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에서 30대를 바라보며, 

도전과 길잃음으로 가득찼던 20대를 마무리하며, 

SOHYUN PARK
Lif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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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20대의 마지막 하루의 시작

아침에 일어나, 엄마, 아빠와 함께 육수를 진하게 내린 떡국을 먹었다. 어제와 똑같이 아빠는 신문을 읽었고, 엄마는 사우나를 갔다. 나는 별 다를 일 없이 믹스커피 한잔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많은 생각에 잠긴다…

2003년. 10대의 마지막은 재수학원에서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삶이야… 하면서 스스로를 동정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나만 대학을 왜 못가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렇게 시작했다. 365일 네모난 재수학원 교실에 갇혀, 대학을 가지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면서…대학이 모든 인생을 결정하는 잣대처럼 말이다.

대학을 가지못하면 소위 ‘루저’ 가 되는지 알았고 서울 내 대학에 진학하면 모두가 취업이 된다는 더욱 ‘ 또라이같은생각’ 을 하고 있었다.

나의 20대는 8개의 직업을 경험하는 방황과 기회의 연속이었다.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을 했으며 내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 적금을 드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신호였다. 어른이 된것 같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어른이라는 도장을 찍어준 것 처럼 굉장한 경험이었다. 24살 처음 내 통장에 찍힌 80만원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유행했다.)

청년인턴으로 1년 간 8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사회생활 딱지를 떼었다. 한달에 50만원씩을 저금하면서 틈틈이 국내외 여행을 다녔고, 계약이 만료되자 중소기업으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나의 20대 방황이 시작되었다.

의류MD,관광가이드,이벤트기획, 비서, 학원강사, 소셜마케터, 레스토랑 매니저, 소매상

정착이 없었다. 세상에 하고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남들보다 2년 늦게 입학한 대학생활로 2년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 . 그 후, 5년 동안 이 많은 직업군을 경험했다. 주위 친구들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제는 정착해야지. 결혼도 해야하잖아. 한 직종에 전문가가 되어야 하잖아.”

아직도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취미로 하기로 타협하고 앞으로 “ 나는 00 하는 사람이예요” 라고 말할 나의 전문직종을 찾아 면접을 보러다녔다. 30대 여성에게 한국사회는 관용적이지 않다. 틈새를 주지 않는다. 30대 여성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걸 면접관들이 나에게 잘 알려준다.

“ 결혼은 언제? 양육을 도와줄 사람은 있고?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요.”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즐기며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한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이상하리만치 즐거운 사회생활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미없어서 다양한 직업을 택한 것이라기 보다는, 많은 것이 허락되는 20대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채우고 싶었다.

2014년 1월 1일. 내일이면 30대의 첫 하루가 시작된다.

20대의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고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기였다면, 30대는 하나의 직업을 가지려 노력하는 어른으로서의 나. 결혼을 하고 부인이 되고, 엄마가 되는 또 다른 놀라운 경험들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또 다른 멋진 방황들이 모여 앞으로의 10년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만나줄지 기다려진다. 30대의 마지막 하루는 어떤 글을 끄적일 수 있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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