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인가, 의도인가? 2015년 최고의 파격 금융앱 iOS <1Qbank>

Obkim
Lazy Eval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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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an 5, 2016

금융권 서비스라고 하면 보통 IT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낮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일쑤인데, 하나은행은 언제나 예외다. 하나N월렛으로 전자지갑의 개념을 일찌감치 제시한 바 있으며, 뱅크월렛카카오와 발빠르게 제휴할 만큼 IT트렌드에 민감하고 앞서가는 은행이다. (** 2016.1. 6 수정 / 뱅크월렛 카카오와 가장 먼저 제휴한 곳은 우리은행이라고 합니다.)

어플리케이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다른 은행이나 금융사는 국내 점유율이 낮은 iOS를 홀대한 반면, 하나은행의 iOS 지원은 시기적으로도 빠르고 안정적인 편이었다(사실 다른 은행의 iOS앱을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다). 인터페이스를 전체를 뒤집는 과감한 업데이트를 여러 차례 단행했던 것도 기억난다. 버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메트로UI를 적용한 듯 한 평면적이고 심플한 인터페이스는 비금융권 서비스와 비교해도 실험적인 편에 속했다.

메트로 인터페이스와 절제된 디자인, 아이콘 (출처 : https://www.apkdigg.co/terry/app/screenshot.php?nid=1744595)

2015년 말, 하나은행은 KEB와의 합병을 알리며 기존 하나은행앱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렇게 탄생한 하나은행의 새로운 iOS 어플리케이션 ‘1Qbank’앱은 대한민국 금융계에서 그 어느 기업도 하지 못했던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물이었다. 짧은포스팅을 통해 ‘1Qbank’앱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기로 하자.

1Qbank앱의 마켓 스크린샷과 아이콘

Simple, Smart, Speed!

더욱 빠르고 똑똑해진 KEB 하나은행의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 ‘1Q bank’를 만나보세요.

- 주요 서비스 개편 사항 -
1. 재미와 편리함을 동시에~! 더욱 심플해진 메인화면
-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메인화면을 구성하였으며, 컨트롤러(휠)를 활용하여 아날로그 감성의 표현 및 재미있는 요소를 가미하였습니다.

2. 큰 화면에서도 한손으로 메뉴를 사용하실 수 있어요~! 편리해진 전체메뉴
- 메뉴구조를 전면 개편하여 원하시는 업무에 대해 쉽고 빠른 접근이 가능합니다.

3. 단순한 정보 나열식 화면은 이제 그만~! 쉽고 빠른 이체화면
- 펼침/닫힘 UI를 통해, 입력 내용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효과로 이체 단계를 확인해 보세요~

4. 이체할 때 매번 계좌번호를 입력했던 번거로움은 이제 그만~! 입/출금 주계좌 설정
- 주로 사용하는 입/출금 주계좌 설정으로 더욱 쉽고 빠르게 이체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앱스토어 소개글 발췌>

‘편리와 재미를 동시에’, ‘큰 화면에서도 한 손으로’, ‘펼침/닫힘UI’ 그리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등의 표현을 통해 하나은행이 인터페이스 개선에 꽤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더우기 두 번이나 등장하는 ‘재미’와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단어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브랜딩

1Qbank앱은 하나은행의 업데이트 버전이다. 앱의 이름이 바뀐 것에 머물지 않고 하나은행을 연상할 수 있는 흔적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무심코 업데이트를 한 사람이라면 하나은행앱이 사라진 줄 알고 열심히 찾게 될 것이다. 이 정도로 모든 것을 갈아 엎는 브랜딩 사례는 흔히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브랜드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인지도는 매우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의 많은 은행들이 합병 혹은 브랜딩 캠페인을 통해 앞에 영어 이름을 병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넘어가도록 하자.

적어도 이것보다 훨씬 낫다. 이게 진짜 버린 자식이다.

