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 세대’를 ‘액티비스트 리서처’로 호명합니다

LAB2050
LAB2050
Published in
9 min readApr 10, 2019

[IDEA2050_003]

이은경(LAB2050 객원연구원)

출처 : 셔터스톡

어느 시대나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 좋아했다. 그들은 청년들에게서 자신들과 다른 삶의 조건, 경험, 태도, 목표 등을 발견하고는 주로 당황하거나 걱정했고, 드물게 기대하며 여러 방식으로 호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부터 유럽과 미국의 68세대, 엑스세대와 디지털 네이티브, 최근의 ‘밀레니얼’까지 다양한 이름이 뒤따랐다. 한국에서도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이 회자됐다.

청년들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점점 현란해짐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면서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이름을 찾기는 어렵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개념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명은 양면적이다. 누군가에게 가능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잠재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N포 세대’로 호명되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구제의 대상’이 되지만, ‘역할’과 ‘의미’를 담아 호명을 한다면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깃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다음 세대를 위한 활동을 하게 하는 이름, 자신의 주변을 바꿔 나가는 힘을 부여하는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런 활동을 해온 청년들은 대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현실의 문제에 개입하는 활동가는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가설을 세우려면 연구가 필요했다. 이들이 현장과 활동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뒤 시사점을 도출해 연구 결과물을 남기더라도, 학계의 인정을 받기 어려웠다. 학계의 연구자도 상황은 비슷했다. 연구자가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더라도 학문적 성과와는 거리가 있었고, 현장에서조차 영향력이 떨어졌다.

연구와 활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들

이런 상황은 사회의 변화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회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한 지역의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얽히고 있다. 각지에서 보색되는 다양한 대안들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 시대에 학계의 연구와 현장에서의 활동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연구가 더 이상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고, 현실의 문제에 개입하는 활동도 누군가가 독점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연구와 활동은 분절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축적한 사회·경제적 자본은 여전히 미약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이 그에 걸맞는 기반을 갖추지 못하는 이 미스매칭은 왜 발생했을까. 그건 연구와 활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정체성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념화되지 않은 정체성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평가를 받지 못하면 지원이나 투자의 대상도 될 수 없다.

미국 워싱턴에서 그린뉴딜 정책을 요구하는 미국의 젊은 활동가들. 출처 : 셔터스톡

이런 연유로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 연구에서 그들을 ‘액티비스트 리서처’(Activist Researcher)로 호명하고자 한다. 액티비스트 리서처는 연구와 현장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해법을 찾되 연구와 현장을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이들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기존 학계에서 용례가 있다. 서구의 학계에서 제도권 밖에서 연구를 수행하거나, 현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에 유의미한 연구를 하려는 방식을 언급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됐다. 미국의 인류학자 찰스 헤일(Charles Hale,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은 “액티비스트 리서치란 무엇인가(What is Activist Research?, 2001)라는 글에서 소위 ‘순수’(pure)와 ‘응용’(applied) 사회과학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뛰어넘는 제3의 연구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액티비스트리서치는 불평등이나 억압, 폭력 등의 문제와 원인을 찾고, 당사자들과 함께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캐나다 요크대의 스테판 쿠쳐(Stephane Couture) 교수는 “액티비스트리서처가 되거나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On being (or not) an activist-researcher, 2017>라는 글에서, 저작권이 자유로운 소프트웨어와 디지털정치에 관여해온 자신의 활동과 연구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의 경험을 ‘액티비스트리서처’라는 개념으로 성찰한 바 있다. 액티비스트 리서처는 그러한 긴장과 갈등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두기’가 아닌 ‘비판적 개입’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것은 연구과정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연구의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Speed, 2008).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액티비스트리서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과 근거, 실천이 담긴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인정체계’가 필요한 자기 삶의 연구자들

물론 국내 학계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다. 지금까지 살펴본 액티비스트 리서치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행동들은 학자의 현실참여나 학문적 실천 등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이는 대부분 전문가로서의 연구자가 현장에 대한 실천적 개입이라는 관점이다. 하지만 새로 제안하는 ‘액티비스트리서처’의 개념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학자적 실천(혹은 전통적인 액티비즘 연구)과 구분된다.

