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2년차의 로켓 탑승기 — 1. 무엇을 할 것인가

S Lim
Building tumblb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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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Jan 18, 2017

안녕하세요, 텀블벅에서 서비스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루시, 임선민입니다. 텀블벅에서 일한지는 이제 1년하고도 두 달이 조금 더 되었고 텀블벅은 저의 첫 직장입니다. 앞으로 ‘텀블벅을 만듭니다’ 블로그에 종종 저의 스타트업 분투기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얼마 전 어느 스타트업 채용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로켓에 빨리 올라타세요!”

라는 문구였는데, 이 한마디를 보며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로켓, 참으로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단어지요. 누군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하늘 위로 솟아오를 때,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매 순간 로켓을 만든 사람들과 그 안의 비행사들은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게 로켓이 안정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가해지는 압박을 감내하며 날아올라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의 목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실 스타트업을 뜻하는 ‘로켓’이라는 단어는 빠른 성장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오는 위험과 인내에 관한 메타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렇다고 스타트업이 마냥 힘들기만 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텀블벅에서 일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 무려 연공서열 상위권(?) 에 자리 잡았지만, 처음 텀블벅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열정 하나만 가지고 로켓 ‘텀블벅호’ 에 탑승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15년 당시의 텀블벅은 여느 다른 곳보다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른바 ‘로켓’ 플랫폼이었습니다. 빠른 성장을 이룩하는 모습도 멋졌지만 창작자를 위한 사회적 유틸리티를 제공한다는 슬로건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별명을 부르고 반말을 쓴다는(!) ‘반말 문화' 도 인상적이었고요.(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희는 실제로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반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교 4학년 막학기도 마치지 않은 채 무작정 마음에 두었던 텀블벅에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봤습니다. 그렇게 2015년 11월, 텀블벅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회사 일 끝내고 나서 집에서 허둥지둥 취업 대체 과제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당시의 저는 신입인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스타트업, 특히 텀블벅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시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좌절도 해 봤으며, 로켓이 치솟을 때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만큼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영화 ‘인터스텔라’ 에서 로켓에 탄 주인공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떠올려 보신다면 이해하기 쉬우실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역시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늘 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의 지난한 ‘로켓 탑승기’ 를 쓰는 것은, “조금이나마 저와 같은 길을 걸을 누군가를 위해서”입니다. 지금 읽고 계신 첫 번째 이야기는 인턴 경험도 없던 사람이 스타트업에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기까지 몸부림쳤던 두서없는 기록입니다.

로켓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기업의 크기를 떠나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는 직장 생활의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흔히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일당백’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사람 수가 적은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이 마케팅, 영업, 기획 등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에 따라 이러한 과정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일당백' 경험이 회사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회사 안에서의 “나의 업” 을 찾는 과정이 힘겨운 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텀블벅이 지금보다 더 작아서 동료들 모두가 ‘일당백’을 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일단 저는 그 흔한 인턴 경험도 없는 채로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으로 배운 일이 곧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일손이 가장 달리던 CS 직무에 배치되었습니다. 문의 전화를 받고,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는 일을 약 반년 간 했습니다. 때로는 “텀블벅이 어디길래 내 돈을 빼가나?” 고 묻는 고객 분들께 답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하고요. (이 경우는 십중팔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고서 까먹으신 경우입니다. 크라우드펀딩 특성상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에만 결제가 발생하다보니 후원 시점과 결제시점이 최대 2달까지 차이가 납니다.)프로젝트 여는 절차를 알려 드린다고 해도 당신께서는 무조건 상담을 받아야겠으니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분들을 말려보기도 했고요.

