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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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in readMay 25, 2018

Universal Basic Income: Where we at how far we have come?

새로운상상 2018 / 세션 1. 디지털 전환 시대, 경제적 안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토론 1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가?

기본소득 실험을 설계하고 실험하고, 시도해 본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이들에게 쏟아진 질문들은 대체로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에 의문이나 이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를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궁금해 한 것이다. ‘새로운상상2018’의 청중 대다수가 기본소득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었다 가정하더라도, 이런 흐름은 기본소득에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어느 수준인지 가늠하게 해 줬다.

첫 세션의 마지막 순서인 이 토론에는 발표자였던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복지국 국장, 테일러 조 아이젠버그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ESP) 상임이사, 엘리자베스 로즈 와이콤비네이터 리서치 랩 책임연구자가 자리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함께했다. 첫 세션 기조발표자이기도 했던 이원재 LAB2050 대표가 토론의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재원은 어디서 오는가?

토론에서 가장 집중된 질문은 “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였다. 먼저 이재명 후보에게서 성남시장 재임 당시 실행했던 ‘청년 배당’에 대해 들어봤다. 다만,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직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이 후보에게서는 정책 제시나 공약에 관한 발언을 듣지 않았고, 그와 관련한 질문도 받지 않았다.

청년 배당은 성남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한 24세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 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했던 제도였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지급 받은 청년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고, 취업을 포기한 사람도 없었으며 (지역 화폐로 지급한 결과) 성남시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도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이 정책을 놓고 ‘퍼주기’라는 논란과 ‘돈을 직접 주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을 언급하며 이 후보는 “세금은 어떤 개인이 부담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함께 부담한 것이므로, 다시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에 대해서는 “로봇의 노동에 대한 세금, 부동산 불로소득, 토지 보유 등에 대해서 공정하고 공평한 세금을 매기는 등 재원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묻는 질문에 답하며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기본소득은 복지비용 절감을 위한 예방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기본소득과 유사한 수당을 받는 인디언들과 백인들을 비교했을 때 보건 복지 측면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이어서 “미국에서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을 실행하려면 시 또는 주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기 힘들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것”이라면서 “미국에서는 부가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누진세를 매기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엘리자베스 로즈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로즈 책임연구자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우리 연구는 재원 마련 방법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미국에서 아동 빈곤에 쓰는 비용이 연간 5,000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사실상 빈곤·범죄와 관련한 공공 비용 감축 효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에는 정책 재원에 대한 모델링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정책의 필요성과 효과만 입증된다면 다양한 방법들을 발굴해 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캉가스 국장은 핀란드 정부가 실행한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2,000명에게 월 560유로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최소한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이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을 필요는 없었다.”면서, “다음 정부에서는 좀 더 큰 규모로 실험이 실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사례는?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이 후보는 “한 청년이 ‘내가 국가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관심 받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기본소득의 미래를 상상하는 단편소설 대회를 개최하고, 그 수상자에게 상금으로 1년간 기본소득을 지급했던 일을 소개하면서, 1년 후 수상자는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본래 천을 짜서 파는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도하지 못 했었는데, 기본소득을 통해서 이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이전에 하던 불안정한 일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하게 됐으며 어머니를 돌보면서 일할 수 있어서 삶이 편안해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기본소득 실험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량지표만이 아니라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정성지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리 캉가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캉가스 국장은 아직 실험의 결과를 받아보지 못 했다면서 “1년 후 저를 다시 초대한다면 통계 결과를, 2년 후에 초대한다면 구체적인 사례들까지 말해 주겠다.”고 말해 청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부정적인 사례는?

부정적인 사례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기본소득을 받은 결과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 경우는 없었느냐는 것이다.

