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혁신 전환에 성공한 도시들

황세원 ·고동현 ·서재교

* LAB2050 ‘제조업 도시들이 흔들린다: 지역별 고용위기 시그널과 위기 대응 모델’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7. 혁신 전환 성공 도시 사례 조사

광공업, 조선업, 자동차 산업 등 한때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지역이 쇠락 도시(rust-belt city)화 되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떠나고, 지방정부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도시 정비가 안 되고, 생활 인프라마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더 떠나가는 악순환에 한 번 빠지면 이를 되돌리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림 6] 고용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단계별 요건

그런 가운데서도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산업 경쟁력을 가진 도시, 젊은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로 탈바꿈한 곳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곳이 스웨덴의 말뫼, 스페인 빌바오, 그리고 프랑스 릴이다. 연구진은 2018년 10월 세 도시를 방문 , 혁신 전환을 가능하게 한 이유를 알아보고 공통점을 도출해 보았다.

가. 스웨덴 말뫼의 혁신 전환

1) 도시 개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서남쪽 끝에 위치한 인구 30만 명 규모의 말뫼는 1658년 이전에는 덴마크에 속해 있다가 이후 스웨덴 영토가 됐다. 18세기부터 섬유, 신발, 가죽, 벽돌 등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부터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1910년쯤에 이미 1만 명이 넘는 제조업 종사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코쿰스(Kochums) 일가가 1840년 설립한 코쿰스 기계작업장은 초기에는 기관차를 생산하다가 1870년부터 선박을 건주했다. 1914년 말뫼시 서부의 베스트라함넨(Västra Hamnen) 지역에 선박 건조시설을 크게 확장해 설립한 이후 건조 실적을 계속 확대하다가 1950년대에는 세계 조선업의 최강자 지위에 올랐다. 이후로도 20~30년 동안 조선업 경쟁력을 계속 유지했으며 최대 7,000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2) 구 산업 쇠락 과정

말뫼 제조업의 위기는 1950년대 봉제업 등에서 시작됐고 금속, 식품가공업 등으로 확대됐으나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였다. 이 영향으로 국제 조선 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한국과 베트남 등 신흥 조선업 국가들의 추격으로 말뫼는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조선업 위기를 넘기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조선소 지분을 사들이던 끝에 1979년쯤 모든 조선소를 국유화 했으며, 국가가 발주처가 돼서 선박을 건조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에도 조선업을 유지할 수 없자 스웨덴 정부는 1985년 이후 전국 조선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말뫼 코쿰스 조선소도 1987년 폐쇄됐다. 이때까지 코쿰스 조선소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340억 SKK(4조 8,773억 원 상당)에 달한다.

이후로도 스웨덴 정부는 말뫼의 실업 상황 완화를 위해 조선소 부지를 Saab 자동차에 1크로나에 넘기면서까지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문을 연 이 공장은 만 3년을 넘기지 못 하고 1992년 Saab가 GM에 인수된 시점 즈음에 폐쇄됐다.

이후 말뫼 시는 제조업 취업자 수가 급감한 데 더해 해외 난민 이주가 계속되면서 한때 실업률이 22%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 이로 인한 복지비용 증가, 법인 수입 감소 등의 영향으로 1993~1994년에는 시 재정이 파탄 직전 상황까지 갔다.

3) 전환의 계기 및 전략

‘브라운 시티’(Brown City)라 불릴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말뫼 시의 전환 계기는 1994년 말뫼시의 신임 시장이자 시 집행위원회 의장으로 일마르 리팔루 사민당 대표가 당선된 것이다. 이후 2013년까지 19년간 말뫼 시의 혁신 전환을 이끈 리팔루 전 시장은 이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뫼 시는 당시 스웨덴에서 실업자의 도시, 쇠락한 회색 도시의 이미지였고, 실업률은 22%까지 치솟았다. 그런 절망을 경험했기 때문에 ‘혁신 전환’을 해 보자고 주장했을 때 설득력이 있었고 노동조합을 비롯해서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말뫼 시가 위기를 넘긴 방법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덴마크 코펜하겐과 말뫼 시를 연결하는 외레순드(Øresund) 대교 건설, 말뫼 대학 설립 등의 건설 사업을 주된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팔루 전 시장을 비롯한 당시 관계자들의 설명은 달랐다.

