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차별과 불평등을 키워가는 방식

Sungkyu Lee
Mediagotosa
Published in
3 min readJan 28, 2019

기술은 정치적이다.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특정한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도구이기에 기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풀 논쟁을 보면서, 유튜브의 허위정보 확산을 보면서도 기술이 중립적이라고 한다면 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라는 정치행위자는 수많은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권력을 만들어간다. 이를 네트워크 권력이라 한다. 사용자라는 노드가 특정 기술에 집중될수록, 그리고 기술에 밀어넣는 데이터의 양이 넘쳐날수록 정치행위자로서 기술이 보유한 권력은 강력해진다. 페이스북이 전세계의 여론을 통제할 수 있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력은 다원적으로 배분될 때 비로소 정의로 향하게 된다. 권력이 특정 행위자에게 집중되면 독재와 파시즘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불러온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인간에 의해 발명된 것도 권력의 작용방향을 인류의 행복과 평등을 위해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특이하게도 정치행위자로서의 기술은 민주주의의 통제로부터 적잖이 비켜나 있다. 정치권력도 경제권력도 배분의 오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통제의 권역 밖에 놓여 있지는 않다. 반면 기술은 견제와 감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기술의 속성이 지닌 복잡성 탓도 있겠지만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그릇된 신화에서 비롯된 탓도 크다. 페이스북이 트럼프 대통령 다루듯 자신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스〉를 향해 불만을 토로한 사례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고삐 풀린 권력으로서 기술은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얼굴인식 기술로 인종을 차별하고, 목소리와 단어의 톤·매너로 성별을 차별한다. 기술 숙련도가 높은 이들에게 더 많은 소득을 몰아주면서 불평등도 강화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저숙련 노동자들의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는 실증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기술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기술로 창출한 부가가치의 몫이 노동자들에겐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기술행위자들 간의 불평등도 더욱 커져간다. AI의 대가 빈지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거대 IT기업을 중심으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고, 인력이 몰려들고 있으며, 권력도 집중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은 AI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고, 데이터 착취의 대상으로만 남게 된다. 주변부 국가들이 중심부 국가들에 의해 원료를 착취당한다는 종속이론이 기술영역에서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민주주의 기능은 대중들에게 경제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 권력체계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기술권력에 대입하면 민주주의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거대하고 통제받지 않는 기술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 권력체계를 민주주의는 제공해줄 수 있어서다. 혁신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지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기술 우위의 시대에 더더욱 절실해지는 까닭이다. 정치로서의 기술을 이제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으로 불러들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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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kyu Lee
Mediagotosa

MediaLab Director@Mediati /ex-ohmynews journalist, Daum 'bloggernews' editor, 'Tatter&Media' Chief Editor, Maeil Business newspaper researcher, CEO at Muz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