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장전략: 공멸이 아닌 공존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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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min readSep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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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 보고서 솔루션2050–06

저자: 최영준 (LAB2050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인류는 생존의 시대에서 성장의 시대를 지나 공존의 시대와 공멸의 시대라는 커다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디지털 전환과 인구 구조 변동 등 한국 사회도 전환점에 놓여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환의 시기가 공존의 시대 이어지기 위해서는 과거 성장 시대의 근시적 패러다임을 넘어설 새로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만의 성장에서 내일의 성장으로, 누군가의 성장에서 모두의 성장으로, 경제만의 성장에서 사회환경적 가치의 성장으로 ‘성장’을 확장하는 ‘참성장전략’이 필요합니다.
보고서는 전환의 시대 참성장이 필요한 이유와 참성장전략의 비전과 핵심 요소, 8가지 솔루션을 함께 제안합니다.
함께 읽고 우리 사회의 참성장에 대한 생각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보고서는 PDF(다운로드)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보고서는 2020년 8월부터 LAB2050과 한마음평화연구재단이 협력사업으로 수행 중인 ‘국민 경제의 포괄적 가치 측정 연구’의 일부를 따로 펴낸 것입니다.

관련 영상: 참성장포럼 세션 1. 성장 시대의 균열, 한국 사회를 이끌 다음 패러다임은?

1. 서론: 제3시대로의 전환

가. 성장 시대의 균열

생존의 시대(Era of Survival)에서 성장의 시대(Era of Growth)를 지나 공존의 시대(Era of Co-existence)로 혹은 공멸의 시대(Era of Extinction)로

인류는 지구의 태동부터 18세기까지 생산성의 증가 없이 약탈과 생존의 시대를 살아왔다. 한정된 자원과 생산물도 환경의 변화에 의해 축소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생존하거나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불가피하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시기는 생존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표인 시대였다. 이러한 모습은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혁명적 성장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산업혁명이 가장 앞섰던 영국의 경우 1800년대 약 2천 파운드였던 1인당 GDP는 최근 3만 파운드 가까이 증가했다[1]. 이 시기 산업혁명을 이끈 국가들은 역사상 누리지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를 경험할 수 있었고, 성장의 열매는 부분적으로 후발 국가들에게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성장의 시대는 본격적 균열을 맞이하고 있다.

균열의 핵심 원인은 ‘성찰(reflection)’이라는 브레이크 없이 진행된 경제성장이 부정적 외부 효과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낸 데 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 그로 인한 지구온도 상승과 기후변화가 그 핵심이다. 특히 인류 절멸을 가져올 수 있는 기후변화는 오늘날 ‘기후위기’가 되어 전 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 균열은 이미 1970년대에 로마클럽(Club of Rome)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발표하며 경고한 바 있다. 저자인 도넬라 메도스(D. Meadows) 등은 현재의 자원 사용에 대해 충분한 변화가 없다면 100년 내에 인구와 산업 생산 역량의 급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2004년 이 책의 개정판에서 이전 30년 동안 얼마나 인류가 이 시간을 낭비하고 대처하지 않았는지를 지적했다.

로마클럽의 경고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전망에 의해 재확인됐다. 최근 IPCC는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후 1.5도 상승하는 시점’이며, 2040년 이전에 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학자들은 코로나19 등 감염병의 위기도 기후변화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면서 점점 더 다양하고 강력한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를 찾아 인간에게 옮겨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한다. 더 많은 국가와 개인들을 연결하며 성장과 진보의 동력으로 삼았던 세계화 구조는 감염병 시대를 맞아 근본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제성장 그 자체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고성장 산업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서비스업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얼마나 큰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져오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가운데 생산성 증가 속도는 정체되고 있고, 일국 내 소수의 혁신 기업과 대다수의 일반 기업들 간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Andrewset al., 2016; OECD, 2019).

결과적으로, 나누어야 할 ‘파이’는 과거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반면 지식과 기술의 지구적 확산 속에 더 많은 후발 국가들이 파이를 향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기러기식 성장모델(Flying Geese Model)의 관점에서 보면 앞서 날아가는 기러기와 뒤의 기러기가 시차를 두고 다른 비교우위를 가지고 날아갈 때 경제적 (정치적) 평화가 있다. 하지만 제일 앞선 기러기가 새로운 산업 분야를 충분히 개척하지 못한 상황에서 뒤의 기러기가 앞선 기러기를 압박하면 평화롭던 글로벌 분업 체계는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분업 체계 변화, 최근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은 이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한때 앞서 날던 기러기인 미국과 일본은 혁신 위기를 맞고 있다[2]. 후발 국가들의 날갯짓은 빠르다. 중국이 미국을 압박하고,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 한국과 중국은 한편에서는 새로운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지키면서도 품질까지 향상시키며 선발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파이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디고 경쟁자는 증가하는 현상은 개인을 넘어 국가 간의 긴장 관계를 강화시키며 ‘생존’의 시대로의 회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자국중심주의를 유지하는 바이든 정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앞선 이들이 뒤에 쫓아오는 기러기를 밀어내어 간격을 유지하게 하든지, 아니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다.