리팔루 시장 당선 직후부터 말뫼 시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시민 대표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말뫼가 어떤 이미지의 도시였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몇 달 동안 토론을 벌였다. 마침 1992년 리우 환경 회의 직후였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컸고, 특히 청년 세대의 높은 지지를 받아 ‘친환경 도시’라는 비전이 채택됐다. 이 내용은 2000년까지 계속 발전해 ‘Malmö 2000’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발표됐다. “2020년까지 지속가능발전 측면에서 최고의 도시를 만든다.”는 목표, 기존의 노동집약적 산업을 탈피해 신재생에너지, IT, 바이오 등 첨단 산업 중심의 지식도시(Knowledge City)로 전환한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말뫼 대학을 세운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말뫼에서 16㎞ 거리에 이미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룬드(Lund) 대학이 있었기에 스웨덴 내에서는 “말뫼에 대학이 왜 필요하냐?”는 시선이 강했다. 그러나 말뫼 대학의 목적은 기존의 대학과는 달랐다. ‘Malmö 2000’의 목표와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한 첨단 산업 연구를 위한 연구진을 구축한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 이를 위해서 젊은 연구자들이 ‘저곳에 가면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겠다, 다른 분야 연구와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도록 열린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자 말뫼 대학에는 생명과학, 재생에너지, IT 등 분야가 탄탄하게 채워졌고 이런 연구 환경은 말뫼에 첨단 산업들이 들어오고, 새로 만들어지는 기반이 됐다.

또 다른 이유는 “말뫼를 시민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말뫼 대학 건물이 중앙역 바로 옆, 시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곳에 세워진 이유가 거기에 있다.

리팔루 전 시장은, 1990년대에 어떻게 ‘친환경 도시’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방향을 택했으며, 바이오·IT·미디어 등 지속가능한 산업들을 유치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산업이 유망한가 하는 토론은 가장 피해야 할 종류다.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다. 말뫼 시가 한 노력은 사람들, 특히 젊은 청년들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아가기에 좋은 도시를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외레순드 대교’ 건설, 말뫼 대학 설립 등도 모두 그런 목표를 위한 사업이었다. 그밖에는 시민들의 생활안정 지원과 도시 정비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자 청년들이 몰려왔고, 그들이 일하고 싶은 산업을 이 도시로 가져왔다. 그 결과로 구 조선소 부지에는 예전 조선소 노동자들의 수보다 1.5배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나. 스페인 빌바오의 혁신 전환

1) 도시 개요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이며, 바스크 주 내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2015년 기준으로 약 35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빌바오 주변의 35개 도시로 구성된 빌바오 대도시권(Área metropolitana de Bilbao)의 인구는 약 100만 명이다.

16세기부터 철광, 조선, 화학 관련 산업이 발전했고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프랑스, 영국과 가까운 지리적 강점을 바탕으로 스페인 금융과 산업 발전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급증하는 등의 위기를 겪었으나, 1990년대 이후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문화‧관광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대표적인 전환 도시로 주목을 받아왔다.

2) 구 산업 쇠락 과정 및 도시 쇠퇴 상황

말뫼 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는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촉발된 불황이 장기화됐고, 아시아 국가의 추격으로 철강, 조선업에서의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철강과 조선업 의존도가 강했던 빌바오는 실업률이 급증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인구도 감소했다. 1985년에는 실업률이 25%에 이르렀고, 1980년 43만 8,000명이었던 인구는 1985년 5만 명 이상 감소했다. 문을 닫는 공장들이 많아지면서 이로 인한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빌바오 시내를 흐르는 네르비온 강과 그 주변의 토양은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돼 시민들의 삶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림 7] 1970~1995년 빌바오 및 스페인 실업률, 출처 (Eustat, 2006, Gómez, 1998)

3) 전환의 계기와 전략

이러한 상황에서 빌바오 시의 주체들은 쇠락한 도시의 이미지를 떨치고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토론을 시작했다. 지역정부, 주정부, 자치정부로 나뉜 의사결정 구조를 단일화하고, 시민사회와 정부가 협력적으로 빌바오의 발전 전략을 구성하기 위한 연구기관 ‘빌바오 메트로폴리-30’(BILBAO METROPOLI-30)이 1991년에 만들어졌다. 메트로폴리-30은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 대학이 주축이 되고 300명이 넘는 전문가가 참여한 조직이었다. 민간과 정부가 동등한 자원을 부담하며, 각 연구는 이해관계가 아닌 전문성에 기반한 실무진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구조로 운영된다.