지적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팀 내 가이드라인이 상당히 체계화되었고 저 역시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프로젝트를 척 보면 피드백을 척- 하고 제시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동료들에게 조언을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텀블벅 커뮤니티를 정립해 나가던 시절이라 좀 더 섬세하고 조밀한 관리가 필요했고, 제가 아무리 텀블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해도 ‘커뮤니티 관리’ 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으니 당연히 경험 많은 동료들에게 자주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아마 로켓에서 제일 뛰어내리고 싶던 순간을 누군가 물으면 이 때를 꼽을 것 같습니다. 로켓에 탄 우주비행사들은 길고 지리한 구간을 통과할 때 동면에 들 수도 있고,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스타트업’ 로켓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면하는 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견뎌야 하고, 누가 가르쳐 주는 것 없이 많은 것을 혼자 빠르게 배워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느낀 것들은 나중에 ‘스타트업 온보딩’ 이란 주제로 따로 쓰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인고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이 때에 체험했던 다양한 상황들과 여기서 배운 대처 능력은 ‘텀블벅’이라는 서비스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CS를 경험해 본 다음, 저에게 더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품팀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보조 프로덕트 매니저 (APM)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투입되었던 프로젝트는 텀블벅의 프로젝트 에디터(스토리텔링 작성 틀)를 새로 개발하는 큰 규모였습니다. 제품팀에서는 직접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커뮤니티팀의 관점에서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제가 투입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했던 동료들의 의견도 있었고요. 제품팀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제품 개발 일정을 세우고, 회의를 주재하고, 기술 문서를 작성하고 약간의 QA 업무도 했습니다. 하나의 기능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개발자와 디자이너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프로덕트 매니저 일은 칭찬도 받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남들이 못 찾은 버그나 설계상 빈틈을 잡아낼 때면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여러가지 브라우저를 돌려 가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험해 보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 저는 프로젝트 매니징을 완벽히 해낼 만큼 기술적 기반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저는 현역 및 재수 시절에 수학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사람입니다. 게다가 제 대학교 전공은 IT와는 큰 관련이 없는 영문학입니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는 저와 같은 문과 출신이면서 기술적 기반을 갖춘 동료들도 있었지만, 제 고민은 제가 단지 문과라거나 단순히 ‘코딩' 을 못하는 것을 떠나서 다양한 기술 스택이 섞인 기반 위에 올라가, ‘매니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 매니징의 꽃은 추정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요.) 시간이 곧 생명인 스타트업의 특성상, 예정된 납기일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일자 추정과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물론 기술 기반을 많이 쌓지 않아도 ‘소통 능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제가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오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CSS, Ruby, AWS 등등 다양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술적 이해도를 만족할 만큼 높이고 실력을 쌓을 때까지 동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에, 이제는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잠시 UX 분야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커뮤니티팀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예전보다 많이 여유로워졌기에, 이제는 내가 정말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심란했던 어느 날,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운영 총괄을 담당하는 괜저와 긴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난 무엇을 좋아하고 잘해왔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하는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긴 이야기 끝에 ‘서비스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지금까지 그 일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서비스 코디네이터. 무엇을 하는 직무인지 바로 와닿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회사 내 각 팀의 소통을 돕고, 회사 내에서 생기는 CS 관련 문제나 정책 분야의 큰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직무입니다. 지금은 플랫폼의 신뢰와 안전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매일 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워크숍이나 보고서 등으로 지식 공유의 장을 열고 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분야가 국내에 들어온 지 육 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대내외적으로 이 분야를 어떻게 해석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따라서 이 분야를 적절하게 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더욱이 크라우드펀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 신뢰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잘 세워야 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이런 큰일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떨립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버티라 그리고 사랑하라

스타트업 분야의 선배님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이 바로 버티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이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삶 속에서 나의 의미를 정의하는 일도 어려워 죽겠는데, 내가 정년까지 일한다면 앞으로 적어도 사십 년 가까이는 할 ‘일’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그게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 속에서라면 한층 어렵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이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 역시 스타트업 자체에 회의가 들 때도 많았고, 혼자 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전 정말 겁이 많은데, 그때마다 겁에 질린 저에게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2년차 직장인이 되었네요. 앞으로도 계속 무서운 일은 많겠지만, 별수 있나요. 제 스스로를 믿는 일 밖에는 최선의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정책 분야에 있을 것이냐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사람들은 왜 우리 텀블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더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하나하나 기틀을 잡아 가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일들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되돌아보면 지금 직무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그 시간은 하나의 서비스를 온전히 이해하고 체화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경험들이 정책을 고민하고 세우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누가 뭐래도 ‘텀블벅'은 제가 제일 사랑하는 서비스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스타트업’ 이란 미명하에 겪는 불합리한 일들에 마냥 버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참고로 저는 ‘스타트업’ 이란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곳을 정말 싫어합니다.) 다만 방황도 언젠가는 정말 좋은 밑거름이 된다고, 이 글을 보고 있을 누군가와 저 스스로에게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정말로 서비스를 사랑하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동료들과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곳이라면 충분히 그 ‘방황’ 은 해볼만한 일이라고요.

지금도 어디선가 ‘내 일’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하신 분들과, ‘내 일’에 매진하고 계시는 분들께 격려를 보태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번엔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제 나름대로 깨달은 “일하는 방법” 에 대해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새해 (텀블)벅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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