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이원재(LEE, Wonjae)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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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in readMay 16, 2018

이원재(LAB2050 대표)

정책을 실험하는 사회© Shutterstock.com

2016년 2월, 핀란드 총리실에는 ‘실험하는 핀란드’라는 팀이 설치됐다.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에 대해 실험을 진행하며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임무를 맡았다. 동시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하는 문화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일도 책임진다. 정부와 민간 영역 전문가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별동대다.

핀란드는 사실 가장 앞선 복지국가와 역동적 시장경제와 혁신적 교육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다. 그런 핀란드가 왜 지금 정책 혁신을 이야기할까? 그리고 왜 ‘실험’을 내세웠을까?

핀란드는 디지털 전환 등 기술변화가 고용시스템을 흔들면서 기존 복지국가 체제의 유효성이 의심받는다고 판단했다. 더 빠르고 유연한 사회시스템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구축해 둔 복지국가 전통은 강력하다. 느낌만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 핀란드가 작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증하면서 큰 정책 변화를 만들기로 한 이유다.

사실 핀란드의 움직임은 유럽에서 최근 확산된 ‘폴리시 랩’(정책실험실)의 흐름 위에 있다. 영국의 사회혁신 싱크탱크 네스타는 2015년 3월 ‘실험하는 정부를 통한 더 좋은 공공 서비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낸다. 이 보고서에서 네스타는 하향식 정책 결정과 직관에 의존한 정책 실행이 많은 정책 실패를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시민 참여와 과학적 방법론을 갖춘 정책 실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덴마크 정부가 세운 마인드랩, 영국 총리실에 설치된 폴리시랩, 핀란드의 데모스 헬싱키 등이 이런 정책실험실 역할을 했다. 이들은 디자인 싱킹, 행동경제학, 시민참여, 빅데이터 분석 등의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정책결정과정을 디자인하고 실험한다. 최신 경영혁신 및 사회혁신 방법론을 정책 혁신에 접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핀란드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기본소득 지급이나 선택권을 늘리는 바우처 지급 확대 정책처럼 크고 보편적인 정책 실험을 진행한다. 실험군과 비교군을 정해 두고, 정책 시행 결과 대상자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지방정부나 시민사회 등에서 작지만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실험하도록 촉진하기도 한다. 정책아이디어 및 투자를 위한 인터넷 플랫폼 ‘꼬께일룬 빠이까’(‘실험 장소’의 핀란드어 표현)를 연 것이 그런 노력의 일부다.

전환의 시대다. 사회는 이제 꼭대기의 한 명이 아래로 규칙을 내리꽂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수평적으로 만나 교류하는 가운데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정책결정 및 실행과정에도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들을 직접 만나며 의제 방향을 정하고, 실험의 성공과 실패를 기반으로 더 큰 정책결정을 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근 만난 마쿠스 카네바 핀란드 총리실 시니어 스페셜리스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책 실험은 결과에 상관없이 큰 가치를 지닌다. 성공이든 실패든 정부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신뢰성을 더 높일 수 있다.”

한국에도 실험이 필요한 시기다. 고용은 불안해지고 고령화 속도는 빨라진다. 그런데 이 사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비전은 부족하다. 외국을 둘러봐도 우리에게 꼭 맞는 모델을 찾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정책 혁신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실험과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다. 지방정부에서 벌이는 수많은 새로운 시도 역시, 정리하고 점검해 보편화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핀란드의 실험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 <한겨레>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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