메트로폴리-30의 알폰소 마르티네즈 세에라 총감독은 “이곳 강을 따라 30개의 마을이 있는데 도시재생사업 초기에는 서로 프로젝트를 유치하려고, 돈과 설비를 차지하려고 싸웠다. 극심한 혼란을 겪은 뒤에야 공동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했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 민관협력체인 ‘빌바오 메트로폴리-30’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초기 메트로폴리-30은 “단순한 개발을 넘어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공공성을 극대화하며, 주거지역을 보호하면서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에 기반해 아래와 같은 과제를 도출했다.

  • 인적 자원 투자
  • 기술 기반 산업 육성
  • 시민의 이동성과 접근성 개선
  • 도심 재생
  • 환경회복
  • 문화융성
  • 사회안전망 확충

이어서 1992년에는 스페인 정부와 바스크 자치정부가 절반씩 지분을 출연한 빌바오 도시 재생 사업을 위한 기관인 ‘빌바오 리아 2000’(Bilbao Ría 2000)을 설립했다.

이러한 기반에서 각 구역별로 특성화 된 재생 마스터플랜이 추진되었다. 초기 메트로폴리-30은 산업쇠퇴의 핵심 지역이었던 ‘아반도이바라’를 복합 비즈니스 지구로 조성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업무와 주거, 문화 및 대학 관련 기반시설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도록 디자인했고, 녹지 비율을 높게 설정해 네르비온 강과 연계한 수변공간을 조성했다. 빌바오의 미래 비전에 ‘친환경’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1984년부터 약 30년 간 이루어진 네르비온 강 정화 작업과 상하수도관 교체 공사는 약 10억 파운드의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시민들은 이를 위해 추가적인 세금을 부담하는데 동의했다. 이는 시민들에게 도시 재생에 대한 주도성과 결속력을 부여했다.

수변공간을 비롯한 중심부의 보행성을 높이고, 강의 양쪽을 잇는 다리도 건설했다. 빌바오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지하철이 1995년에, 시 중심부를 순환하는 트램이 2002년에 개통되면서 주민들의 이동성이 개선되었다. 스페인 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려 버스, 철도 등의 광역 교통망이 뒷받침 되면서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도 높아졌다. 초기 프로젝트들은 보행자교, 지하철, 트램 등 도시 기반시설에 집중되었고, 이는 도심, 광장 개선 사업과 긴말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한 구조적 측면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1992년부터 음악, 미술, 영화 등 관련 각종 축제와 행사들을 매년 50회 이상 개최해서 연중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도시가 됐지만 이 역시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개별 커뮤니티들이 주도했고 시는 재정적인 지원만을 담당했다고 한다. 현재 빌바오를 상징하는 대표적 관광 명소인 구겐하임 박물관(Guggenheim Museum) 유치의 경우에는, 초기에는 주민들의 95%가 반대할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빌바오 시는 문화 도시로서의 비전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라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빌바오 시는 시민들과 구겐하임 박물관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빌바오 시를 구성하는 여러 민간 주체들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데에는 공공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메트로폴리-30의 세에라 총감독은 항구, 물류창고, 조선소, 공장이 있던 지역을 콘서트홀과 구겐하임 미술관, 대학 호텔이 있는 지역으로 탈바꿈시킨 과정에 대해서 “시민들의 삶을 위한 공공장소들을 재조성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중요한 것은 한 공동체에 하나의 계획이 있어야 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 현재와 미래 전략

199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전환 전략을 추진한 빌바오는 제조업 중심 도시에서 서비스업 중심 도시로 변화하였으며,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위기 상황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충격만 받고 넘길 수 있었다.

[그림 8] 2006~2017년 빌바오 및 스페인 실업률, 출처 (www.datosmacro.com)

빌바오 메트로폴리-30은 2035년까지의 장기 전략과 비전을 담은 보고서에서 1990년에서 2000년대까지의 전환 전략을 인프라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의 전환 전략을 가치 중심으로 구분했다. 혁신, 전문성, 정체성, 커뮤니티, 개방성이라는 가치에 기반하여 청년 세대의 관점에서 2035년까지의 분야별 전략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 비즈니스 분야: 부(wealth) 창출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삶의 질 향상
  • 과학기술 분야: 교육과 사회, 공공, 금융, 사업, 미디어 등 여러 주체의 과학 기술에 대한 다층적 발전(multi-layered development) 실현
  • 도시개발 분야: 인간과 사회, 환경, 경제적 가치에 기반한 현대적 산업 지역으로 전환
  • 교육 및 고용 분야:

- 지식기반의 지속적 학습 체계 구축

- 실업에 대한 현실적 대안 마련과 고부가가치 분야 고용 확대

  • 사회통합 분야:

- 고령화와 돌봄사업 수요 증대에 대응하는 이민 확대

- 유년기 빈곤 완화와 기회 균등을 위한 사회부조 확대

  • 공공행정 분야:

- 공무원의 역량 강화 및 결과‧평가 기반의 예산과 집행 도입

- 민관 협력 확대를 통한 공공 영역의 다양성 확대

  • 건강과 삶의 질

- 보편적 의료 보장 시스템의 효율성 개선

- 고령자 친화적 도시 환경 제공

현재 빌바오가 포함된 바스크 자치정부의 연구역량은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기존의 산업과 대학이 가진 역량을 유지하고, 인재들이 유지될 수 있는 삶의 환경이 뒷받침되면서 지역의 연구개발 역량을 높여나갈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빌바오시는 기술 변화에 대비한 지역 산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청년층이 혁신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산업을 위한 선진 서비스 창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에스 파브릭‘(AS-FABRIK) 프로젝트와 새로운 혁신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비비에프’(BBF) 프로젝트다. 이 두 프로젝트 모두 청년층의 혁신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 정부와 민간, 대학 등이 협력해서 진행하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비비에프는 몬드라곤 대학의 팀 프로젝트 기반의 혁신 창업가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창업과 보육, 성장기업을 위한 각종 지원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다. 빌바오 시가 10년 간 무상으로 도심의 부지를 제공하고, 몬드라곤 대학이 전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에스 파브릭 프로젝트는 대학생과 기업가,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제조산업의 변화된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역의 제조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지식 기반 비즈니스 서비스‘ (Knowledge Intensive Business Services) 영역의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해당 영역의 청년층의 창업과 취업을 확대하고, 지역 제조업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대응 역량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이는 과거 전통 산업지구였던 ’소로타크아우레’(Zorrotzaurre) 지역을 지식 산업지구로 전환하기 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빌바오 시가 이 지역의 부지를 제공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구조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다. 프랑스 릴의 혁신 전환

1) 도시 개요

릴은 프랑스 북부 노르주의 주도(州都)이다. 2015년 기준 인구는 약 23만 명이며, 릴 유럽 대도시권(Métropole Européenne de Lille)의 인구는 약 118만 명으로 프랑스 대도시권 중 파리, 리옹, 마르세유에 이어서 네 번째로 크다.

19세기 초부터 파리와 연결된 철도망을 갖추고, 면화 산업이 발전했다. 산업혁명 이후 철강, 광산과 섬유 산업에 기반해 프랑스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후 영국, 벨기에, 프랑스를 잇는 유럽연합의 허브 역할이 부각되면서 대학, 연구, 서비스업 중심 도시로 전환했다. 특히 파리, 리옹에 이어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대학생이 많은 도시로 꼽힌다.

2) 구 산업 쇠락 과정 및 도시 쇠퇴 상황

산업혁명 시기부터 발달했던 철강, 광산, 섬유 등의 산업이 1960년대부터 쇠퇴하면서 제조업의 하락세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쇠퇴 시기 이전부터 릴 시는 산업 다변화의 노력을 펼쳤으나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했고, 1945년부터 1996년까지 섬유 산업과 광산업의 사라진 일자리 수는 22만 개에 이르렀다.

[그림 9] 릴의 인구 변화, 출처 ((Power et al 2010, INSEE)

3) 전환의 계기와 전략

전환의 계기는 1973년 당선된 피에르 모루아(Pierre Mauroy) 시장이 내세운 프랑스 파리-벨기에 브뤼셀-영국 런던을 잇는 철도 허브 전략에서 시작됐다. 모루아 시장은 이후 28년 간 재임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릴의 전환 전략을 추진했는데, 특히 끈질긴 노력으로 영국과 유럽 본토를 잇는 해저터널 노선이 릴을 통과하도록 변경시켰다.