1Qbank? 얼핏 들으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중화권 시장을 노리기 위해 <아Q정전>의 ‘아Q’를 차용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밝혔다(실제로 이 앱은 아Q를 연상시키는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하나은행앱이 업데이트하여 바뀐 것인 만큼 ‘1’은 아마도 ‘하나’를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젊은이들 역시 ‘하나도 없다’는 표현 대신 ‘1도 없다’를 쓰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의미는 아마도 ‘한큐에 해결한다’의 ‘1Q’일 것이다. “하나은행과 합병한 구 KEB외환은행의 서비스를 한큐에!” 라는 느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앱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일큐뱅크]인가, [하나(은행)큐뱅크]인가? 검색을 하다 우연히 걸린 기사에 발음이 표기되어 있어서 다행히 [원큐뱅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스팅에서는 발음 없이 1Qbank로 통일하도록 하겠다.

인터페이스/인터랙션

마켓의 스크린샷과 소개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1Qbank앱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매우 과감한 시도를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화면 상단을 채우고 있는 카드와 휠(컨트롤러)이다. 플랫 인터페이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휠 같은 어포던스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휠은 사용자들에게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한 번 직접 휠을 돌려보자.

이건 꼭 직접 돌려 봐야 한다.

매우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함께 카드가 돌아간다. 더 놀라운 것은 카드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진동’이 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휠을 돌리면 진동이 미친듯이 울린다. 마치 듀얼쇼크를 잡고 FPS를 하다가 기관총을 맞는 그런 기분이다.

이 정도의 강력한 피드백이라면 반드시 사운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맞고, 포커 등의 보드게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밑장 빼는 소리’ 혹은 ‘패 돌리는 소리’의 그것이다. 휠을 돌리면 역시 연속해서 카드 넘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은행앱이라 그런지 돈과 관련된 이미지가 연상된다.

평경장 : 간나새끼. 밑장을 빼면 소리가 달라, 소리가.

앱을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인 독자를 위해 찾은 비슷한 소리

휠에 대한 1Qbank의 강력한 의지는 네비게이션에도 찾아 볼 수 있다. 메인 화면에서 우측 상단에 있는 ‘전체 메뉴’를 누르면 화면을 덮는 사이드 메뉴가 펼쳐지는데, 인터페이스가 iOS의 드랍다운 메뉴처럼 다이얼을 연상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휠이 세로로 설치(?)되어 있다.역시 회전할 때 마다 진동이 느껴진다(밑장 빼는 소리도). 위치 또한 절묘한 것이 오른손잡이가 엄지손가락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소위 ‘Thumb zone에 정확하게 위치한다. 이 정도면 ‘휠 덕후’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1Qbank앱의 메인 네비게이션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네비게이션 위의 두 줄 짜리 막대를 발견했을 것이다. 하나는 녹색, 하나는 회색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장식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하위 메뉴’에 진입했음을 표시하는 인디케이터이다. 녹색은 highlighted, 회색은 normal 상태를 의미한다. ‘통합지방세+’와 같이 하위 메뉴가 있는 리스트를 선택하면 인디케이터의 상태가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은유적인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애니메이션

첫 화면의 다이나믹한 인터페이스로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은행앱을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과업, ‘계좌이체’를 해 볼 차례이다.

1Qbank앱의 이체 인터페이스

이체 화면으로 이동했는데… 응?
분명히 무엇인가 방금 움직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 아니다. 이체 화면에 진입하는 순간 화면 왼쪽 상단에 있는 금고 문이 열렸던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빨간’ 금고로 미루어 봤을 때 두 금고는 내 계좌와 상대방 계좌를 상징하는 것 같다.

위에서 부터 진입시, 출금계좌 선택시, 상대방 계좌 입력시 화면

이체 화면으로 들어오면 내 금고(계좌)가 열리고,
출금할 계좌를 선택하면 내 금고에서 돈을 들고 트럭이 떠나고
상대방 계좌를 입력하면 내 돈을 남의 금고에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Ready!’라고 적힌 버튼이 긴박하게 점멸한다.

이어서 보면 약간 무섭다

아직 비밀번호도 입력하지 않았지만,
내 돈이 한 박자씩 빨리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기분탓이다.
내 금고에 돈이 하나도 안 남은 것 같지만 역시 기분탓이다.

평경장 : 손은 눈보다 빠르다. 무슨 패를 잡고싶니?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로딩 애니메이션을 1Qbank앱은 이처럼 디테일하게 처리하고 있다.

