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에 따른 기업조직 혁신이 일자리에 균열을 만들었다. 우버와 스마트 공장이 그 마지막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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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min readFeb 28, 2018

김병권 서울시 협치자문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종업원 없는 ‘스마트 공장’까지, 기술혁신은 기업의 진화를 이끌었고, 이 진화가 고용의 변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사회는 그에 맞춰 바뀌지 않았고 그 변화는 불안정과 고통이 됐다. 기술혁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면 어떤 변화가 더 필요할까?

기업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pixabay

1. 기업조직의 변화를 봐야 노동과 사회관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다양한 영향과 충격, 기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기술혁신의 광범위한 파장이 일과 직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산업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이 빠져있다. 바로 기업조직의 변화 문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1차 산업혁명으로 최초의 공장과 기업이 등장했다, 곧 이어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하여 20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대량유통, 대량생산 시스템과 근대적인 거대기업의 탄생은 그에 따른 노동조직의 변화는 물론이고 사회부조와 복지시스템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한편, 1960~7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화 혁명을 등에 업고 부상한 수많은 IT기업들은, 애플과 IBM으로 대표되듯이 글로벌 아웃소싱 붐을 일으켰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결합하여 노동시장의 지형을 바꾸어왔다. 최근에는 우버와 에어비엔비로 상징되는 새로운 유형의 플랫폼 기업들이 또 한 번 노동과 사회를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기술혁신은 그 자체로 노동과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대목도 있지만, 기업조직의 변화를 매개로 하여 노동방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 충격을 주게 된다. 따라서 21세기의 기술혁신이 우리의 노동과 일, 직업에 어떤 변화를 주게 될지, 기존의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알고자 한다면, 먼저 기업조직의 변화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2. 기업조직 진화를 보는 관점으로서의 ‘거래비용이론’

통상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생산의 방향과 이를 위한 자원배분은 ‘시장에서 가격 메커니즘’이 한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경제적 관계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독립된 주체들 사이의 거래와 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에서 기업조차 블랙박스처럼 개인 소비자와 다름없는 하나의 경제행위자로만 간주되거나 잘해야 생산함수 형태로 표현된다.

그런데 시장에 의한 자원분배와 구분되는 기업 내부에서의 거래와 자원분배 메커니즘을 주목한 이가 있다. 바로 로널드 코스(Ronald H. Coase)이다. 그는 1937년에 잡지 이코노미카(Economica)에 발표한 논문‘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을 통해서 거래비용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의 진화를 설명한다.

코즈는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주된 이유는, 가격 메커니즘을 사용할 때 소요되는 비용 때문인 것 같다.”(Coase, 1937)면서, 이는 만약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사용한다면 관련된 가격을 알아내는 비용이 들고 가격 협상비용과 각 계약체결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즈는 1937년 당시에는 거래비용이 아니라 시장비용(Marketing cost)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거래비용이란 생산비용과는 달리 시장거래에 따른, 물리학에서 말하는 마찰(friction)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래 관계자를 기업으로 조직하면 바로 이 거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그래서 기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올리버 윌리엄스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시장거래로 할 것이냐 아니면 기업조직 내부의 조율로 할 것이냐는 일종의 대체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고(Oliver E. Williamson, 1985), 알프레드 챈들러는 이를 기업이라는 ‘보이는 손’과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관계로 표현한 것이다.(챈들러, 1977)

보이는 손, 보이지 않는 손 ©pixabay

3. 거래비용 변화에 따른 기업의 진화

그렇다면 기술혁신이 어떻게 거래비용에 영향을 주었고,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어떻게 시장거래를 기업조직으로 ‘내부화’시키거나, 혹은 반대로 기업내부조직을 다시 ‘외부화’시켜 나갔을까? 이 대목을 추적하는 것은 기업조직의 변화뿐 아니라, 특히 직접적으로는 노동시장의 변화,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사회관계의 변화와 사회복지시스템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전 역사에 걸쳐 ‘기술혁신에 따른 기업조직의 변화는 대략 4단계에 걸쳐 진화하고 있다’는 가설에 기반하여, 각 단계에서 기업조직의 특성을 살펴보자.

