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택하다

Kyungseok Hahm
Museums of Future Past
5 min readFeb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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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미국 출장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하 The Met)에 들렸다. 그곳 지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일부 현대 미술 콜렉션만 분리하여 새로운 뮤지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Whitney 뮤지엄이 있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서 흥미롭기도 했고, MoMA와는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새 뮤지엄 오픈을 앞두고 The Met의 새로운 로고를 공개했는데, 지금 이 로고 때문에 물건너 미술계와 디자인계는 한바탕 난리 중이다. 기사와 리뷰를 검색해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새로운 로고에 온갖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로고만 공개되었다가 여기저기 비난이 쏟아지니 The Met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로고 외에 다른 어플리케이션들도 이어서 공개를 했다.

기존 로고(왼쪽)와 새롭게 공개된 로고(오른쪽)

기사들을 읽다보니 로고를 둘러싼 내외부적인 상황들이 흥미롭다. 이번 The Met의 리브랜딩은 새로 오픈하는 현대 미술관과 기존의 The Met 본관, 그리고 분관인 The Met Cloisters를 하나의 브랜드 안에 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새로 오픈하는 뮤지엄은 본래 Whitney 뮤지엄이 있던 건물에 들어서게 된다. 1966년 건축가 Marcel Breuer의해 디자인된 건물임을 기념하여 새로운 뮤지엄의 이름은 The Met Breuer라 명명되었다.

이 논란의 로고를 디자인한 곳은 Wolff Olins라는 런던의 브랜딩 회사이다(실제 작업은 뉴욕 오피스에서 진행). 로고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인 혹평을 한 Justin Davison이 언급하면서 이 회사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재밌는 것은 Wolff Olins가 1990년대에 Tate Britain, Tate Modern, Tate Liverpool, Tate St. Ives의 통합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장본인이란 것이다. 그런데 The Met의 현대미술 부문 총책임자인 Sheena Wagstaff가 또 누구인가 하면, 과거 10년이상 Tate Modern의 수석 큐레이터였다는 사실.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Tate에서의 경험이 디자이너와 큐레이터 양쪽 모두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로고에 대한 평가를 보면 Justin Davison은 로고가 마치 영국의 빨간 2층버스가 급정거를 해서 승객들이 서로 등을 기댄 채 밀리고 있는 것 같다 표현했고, Karim Rashid는 로고가 혐오스럽다고까지 했다. The Met의 디렉터인 Thomas P. Cambell은 로고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는 이들을 ‘좀비라고 언급하면서 언짢은 기분을 인스타에 거칠게 표현하기도 했으니 아직까지도 이 이슈는 뜨겁게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로고 자체가 맘에 안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새 로고의 첫 인상이 약간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고, 1971년부터 사용된 로고가 사라지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다만 이 역사 깊은 뮤지엄의 리브랜딩을 로고 하나만 보고 혹평을 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란 생각이 든다.이번 리브랜딩의 배경에 대해 The Met는 보다 더 많은 방문객들의 용이한 접근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발표했다. 공개한 웹사이트 데모나 리플렛을 보면 그들의 의도가 분명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로고에서 ‘THE’가 너무 강조되었다는 말들이 있지만, 널리 알려진 애칭인 ‘The Met’를 하나의 이름으로 본다면 나로서는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The Met가 그저 기분 전환이나 하려고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뮤지엄이 오픈하고 새로운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 거대한 뮤지엄이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에 대해 신호를 보낸 것이라 생각한다.

The Met의 새로운 웹사이트 디자인
새로운 지도 리플렛 디자인

The Met는 전통 보다는 변화를 택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과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 엄청난 혹평을 듣고 있지만, 나는 이 논란마저도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한국에서 어느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로고를 바꾸고 리브랜딩을 할 때 이렇게 격렬한 논란이 이루어진 적이 있나 싶다. 이 논란의 뜨거움은 The Met라는 뮤지엄의 상징성과 가치에 대한 비례적인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다. 언뜻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 개관과 함께 진행한 리브랜딩 과정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The Met의 chairman인 Daniel Brodsky는 리브랜딩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s a changing institution; the world is changing around us, and I think it’s time for the Met to move forward. — Daniel Brodsky, Chairman of The Met

다른 상황이었으면 그냥 스쳐들었을 이 진부한 설명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추상적으로 역설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의 결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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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seok Ha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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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Co-Founder at Tangomike, Seoul, Korea// a.k.a. FLAT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