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리즘과 21세기 데이터 노동조합

Sungkyu Lee
Mediagotosa
Published in
3 min readSep 19, 2018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철강 노동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성을 달성하면 해고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은밀한 태업(Soldier)은 그들만의 소심한 저항방식이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우려를 씻어내면서도 작업장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골몰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동작을 세밀하게 관찰한 뒤, 23개로 구분했다. 작업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까지 측정했다. 낭비를 줄이면서도 최적의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는 표준적인 작업방식을 그는 노동을 학습함으로써 도출했다.

지금은 익숙한 성과급 제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목표 생산량을 달성한 노동자들에겐 더 많은 임금이 돌아갔다. 경영자들도 저원가 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테일러리즘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영 이론으로 인식되지만, 당시엔 고임금 저원가의 효율 향상이라는 목표를 만족시키는 혁신적인 접근법이었다. 노동자와 공장주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 그 결과가 테일러리즘이다.

하지만 테일러리즘은 노동자의 작업을 탈숙련화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숙련 기능직 노동을 평범한 단순노동자로 전락시킨 전범이었다.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기법이 도입된 이후 공장 안에서 노동 장인의 손기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작업 속도는 몰라보게 향상됐지만 노동자는 도구와 기계의 보조자로 전락했다. 면밀한 데이터화 작업이 일궈낸 경영의 승리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동일한 흐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번엔 테일러의 역할을 AI가 대신한다. 스마트팩토리니 하는 이름으로 공장 내에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는 로봇은 이전과 달리 AI로 무장한 채 배치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을 기계의 눈으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테일러의 세밀한 관찰은 머신러닝의 비전 인식과 데이터 학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 AI 기계들은 노동자를 학습하면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기존 노동자를 AI 기계로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테일러나 머신러닝이나 배움의 대상은 노동자들이었다는 것. 100년 전 테일러나 지금의 AI 엔지니어들이나 노동자들의 동작을 세세하게 분석해 데이터로 전환했고. 작업을 표준화해서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분석의 도구만 달라졌을 뿐, 노동자들로부터 학습해 노동자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접근법에선 다르지 않다.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자들은 더 쉽게 대체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남은 건 노동자의 저항권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물리적 파업은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다. 점차적으로 기계로 대체하면 그만인 세상이다. 러다이트적 발상으로 유효한 결과를 성취하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노동자는 기계가 학습할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을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AI의 데이터 학습을 방해함으로써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저항할 수 없다면 데이터 제공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데이터 없는 AI는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데이터 통제권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21세기 테크노테일러리즘에 대항할 수 있는 약자의 저항방식으로 데이터 노동조합이 거론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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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kyu Lee
Mediagotosa

MediaLab Director@Mediati /ex-ohmynews journalist, Daum 'bloggernews' editor, 'Tatter&Media' Chief Editor, Maeil Business newspaper researcher, CEO at Muz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