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란도너스 서울 200 동

2014-03-03

박규현
13 min readMar 4, 2014

매일 한강 자전거 도로만 타는 것도 좀 따분하다. 그룹라이딩으로 이곳저곳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긴한데 난 사진을 찍어야 하니 혼자 나서는 것이 맘이 편하다. 사진은 남들 아침밥 먹는 시간, 저녁 먹는 시간에 찍는 것이 제일 이쁘기 때문. ㅠ.ㅠ.

GPX 라는 것이 있다. 파일 포멧인데 이동 경로가 저장되어 있다. 이걸 GPS 기계에 넣고 지도위에 올리면 편리하게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GPX 파일을 공유하는 카페나 사이트들은 많다. 기계가 문제인데 Garmin 같은 전문 기기가 있으면 편리할 것이나 저렴하게 아이폰으로 어떻게 해봐야할 형편이다.

라이딩 로그에 이미 엔도몬도를 쓰고 있으니 이놈이 GPX 뷰 기능을 제공하면 고민 끝이다. 하지만 엔도몬도에는 오프지도와 GPX 기능이 없다. 딱 오프지도와 GPX 업다운이 편하면 되는데 모두 영세해서 그런지 앱들이 좀 조악하다. 이번 라이딩에는 Gaia GPS 를 썼다. GPX 잘 보이고, 해당 GPX 에 대한 오프라인 맵을 원클릭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오픈맵을 사용하기 때문에 맵 다운에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역시나 먼가 조악하기도 하다. 심플하고 이뿐 것이 나오면 다른 걸로 바꾸고 싶다. 구글이 이 분야에 먼가 또 좋은 일 해주기를.

지도 준비는 됐으니 어딜가볼까. 3 월 말에 열리는 코리아 란도너스 서울 200 킬로 동 코스를 가보도록 하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걍 집 앞을 지나므로;

월요일 새벽 4시. 유명한 자전거 코스들은 도로 주행이 많다. 자전거 전용도로만 왔다갔다 하다 보니 차도는 아직 부담이다. 새벽에 코스를 보다가 지금이면 차량이 적을 것 같아 갑자기 짐을 챙겼다.

지난 춘천 200 에는 카본 로드를 탔는데 오늘은 여행용 철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1 월에 중고 구입하고 아직 장거리 뛰어본 적이 없어서 겸사겸사.

철자전거라도 한강서 시속 18 킬로 정도는 꾸준히 나왔으니 열심히 달리면 란도너스 제한 시간인 13 시간 반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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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집에서 반포대교를 넘어 반미니 도착. 삼각김밥 3 개 사서 챙기고 쪼꼬 우유하나 들이키고 본격적으로 출발.

근데 왜 손이 시릴까? 손에 얇은 장갑 한짝만 끼워져 있다. 0 도면 방한 장갑 안에 속장갑 끼고 나왔어야 했는데 서두르다가 이런 참변이 발생했다; 이미 출발해서 할 수 없다; 그방법도 있고;

자주 멈취서 팬티 속에 손을 집어 넣는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근데 누가 봐도 해야할 지경;

새벽 5 시. 아직 탄천이다.

탄천을 나와서 산성역까지 도로를 탄다.

산성역 사거리. 철 자전거 타고 첫 언덕을 올랐다. 춤추며 어떻게 오르긴 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6 시 반. 해가 빨리 떴으면 좋겠다.

남한산성 입구. 어라 여길 오르라는 건가?

겨울 내내 한강만 돌았더니만 ‘자전거 = 한강’ 이 되어있었다. 북악 한번 올라보고 이런 건 매니악한 자덕들이나 하는 하드코어 취미인 줄 알았다. 대회 코스가 한강처럼 평지일 것이란 생각은 안 했지만 하트코스 돌 때 넘은 인덕원정도의 업힐을 상상했다. 여기에 산이 포함되어 있을 줄은 진심 몰랐다;

업힐은 따로 안 다녀서 내가 하는 업힐은 한강 대교에서 동작대교 사이 한강 자전거길의 ‘업힐’이 전부였다.

브롬톤에 앞뒤로 짐 싣고 이화령 두 시간 밀바하던 생각을 하면 안장에 올라서 등반하고 있다는 것이 황송하기도 하다.

새벽 기운이 상쾌하기도 하고.