국가 내에서도 공존은 어려워지고 있다. 전체적인 성장의 한계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소수는 계속 부를 축적하고 늘려나가고 있으며, 다수가 정체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성장’을 통해서 이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난 30년간의 노력은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내부적인 문제들이 누적되어 다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IMF, OECD, 그리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존의 성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이나 인구구조의 변화, 부채의 증가와 연약한 정책 능력 등이 21세기 성장의 핵심적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Gordon, 2012; IMF, 2017). 하지만, 좀 더 솔직한 고백은 2019년 노벨경제학 수상자들인 아비지트 베네지(Abhijit Banerjee)와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처럼 성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말일 것이다(아비지트 베네지 외, 2020)[3].

결국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반쪽’ 세계화(경제적 세계화는 있지만 사회적 세계화는 없었던) 상황 속에서 국가 간의 갈등과 국가 내부의 문제들은 극우주의로, 민족주의의 부활로, 이주민과 다른 국가에 대한 적대심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불평등이 큰 국가일수록 더 심하다.

한편 2007년 즈음부터는 아날로그 경제의 탈세계화 현상(Witt, 2019)이 무역과 해외 직접투자 비중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디지털의 세계화가 실제 ‘성장’에 기여할 것인가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의 국적화가 이루어지는 탈세계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F.A.N.G.(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로 대표되는 디지털 세계의 통합은 전 지구적으로 더욱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예상했던 것만큼 성장을 추동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을 수도 있다.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같이 시기가 오면 디지털의 가치가 실제로 GDP 성장을 폭발적으로 일으킬 것이라 예상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그러한 성장이 국가와 시민의 진보(progress)로 이어질 것인가는 또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일국 차원에서의 불평등은 인구구조로 나타나기도 하며, 이는 또 다른 성장균열의 조건이 되고 있다. 여러 추계에 따르면 20–30년 내에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10명 중 3–4명이 65세 이상인 사회로 이동할 것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혁신의 등장과 사용을 막는 주요 요인이다. 고령화된 사회는 단순히 인적자본의 감소를 넘어선다. 더 많은 인구가 더 작은 구매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구매력을 지탱하기 위한 공공재정의 확대 필요성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문제는 성장의 한계가 창출한 청년층의 불안정한 삶과 불확실성의 증가, 또한 여전히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젠더혁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지구적으로 여전히 젊은 인구는 많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의 ‘반쪽’ 세계화의 시대는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구촌’과 거리가 멀었다. 거기에 민족/인종주의의 부활이 겹치면서, 인구의 국제 이동으로 인구구조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상호 연계되어 있는 기후위기, 감염병, 성장의 한계와 분화 그리고 불평등의 증가, 일국주의의 부활, 인구구조 변화 등은 성장의 종언을 경고하고 있지만, 이들을 풀어낼 사회와 정치의 역량은 부족하기만 하다.

나. 갈림길에 선 한국 사회

서구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의 황금기(Golden Age)를 맞이하며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이는 복지국가라는 중요한 역사적 산물을 만든 추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화와 탈산업화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국가는 민주, 연대, 복지 등의 가치보다는 작은 정부를 기치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지구적으로는 생태학적 경고가 20세기 후반에 본격화됐지만, 경제성장지상주의(‘GDPism’)에 눌려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국내적으로는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가 중요한 정치행정의 패러다임으로 등장했지만, 정부는 점점 경직적이고 관료적으로 변하며 시장은 생존을 위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불안정이 증가하고 있는 개인과 시민사회가 협력적 거버넌스의 주체로 등장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코로나19는 그동안의 성장의 균열과 이로 인한 결과에 대해 보다 명확히 깨닫게 한 기회를 제공했다. 어느 때보다 ‘성찰’이 증가하는 모멘텀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제 성장의 시대 다음이 연대를 기초로 한 공존의 시대로 이동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공멸과 과거 생존의 시대로 이동할 것인지는 향후 10년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을 고집하면서 미래가 달라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어떻게 성장을 넘어 공존을 가능하게 할 참성장(Genuine Progress & Growth)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합의하고 행동에 옮겨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같은 선상에 있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기업-중소기업 생산성 격차와 제조업-서비스업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선발국가를 따라잡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및 아시아 국가들이 바로 뒤에서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탈세계화 흐름도 수출 국가인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Randall and Lee, 2018). 내부의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만, 새로 진입한 혁신기업들이 국제적 기업으로 크는 속도는 더디다. 인구변동 속도는 OECD에서 가장 빠르지만, 여성, 청년, 중고령층의 인적자본을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창업생태계도 최근까지 매우 연약한 수준이다(Choi, Fleckenstein, Lee, 2021).

