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아닌 언어

2016.11.27. ‘언어의 미래. 미래의 언어.’를 마치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올까

본 글은 미친색기(미래로 향하는 친숙하며 색다른 기행)의 메인 멤버들이 ‘언어의 미래. 미래의 언어.’라는 주제로 모임을 진행하기 전, 자신의 생각을 작성한 단상이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렇기에 미래 얘기를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여기 남겨본다.


감성팔이 시골장사꾼, Simussmooth의 단상
“미래의 언어”

언어의 순수성은 변치 않을 것이라 본다. 즉 ‘의사전달’이나 ‘감정표현’과 같은 언어의 순수한 기능은 유지가 되어질 것이다. 다만 언어의 종류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본다. 지구촌의 다양한 언어는 점차 다문화 가정을 시발로 민족의 경계는 모호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언어의 종류는 적어질 것이다. 이것의 연장으로 국경의 경계 또한 허물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인간의 언어는 단일화 되어가지만, 다른 생명체의 언어가 발견되어지면서 민족이 아닌 종족간의 언어는 다양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침팬지, 개, 돌고래 등 지능이 높은 종은 이미 훈련을 통해 인간에게 통제되어진다. 통제가 된다는 것은 나아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훈련 되어지지 않는 종들도 그들 특유의 행동양식이 빅데이터로 분석되어 점차 인간의 통제하에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든 생명체가 AI를 이용한 인간의 통제 하에 있게 된다라… 왠지 모를 암울함이 엄습해온다.

Content image source : Daily Mail


인공지능이 언어를 만든다면?

코딩하는 맥주덕후, Bingocake의 단상
“말과 글이 아닌 언어”

기계가 이해하는 언어인 프로그래밍 언어는 기계와의 소통이라고 해서 말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텍스트로 남긴다고 해서 글이라고 보기에도 좀 묘하다. 모임에서는 외계인과 피아노로 소통하는 영화나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이것 역시도 말이나 글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 시점에 나온 흥미로운 질문. “인공지능이 언어를 만든다면?”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인간종이 있었다면 어떤 언어를 썼을까라는 질문도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이종족도 영어를 쓰는 것처럼 다른 인간종도 지금 우리의 언어를 썼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 시점에서 인공지능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공지능 입장에서 인간은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최소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형태의 언어를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형태는 어떨까?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찾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난 아날로그 신호를 쓰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기계이다. Input도 Output도 디지털 신호로 되어 있지만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신호를 만들어서 사람과 자연스럽게 소통을 할 것이다. 즉 기존의 말과 글이 아닌 형태가 아닌 동시에 그 형태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인공지능은 언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인공지능끼리 동시에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아날로그 신호를 쓸 것이다. 아날로그는 암호화할 때 디지털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기에 소통을 위해서도 보안을 위해서도 아날로그에 점점 가까워 질 것이다.

아날로그인 척 하는 디지털 신호. 신호가 곧 언어가 되는 시대 근처에 우리는 살고 있다.

Title/Content image source : East African Monitor


언어를 배운 원숭이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역사매니아 영상 디자이너, Molbong의 단상
“미래의 언어, 언어의 미래.”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사실 ‘길’ 이라기 보다는 길이라고 추측되는 ‘흔적’에 가깝다. 깊은 숲 속 이었고 나는 며칠째 길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있다. 성난 가시덤불은 어리석은 이방인을 혼내주기라도 하는 듯 나의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할퀴었다. 아무도 없었고, 외로웠다. 무서웠다.

갑자기 왼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무줄기와 나뭇잎을 조용히 스치고 가는 소리. 나는 놀랐고, 곧 무서움과 다행스러움이 교차하며 지나갔다. 심장 박동수가 점차 빨라져 가는 사이, 그 인기척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온몸에 난 수북한 털, 손과 발은 차분하게 바닥에 놓여있는 그것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원숭이. 아니 그것은 침팬지였다. 분명하다. 몇 년 전, 동물원에서 봤던 침팬지와 똑같았다. 놀라움이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침팬지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봤던 침팬지의 꽥꽥대는 울음소리가 분명히 아니다. 구강구조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익숙한 소리와 단어들. 주어와 서술로 이루어지는 문장배열. 분명했다. 지금 침팬지가 하고 있는 건 ‘언어’ 이다. 침착하게 나에게 언어로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침팬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들어 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철학 호르몬이 느껴지는 이 분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리고 곧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내가 왜 침팬지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는지 곧 이해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 할 수가 없다고 <지대넓얕>의 저자 ‘채사장’이 덧붙인다.

언어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류는 개인으로 보자면 너무도 약한 존재 이기 때문에 무리 생활을 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몇백만년의 진화 끝에 인류의 공동체는 더욱 커졌고, 곧 ‘의식’도 생겨났다
의식은 수많은 시간 속에서 더욱 진화하여 구체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갔고, 그와 비례해서 언어도 구체적이고 세련되어 갔다

언어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면, 미래엔 과연 언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세기에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어떻게 변해갈까? 또 인공지능 언어는?

