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를 기본소득으로?: 탄소세 도입을 둘러싼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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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min readOct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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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 보고서 인사이트2050–10

저자: 이지웅(LAB2050 연구위원,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탄소세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무엇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 인사이트2050은 탄소세 도입에 앞서 꼭 짚어봐야 할 것들 — 탄소세의 정의와 최근 동향, 경제학적 분석, 세율 결정 및 세수 활용 방안, 해외 도입 사례 등 — 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탄소세수의 기본소득 활용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정책 논의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보고서는 PDF(다운로드)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보고서는 2020년 8월부터 LAB2050과 한마음평화연구재단이 협력사업으로 수행 중인 ‘국민 경제의 포괄적 가치 측정 연구’의 일부를 따로 펴낸 것입니다.

1. 들어가며: 왜 탄소세인가?

물리화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구의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주목한 과학자이다.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를 처음으로 계량화한 그의 1896년 연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당시보다 2배 증가하면 지구 평균온도가 5~6℃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놀랍게도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연구 결과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의 선구적 연구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 변화가 자연적인 기후 변동 주기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인지, 혹은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기인한 것인지 규명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과학자는 지금의 기후변화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불가역적인 현상이며, 빠른 시일 내에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환경적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시급성과 파국적 결과는 학계와 환경운동가 그룹을 넘어, 이제 대중에게도 실존적, 구체적 위험으로서 충분히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에 비해 시민, 언론 및 정치권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최근의 이상기후 그리고 국제사회의 동향 등 구체적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됨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킴으로써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14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1].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대선 공약 중 하나는 탄소세(carbon tax)이다[2].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하여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에 부과되는 탄소세는 2022년 대선공약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도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탄소세가 유력 후보가 공약한 것과 같은 수준의 세율, 그리고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사회 전반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탄소세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잠재적 파급효과에 비하면 다소 지지부진하며, 정치권에서 처음 논의를 시작한 동기도 본래 목적인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기본소득 등 다른 정책 실행을 위한 세수 확보에 방점이 찍혔던 것으로 판단된다.

도입 목적처럼 탄소세가 탈탄소 사회로의 실질적 디딤돌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담론이나 공약의 단계를 넘어서,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보다 다양한 학술적 논의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수송용 유류에 대한 탄소세 세율 증가로 촉발된 2018년 12월 프랑스의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가 시사하는 것처럼, 탄소세에 대한 시민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당위성 외에도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탄소세의 경제학적 성격, 세율 결정 방식과 세수 활용 그리고 현황에 대하여 살펴본 후,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특히 일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탄소세 수입의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 방안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 탄소가격제 :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가. 경제학적 비교 분석

경제학에서는 임의의 행위가 의도하지 않게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효과를 주는 경우, 외부성(externality)이 존재한다고 한다. 휘발유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운전자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통하여 지구의 평균온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부정적 외부성을 가져다주는 오염물질 배출을 사회적으로 최적인 수준까지 줄일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와이츠만(M. Weitzman)의 것으로서, 그는 정부가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정책(수량정책)과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가격정책) 간 우월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Weitzman, 1974).

기후변화 맥락에서 살펴보면, 수량정책은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s Trading Scheme), 가격정책은 탄소세(carbon tax)로서, 둘 다 탄소에 가격을 부과하는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의 일종이다. 다만, 배출권거래제에서는 가격이 민간의 배출권 시장에서 결정되는 반면, 탄소세는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가격 결정 방식이 다르다. 또한 배출권거래제 하에서는 총 배출량은 정부가 결정하는 반면, 탄소세 하에서는 민간에 그러한 제한이 없다. <표 1>은 각 제도의 특성을 간단히 요약하였다.