로즈 책임연구자는 와이콤비네이터 리서치 랩의 파일럿 연구 중에서 6명에 기본소득을 지급했던 사례를 설명하며 “부정적인 측면을 굳이 찾자면, 우리가 지급한 돈으로 세금을 내거나 부족했던 생계비용을 충당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삶의 변화는 없었던 경우를 들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단지 앞으로 진행할 기본소득 실험은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단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이 지역사회에 돌고 사회적 관계들이 변화하는 것까지 보게 될 것이라면서 “부정적 측면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하고 있으며, 그런 측면들을 미리 찾아내기 위해서 작은 파일럿 연구들을 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그렇기 때문에 실험을 할 때 비교군을 엄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고, 캉가스 국장은 “핀란드, 미국, 인도, 캐나다 등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실험들을 함께 검토하면 더 완전하게 결과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각국 연구자들끼리 서로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제공과 기본소득의 관계?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복지 수당이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보통은 기본소득이 노동 의욕을 떨어트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날 토론에서도 그런 질문이 나왔다.

한 청중은 아이젠버그 상임이사에게 “한국에서는 일자리 창출, 일자리 연결에 대한 정책이 중요시 되는데, 기본소득이 주어지더라도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미국에서도 스스로 일해서 소득을 얻는 것에 대한 ‘노동 윤리’가 매우 강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1950년대식 일자리 창출 방식을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이미 한 명의 노동자가 40년간 한 회사에서 일하는 식의 경제는 이미 지나갔고, 실은 여성과 유색인종 대부분은 그나마 그런 일자리를 경험한 적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면서 “일자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이상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진실도 아니다.”라고 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우리는 사람의 가치와 GDP에 대한 기여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노인을 돌보는 가정의 기여가 경제적으로 인정 못 받는 문제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이런 무급노동들은 가정과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힘이지요. 또, 월급을 주는 일자리가 중요하다지만 모두가 그런 일을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노동자의 정체성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이상화 하지 말고, 일자리의 존엄성이 아니라, 그보다 큰 범위의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로즈 책임연구자도 답변을 했다. 그는 “일자리 보장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라면서 “그러나 미국 정부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거나 연결해 줄 수 없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현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공공 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나?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실행할 경우,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로즈 책임연구자는 “일부 복지 수당이 현금(기본소득)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정보 제공 서비스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육아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등 보건·주택·교육 등에 있어서 공적 사회서비스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금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면서 “기본소득이 정부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논의는 적절치 않으며, 기본소득을 통해 정확히 무엇을 해결하려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 역시 “기본소득으로 소득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네트워킹 등의 역할을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중산층 이상 계층의 부모를 둔 사람은 이미 기본소득을 받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중산층 자녀들이 성공하는 것은 경제적 여유 때문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캉가스 국장은 “핀란드에는 기본소득 제도가 정부 역할을 축소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러나 국가가 책임을 줄이려 한다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했다. 정부는 하나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로 변화될 뿐이며, 사람들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른 서비스들은 계속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이 개인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켜 줄 만큼 큰 금액이 될 수는 없고, 최소한의 생활 비용일 수밖에 없으므로 나머지 수요를 위한 교육·보육 등 정책은 더욱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먼 미래, 기본소득으로 살게 될까

이와 같은 논의를 종합하며 이원재 대표는 토론자들에게 “먼 장래 언젠가, 인류가 보편적 기본소득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게 생계를 꾸리면서 살 날이 올까요?”라고 질문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이에 대해 캉가스 국장은 “예스!”라는 한 마디로 답해서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재명 후보는 “그러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면서 “현재 체제 그대로는 존속할 수 없고, 현재의 보편적 복지 정책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젠버그 상임이사는 “조건부 예스”라고 했다. “보편적 기본소득만으로 모두가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이게 무슨 의미이고, 우리의 경제적 자유와 존엄, 인간다움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충분히 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조건에서만 동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즈 상임이사는 “솔직히 모르겠다.”면서 “많은 실험과 연구, 논의가 필요한데, 지금의 불평등한 사회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식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고는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 연구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세트가 곧 공개될 텐데, 다른 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원재 대표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오늘 나온 이야기들 중에서 부모가 중산층 이상인 경우 아이들이 이미 기본소득을 받고 있는 셈이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그런 안정성이 모두에게 보장된다면 더 많은 혁신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경제적 안정과 기술혁신, 사회혁신이 이어지는 지점들을 더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 미국처럼 잘 설계된 실험들을 진행하며 토론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다.

정리: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

토론 전체 영상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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