⑴ 1단계 — 소규모 기업들의 다단계 시장거래 단계

우선, 알프레드 챈들러의 명저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의 내용에 따라 1차 산업혁명 후 19세기 중반까지의 미국경제를 보면,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 예시한 소규모 가족 기업들과 중개상들의 다단계 시장 거래가 주된 형태였다고 진단한다. “1840년 이전에 상근 노동자를 50명 이상 고용하는 공장을 일반화한 것은 직물분야 뿐이었다.”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산업의 윤곽은 50명 이하를 고용하면서 수력, 풍력, 축력, 인력 같은 전통적인 동력원에 의존하는 다수의 작은 기업들에 의해 수행되는 양상이었다.”(챈들러, 1985)

이것이 국부론에 나오는 기업과 시장의 모습이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적인 거래방식이었고, 아직은 이 거래비용을 줄일만한 기술혁신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⑵ 2단계 — 시장거래의 기업 내부화 단계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석탄과 전기 에너지의 상용화에 따른 에너지혁신, 철도와 우편, 전신, 전화라는 운송과 통신 혁신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시장에서 거래를 기업조직 안으로 내부화시키는 거대한 조직혁명이 진행되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을 통합함으로써, 일련의 제품 생산과 판매에 관련된 많은 거래와 과정들을 하나의 기업이 수행하게 되었다. 원료와 중간재 공급자들로부터 소매상과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상품 흐름의 조율에서, 경영을 통한 지휘라는 ‘보이는 손’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했다. 이러한 활동과 거래를 내부화하는 것은 거래비용과 정보비용을 감소시켰다.”(챈들러, 1985)

이렇게 만들어진 거대복합기업은 20세기 100년을 풍미하면서 대규모 노동조직과 20세에서 60세까지의 안정적인 평생직장 구조를 유지한 기초가 되었다. 지금까지 미국기업의 전통을 대표해온 엑슨 모빌(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후신), 유에스 스틸(카네기의 철강기업 후신), AT&T, GE(에디슨 전기회사 후신), 포드자동차, JP 모건체이스 등이 전부 이 시기에 거대복합기업으로 탄생한다.

이 시기에 성장한 한국 경제도 정부와 밀착한 기업이 수직계열화라는 명목으로 거대 재벌 구조를 구축하고, 여기에 소속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과 복지정책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재벌은 전방산업과 후방산업, 금융과 제조업 영역까지 확장하는 문어발식 경영으로 진화했다.

⑶ 3단계 — 기업내부 조직을 다시 시장거래로 외부화 하는 단계

하지만, 한 세기를 풍미했던 거대기업과 그 기업이 포괄했던 평생고용체계, 탄탄한 기업복지체계는 1980년대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이 자리를 하청, 외주화, 프랜차이츠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대체하게 된다. 이른바 시장거래를 ‘기업 내부화’했던 방향이 다시 역진하여 기업 내부 조직을 거꾸로 ‘기업 외부화(데이비드 와일은 이를 균열일터(Fissured Workplace)라고 표현했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균열 일터 —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

와일은 “균열일터는 자본시장의 거센 압력에 대한 대응이자, 정보통신 기술을 통한 비지니스 거래 조정비용 하락의 산물”로 보았는데, 그 전형적인 모습을 호텔 체인을 사례로 들고 있다. “1962년 미국 호텔, 모텔의 오직 2퍼센트에 머물던 프랜차이즈는 1987년에 이르자 64퍼센트로 크게 성장했다. 오늘날 미국 호텔의 80퍼센트 이상이 프랜차이즈로, 2011년 당시 힐튼은 미국 내 258개 힐튼 건물 중 22채를, 메리어트 호텔 앤 리조트는 같은 브랜드 하에서 운영되는 356개 건물 중에서 오로지 한 채만 소유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데이비드 와일, 2015)

20세기 말에 미국을 필두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라는 간판아래 추진된 기업조직의 변화는 사실 “한때 중심적이라고 여겼던 경제활동을 다른 조직에 이전함으로써 고용-피고용 관계를 상호 독립적인 시장 거래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용을 외부에 이전시킴으로써 고용주는 사회적 지불의무(가령 실업이나 산재보험, 또는 급여세)를 피할 수 있었으며, 노동자들을 독립 계약자로 분류함으로써 산업재해 책임도 덜 수 있다.”(데이비드 와일, 2015) 우리가 지금 광범위하게 목도하고 있는 노동 불안정과 거대한 비정규직 양산을 낳은 배후에는 이처럼 기업조직의 근본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던 한국의 재벌 경영 시스템 역시,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최근 몇 년 간 주요 노동 문제로 부각된 삼성전자서비스의 외주 고용,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기존 재벌 기업이 기업조직을 변화하면서 나타난 문제들이다. 파리바게뜨, 편의점 등 최근에 급격하게 성장한 기업 역시 새로운 형태의 기업조직에 기반했다.