<표 1> 탄소가격제 구분

정부가 과다 산정한 수량 정책을 사용하는 경우, 초과 배출량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하는 반면, 과다 책정한 세율로 가격 정책을 채택한 경우에는 감축비용이 초과 발생하게 된다. 배출권거래제 하에서는 정부가 배출 허용 총량을 잘못 설정할 가능성이 있으며, 탄소세 하에서는 정부가 세율을 적절히 설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각 정책 모두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데, 두 정책 간 비교는 결국 어떠한 오류가 덜 나쁜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경제학에서 통상적으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 지극히 비현실적인 ― 가정 하에서는 총량 혹은 세율 설정 시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두 정책은 무차별하다. 와이츠만은 가정을 완화해 나가며 두 정책 간의 우선순위를 살펴보았는데, 특히 정부가 오염물질의 사회적 피해는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민간 경제주체의 오염물질 감축 비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황 ― 통상적으로 그렇다 ― 을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 오염물질을 추가로 줄이는데 드는 비용이 추가 배출로 인한 사회적 피해보다 작다면 수량 정책이 우수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가격 정책이 우수함을 증명하였다. 와이츠만의 이 결과를 탄소가격제에 적용하면,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간 순위는 온실가스 ‘1톤을 추가로 줄일 때 드는 비용’과 ‘1톤을 추가 배출할 때 피해’와의 비교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이 비교는 기후변화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기후변화는 특정 기간 동안 배출량(유량, flow)이 아닌, 누적된 온실가스 총량(저량, stock)이 원인이 된다. 이는 이미 수십억톤이 배출된 상황에서, 추가로 배출된 1톤의 온실가스가 미치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 시스템에서 온실가스 1톤을 추가로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와이츠만의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가격 정책, 즉 탄소세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정책이 된다(Pizer, 2002).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탄소세를 선호한다(Metcalf 외, 2009).

반면, 경제학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에서는 거래제가 낫다고 평가하기도 한다(Stavins, 2008). 어떠한 종류의 세금이든 새로 도입하는 데에는 상당한 정치적 자본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탄소세를 이론적으로 높게 평가함에도, ‘어쨌든 새로운 세금은 해가 되기 때문에(new taxes are anyway toxic in some jurisdictions)’(Tol, 2019), 실제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버클리대 자원경제학과 교수 카프(L. Karp)와 트래거(C. Traeger)는 기존의 연구에서 간과하였던 온실가스의 특징을 동적인 환경(dynamic environment)에서 고려하면 경제학적으로도 거래제가 나을 수 있음을 수리적으로 증명하였다(Karp and Traeger, 2018). 한편,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예일대 경제학과 노드하우스(W. Nordhaus) 교수는 가격 정책과 수량 정책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하이브리드(hybrid) 형태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Nordhaus, 2007).

정리하면,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표 2> 참조), 이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두 제도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하기는 어려우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 Stiglitz), 티롤(J. Tirole), 노드하우스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탄소세든 배출권이든 어떤 형태로든 전지구적으로 탄소에 가격을 부과하는 공통의 탄소가격제(global carbon pricing)를 실시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Cramton 외, 2017).

<표 2>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비교
자료) PMR, 2021

나. 각 국가 탄소가격제 현황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각 국가는 정치적 환경과 사정에 따라 탄소세 혹은 배출권거래제를 선택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두 제도를 같이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표 3> 참조).

<표 3> 배출권거래제 및 탄소세 시행 국가/도시/조직(2021년 기준)
자료) ICAP, 2021

2020년 4월 현재 61개의 탄소가격제가 시행 중이며, 배출권거래제는 31개 국가/지역에서, 탄소세는 30개 국가/지역에서 시행 중이다(World Bank, 2020). 그리고 시행 중인 탄소가격제가 포함하는 배출량은 12기가톤(Gton)으로, 전세계 배출량의 22%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수치는 전년 대비 2%p 상승한 수치로서 탄소가격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 및 지역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스위스 배출권거래제와 EU 배출권거래제는 2020년 1월 1일 연계되었고, 브렉시트(BREXIT) 이후 영국도 자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 후 EU 배출권거래제와 연계를 추진할 계획에 있는 등 기존의 배출권 시장도 연계를 통하여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였는데, 시험기간인 1차 계획기간(2015~2017년)과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을 거쳐 현재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의 핵심 온실가스 감축정책으로, 단순 비율로 보면 2017년 기준 배출권거래제 대상 업체 총 배출량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81%를 차지한다[3]. 하지만, 대상 업체의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기업의 감축 투자를 유인하는데 아직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정부 스스로 진단하고 있다(기획재정부·환경부, 2019).