릴을 이 허브 전략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민관 합자 회사인 ‘유라릴 메트로폴’(Euralille-Métropole)을 설립했다. 도심의 기존 역과 새 역 부지 인근을 1994년 복합단지 ‘유라릴’(Euralille)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복합단지 개발을 위한 건축위원회에는 시민과 공무원, 언론인 등이 참여해 어떻게 하면 이 단지가 시민의 삶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상가 입주자가 기존 상권을 철수 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넣었고, 젊은 예술가들이 도시 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어서 2000년대에 진행된 ‘유라릴2’(Euralille 2) 프로젝트는 발렌시엔 역(Porte de la Valenciennes) 인근을 상업, 커뮤니티, 문화적 용도로 재생시켰고, 2010년대에 진행된 ‘유라릴 3000‘(Euralille 3000) 프로젝트는 릴 유럽 역(Gare de Lille Europe) 인근의 환경을 개선해 보행자의 편의를 높이고, 여가 시설과 공원과의 접근성 등을 높일 예정이다.

4) 현재와 미래 전략

허브 전략과 함께 문화 예술 관련 지원, ICT, 교통, 환경, 건강과 관련된 산업단지를 육성하면서 릴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학도시가 되었고, 구 산업도시에서 첨단 실험도시로 전환에 성공했다. 런던과 1시간 40분, 파리, 브뤼셀과는 1시간에 이동이 가능해 유럽 연합 산하 기관 등 국제기구들도 입주해 있으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즐기려는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남아있던 구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었고, 공공 영역과 고숙련 일자리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기 때문에 릴과 인근 지역은 프랑스 전체보다도 높은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했다. 도시 중심에 자리한 빈민가의 삶은 더 악화되었고, 사회부조에 의존하는 인구 비율이 프랑스 대도시권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12년 발표된 대도시권 경제 발전 계획(PMDE: Plan Métropolitain de Développement Économique)이 마련되었다. 이 계획 역시 지역 정부와 중앙 정부, 사업체연합, 문화예술인 단체, 지역 대학, 노동조합 대표 등의 협력해서 도출한 결과다. 주요 전략은 아래와 같다.

  • 비즈니스 지원: 릴로 이전하고자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등 실질적인 지원 확대
  • 주거 및 업무 환경 개선: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적합한 복합적이고, 친환경적인 주거 및 사무 시설 개선
  • 핵심 산업 중점 지원: ICT, 전자상거래, 섬유 및 첨단 소재, 건강-바이오-식품 산업 에 대한 섬유, 건강과 같은 핵심 산업 집중 지원
  • 사회연대경제 확산: 지역 기반 고용과 비즈니스를 지원하기 위해 지역 고용청을 통한 지원 확대
  • 국제적 위상 확산: 릴의 지리적 입지와 국제 행사 등을 활용한 경제적‧일반적 장점 홍보 확대

라. 시사점: 혁신 전환 도시의 공통점

이상과 같이 말뫼와 빌바오, 릴의 혁신 전환 사례를 살펴볼 때 다음 세 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라는 목표

- 산업보다 ‘시민의 삶의 질’에 방점, 친환경 방향

  • 시민 참여형 미래 비전 수립 과정

- 청년층이 접근, 참여, 발언하기 쉬운 프로세스

  • 장기적, 단계적인 전환 과정

- 정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시민 주도 장기 프로젝트

말뫼 시의 리팔루 전 시장은 고용위기를 겪고 있거나 겪을 위험이 있는 한국의 도시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고 청하자 “어떤 산업을 끌어올지 고민하지 말라.”면서 “젊은 세대가 몰려와서 공부하고 일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라. 젊은이들이 무엇이건 실험하고 시도할 수 있는 ‘시험대’(testbed)로 도시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민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 시민들이 ‘우리가 이 변화의 주체’라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도 했다. 그럴 때 시민들에게 자부심이 생기며 그것이 바로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라는 것이다.

세에라 총감독도 “공동체의 가치는 인프라나 산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창조를 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 가치를 만들기 위해 빌바오는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했고, “우리 손자들의 국적은 어디가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도시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릴의 전환 사례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도시의 개발 과정에 있어서 ‘시민의 삶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상가 입주자가 기존 상권을 철수 시키지 못하도록 한 것, 젊은 예술가들이 도시 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바로 지속가능하고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글 읽기: Part 5. 지역 차원 고용위기 대응 모델 제안

전체 포스트

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한국 사회의 화두 ‘일자리’

Part 2.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Part 3. 고용위기, 정책 대응과 실업 노동자의 경험

Part 4. 혁신 전환에 성공한 도시들

Part 5. 지역 차원 고용위기 대응 모델 제안

Part 6. 사람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계속해서 살고 싶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