또한 불평등을 교정하고, 생산한 것을 세대 내와 세대 간에 재분배할 수 있는 연대의식과 제도가 미비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사회적 자본과 관용 수준은 여전히 낮다. 또한, 개발국가부터 내려온 관료제적 유산이 여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공동체를 강화하고 시장의 질주를 사회적으로 제어할 시민사회의 토대는 허약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런 연대적 가치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우선적 목표였던 적이 없었다.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참성장’ 담론은 항상 주변부에 머물렀다.

2. 근시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참성장

가. 네 가지 패러다임

한 사회가 지닐 수 있는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두 개의 축을 기준 삼아 네 종류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한 축은 시간의 축이다. 현재-미래를 나눈다. 그 사회의 여러 활동이 현재를 개선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지, 미래를 개선하는 데도 안배됐는지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축이다.

다른 축은 가격-가치의 축이다. 그 사회의 활동이 시장에서 교환되어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에만 집중되어 있는지, 가격은 매겨지지 않지만 실제 유용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요소에도 안배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축이다.

고도성장 시대의 패러다임은 현재 그리고 가격에 초점을 둔 근시적 패러다임이다.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 2020)는 가격이 가치라고 혼동하고, 가치 착취를 가치 창조와 혼동하며, 결국 약탈적 자본주의를 생산적 자본주의와 혼동해 진정한 경제 성장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을 비판했다. 환경론자들은 현재 세대가 지나치게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미래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고 비판한다(노드하우스, 2017; 촘스키, 폴린, 2020). 지금의 자본주의는 현재, 그리고 가격에 우선순위를 둔 체제라는 이야기다. 이를 우리는 근시적 패러다임이라 부른다.

근시적 패러다임은 경제성장지상주의(‘GDPism’)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의 생산량을 극대화시킬지, 양적 경제성장률(GDP 성장률)을 높일지에만 초점을 둔다는 비판이다. 그러다 보면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무급노동, 생산 과실의 분배 격차, 사회적 자본 등 비시장적 가치, 자원 보존과 환경이나 미래기술 등에 대한 고려는 작아지기 마련이다.

돌봄적 패러다임은 현재 그리고 가치에 초점을 둔다. 현재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성을 두되, 비시장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는 패러다임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돌봄이다. 돌봄은 개인의 행복, 안정 그리고 사회 재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지만, 그 가치는 현재 거의 ‘망각’된 상태이다. 돌봄을 제공할 의무뿐 아니라 권리도 새로운 민주주의에서 기본적 개념이 될 필요가 있다(김희강, 2020). 돌봄적 패러다임은 이러한 돌봄의 의미를 더 확장해 가족을 넘어 사회 및 환경을 돌보는 시간의 가치도, 유급노동뿐 아니라 무급가사노동과 자원봉사도 중요한 가치창출 활동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즉,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키며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인정해 주는 관점이며, 동시에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위험에 처한 이들을 지지해 주는 국가의 활동 역시 포괄된다.

투자적 패러다임은 미래 그리고 가격에 초점을 둔다.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를 포괄하는 패러다임이다. 당장의 기업 이익뿐 아니라 미래의 성장 동력에도 초점을 두어 연구개발(R&D), 디지털 전환 등에 대한 투자에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이와 동등하게 사람에 대한 투자인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역시 포괄한다.

지속가능 패러다임은 미래 그리고 가치에 초점을 둔다. 미래 구성원들을 위한 비시장적 가치를 고려하는 패러다임이다. 환경을 위한 투자,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 저탄소 및 채식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 등에 우선순위를 둔다.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코펜하겐 회의에서 제안한 배출감축량을 근거로 시간에 따라 편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노드하우스, 2017, p.456, 457). 이에 따르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2050년까지는 순편익이 감소하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면 2050년 이후 순편익이 극적으로 올라간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파이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지속가능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그림1] 성장 전략의 네가지 패러다임

나. 패러다임의 전환과 확장

오늘날 기업이 근시적 패러다임에 빠지는 일은 흔하다. 단기적 생존과 성장을 원리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이 분기 또는 연간 실적으로 평가받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국가는 가격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미래를 고려한 투자적 패러다임도 강조해왔다. 하지만, 국가도 연간, 분기 단위의 수출과 GDP 실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아동과 청년에 대한 투자,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에 대한 투자는 실제(reality)보다는 수사(rhetoric)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 패러다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돌봄적 패러다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부족했다. 많은 국가가 돌봄의 가치에 대한 정책적 관심, 사회적 자본과 신뢰에 대한 확충보다는 어떻게 개인을 상품화(commodification) 시킬 것인지, 즉 유급노동에 참여하게 할 것인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더욱 그랬다. 그동안 산업화를 이끌었던 세대는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을, 여성들은 OECD에서 가장 높은 젠더 임금격차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무급 및 유급 돌봄노동이 주변화되는 등 사회적 가치가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도시에서는 사회적 관계의 단절 현상이 일어나고, 지역 간에는 격차가 확대되고, 농촌은 황폐화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돌봄이 필요한 한 몸(body)이라는 관점에 보면 하나의 소멸이 다른 하나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이러한 점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지속가능 패러다임은 근시적 패러다임으로부터 가장 높은 수준의 전환이 필요한 패러다임이다. 기후위기라는 인류 절멸의 대사건이 눈앞에 닥쳐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한 결과는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기후위기 대응은 아직도 본격적 실천에까지 다다르지 못한 상태다.