배출권거래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탄소세를 도입하더라도 배출권거래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황이며, 브렉시트 이후 에너지 회사가 영국 정부에 탄소세보다는 배출권거래제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4], 우리나라 기업도 비슷한 입장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탄소세가 도입된다면,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와 병행되어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두 제도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주로 EU 일부 회원국에 집중되어 있는데, 각국의 독자적인 정책적 설계에 따른 정교한 선택은 아니었다. 탄소세를 독자적으로 이미 도입한 상황에서 EU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EU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었다거나(영국, 스웨덴 등), EU 배출권거래제 도입 후 이를 각국의 필요성에 따라 보완하는 과정에서 탄소세가 도입되기도 하였다(프랑스, 네덜란드 등). 일본의 경우, 명목상으로는 두 제도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배출권거래제는 도쿄 등 일부 지자체에서 소규모로 시행되고 있으며, 탄소세율도 매우 낮아($3/ton) 유의미한 탄소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멕시코의 경우에는 탄소세를 먼저 실시한 상황에서, 낮은 세율($3.5/ton)로 인하여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배출권거래제를 2020년 도입하였다. <표 4>는 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주요국의 상황을 요약하였다.

<표 4>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동시 시행 주요국

종합하면, 세계적 추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탄소세 혹은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제를 채택하는 국가/지역은 확산되고 있다. 둘째,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간 선택은 각 국가/지역의 정치·경제적 사정에 맞게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기존의 탄소가격제가 포함하지 않는 배출원을 포함시키기 위하여 기존 제도를 확대하기도, 다른 방식의 탄소가격제를 도입하기도 한다.

3. 탄소세 세율과 세수 활용

가. 탄소세 세율 결정 방식

탄소세 도입 추진 시 세율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세율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현재 온실가스 1톤 배출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미래의 잠재적 피해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으로, 모든 외부성을 내재화(internalize) 한다는 점에서 개념적으로는 완전하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걸친 장기적 피해를 추정해야 할뿐더러, 현재가치 환산을 위한 할인율의 선택에 따라 값이 상당히 달라지므로,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추정치가 존재한다[5]. 가장 영향력 있는 추정치는 미국의 정부 간 실무그룹(Interagency Working Group)의 연구 결과로서, 2021년 2월 바이든 행정부는 2020년, 2025년, 2030년 배출 이산화탄소의 톤당 사회적 비용을 각각 $51, $46, $62로 공식 발표한 바 있다(IWG, 2021).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신뢰할만한 추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리 결정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탄소가격을 역으로 산정하여 이를 세율로 결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가령,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연도별 배출 경로를 설정한 후, 이러한 경로와 일치할 수 있는 탄소가격 수준을 추정하여 이를 세율로 두는 방식이다.

그 외, 온실가스로 인한 실질적 피해나 감축경로와는 무관하게, 세수 확보를 위하여 세율을 결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혹은 주변 국가나 국제사회 및 기구가 제시하는 탄소가격을 세율로 설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2030년까지 톤당 $75 혹은 그 이상에 해당하는 탄소가격이 부과되어야 한다는 IMF의 최신 연구(Parry 외, 2021)를 참조하여 탄소세율을 결정하는 것이다.
<표 5>는 상기의 네 가지 세율 결정 방식을 간략히 요약하고 있다.