어찌어찌 춤추다 보니 어쨌든 정상에 도착.

누군가 컵을 고이 모셔두었다.

유원지 같은 것이 보인다. 산성로터리.

진짜 산성도 남아있다.

춥긴 하지만 혼자 라파 찍는 기분으로다가; 귀에 바람소리도 막 라파스럽고;

7 시 반쯤 되니 빛이 들기 시작. 정경이 아주 멋지다.

로드 타고 왔으면 훨씬 편했겠지만 이제 고비도 넘겼고 남은 강변 코스나 좀 돌다 들어가면 된다. 라고 이때의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엄청 홀가분한 상태.

처음 달리는 곳이라 볼 꺼리가 많아서 또 좋았다.

산성에서 내려와서 다시 도로 주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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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은 차가 꽤 빨리 달려서 후덜덜하여 차가 신호에 막혀 못 오는 타이밍에 도로에서 혼자 전력질주 하고 차들이 몰려오면 갓길에서 쉬는 식으로 진행했다. 같이 달리는 팩도 없고 초보라 걍 살고 싶었다. ㅋㅋ.

교차로에 왔는데 건널목이 없다. 좌회전을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부자 라이더가 등장, 1 차선으로 걍 진입한다. 아 저러면 되는구나 싶어 이분들 뒤에 냅다 붙었다.

도마치 언덕 입구. 떨면서 5 시간 라이딩했더니 몸이 정상이 아니다. 부들부들. 뒤에서 오는 차들도 빨라서 어설프게 춤추다 사고날 듯하여 걍 끌바했다.

잠시 한산한 도로.

서울에서 분원리 넘어갈 때 타는 광동교. 뭐 이런 것을 저 때 알았다는 것은 아니고 오늘 아침에 지도보며 막 찾아서 주워들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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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로만 듣던 분원리. 차량 통행도 거의 없고 경치도 좋고 소소한 볼거리도 많다. 자덕들이 많이 찾는 곳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고즈넉한 곳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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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유럽갔다 왔다.

아기자기한 모습들도 보이고.

엉, 간다. 너네가 짱먹어;

인위적으로 만든 양수 ~ 양평 자전거 도로타고 남한강 북쪽길을 달리는 것도 괜찮았는데 남쪽 방면도 자연스럽고 꽤 이뿌다. 한산하긴 하지만 일반 도로라 자전거 대여점은 없는 것 같다.

이 코스는 낙타 등이 아주 많다. 거의 낙타 상단. 기온이 올라가서 몸이 풀린 덕에 쪼꼬바 먹으면서 춤추기 연습을 많이 했다.

강하면부터는 모텔, 음식점들이 쭉 이어지는데 상업지구라 통행량도 늘어나서 라이딩하는데 꽤 신경쓰인다.

도로도 왕복 2 차선이고 갓길도 없어서 거의 백미러를 보며 달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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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물건을 잔뜩 파는 가게.

10 시 45 분. 배고파서 짜장면집에 불쑥들어왔는데 시계 보고 좀 미안했다. 식재료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시간. 한켠엔 호박이며 칡이며 건강식품을 판다.

짜장면 먹으면서 남은 코스 지도를 확인했다. GPX 만 따라가면 되니 코스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 안 하고 나왔었다. 한강변이나 농로정도 있겠거니 했는데 약간의 등고선이 보인다. 전에 란도너 공식 사이트에서 먼가 그래프가 있었던 것 같아 찾아봤다.

짜장면 먹다 오바이트할 뻔했다. 첫 기둥은 남한산성인 것 같은데 저 뒤에 봉우리 3개는 뭘까; 다리 건너 양평에 도착하면 전철타고 집에 돌아가야하나 잠깐 고민.

양평교 건너는데 멀리 산이 보인다. 봉우리들의 정체.

생각하는 놈 위에 나는 새 있다.

양평 도로는 넘 복잡하여 잠시 인도 탔다.

점심시간.

양평 나가는 길에 완만한 업힐이 있다. 통행량이 많고 갓길도 없는데 긴 업힐이라 속도 내기도 힘들고 완전 민폐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올랐고.

조금 후에 다른 언덕을 올랐고.

또 올랐다.

그리고 또또 올랐다.

계속 오르면서 철 자전거가 나의 오늘 운명이구나 걍 받아들이게 됐다.