근시적 패러다임에서의 전환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은 정치와 행정의 약한 역량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경로의존적으로 이어진 정책과 재정전략이 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와 행정에는 이를 대중과 소통하고 숙의하며 전환의 정치(politics of transformation)를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다. 일부 서구국가에서 작동했던 ‘노사정 삼자주의’(tripartism)에 기반한 코포라티즘(corporatism)은 노동시장 변화와 함께 서구에서조차 쉽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다양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과 소통을 통해 전환을 이루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제안되었으나, 행정과 정치는 이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가장 쉬운 선택은 경로의존의 정치이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희생양(scapegoat)을 찾으며 비난을 회피하는 정치(blame-avoidance politics)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회-경제-정치-행정을 포괄하는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성장 시대의 균열이 공멸의 시대로 가지 않고 공존의 시대로 가기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근시적 패러다임과 경로의존적 전략은 사람과 환경의 공멸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근시적 패러다임을 넘어 돌봄적-투자적-지속가능 패러다임을 균형 있게 고려한 행동이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균형을 잡으려면, 반대편 끝을 거대한 힘으로 눌러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은 정책과 재원의 급진적 재분배를 요구한다. 균형을 위한 급진이다.

이때 성장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성장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다만, 오늘만의 성장에서 내일의 성장으로, 누군가의 성장에서 모두의 성장으로, 경제만의 성장에서 사회환경적 가치의 성장으로 ‘성장’을 확장하고자 한다. 바로 ‘참성장’이다.

미래세대도 현재세대와 같은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성장이 참성장이다. 동시에 앞서가는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 하는 성장이 참성장이다. 유급노동자 뿐 아니라 무급으로 돌봄을 제공하거나 미래를 위해서 자라나고 교육을 받는 모든 이들, 그리고 지금까지 사회에 기여하고 이제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여기 해당된다. 강요된 돌봄이나 강제 퇴직이나 강압적인 교육 환경 대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는 성장을 지향한다. 진정한 발전과 성장은 국가와 사회의 총성장이 아닌 그곳을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의 자유와 안녕 그리고 창의적인 삶이라는 게 참성장의 정신이다(Coccia et al., 2018; Malhotra, 2004)[5].

근시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성장, 참성장을 위해서는 이를 구현할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 장에서는 이를 위한 ‘참성장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3. 참성장전략 제안

가. 참성장전략의 비전: 연대적 성장을 향해

참성장전략의 비전은 세 가지 갈래다. 돌봄적 패러다임의 비전, 투자적 패러다임의 비전, 지속가능 패러다임의 비전이다. 세 가지 비전 모두, 근시적 패러다임인 성장지상주의를 넘어서는 방향이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비전은 연대적 성장이다. 연대적 성장에는 세 차원이 있다. 첫째는 현 세대 내에서의 연대이다. 근시적 패러다임에서 돌봄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비전이다. 둘째는 세대 간의 연대이다. 투자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비전이다. 셋째는 사람과 자연과의 연대이다. 지속가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비전이다.

현 성장 패러다임을 위협한다고 자주 거론되는 인구구조 변화의 예를 살펴보자. 인구가 줄어들면 인적자본의 풀이 줄어들고, 국가의 성장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또한, 더 적은 생산계층이 더 많은 비생산계층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재정에도 문제가 생기고 성장 잠재력도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한 과거 생존과 성장 시대의 해결 방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는 근로연령대 인구 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과 이주민을 더 많이 받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경험하듯 출산율의 인위적 증가는 그 원천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니며, 이주민은 탈세계화와 민주주의 퇴보의 시대에 쉽지 않은 접근이 되어가고 있다.

둘째 방법은 고용을 증가시켜 유급 노동인구 대비 비유급 노동인구의 비율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노인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오래 머물며, 청년들이 더 일찍 생산활동에 시작한다면 이 비율의 변화는 명확해질 것이다. 다만, 생산되는 일자리가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대부분이라면 단순히 고용률 자체가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유력하게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생산성의 증가이다. 과거 100명이 100개를 생산하던 시대에서, 10명이 200개를 생산하는 시대로 전환하면 생산인구가 줄어들어도 문제는 없을 수 있다. 물론 생산성을 증가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청년 및 미래 세대의 투자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균등하게 생산할 수는 없다는 점이 문제다. 누구는 50과 100을 생산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5를 생산하며, 누군가는 가격이 매겨진 상품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생산활동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거나 앞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 있다. 분배정의라는 대안이다. 즉 현 세대에서 생산된 부가 모두에게 적절히 분배되도록 하는 사회적 재분배와, 지금의 차이가 다음 세대의 차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이동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이다.

