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원한다면 불평등부터 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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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ul 3, 2019

[IDEA2050_009]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출처: 셔터스톡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에 관한 우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금수저, 흙수저 비유가 대변하듯 청년들은 자신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에 중요하다고 여긴다. 기회의 불평등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제성장 둔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생산성이 예전만큼 높아지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려는 시도들도 적지 않다. 어쩌면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걱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이러한 우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불평등을 개선하고 경제를 더욱 포용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며, 혁신성장은 혁신과 생산성 상승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보수적 학계 또는 언론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은 잘못되었으며, 대신 과거와 같이 친기업 규제완화에 의해 혁신과 경제성장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불평등의 완화는 경제에 별 의미가 없거나, 혹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주기만 하는 것일까?

심각한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준다

심각한 불평등이 경제성장에도 나쁘다는 것은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상식이다.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학에서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과거의 연구들은 부자들이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저축이 그대로 투자될 것이라 생각하여 불평등이 높아지면 투자와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발전된 최근의 거시경제학 연구자들은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적, 실증적 연구 결과를 보고해 왔다.

먼저 심각한 불평등은 단기적으로 총수요(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총합)를 둔화시켜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소득층이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악화되면 경제 전체의 소비와 총수요가 억압된다. 이러한 총수요의 둔화는 이른바 장기실업이나 신기술 투자 둔화 등의 이력효과(경제 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실제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일이 순환 반복되는 악순환 효과)를 발생시켜 장기적인 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이 높아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성장률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최근 새케인스주의(New Keynesian Economics)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이 성장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을 꼽는다. 현실에서 금융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은행은 차입자의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어 흔히 담보를 요구하며 담보를 제공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힘들다. 따라서 교육에 큰 비용이 드는 사회에선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 결국 저소득층 자녀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결국 불평등이 교육의 경로를 통해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과 함께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 연구들도 급속히 발전되고 있다. 각국을 비교한 대부분의 실증 연구들은 초기의 소득 그리고 특히 부의 불평등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들을 통제하고 나면 불평등은 성장과 마이너스(-)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자료가 발전된 덕분에 최근 연구들은 장기 데이터를 사용해서 각국 간의 변화와 각 국가의 내부 변화를 모두를 분석한다. 몇몇 연구들은 패널분석을 사용하여 소득불평등의 심화가 ‘단기’적으로 한 국가 내부에서는 성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앤드류 버그(Andrew Berg)와 조나단 오스트리(Jonathan Ostry) 등 국제통화기금의 경제학자들은 더욱 개선된 데이터와 계량분석의 방법론을 이용해서 “심각한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뚜렷하게 악영향을 미치며 정부의 소득재분배는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을 개선하여 성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또한 이 연구는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불평등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소득불평등이 클수록 경제성장률은 장기적으로 감소했다. 출처 : Berg et al., 2018.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New Evidence. Journal of Economic Growth, 23(3)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기초해서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이라는 의제를 제시하고, 각국 정부에 불평등을 개선해서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이 구체적 정책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확대, 금융시장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위한 포용적 금융 정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취업 알선, 직업 훈련, 직접 일자리 창출 등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 그리고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확장적 재정정책 등이다. 특히 재정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기반시설에 대한 공공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부모 재산이 인생 좌우하는 사회는 특허도 적다

불평등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 하나는 혁신을 억누른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혁신은 새로운 기술, 상품, 서비스의 등장으로 산업과 사회의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혁신적인 경제 활동이 시작되고, 발전하기가 어렵다.

불평등이 혁신을 막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그 첫 번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승차 공유 서비스와 관련한 갈등이다.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사회에선 급속한 산업 변화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기존 노동자들이 혁신적인 산업을 가로막는다. 북유럽과 같이 사회적 안전망이 발전된 복지국가에서는 혁신에 대한 반대가 약하고, 그로 인해 혁신이 전 사회에 확산되기 쉽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기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새로운 수요가 있는 신산업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심각한 불평등은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 기회를 가로막아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 불완전한 금융시장으로 인해 가난한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기 어려우며 사립학교와 사교육 등의 고비용 교육을 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지적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닌 부모의 재력, 문화적 자본이나 네트워크 등의 차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3학년 때 수학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나중에 특허를 받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 집단 안에서도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의 발명가 비중이 더 높았높다. 출처: Bell et al., 2017. Who Becomes an Inventor in America? The Importance of Exposure to Innovatin. NBER Working Paper №24062.