평온해 보이는 엄마 가슴 산.

다시 한산해지고 풍경이 아름답다.

강도 있고.

성도 있고.

용문역이 있는 다문리. 작고 아담했다. 하루 코스면 여기서 부터 라이딩해도 좋겠고 반대로 여기서 복귀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올랐다.

고구마 과자 팔 것 같은 구멍가게.

다문리 지나서 길이 넘 좋고 한산하다. 길에 울고 길에 웃고.

부처님들도 계시고.

천국은 좋은 길 위에.

산쪽으로 올라가니 도로 사정이 좀 안 좋아진다.

또 올랐다. 란도너스 전에 포장이 될까?

모를 일이다. 공사가 꽤 큰 것 같던데. 타이어 두꺼운 철 자전거 타고온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만;

환상특급.

업힐 전의 고요함;

‘어서오십시오' -> ‘어서오십시오, 라이더 여러분. 여기서부터 업힐입니다'

오후 2 시. 두번 째 350 바솔고개 시작.

또 올랐다. 중간 사진이 왜 없냐면 걍 눈에 도로바닥밖에 안 보였기 때문; 이미 10 시간 라이딩한 후라 춤출 기력이 안 되서 기어 최저단에 놓고 바닥만 보고 돌렸다; 무정차로 올라온 나를 칭찬함; 25 분 걸렸다;

물 반통이면 되겠지싶어 대충 나왔는데 물 떨어져서 보충.

바솔고개 넘어서 풍경이 넘 좋다. 업힐들 사이에 파뭍혀 있다는 것이 좀 문제;

오후 3 시 넘어가는데 나머지 봉우리들은 어디있는 것일까;

홍천강, 이라고 써있었다. 첨 들어보는 강인데 지도를 보니 홍천을 지나 청평호로 흘러 들어가는 꽤 긴 강.

굴뚝 보니 밥짓는 시간이다. 갈 길은 멀고 봉우리는 두 개나 남았고 마음은 조급한데 페달은 느려진다.

평지인듯 아닌듯하게 고도가 점점 올라간다. 에너지 고갈이라 최저단에 놓고 초속 5 센티미터로 넋없이 돌리고 있다.

먼가 또 시작이다.

또 올랐다. 페달 돌릴 수가 없어서 밀바로 35 분 걸렸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널미재. 직접 느껴보세요 널밀재. 자장구 표정도 안 좋다.

또 시작. 사진이 확 줄고 있다. 찍을 시간 없다. 해의 높이를 보시라.

또 올랐다. 솔고개. 밀바로 15 분 걸렸다. 아 근데 여기서 그대로 다운힐 밟았더니 청평으로 떨어진다; 코스 이탈; 이미 내려간 상태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 10 킬로 정도 돌아가지만 걍 북한강로 타고 남하하기로. 사진속 주막 넘어로 잘 안보이는 길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분들은 잘 찾아가시길.

불나게 도싸하다가 청평댐에서 한 컷.

일몰. 해가 반쯤 남았을 때 카메라 꺼냈는데 노출 조정하는 틈에 거의 다 내려가 버렸다;

북한강로 운치있고 아기자기하고 넘 좋다. 초행인데다가 해가 떨어져서 사진 찍을 여유는 없었다. 난 정태준 버프같은 것이 없으니 달릴 땐 조심, 또 조심해야;

북한강로 담에 또 와야지 했는데 엄청난 업힐 만나서 맘이 싹 사라졌다; 문안고개; 거의 경천대 수준; 란도너스 공식 코스를 도는 분들은 문안고개는 지나지 않는다. 근데 코스 바로 옆에 붙어있으니 심심하신 분들은 올라갔다 오셔도;

청평부터 야간 도싸하여 양수 도착. 가카의 품에 안겼다. 집에 다 온 것 같다. 이제 두 시간만 더 달리면 뚝섬이다.

새벽 4 시에 나서서 밤 10 시에 도착했으니 18 시간 걸렸다. 장거리 라이딩은 몸의 각 기관을 한계까지 총동원하는 느낌이 든다. 좋다.

철 자전거로 왠만한 라이딩이 가능하면 로드를 팔 생각이었는데 철 자전거 너를 팔아야겠다; 진짜 팔 껀 아니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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