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징표

하지만, 겪는다고 꼭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른이 되어 가면서 겪는 것들에 대한 공감은 조금 더 이끌어 낼 수 있을법 하다. 누구나 겪을 법 하지만, 겪은 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들.

먼저, 살다보면 부모가 슈퍼맨이 아니라 모순에 빠져있는 평범한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온다. 보통은 어느 순간이라기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아 가기 마련인데, 나는 이런 일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일한 절대적 기준으로 부모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부모를 바라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니 일종의 틀을 깨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특히, ‘나라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부모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슈퍼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까지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이 대장정의 끝이다. 물론 누구나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다음은, 가까운 이의 죽음이나 생명이 꺼져나가는 것을 직접 느껴본 경험이다. 첫번째의 경험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긴 시간에 걸쳐 경험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두번째 경험은 편차가 굉장히 크다. 사고나 전쟁처럼 예상치 못하게 겪은 생명의 사라짐은 트라우마가 되어 버리는 만큼 당연히 겪고 싶어할만한 경험은 아니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더 강하게 할 뿐”이라는 니체의 말 대로라면,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강해지는 기능을 함이 분명하다.

아주 가까운 가족을 보내고, 품안에서 생명의 온기가 사라짐을 느끼는 경험. 그런 경험을 했다면, 하염없이 울고, 슬퍼해도 좋다. 그 이후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삶 자체에 대한 염세주의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번째의 극복은 결국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살고, 막상 죽음의 공포로부터는 초연(超然)할 수 있는 모습이다.

마지막은 위의 두가지 경험과 성격이 전혀 다른 경험으로서, 극복 함으로서 경험이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자각으로 완성된다. 살면서, 우리는 쉼없이 선택을 해야한다. “오늘 밥은 뭘 먹지?”라는 일상적인 선택부터,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법한 무게감 있는 선택까지. 혹시, 어느 순간, 선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느낀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내 인생을 바꿀만한 중요하고 힘든 선택의 순간 “선택의 무게를 짊어질 각오”를 하고 선택했는지. 여기서 선택의 무게란, 그 선택으로인해 맞이할 ‘최악의 결과’까지도 염두해 두고,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도 담담하게 맞이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의 순간 선택을 하지 않고, 도망칠 유혹과 선택의 결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서 도망칠 유혹을 맞이하기도다. 이 유혹 또한 얼마나 달콤한지!

이러한 선택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지 보여지는 가장 보편적 측면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가장 완벽한 관찰자인 내가 나의 모습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 역시 주로 이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어른스럽게 행동하라"라는 명령조의 조언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왜냐면, 이러한 경고를 무시(혹은 염두하더라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맞닥뜨리는 것이야 말로 ‘어른'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이의 의도는 — 말하는 이가 인지 하든 못하든 — 실상 ‘모난 행동은 하지 말아라'의 다른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른스러움'은 없다. 그냥 ‘어른’이 있을 뿐. 그리고 그것을 받아낼 각오를 하며 행동하는 당신은 이미 어른이다. 당신과 함께, 단단한 어른이 되길 나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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