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Chul Park
3 min readApr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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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4월이다. 거리에는 온갖 영혼 없는 공약이 적힌 홍보물과 유행가를 개사한 천박한 선거송들이 루소의 말을 대변하듯 넘쳐흐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선거하는 기간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

문득 난니 모레티 감독의 98년작 <4월, Aprile>가 우리나라의 현실과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이탈리아는 극우파이자 미디어 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오랜 기간 정권을 장악했고, 모레티는 이 같은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자 다큐멘터리로 담고자 노력한다. 각종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하던 그는 좌우 구분없이 모든 기사가 동일한 인물들에 의해 쓰여진다는 사실에 아연 실색한다. 모든 뉴스가 동일한 생각과 의견을 쏟아내는, 저널리즘이 무너진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지 않은가.

영화 <4월> 중

96년 이탈리아 좌파는 베를루스코니에 승리한다. 베스파를 타고 두 손을 치켜올린 모레티의 기쁨도 잠시. 좌파들은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에 모레티에게 더한 좌절감을 안긴다 —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2000년대 2번 더 집권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일 디보(Il Divo: 4인조 미남 팝페라 그룹과 혼동하면 안됨)를 보면 베를루스코니의 온갖 비리들을 엿볼수 있으니 함께 감상하면 좋다.

영화 <4월> 중

최근 KBS의 <다큐1>에서는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국민이 낸 세금을 한푼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의원들의 얘기나, 의정활동비 사용 내역을 영구 보존한다는 사실들은 과연 우리나라의 정치가 언제쯤 이렇게 성숙될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을 준다. 좌우를 막론하고 의회는 세금을 도적질하려는 무뢰배들만 가득하니.

지역구의 후보자들의 약력과 전과 여부를 살펴보던 나는 또 다시 정치혐오에 빠져든다.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성스러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인가, 노예가 되고 싶지 않는 마지막 발악인 것인가. 모레티가 다큐멘터리 촬영을 포기하고 뮤지컬 영화를 찍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면서 특유의 위트로 표현한 무력감이 웃픈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주는듯 하다. 하긴 AC밀란이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르고 열광하는 무지한 대중들, 아니 노예들중의 하나가 무슨 불평을 하겠는가. 슬픈 4월이 지나간다.

영화 <4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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