하지만 와일은 지금의 (비정규직) 현실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역사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한다 한들, 노동자들을 대거 직접 고용하던 대기업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없다.” 즉, 기업 담 밖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불안정한 일자리, 비정규직을 담 안으로 다시 되돌리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으므로, 기업 담 밖에 존재하더라도 안정되고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도록 어떻게 노동, 사회시스템을 다시 짤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4단계에 걸친 기업조직의 변화와 이에 따른 노동, 사회관계의 변화

4. 4단계 기업의 진화와 미래

그런데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았다. 20세기 기업내부로 편입되었던 생산과 유통관계가 다시 기업 외부로 빠져나간 ‘균열일터’가 기업 진화의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노동제도와 사회안전망이 세 번째 단계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기업은 네 번째 진화단계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단초의 한쪽이 우버와 에어비엔비로 상징되는 플랫폼 기업들이고, 다른 한편이 ‘스마트 공장’이라고 하는 종업원 없는 공장이다.

⑷ 4단계 — 네트워크로 원자화된 플랫폼기업 단계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모바일 스마트 기기의 확산과 빅데이터 구축, 인공지능의 빠른 진보 등은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던 그렇지 않던 엄청난 정보비용의 감소를 만들어내면서 기업조직의 변화를 자극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보았던 하청, 외주화, 프랜차이즈화와는 또 다른 플랫폼 기업과 스마트 공장이 등장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기업구조는 물론이고 노동방식과 일의 개념, 나아가 소득을 얻는 개념과 사회안전망 체계를 다시 한 번 흔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에서부터 우버, 에어비엔비까지 포괄하는 플랫폼 기업에 연결된 프리랜서나 노동자들은 사회적 안전망도 취약하고 소득도 매우 불안정한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플랫폼 기업의 유형 © Nick Srnicek, Platform Economy, 2015

새로 부상한 플랫폼 기업들은 전통적 기업들과 달리 ‘보이는 손’으로 공급자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과정을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완전 경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가치를 창출하게 하고, 그 시장을 작동하게 하는 대가로 이익을 취한다. 이들 기업의 가치 창출 구조를 보면, 소비자와 공급자의 개념, 정규 노동과 비정규 노동의 개념이 모호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에어비엔비의 사업 구조를 보면, 자신이 소유한 공간 중 일부를 플랫폼에 내놓고, 플랫폼의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된 가격과 이용자의 평가에 따라 거래가 체결된다. 제공자는 다른 서비스의 이용자가 되기도 하고, 숙박부터 청소, 식사, 관광에 이르는 여러 서비스가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지만, 이들은 모두 플랫폼과 직접 고용 관계가 없다.

플랫폼 기업은 명백히 현대 기업의 진화에서 중요한 혁신이기는 하지만, 그 혁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라는 혁신기업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적 난제도 함께 등장한 것이다.

분명 우리는 거듭되는 혁신 덕분에 기술적으로는 더 적은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더 풍요로운 삶과 더 많은 여가시간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상품이 있으면, 플랫폼을 통해 직접 원하는 소비자를 찾고, 거래를 할 수 있다. 꼭 기업에 속하지 않아도 전문성과 기술이 있으면 직접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집부터 작은 공구까지 대여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한 제약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바꾸지 못한 과거의 틀 때문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전환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술 변화가 주는 고통은 ‘불안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 바로 거래비용 감소에 따른 기업조직 변화가 불러온 고통이다. 외주하청 문제도 비정규직 문제도 여기서 나왔다.

기술혁신에 따른 기업조직 변화로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그에 맞춘 노동 방식과 사회안전망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효율성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고통은 다수에게 돌아왔다. 정작 중요한 미래의 숙제는 기술혁신이 아니라, 노동 방식과 사회안전망의 혁신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까? © pixabay

[참고문헌]

데이비드 와일(David Weil), 2014, 『균열일터(Fissured Workplace)』, 황소자리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D. Chandler, Jr)저, 김두얼 외역,1977, 『보이는손(The Visible Hand)I,II』, 지식을 만드는 지식

에스핑 엔더슨 저, 박시종역, 2007,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성균관대학 출판부

토마 피케티외저, 유엔제이역, 2017, 『애프터 피케티(After Piketty)』, 율리시즈

Nick Srnicek. 2017. Platform Capitalism. USA. Polity Press

Oliver E. Williamson, 1985, 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 New York, The Free Press

R.H. Coase. 1988. The Firm, The Market and The Law.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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