서 노후소득을 강화하는 방안도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

2)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모두에게

① 문제 : 나라에게만 ‘축복’ 개인에게는 ‘위험’인 출산

합계출산율이 1보다 낮아질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인들이 출산을 안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사회 구조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육아의 책임은 과도하게 개인에게 지워져 있다.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방향을 가지기로 한다면 육아에 대한 실질적 책임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더 가져가야 한다.

앞에서 보편적 아동수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는데, 출산 전후의 상황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 혜택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용보험을 통해서 그 가입자들에게 휴가 및 휴직에 대한 보상을 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70%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약 40%만이 가입돼 있다. 자영업자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의 경우는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고 가입 비율이 미미하다.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이거나 창업 준비중인 사람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은 아예 제도 밖에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지난 5년간 태어난 신생아의 수가 40만 명 이상인 데 비해 출산휴가를 사용한 사람은 10만 명도 되지 않는다. 누구나 안정된 상태에서 출산할 수 있고, 그 경험을 오롯이 축복과 기쁨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제도 상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고용보험 제도의 강화와 부모보험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해법은 고용보험 제도의 강화다.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편입을 강화시키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인한 소득대체 수준을 더 높이자는 것이다. 이 방향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그렇게 늘지 않았다. 2006년에 약 36%에서 2016년에 42% 수준으로 변화한 수준이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중에 받는 급여의 금액을 높이는 것, 즉 소득대체 수준을 높이는 것은 고용보험 가입자들의 출산 의지를 높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현재의 정규직 중심 혜택에 따른 불평등을 더 강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또 다른 대안적 정책으로 정부는 2019년부터 자영업자와 특수고용직 등 고용보험 미적용자에게 출산급여를 50만원씩 3개월 제공하기로 했다. 매우 고무적인 변화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점점 다양해지는 각종 불안정 노동 종사자들의 현실을 충분히 포괄하는 제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한 취업 및 창업 준비자, 프리랜서, 출산 때문이 이미 일을 그만둔 상태인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출산휴가도 그럴진데 육아휴직은 더욱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보장을 꼭 고용보험이라는 틀 안에서 고민해야만 하는가이다.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는 ‘우산’이 되기에 고용보험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부모보험이나 육아보험 등 별도의 사회보험을 만들자는 대안도 제기돼 왔다. 스웨덴 모델을 원형으로 한 제안이다. 이것 역시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그 모델 역시 임금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함께 기여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은 한계다. 이를 그대로 반영해 설계될 경우에는 고용보험과 마찬가지로 일부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에 대한 보장만 높여주는 제도가 될 것이다.

③ 제안 : 출산육아보험을 건강보험 안으로

대한민국의 사회보험 제도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국민건강보험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그 안에서 함께 운영되고 있다. 출산육아보험도 국민건강보험 안의 또 다른 사회보험으로 도입한다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취업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체로 건강보험은 가입해 있다. 그러므로 이 제도를 통해서 출산 및 육아휴직자들의 안정을 지원할 수 있다면 사각지대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들이 미래에 소득을 벌어서 현재 건강보험 기여자들의 노후 의료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므로 세대 간 연대의 측면에서도 좋은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안의 출산육아보험은 다음과 같이 운영해 볼 수 있다. 첫째, 임신과 출산 전후에 일정 기간 동안 일하지 않아도 소득을 보전 받도록 현금을 지급한다(출산전후휴가에 해당). 둘째, 육아를 하는 동안에도 일정 기간 현금 급여를 지원한다(육아휴직에 해당). 셋째, 아이들이 아플 때 부모가 휴가를 쓰면서도 소득이 보전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다. 소득이 있는 이들은 소득 비례로,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는 정액으로 지원할 수 있겠다. 또한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이런 제도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3) 아파서 파산하지는 않도록

① 문제 : 큰 비용이 드는 질병에 걸릴수록 보장받지 못 하는 구조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건강이다. 아무리 자기실현적 행복의 중요성을 깨달은들 건강을 잃는다면 삶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이 건강과 관련해서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암, 뇌심장 질환 등의 중증 질환 발병 시 엄청난 경제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보장성은 지난 10년 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외쳤지만 2006년에 64.5%였던 보장성은 2016년엔 62.6%로 오히려 소폭 낮아졌다. OECD 국가 평균이 80%대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연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재난적 의료비 상황의 가구 비중은 3.7%다. OECD 국가 중 가장 나쁜 수준이다. 가족 중 누구라도 크게 아프면 가정 경제가 파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문재인 케어

재난적 의료비 상황을 막아주려는 현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바로 ‘문재인 케어’다. 이는 비급여 항목의 보장범위 확대, 취약계층 의료비 상한선 인하,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재난적 의료비 지원의 경우 소득 하위 50% 계층이 모든 질환에 대해 연소득 대비 20%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할 경우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재난적 의료비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해줄 정도의 제도는 아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의료 행위에 대한 보장 부분이 크고 약값에 대한 보장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약값 비용이 높은 중증 질환에 걸릴 경우 재난적 의료비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암인 위암의 경우를 보자. 대표적인 면역항암제로 효과가 입증된 ‘옵디보’는 폐암과 흑색종 치료제로는 보험급여가 인정되지만 위암 치료로 쓰일 때는 여전히 비급여로 구분된다. 1년간 위암 치료에 옵디보를 쓰려면 8,000만 원 가량이 든다. 또한 위암, 자궁암, 난소암, 두경부암, 흑색종, 간담도암, 폐암 등 광범위한 종류의 암 치료에 쓰이는 ‘키트루다’ 역시 비급여 대상이어서 1년 치료비는 1억원에 이른다. 옵디보와 키트루다가 면역항암제로 글로벌 매출 1, 2위를 다투는 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암환자들로서는 건강보험 보장의 한계로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 하는 점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한편 폐암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타그리소’도 1년 약값이 1억 원에 달하는 약이었다. 다행히 2017년 타그리소 등 최신 항암제와 표적치료제 중 일부가 최근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건강보험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건강보험 바깥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약을 써야만 치료가 가능한 환자라면, 보통의 경우는 가정 경제가 빨려들어갈 정도의 비용을 감수하거나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즉, 문재인 케어 하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다소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의료 행위에 비해 약제비 비중이 높은 중증 질환에 걸린 경우 여전히 재난적 의료비 상황에 놓일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③ 제안 : 건강보험 재정 재구조화