정책적으로 인위적 인구증가를 대안으로 고려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모두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생산된 부가 사회적으로 재분배되면서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당장의 단기적 성장을 위해 고용률 증가를 압박하거나, 양극화 속에서 일어나는 취약계층의 생산성 저하를 방치하거나, 재분배를 거부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저하시키려는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인구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세대 간 형평성만 강조하면서 세대 내 불평등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나 세대 내 불평등을 강조하면서 세대 간 이슈를 모두 환원하려는 태도 모두 적절하지 않다. 세대 간 형평성을 논하면서 재정건전성만을 강조하고,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에 대해 입을 닫는 태도 역시 ‘참성장’적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참성장의 접근은 디지털화, 생산성의 정체, 양극화, 그리고 불평등 증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석학들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공통적으로 연대적 성장 혹은 포용적 성장을 갈 길로 제시하고 있다.

나. 참성장전략의 핵심 요소

(1) 전환적 사고

전환적 사고는 연대적 성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필수 토대이자 전제이다.

전환적 사고는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해왔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reflection)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20년 동안 힘 있는 정치인 및 정책결정자들이 해결을 공언했던 여러 문제들은 거의 풀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저출생 문제, 청년 문제, 자영업 문제, 노동시장 이중화와 비정규직 문제 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정치의 무능력(inability)은 지구적 거버넌스의 한계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무역분쟁, 민족갈등 등 지구적 사회 문제에 대해 UN, WTO 등에서 새천년개발목표(MDGs)와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등을 설정하며 해결 노력을 했지만, 지구적 거버넌스는 거의 작동되지 못했다. 다양한 ‘기득권’과 증폭되는 갈등에 의해서 새로운 사고는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국내외에서 발견된다.

전환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를 청년 문제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청년 문제의 핵심이 고용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즉 일자리를 늘려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자리는 누가 늘리는가? 정부에서 공공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주장은, 쉽사리 강력한 반대에 부닥친다. 그러면 민간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떨까? 이미 국가가 민간에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명령’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또한 자동화와 플랫폼 경제의 확산 등으로, 민간이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혁신은 일자리를 줄이거나 관련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간에게 조세감면이나 규제완화를 통해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이미 지난 30년 동안 여러 곳에서 해왔던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세감면과 규제완화는 적하현상(trickle-down)을 일으키기보다 열악한 일자리와 불평등을 증가시켰을 뿐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환적 해법과 사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청년이 일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된다면, 청년의 ‘일’이 유급노동 뿐 아니라 연대와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다양한 ‘일’을 포괄한다면, 청년의 일을 정부와 시장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청년에게 자유안정성을 주고 스스로 역량을 창출하게 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현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전환적 사고는 기후위기와 감염병을 대응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그 구체적 방안을 찾고 합의를 이끄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기존의 성장 패턴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성장지상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탈성장으로의 경로 전환은 더욱 쉽지 않다.

결국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무기는 기술과 지식이다. 기술이 성장지상주의의 무기라고만 여기던 과거 사고방식과 판이하게 다른 전환적 사고다.

예컨대 근시적 패러다임의 시대에 만들어 낸 거대한 고철들을 해체시킬 도구도 역시 지식과 기술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했던 산업체제도, 플라스틱부터 원자력까지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도, 이를 해체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로만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따라서 기술과 지식은 참성장전략의 핵심이다.

감염병에 대한 대응에도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은 공공보건의 관점으로, 감염자를 줄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감염병이 일상화된다면 감염자 수 관리만으로는 감염병으로 인해 파생되는 고용의 문제, 돌봄의 문제, 관계의 문제 등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감염병의 일상화라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감안한 전환적 정책 기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전환적 사고이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경제는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속화되는 디지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금은 거꾸로 디지털 전환을 활용해 어떻게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을 복원할 것인지를 찾아내야 할 때다.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실현시키는 데, 새로운 소통 방식과 신뢰를 만들어 내 민주주의를 진보시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과거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던 여러 사고방식을 연결하는 것, 금기시되던 접근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용하는 것, 최종 목적은 바꾸지 않지만 그곳에 다가가는 경로를 쉬지 않고 바꿔보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전환적 사고방식이다.

(2) 연대적 성장을 위한 정치와 시민

연대적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생존의 시대에도 성장의 시대에도 정치와 거버넌스는 항상 중요했다. 통치도구와 방식은 왜 누가 생존하는지, 왜 어떤 국가들이 성장하는지, 어떤 곳에서 더 민주적이며, 평등한 사회를 건설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들이다. 즉, 앞서의 설명들은 거시적 흐름 차원에서의 논의이지만, 중범위적 정치 및 정책결정에 따라 21세기에도 여전히 불평등이 낮은 국가들이 있고, 생산성 분화가 적으며 증가율 감소가 크지 않은 국가들도 있다. 포용적인 국가들도 있다.

