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산 낙영산 — 조봉산 (237차)
2017.08.27 산악회따라. 천천히
코스: 공림사 — 대슬랩 — 낙영산(684m) — 절고개 — 쌀개봉 — 조봉산(642m) — 명지재 — 신월교
내가 산악회에 첫발을 내딛고 처음으로 산행했던 곳이 바로 이 낙영산이라 내겐 감회가 참 새롭다. 그 당시에는 참 힘이 들어서 어쨌건 무사히 하산하는 것만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그 코스의 일부만을 가지만 그 때 제대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맘껏 보기로 마음을 먹고 출발한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낙영산 공림사는 신라 48대 경문왕 당시 자정선사께서 암자를 짓고 정심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정하였다. 그러나 선사게서는 세속을 떠나온 사람이 세간에 나갈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이에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하여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단기 3206년, 서기873년)하고 절 이름을 공림사로 칭하였다. 그 후 조선 2대 임금이신 정종2년에 함허득통화상께서 중창(단기3733년, 서기 1400년)하여 수도정진하였다.
선조 20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절의 웅장함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화살에 불을 붙여서 쏘았는데 절이 타던중 화기가 대웅전으로 접근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불길을 돌려 대웅전과 요사채 1동이 보존 되었으나 6.25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작전 명목으로 천년고찰인 대웅전과 요사채가 모두 전소 되었다. 그 후 단기 4314년(서기1981년)에 진공당 탄성대종사께서 중창을 발원하여 대웅전을 건립하고 감인선원과 선심당을 지어 제방의 수행납자들이 참선수행하는 도량으로 조성하였다. 단기4325년(서기1992년)에 적광탑과 석가탑을 조성하고 관음전및 요사채등을 복원하니 비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진공당 탄성종사께서는 단기4333년(서기2000년) 음력 5월 7일 술시에 원적에 드시니 사부대중의 추모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종사를 추모하고자 법당 좌측에 조사각을 조성(단기4344년, 서기2011년)하니 대종사님의 평소의 가르침을 되새기려는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절 입구에 좌측으로 길이 나 있지만 대슬랩을 갈려면 절 안으로 지나가야 한다.




절을 지나 나 있는 길을 따라 간다. 크게 힘들지는 않다. 슬랩구간에 도착하고.


슬랩을 지나는 구간이 너무 짧다.



가령산에서 달려오는 능선에 오르고, 좌측으로 이동한다.





낙타바위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낙영산에 도착한다.

낙영산의 뜻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신라 진평왕때 당고조가 세수하려고 물을 받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쳐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산을 찾도록 했으나 나라 안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어느 날 동자승이 나타나 이산은 동방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에 사신을 보내 찾아 보았으나 신라에서도 찾지 못해 걱정하던 중 한 도승이 나타나 위치를 알려줘 그 산을 찾아 산의 이름을 낙영산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급경사길을 내려와 절고개에 도착하고, 조봉산으로 가는 길은 직진이다. 여기서 부터 비탐구간이 조봉산까지 이어진다.
잠시 오르면 쌀개봉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급경사를 내려간 후 이름없는 봉에 오른다. 낙영산에서부터 조봉산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까칠한 암릉구간이 있어 힘이 드는 구간이다.




위에 보였던 봉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위험지역을 만난다.
안전을 위하여 뒤돌아가 우회로를 찾고 거기로 돌아간다.

까칠한 암릉을 지나면 드디어 조봉산이다.

정상에서 신산으로 갈려면 좌측길로 내려서야 한다. 지도상으로 직진처럼 보이지만 직진은 아니다. 주의해야 할 곳이다.
좌로 편안한 흙길을 가파르게 한창 내려오면 고개에 닿는다. 명지재라고 다른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이제 신산을 올라야 하는데 가지말자는 권유로 좌로 하산을 한다.
다녀오신 일행의 말에 의하면, 가 봤자 볼 것도 없고 고생만 한다고 한다.
길을 따라 지정된 장소로 이동을 하고, 신월교 다리에서 시원하게 알탕을 한다.
이번 뒷풀이는 두부김치, 두부가 확실히 포만감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