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 방법론을 글쓰기에 적용하여 꾸준히 글쓰는 습관 만들기

바쁜 현업 가운데서도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완성하는 방법

이승헌 (Jerome)
12 min readNov 25, 2023

들어가며

특정 영역과 자신이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글로 남기는 습관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들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약된 이력서나 말로는 나의 세세한 고민과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지만, 삶과 일의 경험 가운데서 적어내는 여러 편의 글들은 누적된 나의 관점과 고민, 그리고 그 차이에서 느껴지는 전문성의 깊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나의 ‘브랜딩’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브랜딩은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글이 하나, 둘씩 쌓여 타인에게 ‘특정 분야, 특정 주제에서는 정말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줄 거야!’ 와 같은 적절한 기대와 신뢰를 주는 일이겠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일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기대를 주는 일을 글을 통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저 역시 매 분기 마다 이번에는 꼭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많이 내보내 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글을 완성하고 릴리즈하는 것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일에 이렇게 소질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여 리서치와 고민을 했지만 완성되지 않는 글이 많았습니다. 혹은 스스로 생각한 고민의 깊이를 온전히 전달하려다 보니 불필요한 내용과 표현들이 즐비해졌고, 결국 다시 읽어보았을 때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복잡한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글쓰기의 어려움과 바쁜 현업에서의 일들 때문에 글을 습관을 들이는 것은 매번 미뤄졌습니다.

현업에서의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애자일 방법론에 관한 책을 다시 꺼내들고, 하나씩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는 일도 고객 가치를 일관적이고, 일정한 주기로 전달하기 위해 명확한 유저 스토리 정의, 작업의 계획과 추정, 이터레이션에 기반한 실행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애자일로 글을 계획하기

애자일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의 핵심은 고객 관점에서 전달해야할 핵심 가치와 작업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신속하고 꾸준하게 작동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전달함에 있습니다. 애자일로 계획을 세울 때,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고객 가치를 기준으로 핵심 사용자 스토리를 정의하고, 해당 스토리를 구현하기 위해 실행해야 하는 작업을 작은 단위로 쪼개어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를 구성합니다. 작업에 대한 상대적인 추정을 통해 개발 범위, 비용, 출시 날짜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일정 주기(ex. 2주)의 이터레이션 단위로 개발, 배포합니다. 애자일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획한다면, 막연한 목표에 기대기 보다는 계획에 기반해 꾸준히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 수 있습니다.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Step 1. 고객 관점에서 충족되어야할 사용자 스토리 작성하기

Step 2. 해당 고객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의 리스트(마스터 스토리 리스트) 구성하기

Step 3. 프로젝트의 범위와 비용 등을 추정하여 이터레이션 계획 세우기

Step 4. 이터레이션 단위로 실행하고, 작업을 완료하기

Step 5. 주기적으로 배포하기

글쓰기도 애자일을 통해 계획한다면, 독자에게 필요한 글의 주제를 더욱 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작업하고, 꾸준히 글을 완성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아직은 연관성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 “애자일로 글쓰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애자일로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완성하는 5단계

Step 1. 유저 스토리를 통해 글이 전달해야할 단 하나의 메시지를 설정하기

글을 쓰기 전에 작성했던 인셉션 덱(Inception Deck)

글을 계획할 때, 가장 빈번하게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꼭 드러내야 겠다는 강박 관념에 눈이 멀기도 하고, 꼭 표현 싶은 어떤 감정에 휘둘려 불필요한 미사어구를 남발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꼼꼼이 확인하며, 덜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많은 실수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을 계획할 때 역시 이런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데, 이를 잡아주는 것이 “유저 스토리(User Story)”라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유저 스토리는 고객의 문제이면서, 팀이 해결해야할 단 하나의 목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지향점이 한 문장으로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저 스토리는 일반적으로 (1) 누가 (2) 무엇을 (3) 왜 의 정보를 담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쓸 때, 아래와 같은 유저 스토리를 정의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누가 (Who) : 커리어 성장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은

무엇을 (What) : 미루지 않고 글쓰기를 계획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

왜 (Why) : 이를 통해 글을 지속적으로 완성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처럼 제품의 타겟과 대략적인 해결책 그리고 해결되었을 때,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임팩트를 뚜렷하게 정의하고, 실행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의미있는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보다는 내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임팩트’를 기준으로 글이 쓰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글은 뚜렷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내용이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유저 스토리를 쓰기 전에는 고객의 문제와 해결책 그리고 비용 등과 관련해서 많은 리서치와 고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Step 2. 글의 흐름이 될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 구성하기

한 편의 글의 개요를 7개의 작은 스토리로 나누어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를 구성

유저 스토리를 통해 글이 전달해야할 하나의 이야기/목표를 정의했다면, 이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개요를 구성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구체적인 구성에 대한 계획없이 글을 쓸 경우 ‘용두사미’의 글이 쓰여지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을 멋있게 포장하고자 범위가 없는 상상만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점차 글을 쓸 수록 이리 저리 꼬이는 생각들과 도무지 완성되지 않는 글 때문에 글을 완성할 동기와 작업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습니다. 결과는 항상 나의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지도, 독자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장황한 글이 되어버렸죠.

애자일에서는 하나의 유저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실현시켜야 하는 여러 스토리를 수집하여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백로그)”를 구성합니다. 이 때,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는 상위 목표인 하나의 유저 스토리와 명확히 얼라인되어 있어야 합니다. 글도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의 형태로 개요를 짠다면, 일관적인 글을 구성하고 상위 메시지를 더욱 신속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위에서 정의한 유저 스토리를 7개의 더 작고 독립적인 스토리로 쪼갰습니다. 7개의 유저 스토리는 추상적인 메시지 보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기준으로 구성했습니다.