21세기는 어떠한 정치와 정책을 요구하고 있을까? 라구람 라잔(Rajan, 2019)은 현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가 국가와 시장 그리고 지역과 시민사회로 대표되는 제3기둥 간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관료화되고, 시장은 이윤을 강화하려는 속성이 더욱 강해지는데 비해서, 이를 제어하고 사회에 배태되도록 할 시민사회의 역할이 점차 약화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커지는 것이나 생산성의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이 이윤에 더욱 매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개인, 지역 그리고 시민사회이다.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개인들, 격차가 커져가는 지역들, 이들이 모여 있는 시민사회가 국가와 시장을 제어할 만큼 강화되기는 너무나 어려운 여건이다.

제3시대로 진입하는 지금도 그러하다. 기존 문제의 강화와 새로운 불확실성의 증가는 여전히 국가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더 큰 국가와 역동적인 시민사회는 양립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역사 속에서 문제해결에 능한 큰 국가와 자율적인 개인과 역동적 시민사회가 양립가능함을 북유럽 사회가 보여준 바 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스웨덴 정치의 슬로건은 강한 국가가 아니라 ‘강한 사회’(Strong Society)였다. 타게 엘란데르(Tage Erlander) 총리가 이끈 사민당은 연대, 협동, 함께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강한 사회의 정신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서 보호하려는 노력 가운데 복지국가의 전략이 사용된 것이다[6].

큰 국가가 가장 덜 관료적이며 가장 정부의 질이 높은 국가[7]가 된 데에는 권력의 분권화 그리고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로 대표되는 강한 시민사회가 바탕에 있다. 즉, 개인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국가는 규모는 크지만 권력은 지역과 사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관료적이거나 경직적이지 않다.

역동적인 시민사회는 정부와 시장이 ‘공공’과 ‘사회’적 가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자율적인 개인들은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자유롭게 경제활동에 참여한다. 그 결과 스웨덴은 생산성 증가율의 정체나 격차 확대 문제가 가장 작은 국가가 되었다. 이는 영국의 작은 정부-큰 사회(Big Society) 결합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다. 참성장전략의 8가지 솔루션

1장에서 정리한 성장 시대의 종언 과정은 사회정치경제체제의 복잡계 속 다양한 현상이 얽히며 악순환 속에 진행되고 있다. 어떤 것이 가장 우선적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현상은 성장 자체의 한계이다. 성장의 한계는 지금 위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구적 정치경제 구조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구조의 변화, 불평등 등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별첨. 성장 시대의 균열> 참조).

이러한 악순환의 공진화가 지속된다면 공멸의 시대로 갈 것이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이미 성장의 시대에서도 각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차별된 방식과 성과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근시적 패러다임에서 ‘돌봄적-투자적-지속가능한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연대와 공존의 시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일국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과 지구적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본 참성장전략에서는 지구적 차원 논의보다는 일국적 차원으로 가능한 노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1) ‘20세기 해체’ 기술과 정책

새로운 성장은 한편으로 생산성의 둔화 및 분화에 대처하고, 동시에 지속가능한 패러다임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중요한 도구는 기술과 지식이다. 20세기 ‘성장 시대’의 산업과 근시적 패러다임 시대에 생산한 거대한 고철을 해체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나 탄소중립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20세기의 해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래세대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은 채 발전시켜 사용하고 있는 여러 기술과 물품과 산업들을 최소의 후유증만으로 해체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에 대한 안정적 해체 기술은, 향후 원자력 발전소들이 수명을 다해감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를 잘 짓는 기술보다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꾀한다면, 기존 화석 연료에 기반한 발전 시설도 해체해야 하지만 이를 공급하는 송전 시설과 소비 방식까지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버려진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이나, 기후위기를 위협하는 축산업이나 생산성만 고려하느라 건강과 환경을 파괴하던 농업 등을 발전적으로 해체 및 전환하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모두 기술이 수반되는 일이다.

물론 기술만으로 20세기가 해체되고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한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국가는 앤서니 기든스(A. Giddens)가 지적했던 ‘제조된 위험’(manufactured risk), 즉 하나의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만든 산출물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로운 위험을 생산하는 현상에 대해 유의하며 해체 기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포집 기술, 핵융합 기술 등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도 해체 기술을 고려하면서 생태적 관점과 함께 사전예방적 관점(precautionary principle)을 견지해야 한다.

동시에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페널티인 탄소세나 생태전환이 개인들의 생계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모든 것이 20세기 해체를 위한 정책이 될 것이다.

(2) 디지털 인프라 투자 및 지원

디지털 인프라 육성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디지털은 산업과 경제의 지형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과 민주주의의 지형, 전쟁과 안보의 지형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그 모습과 결과를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할 뿐이다. 선제적 투자와 지원을 통해서, 외부에서 그려준 대로의 디지털 사회의 모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디지털 사회경제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아날로그 세계는 일정 기간 동안 탈세계화의 모습을 띌 가능성이 높지만, 디지털 세계의 세계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세계화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일 뿐 아니라, 상호작용과 정치의 대양(ocean)이 되어 반쪽 세계화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미래 먹거리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본과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요소로서 디지털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디지털화는 경제적 활용을 넘어 권력을 분산화하고, 민주주의를 진흥시키며, 지속적인 숙의 혁신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전자정부와 디지털 사회는 권력이 중앙으로만 쏠리는 현상을 막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으며,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며 중요한 거버넌스의 주체자가 될 수 있게 한다. 디지털 혁명은 기본적 생활보장이 된 적극적 시민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가능하게 할 도구이다.