<표 5> 탄소세율 결정 방식
자료) PMR, 2017

나. 탄소세 세수 활용

탄소세 수입의 활용 방식은 경제적 효율성은 물론 정치적 수용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탄소세수는 정부투자, 감세, 보편 이전지출 혹은 정부 적자 축소 등 일반적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현물/현금 지원 혹은 모든 가구의 에너지 비용 지원 등의 선별 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표 6>는 각 방식을 경제적 효율성과 소득불평등 그리고 정부의 행정부담 관점에서 평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표 6> 탄소세수 활용 방식

<표 6>에서 나타난 여러 형태의 세수 활용 방식 중, 실제 각국의 탄소세수 활용방식을 보면 주로 에너지 관련 투자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전력 요금 감면, 저소득 지원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표 7> 참조). 또한 소득세, 노동세 등의 세금 감면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주는 것과 같은 형태의 보편 이전지출은 스위스의 건강보험료 지원 등 일부 사례에서 관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탄소세의 정치적 수용성 확보를 위하여 세수 증립(revenue neutrality)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정부는 탄소세의 세수 중립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주 재무부 장관 개인의 급여를 15% 삭감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PMR, 2017).

[표 7] 해외 각국 탄소세수 활용 방식
자료) PMR, 2019; 저자 재구성

4. 탄소세 수입을 기본소득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과거 ○○년도 대비 30% 감축’처럼 단순히 어느 정도 줄이는 것이 목표라면, 발전·철강·시멘트 등의 다 배출 업종만을 대상으로 탄소가격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탄소배출량을 완전히 영(0, zero)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원칙적으로 경제 내 모든 온실가스 배출행위에 대하여 탄소가격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는 주로 발전 및 산업 부문에 적용되고, 수송과 상업·가정 부문은 대부분 제외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배출량이 적지 않은 이들 부문까지를[6] 대상으로 하는 탄소가격제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기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를 이들 부문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문은 다수의 저 배출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한 행정비용 및 준수비용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내연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모든 직장인은 자신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따라 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하여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부담자나 행정당국 모두에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휘발유나 디젤유에 미리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방안으로 판단된다. 즉, 상류(upstream)에서 탄소세를 부과하고, 소매가격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현 배출권거래제 미포함 부문의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대한 기존 세제 개편과 함께, 탄소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탄소세 실제 도입은 다음 행정부의 성격과 의지, 그리고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현재로서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만약 실제로 도입된다면 기존 조세와는 상이한, 그리고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쟁점이 존재한다.

첫째, 기 실시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와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두 제도를 병행 실시하고 있는 국가 중 대부분은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은 탄소세를 면제, 혹은 환급해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예외적으로 네덜란드는 EU 배출권 가격이 정부가 세운 목표 가격보다 낮으면 그 차이를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탄소세를 실시하고 있다. 둘째, 탄소세율 결정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일본과 멕시코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너무 낮으면 실질적인 효과가 없으며, 너무 높으면 프랑스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치적 수용성이 낮아져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쟁점이 존재하며, 모두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만큼 중요한 주제이다. 본 장에서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탄소세수의 기본소득 활용에 대하여 간략히 검토하고자 한다.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님을 전제한다.

가. 탄소배당에 대한 해외 논의

탄소가격제로 발생한 정부 수입의 전부 혹은 일부를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소위 ‘탄소배당(carbon dividend)’을 시행하는 국가는 ― 필자가 파악하기로 ― 2021년 10월 현재 스위스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 금액은 크지 않다.

스위스는 탄소세 수입의 1/3은 녹색 투자 및 건물 부문의 에너지 소비 감축에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2/3는 개인과 기업에게 분배된다. 기업에 대해서는 사회보장기금 기여분 일부를 감면하는 방식으로 지원되며, 나머지는 모든 국민들에게 기초의료 보험료를 감면해 주는 방식으로 균등 분배된다. 금액은 매년 달라지는데 2018년에는 1인당 연 $89을 지원받았던 것으로 집계되었다(PMR, 2019). 판단은 다르겠지만, 1인당 GDP가 1억여 원인 국가에서[7] 연 10만원 수준의 금액을 유의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스위스를 실질적인 탄소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사례로 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된다.

