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속의 유전적 방향

2016.11.20. ‘스토리텔링의 미래. 미래의 스토리텔링.’를 마치고

본 글은 미친색기(미래로 향하는 친숙하며 색다른 기행)의 메인 멤버들이 ‘스토리텔링의 미래. 미래의 스토리텔링.’라는 주제로 모임을 진행하기 전, 자신의 생각을 작성한 단상이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렇기에 미래 얘기를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여기 남겨본다.


관객에게 3D라는 새로운 표현을 경험시킨 영화 아바타

코딩하는 맥주덕후, Bingocake의 단상
“이야기의 가치”

참가자 중 한 분께서 “완벽한 창작은 없다”라고 하였다. 새것은 없지만 새것보다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작을 영화화한 경우도 그런 케이스. 그렇다면 AI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제작한다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표절의 냄새조차도 맡기 힘들 정도로.

내용에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표현이 새롭다면 그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3D 영화로 뜬 아바타처럼. 게임이라는 콘텐츠처럼.

제작 방식이 새롭다면 또 다른 가치를 만들 것이다.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실시간이라거나.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결과를 선택할 수 있는 영화라거나.

확실한 것은 기존의 방식은 수년, 수십 년 뒤에는 그 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라고 예외일 수 없다. 창작자, 표현, 제작 방식보다 더 큰 변화를 맞이 한다면 이야기의 가치 기준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야기 소비주체는 이를 받아들이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갈리면서 과도기를 겪을 것이고 그 과도기가 지나가면 이야기 2.0 (혹은 3.0, 4.0…) 시대가 정착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컨텐츠가 아닌 쌍방향 소통형 컨텐츠를 가능하게 한 지금의 SNS처럼.

모임에서 얘기한 것처럼 가치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누구나 얘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깐. 그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줄 아는 사람이 조앤 롤링이나 밥 딜런을 뛰어넘는 창작자로 등장하여 우리를 새로운 이야기의 가치를 보게 해 줄 것이다. 난 그것을 받아들이는 세대로 남고 싶다.

Content image source : choolhuyn.tistory.com


영화 Love & Other Drugs에서는 색다른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감성팔이 시골장사꾼, Simussmooth의 단상
“미래의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다시 말해 이야기.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이야기를 물과 공기와 함께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에 이야기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물, 공기와 함께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야기는 무엇이길래 우리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할까? 이야기의 어원은 찾을 수 없지만 그 기원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생존을 위한 채집, 수렵, 번식의 노하우와 종족의 전통 계승을 위하여 이야기는 그 수단이 되었고 이후 문자가 탄생되며 기록(hi)되어진 이야기(story)를 우리는 역사(history)라 부른다. 이야기는 단순한 허구의 세상뿐만 아니라 현실까지 내포하고 있기에 현재는 결국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이야기가 어떤 모습일까? 자, ‘미친색기’와 함께 이야기의 미래로 떠나보자.

AI,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미래의 스토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인만큼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이었다. 알파고가 핫이슈인 적이 있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소프트웨어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성사되고 또한 알파고의 승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형태를 갖추지 않았음에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창작물 특히 오늘의 주제인 ‘스토리텔링’과 연관된 문학작품이 인간의 수준만큼 오르거나 더 우수하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시기에는 결국 인공지능을 하나의 존재로, 즉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을 하느냐 마느냐가 화두가 될 것이다. 이 날 모임의 한 게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A : 초반에는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소수자 차별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 상의 모든 존재보다 상위계급이라는 인식이 지닌 채 진화해왔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우수한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해도 당장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졌다 하더도 쉽게 그들에게 기득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에 다른 게스트가 말을 덧붙였다.

B :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씀이시다. 더 나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분석에 의한 창작의 수준을 넘어 자아가 생성되어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이 발견된다면 그때를 기점으로 인간은 그들의 작품을 인정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모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인 her

결국 AI의 창작물이 작품성에 문제가 없다면 인정을 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필자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생산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AI에게 가장 뛰어난 점은 분석, 처리 능력에 있어서 인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다. 이 거침없는 속도가 예술 특히나 문학계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우리는 과연 1시간 아니 5분 만에 집필된 소설을 인정할 수 있을까? 영화 ‘her’에 소개된 인공지능 사만다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인공지능 작업 속도가 현저하게 빠르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러한 속도라면 5분 만에 대작을 집필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사만다가 현실이 될 미래에 5분 만에 탄생할 창작물을 우리는 예술로 인정할 수 있을까? 작품성도 중요하겠지만, 필자에게 창작은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인내의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경리의 ‘토지’가 5분 만에 씌였졌다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그 작품을 바라보지 않을까? 참고로 토지는 26년간(1969~1994)의 집필 기간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든 AI든 누가 집필을 했느냐보다 어떠한 과정을 거쳤냐에 따라 예술을 정의 내릴지 초점을 맞추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제 3의 소통수단 혁명은 일어날 것인가?