(3) 창업 생태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진흥

20세기 해체와 디지털 선도에 있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의 창업과 기업가정신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또한, 기후위기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21세기 기술에 대한 빠른 대응과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시대 변화에 따라오는 사회적 난제들을 기민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다.

혁신과 위험감수(risk-taking)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가정신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토대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가진 국가임에도 여전히 창업과 기업가정신은 높은 수준이 아니다. 모두가 안정적인 노동자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더 쉽게 창업하고, 더 쉽게 뜻이 맞는 이들과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즉 더욱 적극적으로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적절한 시너지가 나오는 창업생태계를 만들어 낸다면, 생산성 격차도 줄고 동시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업생태계의 출발은 창의적이며 위험감수태도를 가지고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제도부터 출발하며, 동시에 이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호 체계로 완성된다. 이 모두는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4) 연대적 삶을 위한 기본적 생활보장

개인의 불안정성 증가는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이것이 사회와 국가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개인들은 투표와 시민참여 등의 민주주의에 대해, 결혼, 출산, 육아를 비롯한 사회적 재생산에 대해, 취업과 창업과 같은 자본주의 생산활동에 대해 ‘파업’을 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중화된 노동시장과 사회에서는 연대적 삶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기본적 생활보장은 21세기 노동으로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한 ‘생태적인 전환’을 위해서, 그리고 개인이 가진 창의성을 발휘하며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 있는 노동이 보상받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지속가능 패러다임은 현재와 같은 노동시장과 산업생태계 구조에서는 다다르기 어렵다. 자연은 지속적으로 착취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급진적인 산업 전환은 상당수의 노동자를 생계수단 확보의 전쟁터로 몰아넣을 것이다.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태적 삶 또한 강요할 수는 없다. 탈생산주의적 삶의 출발은 기본적 생계 보장에 있다.

창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활발한 창업 생태계를 위해서도 기본적 생활보장은 필요하다. 투자적 패러다임을 실현하고, 20세기 해체 기술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청장년들에게 생계 걱정을 최소화해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동시에 돌봄적 패러다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가격으로 환산되는 상품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인정(recognition)과 지원이 필요하다. 안정된 돌봄은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매우 중요한 기반이며, 가격과 가치를 생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그동안 상품을 생산했지만 그 활동을 멈춘 이들 역시 안정된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본적 생활보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모두를 위한 기본적 생활보장은 현재 복지국가 패러다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편적인 기본소득과 서비스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5) 청년, 여성, 중장년, 노령층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투자정책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020년 0.84가 되었다. 인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지난 20년의 교훈이다. 정책의 초점을 사람 수를 늘리는 데서 전환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 수를 늘리고, 일하는 사람이 생산적이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생산성과 가치 있는 일을 높이고, 생산된 부를 연대의 관점에서 재분배하는 쪽으로 초점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저출생의 시대에도 여전히 훌륭한 인적자본을 가진 청년, 여성, 중장년, 노령층이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회투자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가장 미시적으로는 자신의 숙련을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하는 기본생활 보장이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과정이 변화하는 산업에 대비하여 얼마나 ‘20세기스러운지’를 고려할 때, 그리고 이를 떠받치고 있는 행위자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인적자본의 미활용은 공급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적극적인 역량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과 공정한 시장을 창출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창업생태계를 지원 및 육성하는 일,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 등을 개선하는 일, 그리고 개인의 노동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모두 적극적 사회투자 정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터문화의 변화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창의적인 인재가 많아진다 해도, 노동시장에 젠더불평등과 권위적 서열문화가 남아 있다면, 다들 ‘아싸’(outsider)가 되고 말 수도 있다. 수평적 노동시장 및 기업문화를 어떻게 만들지 역시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6) 보편적 누진증세를 통한 참성장 실현

앞서 논의한 다섯 가지 참성장전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공공재정이 필요하다. 조세는 유력한 재원 마련 수단인 동시에 특정한 방향의 행위를 유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성장전략에서 조세의 역할은 절대 가볍지 않다.

참성장전략의 기본적인 제안은 더 보편적이고 누진적인 증세를 통한 재분배이다. 조세는 정의로워야 한다. 누군가의 부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서만 온 것이 아니며 사회적 결과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정의가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는 정당하다(프랭크, 2018). 더 많이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내는 누진성을 강화하는 것은 이중화가 강화되는 사회에서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누진성만을 가지고 시대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내는 자와 받는 자가 갈라진 사회는 연대적 성장의 비전과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아야 한다. 소득세 증세가 대표적인 방안이다. 내는 것도 많지만 곧장 받는 것도 많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생활 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감소로 이어질 때, 조세 저항은 줄어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의 상당 부분이 바로 개인들의 안정을 위해서 쓰일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의 쓸모와 정책의 쓸모를 다시 한번 개인들에게 각인시켜주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탄소세 등을 통해서 공존의 시대로 가는 바람직성을 달성하려는 노력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조세는 참성장 실현의 토대이다.