사용자 경험

왜 로딩 애니메이션에서 내 금고의 돈을 모두 꺼내갔는가?
라는 의문은 ‘이체금액’을 결정하는 인터페이스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은행앱으로 계좌 이체를 할 때 가장 빈번하게 송금하는 액수는 얼마 가량일까? 은행의 데이터를 열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바일 송금/결제 서비스인 Toss, 카카오 페이 등의 초기 이체한도가 30만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30만원 미만의 소액거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더라도 부동산 거래, 대출 상환 등 큰 금액의 이체가 필요한 경우는 앱을 사용하기보다 은행을 직접 방문하게 된다. 모바일 송금의 다수는 소액결제, 온라인 쇼핑의 무통장 입금 등이다.

그러나 1Qbank앱은 이체금액을 입력할 때 역시 도발적인 경험을 준다.

‘전액’이 가장 눈에 띄고 쓰기 편한 위치에 있다.

바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All in’을 종용하는 버튼을 배치한 것이다.

직접 입력 없이도 금액을 입력할 수 있는 버튼을 제공하는 것은 기존 하나은행앱의 편리한 인터페이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처럼 과감하게 전액을 이체하는 경험을 적극 유도하는 것은 매우 과감한 시도이다.
그리고 ‘전액’버튼을 클릭하면, 단 한마디 경고도 없이 전액이 입력된다. 쇼핑몰에 33,000원을 입금하려던 사람이라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경험이다.

고니 : 좋아. 이 패가 단풍이 아니라는 거에 내 돈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를 건다. 쫄리면 뒈지시던지.
아귀 : 이 씨발놈이 어디서 약을팔어?
고니 : 씨발 천하의 아귀가 혓바닥이 왜이렇게 길어? 후달리냐?
아귀 : 후달려? 허허허허허허허.. 오냐 내 돈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를 건다. 둘 다 묶어!

금액을 입금하거나 출금하면 메인 페이지에 알림 배지(badge)가 하나 추가된다.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숫자가 적힌 빨간 동그라미 말이다.

그런데 그 위치가 조금 절묘하다.

긴급탈출, 혹은 자폭 버튼의 붉은 동그라미가 연상된다

바로 ‘로그아웃’ 버튼 위에 알림 배지가 놓여 있는 것이다.

배지를 지우고 싶다면, 앱에서 탈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로그아웃을 불사하고 버튼을 터치하면, 배지는 지워지지 않고 로그아웃 된다. 로그인을 하면 로그아웃 버튼 위에 빨간 배지가 남아 있다. 따라서 입출금 내역이 남아 있는 한 홈스크린에 남아 있는 빨간 배지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설정에서 1Qbank의 알림을 끄거나 앱을 삭제하는 것 뿐이다.

아귀 : 패건들지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해머갖구와!
정마담 :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돼?
고니 : 잠깐! …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
아귀 : 구라치다 걸리면 피보는 거 안배웠냐?

** 다행스럽게도 배지는 2016/1/4 업데이트 이후 개선되었다.

마무리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양한 연령, 다양한 사용패턴을 가진 사용자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의 경우 더 어렵다. 많은 사용자를 가진 선도적 서비스들이 인터페이스를 개선할 때는 언제나 보수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금융 서비스는 돈과 직결되어 있다. 복잡한 관련법과 보안에 휘둘려 덕지덕지 기능을 추가하다 보면 명료하고 간결한 인터페이스/경험을 주려는 처음의 시도는 온데간데 없는 지저분한 서비스가 탄생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메이저 금융 서비스가 바로 그 참혹한 결과물이다.

하나은행, 아니 1Qbank앱의 인터페이스와 사용성은 객관적으로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하나은행의 간판이 되는 앱에 이처럼 파격적인 요소를 적용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찌 되었든 서비스에 끊임 없는 혁신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엉망인 상태로 버려둔지 한참이 지난 은행앱들도 수두룩하니 말이다.

1Qbank앱과 하나은행의 과감한 시도가 다음에는 조금 더 사용자를 고려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면서,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을 준 제작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마담 : 고니는 어디로 갔을까…? 안녕이란 말도 못했는데…
고니를, 아냐구요? 내가 아는 타짜중에… 최고였어요.

추신 : 글감과 스크린샷을 제공해 주신 황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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