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

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이원재

* LAB2050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5.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

한국 사회는 그 동안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해, 균형보다는 성장을 향해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는 양적 지표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질적인 수준에서 더 나아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게 됐다. 국민들의 삶은 외형적으로는 풍요롭지만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도리어 나빠졌다. 국가가 맨 앞에 서서 국민들을 동원하듯 사회를 운용한 결과다. 국가는 앞장서서 목표를 제시하고, 국민들이 무리를 이루어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당근과 채찍을 제공했다. 지난 시대의 국가 역할이다.

한국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의 영향으로 ‘유연불안정’모델로 급격히 선회했다. 노동 시장은 소수의 안정된 직장을 제외하고는 해고가 쉬워졌으며 노동 시장 바깥의 생계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 때만 해도 유연불안정 모델이 시장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불안과 무한 경쟁은 개인들의 행복을 가로막았다. 늘 경쟁하는 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개인들조차도 자기실현적 행복은 구현하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은 개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혁신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제 와서 돌아 보면, 유연불안정 모델은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는 유효했을지 모르나, 결코 선순환할 수 없는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성장동력을 잃은 ‘헬조선’이었다.

반면 이 연구가 제시하는 자유안정성 모델은 선순환이 가능하다. 삶의 미래에 대한 다양성, 직업 선택의 자유, 가족 구성과 출산에 대한 선택, 혁신적 비즈니스의 개발, 창의적인 문화 등은 모두 충분히 안정적 상황에서 자기실현적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 모델을 구현하려면 불안정성에서도 벗어나고 경직성도 떨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자리가 바뀌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에게 경직성을 초래하는 규제자이기도 한 동시에 안정을 줄 수 있는 보호자이기도 하다. 국가의 규제자 역할은 줄이고, 보호자 역할은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하에 자유안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10가지 정책제안을 해봤다. 이러한 제도들이 마련된 사회라면 ‘영희’와 ‘철수’는 직장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 교육에 매달리지 않으며, 노후를 걱정하며 지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10가지 정책들이 자유안정성을 완전히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 퇴직, 부분적 실업급여, 국민안식년제 등은 다양하고 질 높은 배움의 기회와 함께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아무리 배움의 기회가 있고 ‘인생이모작’이 가능한 사회라 해도 좋은 일자리가 없다면 의미가 퇴색한다. 노동 시장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일자리의 질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질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 더 많은 정책 제안들이 필요하다.

출산율이 낮아서 걱정된다면,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에게 거액의 출산지원금을 주고, 그 아이가 현재의 학업 시스템에서 더 잘 경쟁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내가 지금 낳은 아이가 평생 동안 학교에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면, 그리고 그 아이의 행복으로 인해 부모가 행복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러한 지원이 없어도 아이를 낳을 것이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마을의 민주주의는 주민들을 예산 책정 과정이나 공공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참여는 처음에는 일정한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 사회적 변화 없이는 참여 주체가 어느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곧 한계에 부닥친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출퇴근 시간이 2~3시간에 이르며, 아이는 학원과 야간학습에 지쳐 쓰러지고,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가 일주일에 한 두 번도 안되고, 심지어 가족간 대화 시간이 하루 30분도 안되는 사회에서, 아무리 최첨단의 온라인과 제도를 갖춘다 해도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만약 거기서 어떤 성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조작된 성과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많은 사회혁신 활동가들이 “평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주민 참여 예산제와 마을만들기 회의에 나올 수 있는 사람들 만으로는 더 이상의 주민자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이유다.

더 나은 민주주의는 교육, 주거, 교통, 노동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이 안정된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민주주의는 껍데기다. 안정된 자유를 통해 스스로 시민적 역량을 갖춘 능동적 시민(active citizen)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단지 경제적, 물질적 기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의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물적 기반이 부족해서 시민적 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있고, 그러한 기회가 모든 개인에게 어느 정도 열려 있어야 하며, 국가는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서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가 경제 성장과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개인을 이용하고 동원하겠다는 발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국가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여전히 성장 담론과 무한경쟁 논리가 한 세대 이상 지배한다면 그 자체로 국가의 실패다. 국민소득 1,000 달러 시대의 국가 비전과 3만 달러 시대의 국가 비전이 같을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다음 단계의 새로운 비전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가는 각 개인에게 행복한 삶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선택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안정을 보장하는 것을 새로운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혁신은 안정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때 나타난다. 바로 그 바탕 위에서 행복한 개인들이 등장하고, 그들 중에서 혁신가가 나오고, 경제와 사회에서 새로운 혁신 동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국가는 그 자유로운 개인, 그 행복한 개인, 그 혁신가들을 뒤에서 떠받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롭게 찾아야 할 국가의 자리는 바로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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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포스트

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Part 2. 행복을 찾는 데 필요한 조건과 자유안정성

Part 3. 변화를 위한 제안: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을 분배하자

Part 4. 변화를 위한 제안: 선택의 자유를 늘리자

Part 5. 변화를 위한 제안: 미래를 준비하자

Part 6. 국가의 자리 새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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