(7) 권력의 분산화와 사회혁신의 진흥

기후위기, 디지털화, 국가 간 경쟁 격화, 감염병 등으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위험사회로의 전환은 정부를 더욱 분주하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정부와 국가는 개인에 비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시기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정부는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 해결자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국가가 너무 강한 관료적 ‘빅 브라더’가 되는 것은 곤란하며, 그것이 개인과 시민사회의 위축으로 나타난다면 더욱 그러하다. 연대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목소리와 참여 그리고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정부, 활발한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를 구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권력의 분산과 네트워크는 핵심이다. 권력을 나누어 가질 때 개인과 시민사회, 그리고 지역이 새로운 문제 해결을 주도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화로 가능해진 새로운 네트워크가 개인들의 연대와 조직화를 지원하고, 전자정부는 개인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중요하게 수용하면서, 리더로서의 정부가 아닌 서번트(servant)로의 정부와 국가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분권적 개혁과 다양한 사회혁신 활동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의 근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율성이고 안정성이다. 불안정한 개인들이 공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고, 참여한다 해도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논하기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적게나마 마련된 공론장도 각자의 근시안적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자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안정된 개인의 삶을 제공하는 국가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만 한다.

(8) 참성장지표 개발과 활용

참성장전략이 비전과 선언에만 그쳐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참성장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 작업의 출발은 먼저 성장 시대의 상징이었던 GDP를 원래 자리와 역할로 돌려놓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 산출의 극대화라는 과거의 근시적 패러다임의 성장 목표를 넘어서서, 연대적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총량의 생산 증가를 넘어 개인의 관점에서 실질적 복지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격’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를 돌보고 유지하는 ‘가치’에 주목해야 하며, 환경을 희생하는 발전이 아니라 환경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어야 한다. 거기에 역량 있고 안정적인 개인이 존재해야 하며,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공존의 시대로 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참성장의 전략과 함께 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참성장지표가 필수적이다.

[그림 2] 참성장전략의 비전·핵심 요소·솔루션

4. 결론: 공멸이 아닌 공존의 시대로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놀라웠던 성장의 시대를 성찰과 연대의 힘을 통해서 공존의 시대로 이전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공멸의 길로 갈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있다. 공존의 시대로 갈 수 있는 티켓은 여전히 유효하며, 결국 우리 손에 있다. 식량부족으로 인류가 절멸할 것이라던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비관론을 현실화하지 않은 것도, 손주 세대에는 주 15시간 노동만 해도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낙관론을 실현하지 못한 것도 모두 우리의 선택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또한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이다. 성장의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로 전환적 사고를 거부하고 패러다임 전환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공존의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글에 나오는 많은 내용들이 과거에 이미 경고가 된 내용들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미리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탄하는 도넬라 메도스(D. Meadows)나, 1970년대 인구감소 사회를 앞두고 패러다임 전환을 논의했지만 2000년대가 되어서도 이제야 준비한다고 하는 일본사회를 걱정하는 우치다 다쓰루 모두 막바지에 이른 성장 시대의 풍경이다(우치다 다쓰루, 2019). 이러한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근시적 패러다임과 단기적 성장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시스템은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참성장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답은 연대적 성장에 있고, 이는 돌봄적-투자적-지속가능 패러다임에 있다.

별첨. 성장 시대의 균열

[그림 3] 성장 시대의 균열과 공존 시대의 가능성

기후변화 악화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를 풀기 위해 국가간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성장의 한계가 만들어낸 국가 간 경쟁의 격화와 자국민 중심주의는 이러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결국 기후변화는 미래 지속가능성 뿐 아니라 감염병 위험을 증가시켜 개인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감염병 위협은 비대면 디지털 경제를 강화시키고, 디지털화는 단기적 미래에 생산성의 분화 및 노동시장 이중화를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장 이중화는 기존 복지국가의 대응력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불평등을 증가시켜 개인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킨다.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직면한 개인들은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 요소인 창의성과 위험감수 성향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21세기 성장의 한계는 오히려 강화된다.

개인의 불안정을 강화하는 요인이 이중화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와 공공재정의 압박으로 인한 복지국가의 약화와 성장우선주의, 그리고 인종주의나 극우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자본의 약화는 모두 개인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개인의 불안정성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동시에 허약해진 민주주의 탓에 개인의 불안정성 문제는 풀리지 못한다.

위의 그림은 성장 시대가 어떻게 균열되며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어디를 전략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공존의 시대로 이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단서를 보여준다. 이는 참성장전략 제안에서 설명되었다.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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