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소득주도성장, 실은 저소득층 계층 상승 사다리였다

이원재(LEE, Wonjae)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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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 readMar 12, 2022

무심하게 읽고 넘어가는 기사가 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하고 의심도 하지만, 비슷한 제목이 자꾸 반복되면 ‘정말 그런가보다’하고 믿게 된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진실이되고 사회적 합의처럼 된다.

조금 더 뜯어보면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볼 수도 있겠지만, 다들 힘들고 바쁘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자꾸 들으면 사실이려니 하고, 그 생각을 근거로 판단하고 말하고 결정하고 투표까지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소득분배도 망쳤다’는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일 것 같다. 이 정책은 ‘소주성’이라고 불리면서 동네북처럼 비판받는 정책이 됐다. 언론에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분배 격차마저 더 벌려 놓았으며 계층 이동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물론, 진보적인 전문가와 언론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 많다. 특히 집권 첫 해인 2017년 결정헤 2018년부터 집행된 최저임금 16% 인상이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던 자영업자가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많고, 지나친 임금 인상으로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글에서도 다룬 바 있다.

하지만 가장 뼈아픈 비판은 소득 분배 정책의 핵심 목표인 분배마저 악화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이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가장 심각했다. 사실이라면 그 정책은 실패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실증 데이터가 있느냐다.

현재 가장 신뢰할 만한 가구 소득 및 자산 조사는 가계금융복지조사다. 이 조사는 전국 2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매년 이뤄지는데, 설문 응답자의 답변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세청 자료 등을 통해 소득 수치 등 일부 데이터를 보완한다. 소득 자료 중에는 국세청 자료가 가장 정확하나 별도로 공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가장 정확한 소득 데이터를 제공한다.

소득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지니계수다. 높을수록 불평등이 크다는 뜻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와 지니계수를 통해 살펴보면, 소득불평등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그대로, 가구균등화(가구원수를 감안해 표준화)한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를 사용하면 그렇다.

소득불평등도는 박근혜 정부 초기 낮아지다가, 후기에 약간 높아지거나 정체되었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본격적 하강 추세로 접어들었다. 기초연금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정책의 결과로 소득불평등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초연금 등 복지제도가 강화됐고, 최저임금도 문재인 정부 때와 비슷하게 연평균 7% 가량 상승했다.

자료(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그럼에도 비판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지니계수는 개선됐지만 소득 최하 계층은 근로소득이 줄었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부터는 추론과 상상이 이어진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었고, 따라서 저소득층은 복지에만 의존해 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언론이 이런 이야기를 반복했다. 정치인들도 종종 같은 논리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단 한 가지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었다.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 하위 20%(1분위)에 속한 가구의 근로소득 데이터다. 이 계층의 근로소득이 감소했다는 자료를 출발점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분배에도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근로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해당 가구가 의존적으로 변화했다는 풀이도 이어졌다. 그리고 저소득층이 계층 상승의 희망을 접게 되었다는 절망적 진단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여기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소득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은 매년 바뀐다. 순위를 해당 연도의 소득을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저소득층이 특정한 정책의 영향을 받아 소득이 높아져 다음 해에는 1분위를 벗어나 계층상승을 이룬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2017년에는 다른 사람들, 즉 2분위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1분위로 새로 편입된다. 따라서 소득분배 정책이 저소득층에 끼친 영향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2016년의 1분위 가구 소득 평균과 2017년의 1분위 가구 소득 평균을 비교하면 곤란하다. 서로 다른 가구끼리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1분위 가구를 모두 추려낸 뒤, 이들의 소득이 그 뒤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을 더 낮추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2016년에 소득 1분위에 속한 가구의 소득이 그 뒤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봐야 한다. 다행히 통계청에서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1년여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고 있어, 이런 분석을 해볼 수 있다.

살펴본 결과는 통념을 뒤집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에 소득 하위 20%(1분위)였던 가구의 소득은 2020년까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가구의 전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상소득이나 복지 수당 등의 공적부조만이 아니었다. 근로소득마저도 5년 동안 급격하게 올랐다.

2016년 조사 대상 가구 중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연간 1032만원에서 2070만원으로 늘었다. 2011~2015년 기간 동안 경상소득이 773만원에서 1326만원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2016~2020년 근로소득은 317만원에서 796만원으로 늘어나, 2011~2015년 근로소득이 229만원에서 543만원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약간 빨라졌다. 2016~2020년 공적부조 및 공적연금은 371만원에서 621만원으로 늘었는데, 2011~2015년에 229만원에서 374만원으로 늘어난 것과 비슷했다.

통념과는 달리, 소득주도성장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 시기와 이전의 박근혜 정부 시기에 하위 20% 가구의 공적부조 및 공적연금 증가 속도는 비슷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에 근로소득의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이에 따라 이를 합산한 가구 경상소득 증가 속도가 소득주도성장 시기에 더 빨랐다.

다만 이론적으로 표본조사에서는 소득 하위 가구의 패널 자료가 평균 방향으로 수렴하며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 해석에는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5년 전에 비해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은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소득주도성장 시기, 1분위 가구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소득이 늘었고, 각종 복지급여와 국민연금 수령액이 커지면서 공적부조와 연금소득도 늘어났으며, 이들과 다른 소득을 합산한 경상소득이 급격하게 커졌다.

결과적으로 1분위 가구 중 근로소득이 원래 있던 가구는 소득이 증가하며 계층이 상승하고, 2분위 이상 가구 중 근로소득이 미미하던 가구 상당수가 1분위로 내려왔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1분위 가구는 고령자 위주의 비근로 가구가 많아졌고, 이를 단순 평균하면 1분위 근로소득이 낮아진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원래 1분위에 있던 가구의 근로소득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원래 근로소득이 없던 가구가 대거 1분위에 편입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료: 통계청, LAB2050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 중에는 계층이동성에 대한 비판도 컸다. 경제전문가들은 소득 계층 사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사회를 더 공정한 사회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좀 더 나은 계층으로 이동하기가 쉬운 사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 탓에 저소득층 근로소득이 줄었다고 가정하면, 계층이동성은 대체로 낮아졌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 시기 하위 계층의 이동성은 낮아졌을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소득 하위 20% 계층 중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가구가 많은 사회였다는 추측성 비판이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소득 수준 하위 20% 가구의 계층 상승 확률은 5년 전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2012~2015년 동안 하위 20% 가구가 이듬해 계층 상승을 할 확률은 17%대였다. 그러나 2017~2020년 해당 계층의 상승 확률은 22%에 이르렀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조처는 하위계층의 계층이동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하위계층 임금이 많이 올라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초연금 등 공적부조의 강화, 세제 강화 역시 비슷한 효과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자료: 통계청, LAB2050

새로운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다시 평가하고 방향을 새로 설정하게 될 것이다. 이때 잘못된 정책은 방향을 크게 틀어야겠지만, 기존 정책이 갖던 효과도 면밀히 검토하며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때 ‘소득주도성장’으로 통칭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분배정책이 소득 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저소득층의 계층 이동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했다는 점은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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