첫째는 활동과 연구의 경계를 넘는 액티비스트 리서치 자체의 개념화, 체계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학계의 액티비즘 연구가 사회운동의 다양한 현장을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연구를 위한 참여관찰에서도 연구자와 활동가의 협업이 이뤄지긴 했지만, 둘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통합적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관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최근 대학이나 연구소 등의 제도화된 연구조직에 속하지 않고도 본인의 활동과 관련된 연구 주제를 탐구하는 이들이 독립연구자, 연구활동가 등으로 자기 자신을 호명하고 있다.

둘째는 액티비스트 리서치의 수행 주체가 청년들이라는 점이다. 학계에서 사회적 자본과 권위를 축적한 일부 연구자들의 사회 참여로는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사회가 서로 연계되고 복잡해지는 이 시대가 학계와 현장, 연구와 활동을 넘나드는 이 액티비스트 리서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과 주변의 문제를 인식하고 연구하고 바꿔나가는 청년들이 액티비스트 리서처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액티비스트리서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까? 당신이 아래의 설명에 해당된다면 액티비스트 리서처일 가능성이 높다.

  • 해법을 찾는 연구자: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론과 현실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적극적으로 분석하는 사람.
  • 학계와 시민사회의 협력자: 연구자와 활동가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며, 연구와 활동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협력의 주체.
  • 이행기의 청년 연구자/활동가: 학교에 있지만 현장에서 실험하고자 하는 청년 연구자. 활동가이면서 연구를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을 고민하는 청년 활동가
  • 활동의 체계적 구축자: 활동의 경험과 깊이를 연구자의 전문성으로 체계화시키고 사회적 임팩트의 지점을 짚어내고자 하는 사람.

다음세대 연구자가 함께 커가는 플랫폼

액티비스트 리서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선 이들이 추구하는 연구 방법론에 대한 모색도 필요하다. 물론 이들이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구 방법론이 단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질적, 양적 연구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실행연구’(Action Research), ‘커뮤니티기반참여연구’(Community Based Participatory Research, CBPR)와 같은 현장에 기반한 연구 기법을 도입할 수 있다. 특히 ‘실행연구’는 현장에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현장에서 실험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Corey, 1954). 이 방법론은 미국 샌디에이고의 지역 혁신프로젝트나 홍콩의 소셜랩 등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액티비스트 리서처를 개념화하는 작업은 방법론의 정립 외에도 여러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정체성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정해야 할지, 그들의 연구활동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등도 남은 과제다. 무엇보다 액티비스트 리서처를 위한 인정 체계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선 이들의 행위가 온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가령 활동가가 인터뷰 혹은 회의를 통해 연구를 수행할 경우 기존에 해온 사회운동을 했을 때만큼 ‘소득이나 펀딩’과 연결되지 않는다. 학자의 입장에서도 사회 참여적 활동이 늘어날수록 연구 실적으로 인정 받는 저술 활동의 시간을 보장 받지 못한다.

지난 2월에 진행된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컨퍼런스. 출처 : 청년허브

이런 과제들을 풀기 위한 시도가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협력 플랫폼’이다. 서울시 청년허브에 제안한 이 플랫폼은 다음 세대의 아젠다를 제기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년들을 위한 교류와 협력의 장이자 이들의 지원하는 체계다. 이 곳에선 액티비스트 리서처가 생산하는 지식이 유통되고, 그들의 연구를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담론도 펼쳐질 것이다. 청년허브는 지난 2월 14일 LAB2050, 씨닷과 공동개최한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는 컨퍼런스에서 액티비스트 리서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2~4주간의 합숙 방식의 교육으로 올해 10월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연구보고서 -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협력 플랫폼 구축방안 연구

--

--

LAB2050
LAB2050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Policy Lab for Next Gen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