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신화의 불편함

Uncomfortablity of viewing successful story.

아침에 페이스북을 훑어보니 ‘서빙하는 남자'의 <몸값 올리는 방법>이라는 글 (http://blog.cyworld.com/chan10000/9761226)이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일하는 방식, 빠른 시일안에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나름의 비법을 공개한 이야기였는데, 특별한 능력보다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태도가 참 인상깊었다. 그리고 아마 글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한 것을 직접 실행해 옮기는 실행력도 상당한 분이 분명하다. 대단하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사실 위 글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난 적어도 10년전에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시절 다니던 영어 학원 선생님께서 당신이 성공한 나름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담배 심부름을 요청 받으면, 담배만 사갈 것이 아니라 성냥도 준비하고, 재떨이도 준비해야 한다.”란 말씀을 하셨다.

위 글에서 나온 [군대 시절 일화]를 보면서, [담배 심부름]이 오버랩 되며, 부끄러웠다. 심지어 최근까지 열광했던 웹툰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가 복사 업무를 하면서, 복사하는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부서의 선배 사원이 장그래의 “싹수"를 발견하는 ‘지나가는 에피소드'까지 떠올랐다. <미생>의 에피소드 역시, 적어도 6개월 전에는 접했던 이야기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글이지만 마냥 이 글을 좋다고 공유하지 않았다. 소중한 조언들을 지금까지 염두하고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음이 부끄러움 때문은 아니다. 이 글을 공유하는 ‘사회적 의미’가 굉장히 찜찜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조언들을 남들보다 훨씬 더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좋은 환경속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사실 찜찜한 이유는 굉장히 명료하다. “김연아는 대단하지만, 김연아의 성공스토리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특출난 개인의 성공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당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언론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논제를 설정하는 방식과 완벽하게 동일한데, ‘거짓말'을 한다기 보다 ‘말하고 싶은 사실'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찜찜함이 어느정도 가라앉자, 굉장히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청소년', ‘나의 후배', ‘피붙이'에게 각각 해줄 조언이 다를 수 있겠다는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가능성에 대한 불편함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외유내강>은 ‘나 자신은 거친 세상을 헤처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을 키우도록 독려하고, 남에게는 이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니 바꿔보자고 말하자' 란 의미가 되어버렸다.

결국 ‘청소년'들에게는 “너의 꿈을 마음껏 펼처라.” / “짱돌을 들어라" 라고 말하면서 내 피붙이들에게는 “지금 당장 너가 미친듯이 하고 싶은게 없는 이상, 대학진학이 네가 앞으로 하고싶은 일을 할 가능성을 높이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의미있는 일을 할 친구들과의 연결점이 될 수 있어. <공부에 발목잡히지 않아야지.> 열심히 해보렴! 애초에 네가 정말 하고 싶어서 미쳤다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전에 이미 하고 있었을꺼야.” 라고 말하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정확히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고, 자신이 없다는게 불편하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