Step 3. 바쁜 일과 중에도 일정한 시간에 기반한 이터레이션을 계획하기

대략적인 작업의 크기를 추정한뒤, 날짜에 맞게 이터레이션을 실행

일관적으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 작업의 시작과 끝이 명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마스터 스토리 리스트를 기준으로 언제, 어떤 글을 작성할지 이터레이션 계획을 세웁니다. 예를 들어, 저는 1주일에 2번, 2시간씩 글을 작성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합니다. 1번의 이터레이션 단위를 2시간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내에 쓸 수 있는 분량을 추정하여, 몇 번의 이터레이션을 거치면 글이 완성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봅니다. 저는 대략적으로 하나의 글을 4번의 이터레이션으로 나누어 쓰는 것을 계획했습니다. 글을 2주 동안 작성하고 내보낼 계획을 합니다. 이것은 계획일 뿐입니다.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으며, 스스로의 원칙을 세워 하나씩 실행해나가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Step 4. 짧은 단위로 초기 작성 의도를 검증하며, 이터레이션 실행하기

각 스토리별로 초기 목표 기준을 검증하며 글을 작성

부분적인 목표를 가지고 작은 문단 단위로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매주 계획한 일정에 따라서 계획한 작업의 글을 완성해 나갑니다. 특정 이터레이션에 목표한 글을 최대한 지켜서 써내려갑니다. 그리고 각 이터레이션 목표에 맞게 글쓰기 습관을 지켰는지, 해당 기간에 작성한 글은 사전에 정의한 유저스토리와 비교해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완성 여부를 판단합니다. 처음에는 표현이나 미사어구를 빼고, 내용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전에 정의한 문단의 유저 스토리에 부합하는 지를 점검하면서, 신속하게 글을 완성하고 목표 충족 여부를 테스트하는 것도 글쓰기의 효율성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제품 개발에서 애자일 기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TDD(Test Driven Design), 유닛 테스트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 뒷받침될 때 애자일의 강점을 최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 부분에서 충족시켜야 하는 결과를 검증하는 테스트 코드를 먼저 짠 다음에, 실제 제품 코드를 짜서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인데, 특정 유닛의 코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빈번하게 확인함으로써 결함을 사전에 확인하고 품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글도 문단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정보 등을 정의해놓고, 기준에 부합하는지 작은 단위로 확인해보는 것은 글을 명료하게 작성해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Step 5. 전체적인 관점에서 글을 되돌아보고, 수정 계획 및 배포 하기

최종 탈고 전, 전체 글을 복기하며 글의 문제를 찾고 수정

수 차례의 이터레이션을 통해 각 문단을 나누어 작업했다면, 이제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시 글을 확인해볼 차례 입니다. 앞선 순서대로 글을 작성했다면, 각각의 문단과 글은 내용적으로 탄탄하고 간결하게 작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편, 각 부분은 독립적으로는 부분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글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조화롭지 않거나 정보 전달 중심의 건조한 글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는 처음에 계획했던 단 하나의 유저 스토리를 기준으로 전체적인 글의 메시지 일관성을 검증해볼 차례입니다. 또한 고객의 관점에서 좀 더 공감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추가하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함께 글을 쓰는 동료나 모임이 있다면, 먼저 공개하여 피드백을 요청해 보세요. 독자의 관점에서 자신이 초기에 설정한 기준을 충족했는지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이 배포와 동시에 더 많은 독자에게 완성된 인상을 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목표했던 바와 다르게 글의 메시지가 불분명하거나, 표현 등이 모호해서 많은 수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설정했던 기준에 못 미쳐 글의 배포를 미루게 되는 상황도 분명히 발생할 것입니다. 이 때에는 ‘글의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보세요. 조금 배포를 미룬 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터레이션을 한 두 차례 더 계획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글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신속하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배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사실, 저 역시 넘치는 의욕과는 다르게 매번 글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글이 잘 완성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고 시작하려고 작성해 놓은 글입니다. 이 방법이 언제나, 모든 유형의 글을 쓰는 데에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글쓰기에 숙련된 분들에게는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직장 생활을 하느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분들이나, 글에 대한 욕구는 가지고 있으나 아직 글을 쓰는 일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막연하게 글을 써내려 갔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 글을 작성하는 데에 2주간 총 6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만약 글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과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세우고 싶은 분들이라면, 처음 한 편의 글을 잘 완성한 이후에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쓸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한 사람이 가진 전문성과 지식을 독자가 온전히 신뢰하고 ‘경험’할 수 있으려면, 여러 편의 글에 걸쳐 축적된 철학, 관심사, 학습의 과정, 생각의 흐름 등이 일관적인 주제와 메시지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성장하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 위주로만 쓰기 보다는 이상적인 나의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꾸준히 학습하고, 글을 통해 하나씩 나의 것으로 내재화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했을 때 진중한 인상과 신뢰감이 드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영상에서는 시간 개념을 ‘프레임(Frame)’, 필름 한장 으로 측정한다고 합니다. 보통 1초는 24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이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스크린에 영사하면 잔상 효과로 마치 움직이는 것 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24개의 사진이 연결되어 1초를 만들고, 또 24개를 더하여 2초, 3초가 만들어지며, 입체적인 인상과 서사를 가진 영상이 되죠. 사진이 영상이 되는 원리 처럼, 저와 같이 글쓰기에 부담을 느꼈던 많은 분이 자신의 글을 하나씩 꾹꾹 쌓아가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서사와 자신만의 힘 있는 인상을 갖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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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Jerome)

안녕하세요! 인지과학 기반의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전공한, 4년차 Product Manager 입니다. UX 리서처를 거쳐 현재는 AIEd 회사의 PM으로 일하고 있습니다.