하버드대의 체티(Raj Chetty) 교수 등은 미국에서 3학년 때 수학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특허를 얻는 발명가가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 집단 내에서도 부잣집 아이들의 확률이 빈곤층 아이들보다 훨씬 높아진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거꾸로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불평등이 개선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과 생산성이 더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 번째로, 불평등은 포용적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아 열심히 일하고 혁신하기 위한 유인구조에 악영향을 미친다. MIT의 아제모을루(Kamer Daron Acemoğlu) 교수 등이 주장하듯이 돈과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된 사회는 포용적인 정치, 경제적 제도가 발전되기 어렵다. 부패와 지대추구가 만연하여 경제주체들의 노동과 혁신의 의욕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와는 달리 토지개혁에 실패해 현재도 불평등이 심각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다.

또한 불공정과 불평등은 사업체 수준에서도 노동의욕을 낮춘다. 여러 실험 연구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불공정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은 노동의욕이 낮아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곧, 심각한 불평등이 혁신을 저해하여 생산성과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거꾸로 소득분배의 개선이 장기적인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의 국가간 실증분석(Lee, K-K. Inequality and Innovation. mimeo)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은 인구 일인당 특허출원이나 총요소생산성으로 측정되는 혁신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 낮다. 일인당 국민소득, 교육수준, 정부의 연구개발지출 등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들을 통제한 후에도 불평등이 혁신에 미치는 악영향은 여전히 뚜렷했다. 특히 부모의 소득이 자식의 소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세대간 소득탄력성’으로 측정되는 기회의 불평등은 혁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세대간 소득탄력성’이 높아 개인의 소득이 부모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는 사회에선 혁신의 시도 역시 적었다.

결국 한 사회 내에 혁신의 시도들이 많아지려면 1차적 소득분배가 보다 평등해지거나, 그게 안 된다면 사회적 안전망 확충하는 등 방법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득 재분배에 나서야 한다. 특히 공교육과 교육 기회의 확대를 통해 기회의 불평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혁신을 촉진하는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대립하지 않는다

과거 한국은 고도성장과 함께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분배로 동아시아의 기적이라 불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의 구조변화와 함께 불평등은 심화되고 성장은 둔화되어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의 주병기 교수 등은 최근의 교육 격차가 더 심화되고, 기회의 불평등도 악화되고 있음을 연구를 통해 보고하고 있다. 성공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소득에 달려 있어 청년들의 절망이 커지고, 이로 인해 흙수저, 금수저 등의 수저계급론이 부상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여전히 연구개발(R&D) 지출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고, 인구 1인당 특허 출원수도 많아 몇몇 국제비교에서 매우 혁신적인 나라로 보고된다고 주장한다. 이 국제비교를 분석할 땐, 한국의 연구개발이 주로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정부의 연구개발 지출에는 대담한 혁신의 시도가 부족하다는 한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회 내에서 혁신시도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셔텨스톡

문제는 급속한 기술변화로 인해 경제에서 혁신이 더욱 중요해지는 반면, 소득과 기회 그리고 교육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불평등의 심화는 여러 경로를 통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기회를 제한하는 등 혁신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은 다름 아닌 불평등과 불공정의 개선이며 이를 위해선 적극적인 재분배의 개선이 요구된다. 정부로서 동원 가능한 수단은 정부의 재정을 사용하는 ‘재정정책’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일각의 비판과는 달리 혁신성장에 도움이 된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대립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오히려 희박하다. 포용성을 높이는 소득주도성장이 더 많은 혁신을 낳고, 혁신에 기초한 성장이 고용과 소득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득과 기회의 격차를 개선하고 혁신의 충격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노력에 기초하여 우리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선순환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이강국의 경제산책> 저자. 사진 : 인터파크 북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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