사실 건강보험 제도의 본래 취지 자체가 재난적 의료비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는데도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단순한 해법이자 장기적으로 필요한 해법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의 수준까지는 지속적으로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다만 이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 확보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 차원에서 가능한 해법은 건강보험 재정의 재구조화다. 1년에 건강보험에서 감기 치료를 위해 지출하는 진료비는 평균 1조 7,000억 원 규모다. 2016년 건강보험을 통해 암 치료에 지출된 진료비 총액이 약 2조 9,000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감기 치료 비용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기 치료는 현재 본인부담금이 20% 정도인데 전체를 환자가 부담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크지는 않다. 또 감기가 어린이, 노약자, 만성질환자 등 취약집단을 제외하면 특별한 치료 없이도 쉽게 회복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낮은 본인부담금 때문에 과잉의료행위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취약집단을 제외한 가입자에 대해서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의 본인부담금을 올리고 대신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는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역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추진해 봄직한 대안이다.

4) 집값 안정에서 주거 안정으로

① 문제 : 살인적인 주거비와 불행한 청년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도 주거비용 문제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2017년 서울시 주거실태 조사에 의하면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은 서울시민의 평균 연소득 기준으로 9년간 월급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교육 및 각종 인프라의 차이로 선호도가 높은 강남 지역의 주택은 평균적 서울 시민이 거의 평생 한 푼도 안 쓰고 월급을 모아야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서초구 20.8년 강남구 18.3년). 소득 대비 서울의 주택가격은 홍콩, 상하이 정도는 아니지만 LA, 런던, 뉴욕, 도쿄 등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살인적인 주거비는 특히 청년 세대를 불행하게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실시한 ‘저출산 고령화 시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고 질문했을 때 ‘불행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73.4%였다. 그 중요한 이유가 일자리와 주거 문제였다.

② 기존 대안들과 한계 : 집값 잡느라 잊어버린 진짜 목표, 주거안정

대한민국 주택 정책의 핵심은 ‘집값 잡기’다.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 3구의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 수단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보수 정권은 주택 공급을 늘려서, 진보 정권은 과세를 통해 투기적 수요를 눌러서 집값을 안정시키려 해왔다. 보금자리주택, 행복주택 공급, 종부세 부과 등이 그에 해당하는 정책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말 집중해야 할 정책 목표는 실종된 듯하다. 바로 ‘서민 주거 안정’이다. 주거 문제에 있어서 집값이 중요한 지표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높아져 있는 집값을 더 오르지 못 하게 억제한다고 서민의 주거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임대 주택도 공급 목적이 ‘집값 잡기’에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지역이 아닌 도시 외곽에 주로 지어졌다. 조세 정책으로 오른 세금은 세입자에게 전가돼서 오히려 서민 주거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단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세 둔화’라는 지표 상 목적을 달성했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게 한 정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③ 제안 : 완전한 소셜믹스형 공적임대주택의 획기적인 확대

한국의 집값 문제는 사실 전국적인 문제는 아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2017년 전국 평균 주택 매매 가격을 보면 전년 대비 1.4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전국적으로는 집값이 대체로 안정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서울 집값은 3.64% 올랐고, 그 중에서도 강남권 집값은 5% 이상 올랐다. 따라서 주거 정책은 핵심 목표를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과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데 두면 된다. 조금 더 확대한다 하더라도 서울의 집값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인 부산, 대구, 세종 정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지표 상의 집값 안정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소셜믹스형 임대주택의 확대 제공’이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 시내에서 재건축, 재개발을 할 경우 전체 공급량의 10%를 공적임대주택으로 짓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임대주택끼리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일반 분양 주택 사이에 섞여 있도록 하는 ‘소셜믹스형’으로 짓도록 한다. 이렇게 한 취지는 좋지만 그 효과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소셜믹스형이라고 해도 애매하게 임대주택을 배치해 놓았거나 평수 등으로 구분이 갈 수밖에 없도록 짓는 탓에 거주자에 대한 차별과 소외 등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소유’와 ‘임대’를 계층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선호의 문제로 서서히 바꿔 가는 것이다. 즉, 저소득층이 아닌 사람들도 선호도와 필요성에 따라서 ‘소유’와 ‘사적 임대’, ‘공적 임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서울 및 수도권에 공적임대 주택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현재도 서울시는 역세권을 개발해 아파트를 지을 때 임대주택을 20–30%까지 확대하는 경우 건축 용적율을 크게 완화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일반 재개발 재건축에까지 확대 적용하면 어떨까. 임대 세대의 비율을 30%까지 늘리며, 임대 세대와 일반 세대가 같은 동 같은 층에 완전히 섞여 있도록 하고, 크기도 중형까지로 다양화 한다면 ‘임대주택은 저소득 계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은 줄어들 수 있다. 일반 주택에서만 살던 사람들도 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이렇게 주택 소유에 대한 수요를 공공임대주택이 흡수하게 되면 집값도 안정될 것이고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궁극적인 정책목표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다음 글 읽기: 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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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Part 2. 행복을 찾는 데 필요한 조건과 자유안정성

Part 3. 변화를 위한 제안: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