문자의 탄생이 1차 소통수단 혁명이며 인터넷이 2차라면 과연 소통수단의 3차 혁명은 일어날까? 감정표현이나 의사전달을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갖고 있되 새로운 수단의 혁명이 탄생할까? 이에 대해 이 날 참석한 게스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A : 디바이스와 같은 소통의 도구에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B : 굳이 음성이 필요 없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통이 생겨나지 않을까? 자연스레 소통방식에서 언어가 스킵될 가능성이 크다.
C : 동의한다. 결국 말을 하지 않는 비음성으로 또는 뇌에서 뇌로 의사를 전달하는 시대가 도래할 거 같다.

거침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은 끝에 결국 디바이스와 같은 소통의 도구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아주 먼 미래에는 텔레파시와 같은 비음성으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2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가 현 인류의 조상이고 BC4000년경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서 발견된 문자가 가장 오래된 문자라면, 1차 소통혁명이 이루어지기까지 19만년 이상이 걸렸다. 이후 2차 소통수단인 인터넷이 발명되기까지 6000년이 조금 안 걸렸다. 급격하게 줄어든 경과로 보았을 때 3차 소통수단은 머지않아 발견될 것이고 이때가 아마 게스트들이 이야기한 비음성 소통의 시대가 아닐까? 그 시대를 살아생전에 겪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인터넷의 2차 혁명을 겪은 우리는 조만간 디바이스의 혁신은 겪을 것이라 확신한다.

스토리의 가치는 어떻게 변할까?

급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역행하거나 멈추어버리는 것은 결국 대중들의 관심으로부터 낙오되기 십상이다. 아날로그를 추억하는 세대의 입맛을 맞춘 제품이나 서비스는 점차 소수자들을 위한 영역으로 좁혀지고 대중들의 입맛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이야기의 가치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A : 이야기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의문이다. 또한 한 개인의 취향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노벨문학상의 가치도 점차 떨어지지 않나 생각된다.
B : 이야기가 넘쳐나는 현상은 결국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옛것은 희소성이 있어 가치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야기의 휘발성은 높아지고 고유 가치는 점차 낮아질 것이다.

과유불급.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스토리 또한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 점차 정도를 지나치는 미래로 향하고 있다고 본다. 이 와중에 AI의 생산성까지 더해진다면 지구는 스토리로 꽉 찬 곳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급은 넘쳐나되 수요는 한정된 상황에서 자연스레 공급물의 휘발성은 높아지고 희소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중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과 AI의 생산물을 필터링해줄 또 다른 역할이 AI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마치 빅데이터로 인해 인터넷 속에서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맛보고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

조지 오웰의 이야기가 농담이 아닐 수 있다.

끝으로 이날 우리는 위 내용과 더불어 자연스레 표현의 자유성에 대해서도 대화를 했지만 미래의 범주 속 내용과는 별개였기에 여기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 억압 더 나아가 인권과 공권력의 문제는 미래에 더더욱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누군가의 1984년은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기에.

참고자료 : EBS 다큐프라임, 이야기의 힘

Content image source : http://www.moviepilo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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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 image source : Naked Security


이제석 감독의 센스가 돋보이는 광고

역사매니아 영상 디자이너, Molbong의 단상
“의식속의 유전적 방향”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아이디어 넘치는 광고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일본이나 대만, 유럽,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박웅현 CD의 광고나 이제석 감독의 광고까지.

국내에서 유독 심한 스타마케팅 광고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광고들은 넘쳐나는 물질의 대명사인 ‘다이소’에서 내가 원하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처럼, 소중하게 다뤄지곤 한다. 인류의 복잡한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메시지의 역할만 할 뿐 아니라 타인과의 공감, 신화, 역사, 예술, 감성, 등을 재료로 하는 고차원적인 소통 방법이라 생각된다.

약 1만 년 후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1만 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진화가 충분히 가능하며 현재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시간이다. 인간의 의식은 과연 어떻게 진화하여 변해 있을까? 그래서 그때쯤이면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까?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초대규모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 또는 오감을 통해 받아들여진 정보를 정리하여 다시 타인에게 쉽고 잘 포장하여 아웃풋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뇌가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눈치는 더욱 빨라지고 언변은 더욱 수려해지며 이타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뇌로써의 진화. (마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기꾼 같은 느낌)

이렇게 단정 짓기에는 현대는 너무 복잡한 세상이고 기술발전과 다른 변수들을 포함하지 않은 상상이라 근거가 많이 부족한 단편적인 의견이지만.

뭐, 상상은 상상일 뿐이니까.

Content image source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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