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데이터베이스, 왜 만들기 힘들까?
들어가기 전에 : 게임 개발할 때 ‘그' 데이터베이스 이야기는아닙니다!
책, 영화, 음악, 공연, 운동… 내가 한 일들에 대한 기록은 본능이다. 잊어버리면 아쉽기도 하고, 나중의 필요를 위해서도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읽었었나 싶을 땐 책을 읽고 남겨둔 간단한 메모만으로, 기억은 강력하게 소환된다.
블로그를 통해 간간히 기록하고 있었지만 소팅이 힘들다. 그래서 책 같은 경우는 온라인 아카이빙 서비스를 사용했었다. 아직도 서버는 살아 있지만 업데이트는 되지 않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더라도 책 DB는 외부 플랫폼과 연동돼 있어 별 불편함은 없는, 유저스토리북이라는 서비스다.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영화를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왓챠를 통해 이제까지 봤던 영화에 빠르게 별점을 남기는 경험도 좋았다. 평생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고 못 봤던 영화에 대한 체크는 덤.
공연은 이제 많이 보러 갈 순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두 번째 내한공연이 2008년인지 2009년인지 이제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물론, 공연 아카이빙 서비스도 있다!)
PC 온라인과 콘솔 게임만 즐겼던 나에게 스팀(Steam)은 신세계였다. 지금은 번들구매의 파편들을 포함한 몇백 개의 게임이 잠들어 있지만, 스팀이 내 게임 기록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과 모바일 게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 <라스트 오브 어스>, <퍼즐 앤 드래곤>은? 최근 들어 스팀과 경쟁하며 기지개를 펴고 있는 오리진이랑 유플레이는? GOG랑 에픽스토어는?
2011년 스트라바(Strava)를 보며 회의 시작 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도 스트라바처럼 이렇게 자동으로 내가 플레이한 거 기록 쫙 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네?
그때도 완전 좋은 생각이었고, 지금도 완전 좋은 생각인 건 맞다. 근데 ‘얼마나 좋아요, 네?’와 실제 구현은 좀 먼 거리가 있다. 말하는 대로 바로 되면 좋으련만.
책은 ISBN이 있다. 책은 역사가 정말 오래됐으니 이런 게 생길만 하다. 정말 부럽다. 내가 읽은 책이 지금 절판된 경우는 있어도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악은 저작권협회가 있고, 디지털 음원이 활발하게 발매되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음악이 동그란 CD와 네모난 케이스에 담겨 발매됐다. 영화도 마찬가지.
내가 했던 게임을 예쁘게 전시하고 싶다
게임을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과한 스펙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큰 필요조건이 아닌 것 같은 ‘예쁘게' 부분만 봐도 그렇다. 게임 타이틀의 메인 이미지는 과연 어떤 규격인가? 스팀은 460*215의 가로로 긴 배너가 기본형이다. iOS나 안드로이드는 1:1 비율의 앱 아이콘. 플레이스테이션도 표지 이미지는 1:1이지만 블루레이 표준 껍데기에 맞추어 상단에 띠가 있다. 1:1로 맞춰볼까 해도 스팀이 워낙 가로로 길기 때문에 맞추기는 힘들다. 게다가 예전 플랫폼인 PSP는 혼자 세로로 무지 길다. 소니의 독자규격 UMD를 사용했던 PSP는 표지규격도 매우 독자적이었다. 이런 게임들을 어떻게 ‘예쁘게' 정렬하여 보여줄 것인가?
‘내가 했던 게임들'은 과연 깔끔하게 떨어질까. (요즘)게임들은 DLC라는 것이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expansion pack, add-on 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을 합친 GOTY Edition, Definitive Edition, Complete Edition, Special Edition, Deluxe Edition 등 수많은 에디션이 나온다. 이 중 멀티플랫폼으로 발매된 게임은 특정 플랫폼에서 발매일이 늦어지면 DLC 중 한두 개를 끼워서 그 플랫폼 이름을 붙인 ‘에디션'이 발매되기도 한다. (현재 미니맵 DB에서 ‘edition’으로 검색하면 1,500여개의 게임 검색 결과가 나온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같은 경우에는 구입할 땐 아니었지만 개발사에서 ‘인핸스드 에디션’으로 그냥 업그레이드 해주고, 원래 버전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 원래 버전의 스팀 페이지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클래식>으로 바뀌었다.
게임을 구매 단위로 기록할 것인가? 오프라인 패키지는 구분이 확실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서비스 이용자도 헷갈리는데 DB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대체 어디까지를 같은 게임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 수많은 게임들 중 어느 게 어떤 게임인지 서비스 제공자가 판단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전체 게임 정보를 놓고 보았을 때 대한민국은 쉽지 않은 지점에 있다. 한국은 내수가 성립하는 곳이다. 국내 유저 대상으로 게임 개발해서 성장한 회사도 있다. 한국에서만 론칭했던 게임들도 많다. 또 우리는 일본에서 개발한 게임들도 많이 접하고 북미 게임들도 많이 접한다. 북미 DB를 그대로 쓰기에는 한국/일본 발매 게임의 정보는 찾기가 힘들다. 물론 덕중지덕이라는 양덕의 DB에 영어권 비정발 일본 게임이 있는 경우도 많지만 검색이 힘들다. 정발 게임 중에서도 <바이오 하자드>와 <레지던트 이블>, <록맨>과 <메가맨>의 예를 보면 쉽지 않음은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관리 가능한 ‘내 게임 라이브러리’를 만들 수 있을까
서로 다른 플랫폼 별 게임 정보는 어떻게 모을 것인가
이미지 정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탐구 끝에 현재 미니맵 DB를 만들었고, 계속 다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