최근의 주목할 만한 탄소배당에 관한 움직임은 2019년 1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발표된 ‘탄소 배당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성명서(Economists’ Statement on Carbon Dividends)’이다. 해당 성명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8명,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위원장 4명, 전 경제자문위원장 15명이 포함된 경제학자 3,623명이 서명하였고, 탄소세 및 국경조정조치 도입 촉구와 함께, ‘탄소세의 공평성과 정치적 실행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To maximize the fairness and political viability of a rising carbon tax)’, 모든 탄소세 수입을 모든 미국인에게 탄소배당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8].

정치적 지향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한 목소릴 내었다는 점에서 이 성명은 매우 파격적이며, 탄소세 논의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9월 현재 민주당 상원의원이 성명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한 상태로서[9], 의회를 통과한다면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 탄소세의 목적은 기후변화와 싸우는 것

탄소세가 경제학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가장 비용 효율적 정책 중 하나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서 과세와 납세는 분노와 불안의 원천이자, 반란의 동기, 전쟁의 발단이었다(벡·프린츠(2016).’ 탄소세를 도입한 많은 국가에서 세수 중립을 명문화함으로써 재량을 스스로 없애고, 소득세 감세, 보험료 감면 등을 시행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기후변화 정책으로서 탄소세의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탄소세는 전형적인 역진세의 성격을 갖는다(Saez and Zucman, 2019). 휘발유를 구입하고, 탄소집약적 상품을 사는데 드는 비용은 저소득층의 지출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소세로 인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수입의 일부를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혹은 탄소배당을 통한 재분배도 가능한 방식이다.

하지만, 탄소배당 자체가 탄소세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탄소세의 목적은 오직 기후변화와 싸우는 것이며, 탄소세를 도입한다면, 세수는 점차 감소하여 결국 0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 정부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다면, 그리 멀지 않은 2050년 탄소세 수입은 0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탄소배당 — 시행한다면 — 역시 2050년에는 0이 되어야 한다. 교정세(corrective tax)로서 성격을 고려하면, 탄소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Saez and Zucman, 2019). 탄소배당은 탄소세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정치적 수용성을 높이고자 함이며, 기본소득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 영속적으로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결국 세수가 곧 0이 되어야 하는 탄소세에 상당 부분 의존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때로 일부 기본소득 찬성론자는 탄소배당을 기본소득의 구성요소로 당연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탄소배당과 기본소득은 별도의 개념이며, ‘탄소 배당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성명서’에 ‘기본소득’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탄소세수를 기본소득 재원 일부로 삼겠다는 전략은 기본소득 찬성론자에게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편리한 우회로를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이 탄소배당과 기본소득을 등치 시킨다면 정치적으로는 탄소세와 기본소득 모두 실패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 간 문제이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 소위 ‘탄소예산(carbon budget)’은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기에, 기후변화는 이를 둘러싼 세대 간 영합 게임(zero-sum game)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지금 배출한 온실가스로 발생한 탄소세 수입은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공정하다. 탄소세 수입으로 현재 세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도 다음 세대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겠지만, 불평등 개선은 부유세 등 다른 조세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Piketty, 2014, Saez and Zucman, 2019). 새로운 세금에 대한 수용성을 확보하고 역진성을 줄이기 위하여 현 세대에 일부 재분배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세수의 대부분은 기본소득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탈탄소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위하여 투자되어야 한다.

적어도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환경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빌려왔다’는, 다소 진부한 문구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2019년 5월 영국 가디언지가 자사의 편집방침[9]을 공표한 이후,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현재의 위기 상황이 현재 세대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현재 세대는 증기기관 발명 이후 형성되어온 화석연료 시스템에서 가장 많은 편익을 누리고 있는 세대임은 분명하다. 현재 세대는 적어도 탈탄소 사회로의 교두보를 마련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공평하다. ‘후손에게 빌려온’ 온실가스로 얻어진 돈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후손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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