언어는 사라질 것인가?
진명 : 우리나라는 자국어의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워드프로세서를 만든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 하지 않나?
명진 : 좀더 보태어서 이야기 한다면 우리나라는 한번 빼앗긴 적이 있기 떄문에 더 욱 애착이 강한 것 같다.
하니 : 언어는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대의 영향으로 몇백년 후엔 한글의 입지가 많많 좁아질 것 같다.
정현 : 결국 민족이 없어져야 언어는 사라질 것 같다.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는 더욱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언어가 사라질것이다.
명진 : 언어는 민족이 사라져도 남을수 있다고 본다. 고어 들이 남아있는 증거가 있지 않나?
종국 : 남아 있다라는 것과 살아있다 라는 것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다. 민족이 있어야 언어가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하지만 언어의 전파에 있어선 민족의 전파도 있지만 문화의 전파를 통해 언어가 전파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외국에서 한글은 꼭 지키고 싶은 언어로 볼 것인가?
언어가 사라진다면 사라지는 언어는 지켜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명진 : 물론 지키려고 할것이다.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진명 : 예를 들어, 부시맨 같은 경우를 보면, 평소엔 그들의 언어와 행동에 있어 세계화의 물결에 맞게 우리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한다. 그렇지만 외국의 기자나 관광객이 오면 갑자기 옷을 벗고 전통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그로인해 경제적인 이득을 보니까 경제적인 이슈를 배제할수 없을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영어를 쓰는 것 처럼 보인다.
정현 :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준이 아니라 만약 전세계에서 500명만 쓰고 있는 언어가 있다 치자. 우리는 제 3자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모른체 해도 괜찮은가?
종국 : 지킨다는 것은 결국 그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진 : 관심있게 지켜보기는 하겠지만 3자 입장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니 :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신경 안쓸 것 같다.
지현 : 반대로 외국인들도 한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명진 : 언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을 보면, 언어는 듣는 영역이 매우 중요한데 만 약 여기에서 장애가 생긴다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부분에서 부적응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예를 들면 도덕성, 사회성 등에서 말이다. 언어가 안되면 곧 상회성도 지체된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소통방법
진명 : 외계와의 조우라는 영화를 보면 외계인과의 대화를 피아노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말이 안되면 음악(소리)로도 가능하다는 상상력 이었다.
정현 : 텔레파시를 통한 소통 방법을 상상해 볼수 있는데 그 방식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생각해 봤었다.
명진 : 지적 집합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개인적 경험으로 외주를 받아 일을 많이 하다보니 클라이언트가 생각하는 것을 빨리 동기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영과 클라이언트가 생각하는 영역에서의 교집합 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것이다.

처음 만난후 인사를 건네고 어떤 IT 기계에 서로가 생각 해놓은 영역을 저장해놓고 이를 올려 놓으면 상대방의 생각을 여과없이 빨리 알아낼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정현 :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내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확실히 효율적 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종국 : 최근에 애플에서 ‘스위프트’ 라는 언어를 만들었다. 현재는 스위프트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고 그것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도 완성도가 낮지만 이 언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 언어에 대한 미래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 하나?
명진 : 스위프트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이 만들었고 필요에 의 해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 할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나?
정현 : 지금은 주목 받지 못하지만 미래에는 어떤 것이 주목을 받을지는 역시 그 언어의 사용자가 그 가치를 결정 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다수가 그 언어를 사용하면 희소성의 가치가 결국 보편성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하니 : 사용자가 많아지면 그 만큼 자본의 흐름도 규모 있게 가질 것이다. 자본주 의를 사는 만큼 다수의 사용자가 결국 시장을 만드는 것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환기를 시키고 오늘 모임은 지금까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마무리 되었다.

모임이 끝나고 한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비롯한 인공지능 언어는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의 사고영역 안에서 발전해 왔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과의 삶의 방식이 같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스스로 배워 나간다. 만약 시간이 지나 인공지능의 사고와 인간의 사고가 괴리감이 생가고 서로의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면. 앞에 언급했던 “사자가 말을 할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수 없다” 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미래가 현실이 된다면 인간은 지금 괴물의 탄생을 앞장서서 만들고 있는걸까? 과연 괴물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Content image source : Business 2 Community
Content image source : Youtube — The School of Life
Content image source : Dramafever


“언어의 미래. 미래의 언어. (1부)” 클립 영상

“언어의 미래. 미래의 언어. (2부)” 클립 영상

2016.11.27. SUN.
신촌 스터디카페S
GOPRO : HERO 3+ BLACK, 1440/48 WIDE
BGM : Scott Holmes — Grab A Bar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