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방, 두 번째 방문 이야기

나는 월요일엔 서점에 간다 #2. 빨간책방 카페

Just Beaver’s Diary
Book &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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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들른 김에 방문했던 빨간책방,
애매한 저녁 시간에 들이킨 커피 때문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던 첫 번째 방문,
그래서 빨간책방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눈도장만 찍었던 카페 곳곳의 풍경을 여유있게 음미하며 카페 2층에서 손에 잡히는 책들을 골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행 관련 책들만 계속 잡힌다.
여행에 대한 로망보다는 떠나는 이들의 속마음이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마음을 끄는 세 권의 책을 만났다.
이유가 있는 여행인 만큼 울림도 큰 세 사람을 만난 셈이다.

<청춘을 찍는 뉴요커>

“문제 없어. 걱정하지 마.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실업자처럼 방황하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렴. 그리고 너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이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렴.”

김수린,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경력은 연배에 비하면 꽤나 화려하다.
졸업 전 이미 보그지의 화보를 장식한 바 있고,
뉴욕 파슨스 스쿨을 다니며 라이언 맥긴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패션과 사진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는 프로필이다.

하지만 뉴욕과 파슨스, 라이언 맥긴리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열정에 끌려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
며칠 밤을 새고도 차려 입은채 학교엘 나가야 하고,
남학생의 80%가 게이인 ‘이상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역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다른 이들과 다른 ‘자기다운’ 삶을 치열하게 갈망하는구나…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삶에 요구하는 희생을 얼마나 기쁘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차이겠지.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미안하지만, 끌리지 않는 제목이다.
그래도 혹이나 싶어 한 두 페이지만 읽자는게 숙독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사랑’과 ‘여행’이라는 두 단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겨서였다.

그가 여행길에서 만난 스위스계 프랑스 젊은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몇 년째 고향을 떠나 있다가 그 근처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 그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나오지 않으면 바로 그곳을 떠나겠다고 처음 만난 저자에게 사연을 털어놓는다.
아마도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은 욕심과,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타협같은 여행인 셈이다.

하루에 3만 원을 벌고 행복해하는 집시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40여 명의 관객을, 그것도 무료로 하는 공연임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서커스 곡예를 하는 8명의 집시들.
우리의 잣대로만 보자면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삶이건만
처음 만난 저자에게 잠자리와 음식,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고도 돈은 받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 무언지를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오감으로 배우 수 있다니.
좀 더 겸손하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순례길에 대한 관심으로 책 제목에 끌려 집어든 책이다.
하지만 그닥 관심이 없던 남미의 역사를 도보로 접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자니 그들의 태생적인 낙천주의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페루의 여인들 복장과 모자가 그들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니,
도망을 막기 위해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남자 모자를 여인의 머리 위에 씌운 것이었다니.

특히 이 책 제목의 배경에 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 관저에서 최후를 맞은 아옌데 대통령의 이야기를 상징하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목숨을 잃는 과정을 라디오 중계로 접했던 칠레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문제는 이 비극이 오늘날도 여전히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 절망케 한다.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란 이름은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당대 최고의 미국 단편들이 절박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궁여지책이었다는 것도 의미있는 아이러니다.
몇 편의 단편을 읽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제대로 그의 대표작을 읽고 있자니 무라카미 하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싶다.
화려한 수사 없이 삶의 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 짧은 이야기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구나.

문학은 그리고 소설은 효용이 있다.
삶을 기술과 효율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겐 시간낭비라 여겨지겠으나,
평범한 미국 남자가 온갖 편견을 깨고 맹인 친구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아마도 늦은 밤에 읽었다면 잠을 이루기 힘들었겠다 싶을 정도로 깊고 사색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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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말고) 저스트 비버, 박요철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